병원의 사생활 - 수술대 위에서 기록한 신경외과 의사의 그림일기
김정욱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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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생활, 이란 단어를 존중해요. 그래서 사생활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된 거 같아요.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어떤 사적인생활이라는 부분은요.

 

어렸을 적 교통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2주일간 입원했던 적이 있어요. 교통사고라는 것은 후유증이 무섭기 때문에 처음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가 눈에 띄게 다치지 않았지만 먹고 자고 나아지길 기다리면서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한 생활이 2주간 저에겐 있었던 거죠.

 

그때 깨달았던 것 중 하나는 아픈 사람들은 무척 쉽게 화를 낸다는 거였어요. 저는 다리에 충격이 가면 안 되기 때문에 절대 뛰면 안 되는 정도의 지침만 있었고 다른 데는 크게 아프지 않았던 거 같아요. 천천히 걸어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뛰면 안 된다 정도의 제약 말고는 약 먹고 밥 먹고, 가 일상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사람 구경했던 거 같아요. 구경한다는 생각도 따로 없었지만요.

 

물론 모든 환자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병원 밖 바깥세상에선 아무래도 화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아주 평범한 아저씨, 할머니, 아주머니가, 아주, 쉽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나요. 거의 다 어떤 일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하나가 기억이 나는 게 평소에 아주 착한 아저씨였는데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슬리퍼 한 짝이 없다고 분통을 막 터뜨리던 기억이 나요. 저한테 내는 짜증도 아니고, 그냥 혼자 분통을 터뜨리는 건데도 많이 무서웠어요.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의사의 눈으로 본 병원이 좀 궁금했던 거 같아요. 의사 생활을 세밀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그 생활이 아주 아주 빡세다는 걸 아는데, 그 와중에 이 의사는 무엇을 기록하고 남기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요.

 

 

 

 

음..아마 글을 통해 작가님이 남기고 싶었던 것은 직업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였던 거 같아요.

(작가님의 말) 

제 직업은 당연히 의사지만, 저는 글을 계속 쓰려고 합니다.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쓸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저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특수하거나 자극적인, 특별한 이야기에 집착하지는 않아야겠다, 라고 다짐을 했어요.

 

그냥, 제 시선으로 바라본 환자와 보호자 이야기를 더,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루할 수 있겠지만,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자극을 추구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글 읽는 분의 시선은 그림으로 붙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 그림은 보기에 예쁜 그림이 또 아니긴 합니다.

다만 제가 그리고 싶은 방식의 그림을 그릴 것이고, 제 방식대로 그린 그림들을 통해 그 분들이 인생의 주인공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계속해서요.

 

사실 전 의사라는 직업이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3가지가 있어요.

 

첫째, 전 그냥 제 일을 하는 것인데 고맙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직업이에요.

둘째는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면 이런 관심을 못 받았을 거 같고 편하게 글을 풀어내지 못했을 거 같아요. 제 직업이 글은 아니니 문장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별로 하지 않구요.

셋째는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살았대도 이렇게 못 살았을 거 같구요.

 

(솔직히 이 부분은 너무 자연스럽게 훅 이야기가 흘러가서 둘째, 셋째라고는 말은 하셨는데 뭔가 훅 지나감. 포인트를 잡은 건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느끼는 맥락은 이런 느낌이어서 이렇게 정리했어요. 정확하게 캐치한 분은 댓글로 피드백 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의사의 길과 화가의 길을 심도 있게 고민했어요.

 

내가 아무리 좋은 사유를 가지고 있어도 그 사유가 그림으로 맛있게 표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에, 과연 그렇게,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양방언 씨 보면 서울대 의대도 가기 힘든데 도쿄 의대를 그만두셨더라구요. UN 김정훈 씨도 서울대 치대 갔다가 그만두고. 어떤 전문직을 그만 두고 그렇게 자기 분야를 갖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사실 한번 전시회를 갖고, ,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림이라는 게, 그림만 딱 그리고 끝이 아니고, 광고도 해야 하고, 또 주변에 알려서 보러 오게 해야 하고, 할 게 많더라고요. 저 두 가지 일도 말하고 보면 같은 이유의 일이고 동일한 맥락 같은데, 하려고 하면 각각의 일이더라구요.이게.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고 화가로서의 일에 대해 좌절을 하고 의사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래도 현재 내가 조금이나마 뜨거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리드 노트에 그린 거였는데 그걸 출판하게 되면서 편집자님이 일일이 다 지워주셨어요. 편집자님 감사합니다. 앞으론 절대 몰스킨 그리드 노트는 쓰지 않을 겁니다.

 

의사라는 길을 걷게 되고 변하셨느냐에 대한 질문_

당연히 변했죠. 많이 변했어요. 그리고 의사라는 일은 할수록 쉽지 않은 건 맞는 거 같아요. 일단 저는 무서운 게 변했어요. 처음엔 욕 먹는 게 진짜 겁났는데, 지금은 환자 잘못될까봐 두려워요.

 

그리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제가 이런 글을 통해 다짐을 하고, 저는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좋은 의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런 설익은 이야기들을 가지고도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은 제가 의사지, 글 쓰는 것이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편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고, 사실은 글을 잘 쓰겠다, 에 대한 고민보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정도면 되겠다는 게 제 마음이에요.

 

왜냐하면 결국 의사는 잘 낫게 하고 치료를 잘 해야 하는 게 첫번째인 거니까요.

 

수술 기록지를 보니까 4년간 900건 정도 수술을 했더라구요. 그 중에 600명쯤은 살렸겠다 싶으면서 안도를 했습니다. 사실, 어떤 일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잘해야 하고 자신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어려운 일이에요, 수술은.

 

그러다가 질문 시간이 좀 길게 이어진 걸 간략히 정리할게요 :)

아마 책에도 이런 부분이 있을 거 같아요. 전 아직 다 읽지를 않아서...

 

훗날의 바람 같은 게 있느냐는 질문_

저는 나중에 희망이 있다면 노인분들을 위한 병원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분들이 웃으면서 돌아가실 수 있게.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거 같지만, 소망은 그래요. 또 저는 3년간 군대를 가야 하는데 공중 보건의로 가야 할 거 같아요. 그 전에, 혹은 가서 영상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어르신들에 대해, 좀 세밀하게요.

 

그림을 언제 그리냐는 질문_

사실 30분 정도면 다 그립니다. 그리다 보니까 잘 그린다기보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법을 터득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그림쟁이도 아니고, 글쟁이도 아니기 때문에, 너무 잘 쓰고, 너무 잘 그리려고 하지는 않아요. 원래 목적인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가 퇴색될까봐 그런 부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글도 그렇구요. 휴대폰에 단상을 적었다가 나중에 시간날때 써요. 많이 고쳐야 하긴 하지만, 바로바로 씁니다. 따로 막 시간을 내서 쓰진 않구요. 그럴 시간도 없긴 합니다. 일주일에 160시간 가까이 일해야 하거든요.

 

DNR에 대한 고민과 생각에 대해_

신경외과의 의사가 DNR(심폐소생술 금지동의서)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과와는 완전히 달라요.

 

그 판단을 내리고 그 순간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의사의 의무 중에 하나구요.

코마 상태는 기간이 2주가 넘지 않아요. 그날 돌아가시는 분도 계시고. 한달 넘는 사람도 있긴 해요. 근데 숨은 쉬고 있지만, 그 숨이라는 것이 심장마사지+ 전기충격으로 몸의 숨을 어찌어찌 겨우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해요. 그리고 의사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 그게 삶으로서 무슨 의미를 갖느냐 대해서까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사실, 결말을 아는데 매일 같은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 상당히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바로 보호자분들인데 병원에 계속 있으시거든요. 그러니까 지나가는데 보호자가 와서 담당의한테 매일 물어보거든요. 오늘은 좀 어떻습니까.

 

차라리 나빠졌습니다,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뭐라도 다른 조치를 취해볼 이유가 되니까. 그런데, 거의 변화가 없어요, 정말로.

 

처음엔 선생님, 오늘은 좀 어떤가요?’ 라고 묻지만 그 분들, 지칩니다.

장례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거든요. , 돌아가실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어떤 날은 보호자가 막 짜증을 내요. 나아지지도 않을 사람한테 왜 무슨 약을 주냐고.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왜 수혈을 하시는 거냐고.

나아지지 않는 거면, 의사선생님은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고.

 

그 화가 결코 저희를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니까,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죠. 그분들이나 저나.

 

근데 또 놀라운 게 아예 의식이 없어도 나중에 깨서 그걸 기억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때 니 내 불렀제?’ 하고. 사실, 환자한테 노력하는 이유는 보호자분들이 후회 없이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에요. 남은 사람들이 원없이 그분들이 가시게 해주시길 바라요.

 

 

 

굳이 저울의 이미지를 빌려와서 나(의사작가님)의 고통과 환자의 고통을 각각에 저울에 올린 상태로 말하자면, 처음엔 나의 감정, 혼나기 싫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 무거웠다면, 지금은 환자의 고통이 무거워지신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욕을 먹는 게 무섭다는 건 내가 내 감정이 고통스럽기를 피하고 싶은 마음인 거고, 환자가 잘못될까봐 두렵다는 것은, 내가 아닌 저 바깥의 인간의 고통이, 나라는 사람의 고통보다 중요하게 다가와졌다는 거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제 글이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말씀도,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말이 단지 인정받기 위해, 주목받기 위해 자극을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다짐 같았어요.

유머감각을 키우는 대신 친구들과 함께 커피숍 같은 데 가면 서로 냅킨 같은 거 막 챙겨주는, 매너감각을 키웠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지루하더라도, 점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는 말처럼 느껴졌거든요.

질문하는 분들 중에 간호사분들이 많이 있으셔서 전 놀랐어요. 미대 나오신 분도 많으셨고.

간호사는 스트레스 많은 직군인데, 작가님이 의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많은 인정을 해주지만, 일선에서 환자들을 더 많이 챙기는 손길은 간호사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씀한 것도 그 직업군에 현재 있는 분에겐 큰 감동적이었을 거 같아요.

 

정말 참기 힘든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대요. 그 일의 중요도나 업무 강도에 비해서요.

 

사실 사람들 마음이라는 게 편하고 좋은 것에는 금방, 정말 금방 익숙해져서 그 편하고 좋은 것이 당연하다고 인지해버린대요. 그래서 그 좋음, 편함, 깨끗함을 위해 어디선가 누군가가 얼마나 희생하고 노력하는지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쉽지 않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시구나 싶었어요.

 

 

다 읽지 못했지만 우선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으로 나온 듯 해요.

아기자기하고 수채화 같고 정말 예쁘게 나온 책이에요.꼭 한 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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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울차 2017-11-1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공감가네요 화를 자주 낸다는 사실...
그래요 병원이라는 곳이 그런곳인것 같아요
병원에서 알하면서 너무 힘들어요
다들 날카로워져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