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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무라카미 요코 사진,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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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고 사고 싶어도 표지가 구려서 살 수가 없다... 들고 다니기 창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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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사생활 - 수술대 위에서 기록한 신경외과 의사의 그림일기
김정욱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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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생활, 이란 단어를 존중해요. 그래서 사생활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된 거 같아요.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어떤 사적인생활이라는 부분은요.

 

어렸을 적 교통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2주일간 입원했던 적이 있어요. 교통사고라는 것은 후유증이 무섭기 때문에 처음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가 눈에 띄게 다치지 않았지만 먹고 자고 나아지길 기다리면서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한 생활이 2주간 저에겐 있었던 거죠.

 

그때 깨달았던 것 중 하나는 아픈 사람들은 무척 쉽게 화를 낸다는 거였어요. 저는 다리에 충격이 가면 안 되기 때문에 절대 뛰면 안 되는 정도의 지침만 있었고 다른 데는 크게 아프지 않았던 거 같아요. 천천히 걸어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뛰면 안 된다 정도의 제약 말고는 약 먹고 밥 먹고, 가 일상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사람 구경했던 거 같아요. 구경한다는 생각도 따로 없었지만요.

 

물론 모든 환자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병원 밖 바깥세상에선 아무래도 화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아주 평범한 아저씨, 할머니, 아주머니가, 아주, 쉽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나요. 거의 다 어떤 일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하나가 기억이 나는 게 평소에 아주 착한 아저씨였는데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슬리퍼 한 짝이 없다고 분통을 막 터뜨리던 기억이 나요. 저한테 내는 짜증도 아니고, 그냥 혼자 분통을 터뜨리는 건데도 많이 무서웠어요.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의사의 눈으로 본 병원이 좀 궁금했던 거 같아요. 의사 생활을 세밀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그 생활이 아주 아주 빡세다는 걸 아는데, 그 와중에 이 의사는 무엇을 기록하고 남기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요.

 

 

 

 

음..아마 글을 통해 작가님이 남기고 싶었던 것은 직업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였던 거 같아요.

(작가님의 말) 

제 직업은 당연히 의사지만, 저는 글을 계속 쓰려고 합니다.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쓸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저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특수하거나 자극적인, 특별한 이야기에 집착하지는 않아야겠다, 라고 다짐을 했어요.

 

그냥, 제 시선으로 바라본 환자와 보호자 이야기를 더,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루할 수 있겠지만,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자극을 추구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글 읽는 분의 시선은 그림으로 붙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 그림은 보기에 예쁜 그림이 또 아니긴 합니다.

다만 제가 그리고 싶은 방식의 그림을 그릴 것이고, 제 방식대로 그린 그림들을 통해 그 분들이 인생의 주인공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계속해서요.

 

사실 전 의사라는 직업이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3가지가 있어요.

 

첫째, 전 그냥 제 일을 하는 것인데 고맙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직업이에요.

둘째는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면 이런 관심을 못 받았을 거 같고 편하게 글을 풀어내지 못했을 거 같아요. 제 직업이 글은 아니니 문장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별로 하지 않구요.

셋째는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살았대도 이렇게 못 살았을 거 같구요.

 

(솔직히 이 부분은 너무 자연스럽게 훅 이야기가 흘러가서 둘째, 셋째라고는 말은 하셨는데 뭔가 훅 지나감. 포인트를 잡은 건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느끼는 맥락은 이런 느낌이어서 이렇게 정리했어요. 정확하게 캐치한 분은 댓글로 피드백 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의사의 길과 화가의 길을 심도 있게 고민했어요.

 

내가 아무리 좋은 사유를 가지고 있어도 그 사유가 그림으로 맛있게 표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에, 과연 그렇게,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양방언 씨 보면 서울대 의대도 가기 힘든데 도쿄 의대를 그만두셨더라구요. UN 김정훈 씨도 서울대 치대 갔다가 그만두고. 어떤 전문직을 그만 두고 그렇게 자기 분야를 갖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사실 한번 전시회를 갖고, ,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림이라는 게, 그림만 딱 그리고 끝이 아니고, 광고도 해야 하고, 또 주변에 알려서 보러 오게 해야 하고, 할 게 많더라고요. 저 두 가지 일도 말하고 보면 같은 이유의 일이고 동일한 맥락 같은데, 하려고 하면 각각의 일이더라구요.이게.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고 화가로서의 일에 대해 좌절을 하고 의사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래도 현재 내가 조금이나마 뜨거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리드 노트에 그린 거였는데 그걸 출판하게 되면서 편집자님이 일일이 다 지워주셨어요. 편집자님 감사합니다. 앞으론 절대 몰스킨 그리드 노트는 쓰지 않을 겁니다.

 

의사라는 길을 걷게 되고 변하셨느냐에 대한 질문_

당연히 변했죠. 많이 변했어요. 그리고 의사라는 일은 할수록 쉽지 않은 건 맞는 거 같아요. 일단 저는 무서운 게 변했어요. 처음엔 욕 먹는 게 진짜 겁났는데, 지금은 환자 잘못될까봐 두려워요.

 

그리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제가 이런 글을 통해 다짐을 하고, 저는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좋은 의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런 설익은 이야기들을 가지고도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은 제가 의사지, 글 쓰는 것이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편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고, 사실은 글을 잘 쓰겠다, 에 대한 고민보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정도면 되겠다는 게 제 마음이에요.

 

왜냐하면 결국 의사는 잘 낫게 하고 치료를 잘 해야 하는 게 첫번째인 거니까요.

 

수술 기록지를 보니까 4년간 900건 정도 수술을 했더라구요. 그 중에 600명쯤은 살렸겠다 싶으면서 안도를 했습니다. 사실, 어떤 일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잘해야 하고 자신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어려운 일이에요, 수술은.

 

그러다가 질문 시간이 좀 길게 이어진 걸 간략히 정리할게요 :)

아마 책에도 이런 부분이 있을 거 같아요. 전 아직 다 읽지를 않아서...

 

훗날의 바람 같은 게 있느냐는 질문_

저는 나중에 희망이 있다면 노인분들을 위한 병원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분들이 웃으면서 돌아가실 수 있게.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거 같지만, 소망은 그래요. 또 저는 3년간 군대를 가야 하는데 공중 보건의로 가야 할 거 같아요. 그 전에, 혹은 가서 영상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어르신들에 대해, 좀 세밀하게요.

 

그림을 언제 그리냐는 질문_

사실 30분 정도면 다 그립니다. 그리다 보니까 잘 그린다기보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법을 터득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그림쟁이도 아니고, 글쟁이도 아니기 때문에, 너무 잘 쓰고, 너무 잘 그리려고 하지는 않아요. 원래 목적인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가 퇴색될까봐 그런 부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글도 그렇구요. 휴대폰에 단상을 적었다가 나중에 시간날때 써요. 많이 고쳐야 하긴 하지만, 바로바로 씁니다. 따로 막 시간을 내서 쓰진 않구요. 그럴 시간도 없긴 합니다. 일주일에 160시간 가까이 일해야 하거든요.

 

DNR에 대한 고민과 생각에 대해_

신경외과의 의사가 DNR(심폐소생술 금지동의서)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과와는 완전히 달라요.

 

그 판단을 내리고 그 순간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의사의 의무 중에 하나구요.

코마 상태는 기간이 2주가 넘지 않아요. 그날 돌아가시는 분도 계시고. 한달 넘는 사람도 있긴 해요. 근데 숨은 쉬고 있지만, 그 숨이라는 것이 심장마사지+ 전기충격으로 몸의 숨을 어찌어찌 겨우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해요. 그리고 의사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 그게 삶으로서 무슨 의미를 갖느냐 대해서까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사실, 결말을 아는데 매일 같은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 상당히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바로 보호자분들인데 병원에 계속 있으시거든요. 그러니까 지나가는데 보호자가 와서 담당의한테 매일 물어보거든요. 오늘은 좀 어떻습니까.

 

차라리 나빠졌습니다,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뭐라도 다른 조치를 취해볼 이유가 되니까. 그런데, 거의 변화가 없어요, 정말로.

 

처음엔 선생님, 오늘은 좀 어떤가요?’ 라고 묻지만 그 분들, 지칩니다.

장례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거든요. , 돌아가실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어떤 날은 보호자가 막 짜증을 내요. 나아지지도 않을 사람한테 왜 무슨 약을 주냐고.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왜 수혈을 하시는 거냐고.

나아지지 않는 거면, 의사선생님은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고.

 

그 화가 결코 저희를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니까,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죠. 그분들이나 저나.

 

근데 또 놀라운 게 아예 의식이 없어도 나중에 깨서 그걸 기억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때 니 내 불렀제?’ 하고. 사실, 환자한테 노력하는 이유는 보호자분들이 후회 없이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에요. 남은 사람들이 원없이 그분들이 가시게 해주시길 바라요.

 

 

 

굳이 저울의 이미지를 빌려와서 나(의사작가님)의 고통과 환자의 고통을 각각에 저울에 올린 상태로 말하자면, 처음엔 나의 감정, 혼나기 싫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 무거웠다면, 지금은 환자의 고통이 무거워지신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욕을 먹는 게 무섭다는 건 내가 내 감정이 고통스럽기를 피하고 싶은 마음인 거고, 환자가 잘못될까봐 두렵다는 것은, 내가 아닌 저 바깥의 인간의 고통이, 나라는 사람의 고통보다 중요하게 다가와졌다는 거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제 글이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말씀도,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말이 단지 인정받기 위해, 주목받기 위해 자극을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다짐 같았어요.

유머감각을 키우는 대신 친구들과 함께 커피숍 같은 데 가면 서로 냅킨 같은 거 막 챙겨주는, 매너감각을 키웠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지루하더라도, 점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는 말처럼 느껴졌거든요.

질문하는 분들 중에 간호사분들이 많이 있으셔서 전 놀랐어요. 미대 나오신 분도 많으셨고.

간호사는 스트레스 많은 직군인데, 작가님이 의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많은 인정을 해주지만, 일선에서 환자들을 더 많이 챙기는 손길은 간호사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씀한 것도 그 직업군에 현재 있는 분에겐 큰 감동적이었을 거 같아요.

 

정말 참기 힘든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대요. 그 일의 중요도나 업무 강도에 비해서요.

 

사실 사람들 마음이라는 게 편하고 좋은 것에는 금방, 정말 금방 익숙해져서 그 편하고 좋은 것이 당연하다고 인지해버린대요. 그래서 그 좋음, 편함, 깨끗함을 위해 어디선가 누군가가 얼마나 희생하고 노력하는지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쉽지 않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시구나 싶었어요.

 

 

다 읽지 못했지만 우선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으로 나온 듯 해요.

아기자기하고 수채화 같고 정말 예쁘게 나온 책이에요.꼭 한 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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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울차 2017-11-1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공감가네요 화를 자주 낸다는 사실...
그래요 병원이라는 곳이 그런곳인것 같아요
병원에서 알하면서 너무 힘들어요
다들 날카로워져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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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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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건 읽어야 해!(혹은 사야 해!)"
라는 생각이 든 책이에요!
표지도 예쁘고 무엇보다 제목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한 책은 흔하지 않거든요. 이건 마치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매력적인 이성이 갑자기 "오늘 나한테 커피 한잔 할 시간을 줄래요?" 하는 것 같은 느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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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프레제트> 라는 영화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여성의 자서전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세탁업을 하는 여성 노동자, 모드의 삶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주인공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성추행에 그대로 노출된 채, 그럼에도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모든 모멸감을 참아내고 일을 합니다.


 지금을 사는 여성들이 쉽게 얻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여성의 정치 참여권인데요. 사실 여자가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과거의 험난한 투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58125일 공포된 '민의원 의원선거법''참의원 의원선거법'에 의해 여성은 민의원과 참의원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게 되었고, 이로써 명실상부하게 남성과 대등한 공법적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영국과는 다르게 비교적 평화적으로 여성의 참정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많은 노력이 있었구요.)아마, 그 시기 이미 다른 나라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던 상황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되요. 우리나라의 여성참정권이 획득된 시기는 영국보다 30년이 지난 시점이거든요.  


<서프레제트>는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을 얻기 위한 투쟁의 기록입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발달했다고 하는 영국의 경우임에도 선거권 확대와 관련하여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된 것은 1928년이 되어서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는 1832, 인구 비례에 따른 선거를 요구하면서 시작된 것이 무려 100여 년이나 계속된 끝에 얻어낸 결과였습니다.

 


서프레제트를 이끈 여성,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1858년에 맨체스터의 급진주의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시민운동가로, 세 딸과 함께 참정권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녀가 참정권 운동에 투신한 이유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좀더 좋은 정책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여성이 굳이 목소리를 가져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정치가들은 남편에게 참정권이 있는데 그게 왜 꼭 필요하냐고 되묻습니다.



 

그녀는 서문에 끔찍한 역사적 시절을 겪으며 여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일들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녀들이 받았던 댓가도요.

 

 


 

p.15-16

남성들의 전투는 몇 세기 동안 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남성들은 이러한 공포와 파괴 행위에 대해 기념비와 위대한 노래와 서사시라는 보상을 받았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서 싸운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숨 말고는 누구의 목숨도 해치지 않았다. 이 여성들이 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유럽에 몰아친 절망의 시기에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문명을 지키는 일을 맡겼다. 여성들은 전장에 나간 남성들과 전쟁으로 아버지를 뺏긴 아이들을 위해 들판과 과수원과 포도밭에서 식량을 수확하고 있으며, 도시에서 가게를 열고, 트럭과 전차를 운전하고, 수많은 사업을 돌보고 있다.


살아남은 군인들이 돌아오고, 남성들이 다시 일상의 업무를 도맡게 될 때, 여성들이 훌륭하게 수행한 역할은 잊힐 것인가? 남성들은 여성들이 계층을 막론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쳐둔 채 부상자를 간호하고, 가난한 이를 돕고, 병든 이와 외로운 이를 위로할 뿐 아니라, 국가 자체의 존속을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인가? 여성들의 희생과 헌신을 영국 정부가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지금까지 정부가 마련한 실업 대책은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옷을 만드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었던 것마저 빼앗아가고 있다.


그녀는 다행히 정말 기적적으로 그 당시에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 팽크허스트 박사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말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분투하는 과정에 명예를 더해준 팽크허스트 박사와 같은 남성과 여성들에게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란다고 밝힙니다.

 

 

p.33-34

나는 1879년에 팽크허스트 박사와 결혼했다. 초기 단계의 참정권 운동이 분투하는 과정에 명예로운 이름을 더해준 팽크허스트 박사와 같은 남성과 여성들에게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참정권 운동이 대중화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고, 여성들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까지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언젠가 발생할 투쟁을 위해서 교육하고 조직하고 준비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한평생 일했다.


내 행복한 결혼생활은 19년간 지속되었다. 나는 여성참정권론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정상적으로 배출할 길을 못 찾아서 비비 꼬이고 실망한 사람들이라는 조롱을 자주 접해왔다. 이런 조롱은 어떤 여성참정권론자에게도 해당되지 않지만, 특히 내 경우에는 더더욱 해당 사항이 없다. 오히려 내 가정생활과 가족관계는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꿈꿀 수 있는 이상에 가까웠다. 결혼하고 나서 1년 후에 맏딸 크리스타벨이 태어났고, 그다음 18개월 후에 둘째딸 실비아가 태어났다. 그 뒤로 더 태어났고, 나는 몇 년간 가정사에 깊이 몰두해 있었다.

그렇다고 공동체의 일에 흥미를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팽크허스트 박사는 내가 가정만 지키는 기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성이 가정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 자고 있는 자신에게 얘가 남자애로 태어나지 않아서 안됐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슬픈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녀는 순간 벌떡 일어나서 남자애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항의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여자라는 게 싫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버지를 포함해, 남자들은 자신들이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여자들도 그런 믿음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p.47

독자들을 위해 영국의 빈민법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설명하겠다. 이 법은 현명하고 인간적인 군주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발의한 가장 위대한 개혁법 중 하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여왕은 당대 시인들이 유쾌한 영국이라고 불렀던 우리나라가 끔찍하게 빈곤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초라한 오두막에서, 길거리에서, 그리고 궁전 바로 앞에서 비참하게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헨리 8세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영국 국교회를 로마와 분리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헨리 8세가 수도원과 수녀원의 토지를 몰수해 자신의 정책을 지지했던 귀족들과 총신들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개신교 귀족들은 교회의 재산은 차지했지만 교회가 오랫동안 해왔던 의무들, 즉 방랑자를 재워주고, 자선을 베풀며, 병자를 돌보고,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의무는 떠맡지 않았다.

 

 


p.56

그 위원회(빈민구제위원회)에 있는 동안 목격한 다른 여성들의 비극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겠다. 일할 능력이 있는 빈민과 그 가족들을 돕는 구호 부서에서 일하면서, 집과 가족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미망인들을 많이 만났다. 법률이 이런 여성들에게 제공하는 도움이라고는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결국에 여성 자신과 아이가 갈 곳이라고는 빈민구호소밖에 없었다. 설혹 젖먹이를 데리고 있더라도 여성들은 법률적으로는 노동할 능력을 갖춘 인간으로 여겨져서 아이를 떼어놓고 일을 해야 했다. 사람들은 통상 여성의 임무는 집에 머무르며 아이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남성 동료들에게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면 엄마와 아이들이 집에 머물며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 남성들은 이 엄마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서 그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p.57

여성이 선거권을 갖게 되면 적어도 가난이라는 저주를 완화시킬 여러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성들은 빈민구호, 특히 극심한 가난을 예방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남성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


()예컨대, 북서해안 쪽의 연안이 계속 쓸려가서 줄어드는 상황에서 연안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끔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누구도 연안 복원 문제를 실업자 구호 방안으로 제시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1898년에 나는 남편의 죽음을 맞아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을 맛보았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무거운 책무를 떠맡게 되었다. 빈민구제위원회의 직책을 사임하고, 곧바로 출생과 사망을 다루는 맨체스터의 등기소에서 봉급을 받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내 임무는 우리 구역의 주요 인구조사 담당관으로서 출생과 사망 증명서를 받아서 기록하고, 분기마다 중앙호적등기소로 장부를 보내는 일이었다. 내가 맡은 구역은 노동계급이 사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 시간에도 일을 했다. 여성들이 여자 등기사무관을 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생각하면 뭉클하다.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어떤 이야기는 아주 끔찍했고, 가난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인내하는 모든 이야기에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빈민구호소에서의 경험을 하고 난 뒤인데도, 세상이 여성과 아이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마다 새삼 충격을 받았다. 열세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자신이 낳은 사생아의 출생신고를 하러 등기소에 오곤 했다. 아이의 아버지 혹은 가까운 친척이 아이를 임신시킨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영국에서 성행위에 대한 동의는 16세부터 가능한데, 남자는 여자아이가 16세가 넘은 줄 알았다고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투표권을 얻어 그들이 원하는 법안을 재정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에멀린은 강하게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불편을 느끼는 모든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녀는 참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참정권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는데 그 시작부터 그들은 험한 꼴을 당하게 됩니다. 그녀들은 그 주장을 하며 아무도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들의 몸만 처절히 파괴되고 다칩니다. 정치의 수뇌부에 있는 사람은 그것조차, 그녀들에게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달라고 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자신들의 손에 있는 무언가를 빼앗기는 것처럼 두려워합니다.

 

 


p.104

수많은 여성이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는 작은 깃발을 들고 있었는데, 경찰은 깃발을 빼앗아서 찢어버렸고, 주먹으로 때리고 모욕까지 주었다. 이 광경을 보고 대표단 단장이 외쳤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당신들은 여자들을 때릴 권리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옆에 있던 경찰이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그녀는 고통과 분노로 소리 질렀고, 그러자 그 경찰은 그녀의 목을 잡고 얼굴이 새파래질 때까지 공원 울타리에 대고 찍어 눌렀다. 이 젊은 여성은 몸부림을 치며 싸웠고, 이 일로 그녀는 경찰을 공격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다른 세 명의 여성도 체포되었다. 한 명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애스퀴스 씨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데 성공했고, 다른 여성은 응접실 창문으로 구경하며 웃던 부인들에게 항의를 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녀는 가난한 노동자 여성인 자신에게는 너무도 중대하고 심각하게 보이는 의제를 부유하고 보호받는 여성들이 비웃는 것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하게 태어난 여인은 거의 부유한 여인이 될 수 없지만, 부유한 여인도 언제든지 가난한 여성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이타닉>의 로즈의 어머니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딸에게 결혼을 강요하면서 말합니다. “너희 아버지가 남겨준 건 아무것도 없어. 알량한 귀족이라는 칭호 말고는. 넌 우리의 추억이 담긴 가구들을 하나하나씩 팔고, 내가 삯바느질을 해야만 속이 시원하겠니?”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직업도 제한되어 있었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제한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동일한 근무를 해도 급여는 더욱 적었습니다.

 

 


p.59

멘체스터 교육위원회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고급 직종인 교사들의 상황도 낮은 직종의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들이 우월한 위치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교사들은 교육위원회에 대표를 보냈는데, 물론 대표는 남자 교사였고, 당연하게도 그는 남자 교사의 이익을 도모했다. 많은 여자 교사들이 정규 업무 외에도 바느질이나 가사 과목을 덤으로 가르치고 있는데도 남자 교사가 여자 교사보다 월급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 그 당시 맨체스터에는 겨울 동안 가난과 실업이 넘쳐났다. 그럴 때 여자 교사들은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떼어 아이들에게 매일 저녁을 먹였고 시간을 쪼개 그 아이들이 제대로 영양 공급을 받는지 감독하고 있었다. 교사들의 요지는 간단명료했다. “아이들은 수업을 받지 못할 정도로 가난합니다. 뭔가를 가르치기 전에 우선 먹여야 해요.”

 

 


p.53-54

빈민법 후원자가 되기 전부터 여성 참정권을 지지하고는 있었지만, 이제 여성의 손에 투표권이 쥐어지는 것은 권리일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엄마와 아기들이 내가 전투파가 되는 과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한다. 사실 빈민구호소에서 만난 모든 여성이 나를 교육시켰다. 위원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빈민구호소에 들어오는 나이든 여성들이 나이 든 남성들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은 너무나 분명했다. 우선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했다. 사실 그들의 근면과 인내를 보고 있으면 감동할 수밖에 없다. 60~70대 노인 여성들이 그곳의 거의 모든 일을 해낸다. 그들은 거의 모든 바느질과 청소, 입소자들에게 옷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 나이 든 남성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허락한 작업장, 즉 낡은 로프에서 섬유를 뽑아내는 일을 하는 작업장에는 자주 들렀지만 실제로 일은 하지 않았다.

 

 


에멀린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진보정당인 자유당에게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자유당 정치인과 후보들은 그녀들의 말을 비웃고, 그러한 이유에 더욱 그녀를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p.106

우리가 진지하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자유당 후보를 낙선시키는데 처음으로 성공한 후라고 생각된다. 19068월 코커머스에서 진행된 보궐선거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궐선거란 의원의 사망이나 사퇴에 의해서 발생한 의회의 공석을 채우기 위해 열리는 지방선거로, 보궐선거 결과는 정부가 공약을 이행해온 방식에 대한 승인이나 비판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코커머스로 가서 유권자들에게 자유당이 과연 민주주의의 공약을 지켰는지, 혹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그들이 공언한 신념에 맞게 행동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런던과 맨체스터에서 일어난 체포 사건에 대해 알렸고, 자유당 집회에서 발생한 여성에 대한 수치스러운 대우에 대해서도 알렸다. 우리는 투표권에 대한 요구에 비인도적으로 응수한 정부를 견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저치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질책은 의회에서 자리를 잃게 하는 것이니, 자유당 후보를 패배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얼마나 비웃음을 당했는지! 신문들은 그 미친 여자들은 단 한 명의 유권자의 마음도 돌리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자유당 후보가 의석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년 전 총선에서 655표 차로 압승을 거두었던 곳에서, 이번에는 연합파 후보가 609표 차로 다수를 차지해 의석을 얻엇다. 우리는 엄청나게 의기양양해져서 또 다른 보궐선거가 있는 곳으로 회원들을 보냈다.


이제 조롱은 우리에 대한 맹렬한 비난으로 바뀌었다. 자유당 정부는 여전히 여성 문제에 관심 갖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자유당 지지 언론을 통해 코커머스에서의 패배는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그 패배는 서프러제트가 초래한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유당 지도부는 여성사회정치연합에 격렬한 분노를 표했다. 우리 회원 중 많은 이가 자유당 지지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여성들을 배신자라고 여겼다. 이 여성들이 어리석고 경솔하다는 것이었다. 자유당은 여성이 투표권을 혹시 얻게 된다 해도 자유당을 통해야만 하는데, 자유당을 공공연히 적으로 돌리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냐며 비난했다.

그들의 행동에 대처하는 언론과 사회의 싸늘한 응대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을 반복합니다.


팽크허스트는 결국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그녀는 당신들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우리가 피고석에 서게 된 이유에 대해 진술하고 싶습니다, 라고 한 후 자신의 삶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여성들을 자율적인 시민으로 만드는 본질적인 정의를 시행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가에 대해 밝힙니다.


 

 

현행법은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들이 약자라는 사실을 이용하도록 장려해왔습니다. 많은 여성이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여성은 정치권력이 없더라도 남성에게 실질적인 힘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다는 그 영향력을 통해 법률을 바꿔보고자 오랫동안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런 영향력은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원으로 가서 우리의 요구를 줄기차게 주장해도, 의언들은 자신들이 여성들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단지 유권자들에 대한 책임만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법률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시간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다는 답변만 듣곤 했습니다.


우리 여성들은 이제까지 있었던 어떤 개혁을 위한 청원보다 더 많은 사람이 서명한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우리는 남성들이 어떤 개혁을 위해 개최했던 것보다 더 규모가 큰 집회들을 여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성들이 타고는 소심함, 즉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로부터 여러 세대에 걸쳐 물려받은 특성인 대중 앞에 나서지 않는 소심함을 던져버려야 한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특성들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골목골목 다니면서 적대적인 군중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우리가 나라 전체를 우리 편으로 만들지 않는 한, 남자들이 이미 얻은 권리, 우리 세금에 대한 대표를 뽑는 권리를 얻을 수 없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13일 밤 우리가 체포된 후에 우리 동료들이 보여준 자제심에 대해서 증언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참고 자제하며, 소위 윗분들에게 우리가 히스테리컬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규칙입니다. 그리고 폭력을 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폭력에 우리를 내맡기는 것이 우리의 규칙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제가 드릴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는 법을 어겼기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법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한문단 한문단이 다 명문이고, 문장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이런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좋은 책이란 각자마다 다 다른 법이지만, 좋아하는 방법은 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보는 것. 감명 깊게 다 읽고도 다시 읽을 때 새롭게 감명받으며 읽는 것. 전체 분량은 옮긴이 후기까지 해서 479. 결코 짧은 분량이라고 할 수 없지만, 단 한 순간도 지루한 페이지가 없었던 책이었어요.

 

 

이 책 다 보고 <서프레제트>도 봤는데, 책이 훨씬,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래도 굳이 영화 속의 제가 느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평범한 여성이었던 모드의 마음이 갈등에서 결심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장면입니다.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한 서프레제트가 되면 자신이 몸담고 있던 가정, 직장으로부터 밀려날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갈등하는 모드(캐리 멀리건)가 무심히 남편에게 묻습니다.


 

 

 

모드  :딸이 있었으면 뭐라고 불렀을까.

소니  :마가렛. 엄마 이름을 따서.

모드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소니는 그때까지 모드와 마주보고 누워있었는데 그 순간 등을 돌리며 일어납니다. 그렇게 등을 보이며 말합니다.

 

 

소니  :당신하고 같겠지.

(참고로, 모드는 현재 24살인 여성으로, 7살때부터 파트파임으로 세탁일을 시작해서 12살에 풀타임으로 일합니다. 어머니는 대형 빨래통이 엎어지는 바람에 그녀가 4살 때 화상으로 돌아가시구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곳에서 그녀 역시 어머니와 똑같이 빨래를 삶고 다리고, 깃을 세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6살짜리 아들을 얼마간의 돈을 주며 옆집에 맡겨두면서요.)

 

 

 

ps. 

지금의 여성의 위치가 어떤 상황들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그 도입부를 그린 책, 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말로는 이 책의 느낌을 설명할 수가 없네요. 다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이렇게 제대로 된 몰입도를 준 책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서 계속 감탄 중입니다.

 

 

저는 이 책을 1월 중순에 주문해서 설날연휴 시작하는 날 읽었는데 어제 다 읽었어요.

흡입력 최고인데다, 어휴...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정말 좋네요. 여성의 위치가 어떤 상황들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를 그린 책, 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말로는 이 책의 느낌을 설명할 수가 없네요.

 

꼭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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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포토스의 배 - 제14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쓰무라 기쿠코 지음, 김선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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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사는 여자들의 모습은 참 많이 비슷한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대학을 다니느라 바쁘고, 중반이 되면 취업하느라 정신이 없고,

20대 후반이 되면 한 곳에 일을 꽤 한 상태가 되면서 일 자체가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어찌됐건 학자금을 다 갚고 조금이나마 목돈을 모을 때까진 여기 있도록 하자, 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첫 회사에서 에게 적의를 느끼는 사람 때문에 1년을 채우기 힘든 상황까지 비슷한 걸 보면 이건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사회에서 찍어내는 '경험의 붕어빵'의 대상이 된 기분이다.

 

이렇게까지 똑같이 다 겪어야 진정한 사회인이 되는 걸까?   

 

 

여행 항로를 보며 파푸아뉴기니에 가서 아우트리거 카누를 탈 생각에 목표가 생긴 것 같아진 나가세.

 

p.14

아마도 나는 지난주, 걷잡을 수 없이 일하기 싫었던 것이리라. 남 일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공장 월급날이었다.

도시락을 먹으며 늘 마찬가지인 박봉 명세서를 보고 있자니 어딘가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시간을 돈에 파는 듯한 기분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몸이 굳었다.


일하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계약직으로 고용한 회사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 음식물과 전기, 가스와 같은 에너지를 고만고만하게 사들여

겨우겨우 살아가는 자신의 불안한 삶이.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이.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 눈 똑바로 보면서 미움 받는 게 얼마나 독인데.

  

     

공장에서 일하며 친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토요일은 상공회의소에서 노인을 상대로 컴퓨터 강사 일을 하면서 이따금 집에서 데이터 입력 부업도 하는나가세는 아르바이트로 버는 것을 생활비로 쓰고 월급은 통째로 저축을 하기로 한다.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소설은 그 배경이 10년 전이다. 2000년대 초반, 우리가 IMF를 힘겹게 넘기고 있는 동안이었다. 일본의 경제상황은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고 한다. 일본의 경제가 몰락한 게 그렇다면 20년 전쯤이고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으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당시 젊은이였던 일본사람들은 20년 전부터 느끼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은 하지만, 나 자신의 비루한 삶을 겨우겨우 이어나가는 기분. 한번 사는 삶인데, 미디어속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우리의 삶은. 이라는 기분이 안 들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죽었다 생각하고 번 돈 모아서 1년 동안은 내 맘대로하고 싶은 소망이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 같다.

 

지인 중에 한 명은 올 추석에 여름휴가를 보태 2주간 영국에 셰익스피어 투어를 갈 거라고 했다. 일에 쪼들리지 않는 대신, 떠날 자유는 없는 나는 사진 많이 찍어 와서 보여달라고 했고, 지인은 셰익스피어의 정기를 듬뿍 나누어주겠다고 했다.

 

나가세는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를 받고 163만엔을 채우게 된다. 목표 금액을 모은 그녀의 기분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직장 동료에게 홍차와 스콘을 대접하고, 에나에게는 딸기 모종을 사줄 생각을 한다. 그리고 떠날 크루즈 여행의 포스터를 보며 인사한다.

또 만나. 하고.

 

 두 번째로 실린 <12월의 창가>는 또 다른 느낌이다.

 

<12월의 창가>를 읽으면서, 그 시기를 겪는 동안 작가는 아마 몸을 떨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 직장을 다니면서 스트레스가 폭발 직전에 이르러 집에만 오면 신경질이었다

 

 

학교는 돈을 내고 다니지만, 직장은 돈을 받고 다닌다. 그래서 쉽게 안 나갈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실수가 하나 생기면 바들바들 떨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찾고, 알고 보니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함부로 혼낸 것에 대한 사과를 받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첫직장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OO, 이제 애 아니에요

. OO, 애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일 제대로 못 해요, 라는 애와 비교하는 말이었다.

 

일의 결과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핀잔을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한 일이라 조기 취업을 하고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나는 학교를 간다는 핑계로(좀 더 배워야겠다고) 1년을 못 채우고 퇴사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며 취업전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진 않았다. 직장 생활의 무시무시함을 떨쳐 내지 못한 것이랄까. 좀더 사회인이 되는 걸 미루고 싶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그 분의 말처럼, 난 애처럼 굴고 있었다. 그럼 뭐 어떠냐 싶었다. 어차피 그만큼 못 번 것은 나중에 오래 일해서 벌든가, 뭘 안 사서 지출을 줄이던가, 내가 알아서 할 몫이었다.

    

 

쓰가와의 상사인 계장은 업무에 관한 트집거리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재능을 보여준다.

거래처에 출고할 봉투를 만드는 게 늦었다느니 하청업체 시간제 직원과 전화로 담소를 나누었다느니

자기가 말을 거는데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느니 하는 이유로 V계장은 쓰가와를 질타한다.

 

죄송하다고 하면 단 줄 알아? 하고 따지면

죄송합니다,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하고

그렇게 일할 거면 그만 두라고 하고 그러곤, 그래도 그만둘 건 아니지?

니가 그만둬봤자 네가 갈 곳은 없어, 라는 말을 하고.


 

견디다 못한 쓰가와가 사표를 내자 계장은 매일 같이 그녀를 붙잡고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아? 이제부터 바빠지는데 넌 사람도 아니야, 난파하려는 배를 버리는 망할 년이야,

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매일같이 자신의 고통+ 넋두리를 들어주던 친구 나가토는 상사의 신임을 받는데

어느날 상사가 무차별 폭행범에게 폭행당해 입원을 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근처에 출몰한다던 무차별 폭행범으로 변장해 상사를 폭행했다.

신임도 얻고, 진급도 남들보다 빨리 하게 됐지만 그건 아무런 보상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퇴사를 전하는 쓰가와에게 축하한다며 나가토는 말한다.

고립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일할 수가 없었어.

언젠가 해치울 거라고 스스로에게 증명하지 않고서는.

아마도 나가토에게 그건 숨 쉴 구멍을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만둘 수는 없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까.


 


쓰가와는 속으로 사과한다.


-미안해요. 당신은 그래도 나보다 나을 줄 알았어요. 분명 그렇지 않았던 거죠.


 

 

퇴사를 한 쓰가와도,

일을 그만두지 않고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채 일을 계속 하는 나가토도,

크루즈 여행을 계획한 나가세도

다시 서른을 넘기고 일이라는, 친구인 듯 적인 듯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삶 속으로 다시 한 발 내디뎌야 한다.


 

솔직히 읽을 땐 이렇게까지 내가 공감을 하고 있는 줄 몰랐는데

인물들에 대해 쓰다 보니 몰입이 되어있는 걸 발견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작가가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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