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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어벤져스
조스 웨든 감독,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대다수의 슈퍼히어로는 히어로로서의 정체성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둘 모두를 갖고 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역시 그들이 쓰고 있는 마스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명의 히어로가 있으면 백개의 가면이 있는 법. 각자의 가면이 갖는 의미는 각자의 히어로들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어벤저스] 개봉에 맞추어 마블코믹스의 히어로들의 가면과 그 뒤에 숨겨진 정체에 대해 짤막한 감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단 나의 마블코믹스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여기서는 영화화된 작품들만을 다루겠다.
1.스파이더맨은 돌연변이 거미에 물려 거미의 신체적 특징과 강력한 힘을 얻게 된 소년이다. 자신이 아무 생각없이 놓아준 범죄자의 손에 삼촌이 목숨을 잃고 자신의 힘에 어울리는 책임을 지기로 다짐해 영웅이 되었다. 스파이더맨은 마블 계열의 히어로 중 최초로, 또 장기적으로 성공한 시리즈일만큼 영웅들의 이중성을 잘 잡아낸 히어로이다. 어쩌면 가장 전형적이었기에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영웅으로서의 삶과 소시민으로서의 현실 간의 괴리가 중요한 테마였다. 1편의 악역 그린고블린은 가면을 씀으로써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었지만 그와 반대로 스파이더맨은 가면을 쓰는 것과 동시에 초인적인 힘을 가진 자로서의 책무를 (뒤집어)쓴다.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라는 표현은 어느 동네의 시장 선거 카피로도 쓰일 법 하다. 공적/사적 경계에서 괴로워하는 피터 파커의 모습은 업무와 가족-친지 사이에서 골머리를 썩혔던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의 행복이 더 기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가장 대표적인 명장면은 역시 거꾸로 매달린 스파이더맨에게 MJ가 복면을 반쯤 벗긴 뒤 입을 맞추었던 장면일 것이다. 과장을 좀 보태면 이 장면만이 스파이더맨이 자신 스스로로서 존재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키스라는 포상은 스파이더맨과 피터 파커의 경계가 사라진 상황에서 가능했다. 히어로물 시리즈에서 이보다 더 로맨틱한 키스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2.아이언맨은 군수산업체의 대부, 토니 스타크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었을 때 그 테러단의 기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낸 강화갑옷이다. 이후 군수산업에 회의적이 된 토니 스타크에 의해 아이언맨은 신형병기와 친환경에너지라는 이중적인 최첨단 기술의 집결체로 떠오른다. 아이언맨은 갑부와 가난뱅이라는 대조 외에도 스파이더맨의 훌륭한 대척점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다. 아이언맨의 슈트(강화갑옷)는 가면이 아니다. 슈트는 일종의 정장이고, 남자의 옷차림은 전략이다. 아이언맨은 일종의 최신형 스포츠카와 같은 매력을 가진 도구에 가깝다. 히어로계의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라고나 할까? 세계적 재벌의 아낌없는 사치와 무한한 권력의 상징인 셈이다. 아이언맨 슈트는 상황에 맞게 여러벌이 제작되어있으며 그 조종자의 정체가 숨겨진 것도 아니다. 그저 도구일 뿐인 것이다. 스파이더맨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사이를 마스크로 구분해야 하는 것과 달리 아이언맨에게 공사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는 엄청난 갑부고, 그가 사적으로 입은 빤쓰는 공적(세계적) 유행이 되는 빤쓰다. 파파라치가 초고속 제트기에 올라탄 재벌의 얼굴 사진을 클로즈샷으로 찍지 못한다고 해서 그 정체가 가려지던가? 오히려 그 부유함의 과시만 될 뿐이다. 아이언맨2에서 토니 스타크의 비서 페퍼 포츠는 키스를 해달라는 토니 스타크의 제안에 아이언맨 마스크에만 키스를 한다. 차 창문 열고 뽀뽀해달랬더니 차 엠블렘에다 입을 맞춘 셈. 물론 페퍼 포츠가 돈만 보는 사람이라가 아니라 일종의 유머를 던진 것이다. (나의 페파 따응은 돈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야) 스파이더맨의 마스크 반쯤 벗긴 키스와 매우 대조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장면이다.
3.캡틴 아메리카는 애국심 가득한 청년 스티브 로저스가 자원입대를 해 슈퍼솔져 프로젝트-약물을 통한 강화인간 계획-에 참가해 초인적인 힘을 얻어 탄생한 히어로이다. 그러나 영화의 경우, 캡틴 아메리카는 초인적인 힘을 얻었다고 슈퍼 히어로가 된 것은 아니었다. 테러 습격으로 실험실에 사고가 일어나 이후의 슈퍼솔져 프로젝트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정부는 유일한 성공작인 그를 일종의 차력쇼를 통해 군 사기 진작을 위한 홍보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스티브 로저스는 친구를 위해 자진해서 전장에 뛰어듬으로써 2차대전의 진정한 히어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전쟁 당시 빙하에 갇혀 2차대전으로부터 70년이 지난 현대에 다시 깨어나 여러가지 시차적인 문제를 겪으면서도 올드패션한 윤리적 원칙을 지키는 것이 매력인 인물이기도 하다. 재미난 것은 캡틴 아메리카의 가면이 필요한 것은 스티브 로저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군인이고, 그의 정체따위야 군대 및 정부에서 당연히 파악하고 있다. 거기다 유니폼을 입든 입지 않든 그는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하게 도덕적으로 행동한다. 그럼에도 그는 마스크를 쓰고 유니폼을 입는다. 작게 보면 이는 정부의 홍보정책에 따르기 위함이지만 크게 보면 그의 가면이 그 자신이 아닌 그를 바라보는 타인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캡틴아메리카를 지켜보는 이들은 그 가면을 통해 스티브 로저스 개인이 지워짐으로써 캡틴 아메리카가 일개 시민인 자신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 작중에서도 그는 일개 요원인 콜슨의 이입 대상이었다.
4.토르는 아스가르드의 신이자 신들의 왕인 오딘의 장남이기도 하다. 여기서 신이라고는 해도 절대자나 창조주로서의 신은 아니며, 우주의 지배세력의 일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올바를 것이다. 교묘한 말솜씨와 냉철한 지략을 가진 동생 로키 때문에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같이 싸우기도 하는 복잡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 포스팅에서 토르를 다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 토르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도 않거니와 인간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도 이중적인 면은 있었다. 그의 영화 첫 작품에서 토르는 신이지만 너무나 인간다웠고, 절제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지구로 추방되어 인간으로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이면서도 신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는 신으로 돌아와 지구를 구하게 된다. 신일 때 인간답고 인간일 때 신다웠던 토르의 모습은 분명 특기할만하나 이후 어벤저스나 여타의 시리즈에서도 이런 이중성을 유지할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어벤저스에서 토르는 일관되게 절대자로서의 책무를 지키려 노력한다. 그나마 로키와의 관계가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왕으로서 국민을 보호함과 동시에 같은 왕족을 보호하려는 태도라고 보면 그렇게 모순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원작 코믹스에서 토르는 인간이자 의사인 도날드 블레이크와 아스가르드의 신인 토르가 한 몸에 공존하는 이중성을 가졌다지만 이 설정이 이어질 것 같지도 않는다.
5.헐크는 인간에게 초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감마선 실험에서 연구원 브루스 배너가 막대한 양의 감마선을 쬔 결과 나타난 브루스 배너의 이중인격이자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괴인이다. 헐크는 여타의 작품과 달리 몇번이고 주연 배우를 바꿔가며 새로운 영화 시리즈로 재촬영이 되어야 했다. 이는 헐크라는 캐릭터가 갖는 개성을 살리는 것이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라는 증거다. 헐크의 특징은 그의 이면의 정체성이 유니폼이나 마스크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격노한 상황에서 일종의 발작과 같이 나타나는 제 2의 인격이라는 점이다. 분노가 터져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발적인 힘을 쏟아붓는 것이 헐크다. 그러니 헐크가 되기 전의 인격, 브루스 배너가 어떻게 자신의 화를 제어하고 다스리느냐가 이 인물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에드워드 노튼의 브루스 배너는 아쉽게도 그 매력을 전달하는데 실패했다. 그는 분노를 참는 모습만, 신경질적인 모습만 보여줬다. 헐크는 타일러 더든이 아니다. 에드워드 노튼은 천성적으로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매력을 가진 배우이지만 헐크와는 다르다. 반면 마크 러팔로의 브루스 배너의 분노는 보다 자연스러워 보인다. 억압받고 천대시 당하는 인물, 그 억울함에서 뛰쳐나올 것 같은 분노를 견디는 모습이야말로 더 큰 파괴력을 예상하게 한다. 분노는 물을 막는 둑과 같아 그 막는 힘이 커질수록 터져나오는 힘이 더 거세진다. '내가 화나면 너 죽는데 내가 참는다.'라는 쾌감은 에드워드 노튼의 신경질적인 얼굴보다는 마크 러팔로의 순하고 착한 얼굴에 더 어울린다.
6.엑스멘은 뮤턴트들의 결사다. 돌연변이로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이 모여 단체를 이룬 것이다. 이들의 적들 역시 뮤턴트다. 엑스멘은 뮤턴트가 아닌 인간들과의 화합을 위해 활동하며 그들의 적은 뮤턴트가 지배하는 세상을 위해 암약한다. 엑스멘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마스크는 없다. 다만 유니폼을 입는다. 엑스멘 본 시리즈도 그렇고, 엑스멘의 프리퀄이자 리붓인 퍼스트 클래스에서도 그렇고 최종결전에 앞서 이들은 유니폼을 맞춘다. 엑스멘 시리즈는 언제나 소수자들의 담론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특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이든 동성애든 장애인이든 어떤 이유로든 사회적 차별을 받았던 이들이 스스로 연대하고 억압에 맞서나간다는 테마는 공통되게 나타났다. 이들이 유니폼을 입는 것은 NGO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유니폼은-퍼스트 클래스의 노락색 쫄쫄이가 나찌가 유대인에게 붙인 노란색 별과 색이 같다는 비약도 한번 섞어주면-그들을 구속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실제로 엑스멘의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봉인하고 있다. 싸이클롭스는 특제 선글라스로 자신의 레이저빔을 감추고, 울버린은 재생능력 속에 아다만티움 칼날을 숨긴다. 진 그레이는 피닉스 포스를 감추고 있으며 로그는 피부접촉을 막는다. 이들이 유니폼을 입는 것은 사회적/법적 제어 하에서 자신의 힘을 개방하겠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들의 적대세력 브라더후드 오브 이블 뮤턴트가 복장자유라는 것도 나름 대조적이다.
이렇게 간략히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과 그 각각의 개성에 대해 짧게 평을 남겨보았다. 판타스틱4는 보지도 않았고 어차피 리붓된다니까 볼 생각도 안들어서 적지 않았다. 막상 포스팅을 다 쓰고보니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할지 막막하다. 되게 뻘쭘하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막상 포스팅 쓰기 시작했을 땐 패기로 가득 찼는데 끝맺는 법을 모르겠다. 히어로의 이중성의 중요함과 한국의 메타히어로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려다 모든 결론을 한국의 장르적 특성과 그 미래로 마무리하는 찌질함을 되풀이하고 싶지가 않아 관뒀다. 어쩌지. 앞으로의 슈퍼히어로 시리즈를 기대한다, 같은 말이라도 할까? 내가 기대하면 뭐 누가 좋아라도 해주나? 다 필요없다. 아무 얘기나 하겠다. 김꽃비는 참 예쁜 것 같다! 뭘 먹으면 그렇게 예쁠까. 하루만 예쁘게 살고 싶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렇게 매일 예쁘게 살면 힘들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그냥 그렇다. 김꽃비가 예쁘면 됐지 이딴 포스팅 결론을 잘 낸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