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취미 식민지 일본어 문학.문화 시리즈 8
유재진.이현진.박선양 옮김 / 문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살 때 기준이란 대게 단순한 것들이다. 저자나 장르에 대한 선호처럼 평범한 이유나 베스트셀러로 이슈화가 되었기에 혹은 표지 디자인의 매끈함처럼 속물적-변명하자면 나는 언제나 속물이다- 이유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탐정취미]는 좀 다른 연유로 구매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이 책의 기획의도다. 자료적 필요성이나 소설적 재미 같은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데도 흥미로운 기획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탐정취미]는 역자 서문에서 '아마추어 탐정작가들이 쓴 일본어 탐정소설과 식민지 조선의 일본어 식자층이 읽었을 일본어 탐정소설을 발굴하여 번역한 것'이라 스스로를 소개한다. 근대화의 물결이 들어오고 일본어를 익혀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최첨단 유행의 모던뽀-이들이 취미로 쓰고 읽었을 탐정소설들을 번역해 모아놓았다니. 이 어찌 흥분이 되지 않을 기획이란 말인가?

 여러 작가의 작품, 그것도 상업적으로 검증되었다기보다는 당시의 동인이나 번안소설따위의 역사적인 의의를 가진 작품을 모아놓은 책이라 추리라는 장르로서는 기대할 것이 크게 없지만 그 구성이 주는 재미가 있다. 특히 셜록 홈즈의 배경을 일본으로 옮겨놓은 번안소설 [명마의 행방]이나 당대 지사들과 운동조직의 암투가 담긴 [여자 스파이의 죽음]은 근대 식민시기의 풍경을 탐정소설의 언어로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더욱이 이 책의 백미이자 권두를 장식하는 김삼규의 작품 [말뚝에 선 메스]는 여러가지로 주목을 끌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우선 이 작품은 1929년 11월에 연재가 시작된, 한국작가가 (일본어로) 쓴 최초의 탐정소설이다. 나는 이제껏 첫 한국추리소설 작가를 김내성으로 알고 몇권인가 논문도 읽었는데도 [탐정취미]를 통해 새로 하나 더 배운 셈이었다.

-이하는 [말뚝에 선 메스]의 반전에 대한 감상이다-

 [말뚝에 선 메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소설은 신경질적이다 싶을 정도로 탐정의 욕망에 대해 추궁한다는 점이다. 많은 탐정소설에서 주역을 맡는 탐정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외부자의 시선을 취하기 마련이다. 이성과 과학의 신봉자이자 살아있는 논리의 화신인 탐정에게 이는 당연한 의무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말뚝에 선 메스]에 와서는 이런 초월자적인 위상은 하염없이 추락한다. 탐정취미는 나쁜 취미다.

 탐정의 욕망을 추궁한다고 해서 사실은 탐정이 범인이라거나 친인척이 범죄에 연루되어 전전긍긍하거나 그런 류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말뚝에 선 메스]에서 주인공이 모든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바로 외부자의 시선을 취하겠다는 욕망, 탐정이 되겠다는 욕망 그 자체에서 비롯한다. 초월자는 간데없고 결핌만 가득한 앙상하게 메마른 범인(凡人)이 남을 뿐이다.

 물론 이런 류의 반전이야 근자의 추리물에서 드문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 최초의 탐정소설이 탐정을 부정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눈여겨볼만한(봐야만하는) 지점이다. 이 재미난 역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평이 가능하겠으나 나는 식민지의 소설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과잉해석하고 싶다. 계몽이라는 미명 하에 식민지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성의 화신인 탐정이라 자처하는 양반들이 저 잘날 것 없는 맹탕으로 보일 수밖에 없잖은가?


-다 적었다-

 고전에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에 고전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고전이 아닌 골동품에는 시대가 지나 변해버린 무언가가 남아있어 색대조표마냥 지금과는 구별되는 이상한 것들로만 가득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읽을 재미로는 후자가 더 있을 지도 모른다. 시공간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무언가라면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줄창 보겠으나 맹랑하여 잊혀진 것들은 구태여 찾지 않는 한 앞으로 만날 일 없을 귀한 몸이시니 말이다. [탐정취미]는 그런 점에서 반드시는 아니어도 고루할 때 한번 읽어볼만한 아주 좋은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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