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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 [초특가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 씨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오늘 다룰 주제는 '나쁜 남자'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할만한 점은 저번 주제의 힙스터에 이어 연애 역시 나에겐 생소한 영역인데다 검색이나 책을 찾아봐도 그럴듯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연애는 몰라도 연애를 못하는 남자는 매우 잘 알고 있다. 매우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다룰 이야기도 여기에 중점을 맞출 생각이다. 그러니 이 글의 주제는 정확히 말해 '나쁜 남자'가 아니라 '나쁜 남자라는 가상의 존재를 꾸며내는 자기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라고 할 수 있겠다.
저번 글의 힙스터라는 주제에서는 분석 텍스트로 [2 broke girls]를 꼽았다. 이번에도 분석 텍스트와 병행해 주제를 풀어나갈 생각이다. 그 텍스트는 바로 [Mr. & Mrs. Smith]다. 한글로 번역하면 [갑남을녀] 쯤 될 제목의 영화. 단 착각하면 안될 것이, 이 글에서 다룰 작품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나오는 첩보액션섹시코미디 [Mr. & Mrs. Smith]가 아닌 알프레드 히치콕의 1941년작 부부싸움이야기인 [Mr. & Mrs. Smith]이다. 아무리 나의 수많은 꿈 중 하나가 브란젤리나에게 입양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덕 리만 판 [Mr. & Mrs. Smith]는 착한 남자/나쁜 남자 이야기와는 무관하니까.
1941년 판 [Mr. & Mrs. Smith]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이라고 해서 그 내용을 스릴러나 서스펜스라고 짐작해서는 안된다. 히치콕이 잔인한 내용만 영화로 찍었다는 것은 편견이다. 이 영화는 히치콕 식의 로맨스코미디로 피가 흐르는 장면이야 코피가 나오는 정도밖에 없다. 그 분위기만 본다면 알프레드 히치콕이 아닌 빌리 와일더의 영화라고 착각해도 무리가 없을만큼 달달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반복되는 작품이다.
스미스 부부는 정답다. 숨기는 것 없이 거짓말 하는 것 없이 지내자고 다짐하는 신혼 3년차. 그러나 어느날 업무행정상의 실수로 이 둘의 결혼은 법적으로 무효라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다. 큰일은 아니다. 다시 신고만 하면 되니까. 남편 데이빗은 부인 애니가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을 모르고 별말 없이 지내고, 이에 대한 애니의 불만이 폭발한다. 이 참에 자신을 버리고 떠날 셈 아니냐며 데이빗을 추궁하다 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고 애니를 예전부터 흠모하던 남편의 친구 제프가 그 사이에 끼어들며 상황은 복잡해진다.
똑같은 [Mr. & Mrs. Smith]이더라도 데이빗과 애니가 문제를 푸는 방법은 브래드피트와 졸리의 해법과는 정반대다. 브란젤리나는 서로에게 숨겨온 첩보원의 삶을 밝히고 그제껏 품어온 불평과 불만을 터뜨려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갈등을 해소하여 제니퍼 애니스톤은 지붕만 쳐다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는)화끈한 정사씬을 연상케 하는 총기난사씬으로 무장한 2005년의 [Mr. & Mrs. Smith]와 달리 1941년의 [Mr. & Mrs. Smith]은 보다 교묘하고 앙큼한 두뇌싸움을 표방한다.
히치콕의 [Mr. & Mrs. Smith]는 어떤 거짓과 숨김없이 완벽히 하나가 된 커플을 다루지 않는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게임에서 기만과 속임수는 상대방에게 바치는 찬사이자 전장에 임하는 기사의 덕목임을 밝히는 것이 바로 1941년의 [Mr. & Mrs. Smith]인 것이다. 갈등의 발단은 데이빗이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자신과 결혼할 것이냐는 애니의 질문에 '아니'라고 솔직하게 대답한 것이었으며 그 봉합은 질투심 유발 작전에 동정심 유발 연극 등 능구렁이 같은 구라였다. 마지막에 이르러 데이빗은 주정뱅이를 연기하고 애니는 도망칠 수 있는 상황에서 도망치려는 연기를 하지만 이 모두 상호 이해와 합의 하의 게임이었으며 이로써 사랑은 다시 결실을 맺는다.
여기에서 데이빗에 반대되는 인물, 그러니까 애니를 흠모하던 데이빗의 친구 제프와의 비교가 중요하다. 제프는 '착한 남자'의 대명사라고 해도 좋을 인격자로, 가능한 모든 것을 애니에게 맞추며 헌신한다. 비가 오면 코트를 벗어주고 자신이 감기에 걸렸으니 작별의 키스를 해줄 수 없다는 배려와 애니가 데이빗에게 마음이 기우는 모습을 보아도 자신이 바라는 것은 애니의 행복일 뿐이라며 기꺼이 이별을 받아들이겠다는 대인배적 풍모를 풍긴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배역의 인물은 로맨스코미디에서는 주인공의 관계를 응원해주는 멋진 친구, 이상 이하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사라진다.
[Mr. & Mrs. Smith]가 시사하는 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한다는 것이 과연 애정의 문제에 있어 진실하냐는 질문이다. 애정의 문제는 수학답안지가 아니다. 옳고 그름, 정답과 오답을 결정해서 보여주는 것은 회사 보고서에서나 요구하는 영역이다. 애정의 문제는 자신이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증명하는 문제이고, 여기서 정직하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증명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애정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문제다. 척하니 답만 적어낼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증명해내는 실천과 풀이과정을 요구로 하는 것이다. 목적이 아닌 과정이 목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외계인의 침략으로 지구가 무한히 증식하는 버섯에 둘러싸여 인류 존폐의 위기에 처한 상황을 가정하고, 이 미증유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당신이 당신의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외계인이 조건을 제시했다고 해보자.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에서 인류는 당신이 연인에게 프로포즈를 하길 강요할 것이고 당신 역시 도덕적 책임감에 의해 세레나데를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당신의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 당신의 연인은 그 고백에서 당신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의심없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실은 언제나 실수에서 발견된다. 아니, 솔직한 고백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연인에게 당당히 사랑을 고백해서 즐거이 연애하는 커플 많이 봤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 마음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제나 사람의 마음은 어떤 우연에서, 어떤 계획되지 않은 사건에서 크게 흔들리기 마련이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즉 사랑에 대한 가장 진실한 고백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만과 의심 속에서 (정확히는 그 실패 끝에서) 발견되는 흔적에서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Mr. & Mrs. Smith]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거짓말이야말로 어떤 밀어보다도 완벽하게 스스로의 애정을 증명하지 않던가.
시사하는 점 두번째는 바로 착한 남자가 과연 착한 남자냐는 질문이다. [Mr. & Mrs. Smith]에서 제프는 흠잡을 곳 없는 인격자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는 언제나 애니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착한 남자가 과연 착한 남자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해서 제프라는 인물을 허풍섞인 선의로 가장한 위선적인 인물로 착각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제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냥하고 진실되게 행동한다는 점만은 보증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두번째 질문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여성을 숭배하고 그 모든 것을 따르는 것이 과연 대등한 관계일 수 있을까? 설마. 인간을 숭상하는 것은 인간을 처분하는 것만큼이나 타자화하는 것이다. 신으로 만드는 것이나 악마로 모는 것이나 인간 취급하지 않긴 매한가지다. 숭고한 존재로 이상화하면서 그 대상이 된 여성은 박제되어 어떤 욕망도 용납되지 못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렇게 상대방의 관심사는 관심도 없이 자신이 상대방을 숭상하고 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착한 남자로 착각하는 경우다. 동시에 이렇게 희생하지 않는 자신과 다른 모든 남자들을 나쁜 남자로 몰고 가면서.
물론 어떤 이미지로서의 '나쁜 남자'의 판타지야 존재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검은 가죽자켓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차도남을 연출하는 남자가 어디 100명 중 1명이라도 있나.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내가 이만큼 양보하고 위해줬으니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나만이 진실하며 나머지는 나쁘다는 것은 그렇게 바른 일로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무조건 떠받드는 것은 상대방이 화내는 모습을 보기 싫고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두려워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피하는 셈이다. [Mr. & Mrs. Smith]이 가리키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사람은 살면서 거짓말도 하고 싸움도 한다. 이것은 인생의 일탈이나 왜곡이 아니라 필연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나는 히치콕과 브란젤리나 중 히치콕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입양은 브란젤리나에게 갈 거지만.
혹시나 싶어 덧붙이자면, 진짜 착한 남자들은 걱정하지 말라. 진짜 착하면 연애 잘한다. 대신 얼마나 착해야 하냐면 그냥 문 열어주고 의자 당겨주고 이런 착함이 아니라, 주변에서 보기에 '저 사람은 진짜 저렇게 살다가 손해만 보고 너무 남만 살펴서 짜증날 정도야'라고 여길 정도로 착하면 된다. 그리고 내가 위에 제시한 자신말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나쁜 남자로 몰며 자신은 착한 남자로 착각하는 남자가 어디있냐고 따지지도 말아주길 바란다. 이거 다 내 얘기다. 내가 연애 못하는 이유 박사논문 700p로 쓰는 거 여기에 간단히 미리 개요만 잡아둔 거다. 그것도 이거 아직 1장이다. 8장까지 있는데 다 쓰면 너무 오래 걸려서 이쯤만 쓴 거다. 이 세상 많은 착한 남자들의 건승을 빈다. 비록 당신들이 진짜 착한 남자는 아니더라도 사랑과 행복은 또 별개의 문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