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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약 - 증보판 ㅣ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평점 :
남자 : 부조리...부조리극...음...부조종사...부조초...아! 찾았다! 부조화! 부조화: 명사. 하다형 형용사. '적절하거나 조화롭지 못함. 서로 어울리지 아니하며. 예를 들어, 불협화음.' 또 지질학 용어로는 '이전 지층 위에 불연속적으로 퇴적된 땅, 즉 부정합'을 말한다...빌어먹을, 믿을 수 없어! 이게 소위 의사들이 쓰는 정확한 용어라는 거야?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라니?! (중략) 당신 생각엔 말이야..우리가 적절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커플인 것 같아? 지질학 얘기는 관두고!
여자: 난 당신이 좋은 걸...
-[푸른 알약] 첫 에피소드에서.
푸른 바다가 있습니다. 넓어요. 끝도 보이지 않고 그저 수평선과 출렁이는 파도만이 보여요. 그리고 그 바다에는 안락한 소파 하나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흘러다니고 있지요. 또 하나. 소파 위에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는 한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네, 보시다시피 [푸른 알약]의 표지예요. 광활한 바다 위에 놓여진 소파 하나가 안전해 보이지는 않지요. 그래도 그 위에 기댄 이 사람들의 표정에서 불안함은 찾을 수 없어요. 아니면 그 뒤에 숨겨져 있을 뿐이라거나.
어느 한쪽이 에이즈에 걸린 연인.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둔 사랑은 어떤 기분일까요. 자칫하면 상대방을 죽일 수 있고 상대방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는 연인은 어떤 관계일까요. 물론 신호등 잘 지키고 교통법규 잘 지키고 깜빡이 잘 키면 사고가 날 가능성을 대폭 줄일 수 있듯이 이들도 무작정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에요. 다만 상대방을 죽일 가능성이 지금 문밖으로 나갔을 때 흰코뿔소와 마주칠 확률만큼밖에 안되더라도, 이 지구상 어딘가에는 아직 흰코뿔소가 남아있고 분명 마주치는 이들도 있고...하지만 '난 당신이 좋은 걸'요.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가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은 감동을 더 실재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그저 관념 속에서만 펼쳐지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뭐 그런게 아니라, 지금 어딘가에서도 이 지구 위에 발 붙이고 사는 어떤 한 연인이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혹은 그러든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사랑을 관철해나가는 그 모습이 진짜 가능하다는 하나의 모범적이며 흐뭇한 실례이니까요. [푸른 알약]이 다루는 화두는 절벽에서 떨어지는만큼이나 아찔하지만, 그와 정비례한 푸근함을 가진 이야기랍니다.
덧//
세미콜론 트위터에 '프레데릭 페테르스 작품 더 내주세요!'라고 쪽지 보냈다가 블로그 뒤져보니 아직까지 리뷰를 안 썼다는 점에서 충격 먹고 부랴부랴 씀. @semicolon_books 에 지원사격 부탁드립니다(...)
덧2//
에이즈 걸렸다고 다 죽는 것도 아닌데...처음 둘째문단에서 에이즈 이야기를 아예 빼놓고 썼다가 그래도 너무 소개 안하고 넘어갈 수도 없어서 급작스레 한문장 집어넣었는데 마음에 좀 걸립니다. 으 어쩌냐. 예쁘게 봐주세요.
덧3//
작품 속 내용이 지난 후, 현재 실제 세계의 작가 부부는 HIV 양성반응이 없는 건강한 딸까지 낳아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어쩌다가 한번쯤은 세상에 정의도 있구나, 하는 즐거움은 이 작품이 주는 또 다른 보너스다...<-제 글보다 훨씬 소개가 잘 된 캡콜드님의 리뷰에서 인용해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