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E 1
토가시 요시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토가시 요시히로는 이제는 애증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의 20대는 [유유백서]보다 [헌터X헌터]로 그의 작품에 입문한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날림 엔딩의-개인적으로는 [유유백서]는 마지막권이 가장 재밌다고 생각하지만서도-기억보다는 연재중단의 기억이 더 강렬히 남아있는 셈이다. 햇수로 따져도 [유유백서]의 연재기간보다 [헌터X헌터]의 연중기간이 길 테니 이상한 노릇은 아니다.

 어찌됐든 하염없이 [헌터X헌터]의 연재재개를 기다리는 팬들에게 조금 뜬금없는 소식이다. 토가시 요시히로의 SF연작 [레벨E]가 정식으로 출간되었으니 말이다. [레벨E]는 9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지구에 외계인들이 정체를 숨기고 돌아다닌다는 설정의 SF장르를 코믹하게 비꼰 일종의 메타SF장르에 가깝다. 바로 전 작품 [유유백서]에서 마족과 인간들의 시각차를 매력적으로 그려내었던 것 이상으로 낯설게 보기의 전략을 우주적 스케일에서 전개하는 것이다.

 [레벨E]는 벌써 20년 좀 안되는 과거 작품임에도 소품이나 배경이 낡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지금에서도 신선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2권분량에서 이미 [헌터X헌터]의 그리드아일랜드 에피소드의 프로토타입을 찾을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장르의 공식따위 장난감에 불과하다 비트는 작가의 솜씨 자랑으로 가득하다. 패러디나 오마쥬같은 작법 외의 측면에서도 훌륭하다. [유유백서] 후반의 시니컬하면서도 미소 짓게 만드는 인물의 매력과 [헌터X헌터]의 기괴한 사건전개가 뒤섞인, 말그대로 신세계와 구세계 그 중간의 만남의 맛이 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1998년부터 작가에게 조련 당해온 팬들이라면 [레벨E]의 왕자의 모델이 누구인지, 그 고약한 성질머리로 사람들을 갖고놀다 못해 자기도 그 난장판 수라장에 끼어들어 놀림감이 되는 모습을 보면 짐작해낼 수밖에 없다. 작중 등장인물이 당하는 고난을 현실에서 스스로 당해봤으니 토가시 요시히로의 팬이라면 누구나 쉽게 작품에 공감하며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어두운 면을 보고 싶다며 중2병새끼가 사람을 물고기 고추로 보는 토가시 왕자의 활약도 결국 따스한 미소로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는다는 점에서 어두운 듯 하면서도 따뜻하고 긍정적인 작가의 일관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레벨E]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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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Again!! 1
쿠보 미츠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은 누구나 할 것이다. 나도 자주 비슷한 망상을 하고는 한다. 결말에 피와 폭력이 조금 많이 들어간다는 것 빼고는 남들과 비슷한 내용이지만서도. 일전에 sf적 세계관의 시공간 설정에 따른 인물의 태도 분석에서도 다루었지만, 이런 류의 시간여행은 일종의 개척적인 태도를 가진다. 과거를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내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니 말이다.

 [어게인!!]은 고교 졸업까지 별다른 추억을 갖지 못했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입학식 날로 되돌아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인공은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자신의 영리를 위해서보다는 자신의 즐거움, 주변인물들의 삶을 응원하고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데에 사용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작가 쿠보 미츠로가 [337 박수]에서도 다루었던 소재인 '응원단'이라는 형식이 등장한다. 남을 응원하는 기쁨 또 남을 돕는 즐거움에 꽤나 어울리는 소재다.

 그런데 그런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고 등장인물인 시바타 레오가 무척 귀엽다. 치어리딩부의 소속으로 등장했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원만한 상냥한 아이다. 겉도는 성격의 주인공의 섬세한 면에 약한 모습이 좋다. 주변에 쓸모없는 여캐들이 주인공과 대화할 때마다 신경 쓰느라 미간에 주름 잡다가 별것 아닌 사이라는 이야기에 한숨 쉴 때 미인이다. 소심한 듯 하지만 의외의 순간에 적극적이다. 자기 일에는 착실하면서 다른 사람이랑 엮이면 맹해지는 경우가 매력적이다. 정진정명 일본계이면서 이름이 레오인데 무척이나 어울린다. 무척무척 귀엽다.

 [어게인!!]은 시바타 레오가 무척 귀여운 만화고 시바타 레오가 무척 귀여운 만화는 [어게인!!]이다. 그거면 됐고 그거 외에 뭘 더 바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갔든 응원단을 하든 응원단장이 짜증나는 여자든 알게 뭐란 말인가. 시바타 레오가 무척 귀여우니 보면 된다. 아오 시바타 레오 진짜 시바타 레오같아서 시바타 레오다. 요즘 연재분에 안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찌됐든 정발이 되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시바타 레오가 나오는 부분까지 만화책을 모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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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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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 부조리...부조리극...음...부조종사...부조초...아! 찾았다! 부조화! 부조화: 명사. 하다형 형용사. '적절하거나 조화롭지 못함. 서로 어울리지 아니하며. 예를 들어, 불협화음.' 또 지질학 용어로는 '이전 지층 위에 불연속적으로 퇴적된 땅, 즉 부정합'을 말한다...빌어먹을, 믿을 수 없어! 이게 소위 의사들이 쓰는 정확한 용어라는 거야?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라니?! (중략) 당신 생각엔 말이야..우리가 적절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커플인 것 같아? 지질학 얘기는 관두고!

 여자: 난 당신이 좋은 걸...

-[푸른 알약] 첫 에피소드에서.



 푸른 바다가 있습니다. 넓어요. 끝도 보이지 않고 그저 수평선과 출렁이는 파도만이 보여요. 그리고 그 바다에는 안락한 소파 하나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흘러다니고 있지요. 또 하나. 소파 위에는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는 한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네, 보시다시피 [푸른 알약]의 표지예요. 광활한 바다 위에 놓여진 소파 하나가 안전해 보이지는 않지요. 그래도 그 위에 기댄 이 사람들의 표정에서 불안함은 찾을 수 없어요. 아니면 그 뒤에 숨겨져 있을 뿐이라거나.

 어느 한쪽이 에이즈에 걸린 연인.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둔 사랑은 어떤 기분일까요. 자칫하면 상대방을 죽일 수 있고 상대방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는 연인은 어떤 관계일까요. 물론 신호등 잘 지키고 교통법규 잘 지키고 깜빡이 잘 키면 사고가 날 가능성을 대폭 줄일 수 있듯이 이들도 무작정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에요. 다만 상대방을 죽일 가능성이 지금 문밖으로 나갔을 때 흰코뿔소와 마주칠 확률만큼밖에 안되더라도, 이 지구상 어딘가에는 아직 흰코뿔소가 남아있고 분명 마주치는 이들도 있고...하지만 '난 당신이 좋은 걸'요.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가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은 감동을 더 실재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그저 관념 속에서만 펼쳐지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뭐 그런게 아니라, 지금 어딘가에서도 이 지구 위에 발 붙이고 사는 어떤 한 연인이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혹은 그러든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사랑을 관철해나가는 그 모습이 진짜 가능하다는 하나의 모범적이며 흐뭇한 실례이니까요. [푸른 알약]이 다루는 화두는 절벽에서 떨어지는만큼이나 아찔하지만, 그와 정비례한 푸근함을 가진 이야기랍니다.


덧//
세미콜론 트위터에 '프레데릭 페테르스 작품 더 내주세요!'라고 쪽지 보냈다가 블로그 뒤져보니 아직까지 리뷰를 안 썼다는 점에서 충격 먹고 부랴부랴 씀. @semicolon_books 에 지원사격 부탁드립니다(...)

덧2//
에이즈 걸렸다고 다 죽는 것도 아닌데...처음 둘째문단에서 에이즈 이야기를 아예 빼놓고 썼다가 그래도 너무 소개 안하고 넘어갈 수도 없어서 급작스레 한문장 집어넣었는데 마음에 좀 걸립니다. 으 어쩌냐. 예쁘게 봐주세요.

덧3//
작품 속 내용이 지난 후, 현재 실제 세계의 작가 부부는 HIV 양성반응이 없는 건강한 딸까지 낳아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어쩌다가 한번쯤은 세상에 정의도 있구나, 하는 즐거움은 이 작품이 주는 또 다른 보너스다...<-제 글보다 훨씬 소개가 잘 된 캡콜드님의 리뷰에서 인용해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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