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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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창비 출판사, 초판 1쇄 발행: 2018년 3월 15일, 326페이지

 

'이 세상에는 악인보다 선인이 훨씬 많다. 몇 안되는 악인으로 인한 상처를 되새기며 살 이유가 뭐가 있겠나. 악인들은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모든 과거지사를 깨끗이 잊어버리자.'
정찬우는 자기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자유인이 되어 그들을 용서해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고 후련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상상에 빠져 잠 못 이루는 사이, 9월 30일 밤을 하얗게 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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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출소하지 못하는 줄 알았던 주인공이 떠올리는 시 한 구절)
타고르의 시 한구절이 초점 잃은 그의 눈에 어른거렸다.

나에게 자유를 다오
머리 풀어 산발하고
알지 못하는 목적지를 향하여
맹진하는 태풍과도 같이

316-317p.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열심히 공부해왔던 수재. 2등을 하고 기쁜 마음에 아버지께 달려갔으나 "왜 1등을 하지 못했느냐!" 라는 호통에 큰 충격을 받고난 이후 모든 시험에서 1등만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남자. 교육자라는 꿈을 품으며 열심히 공부했고 그 노력을 인정받아 꿈을 이루는 듯 하였으나, 영문 모를 군사복을 입으라는 지시에 허망하게 따라야만 했던 불행했던 남자. '이북에서는 근로자가 살 만하다지요?' 이북에는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듯, 진실을 알지도 못한 채 이북을 지상천국이라고 동경하는 사람들의 편견에 둘러싸인 채 가족과 떨어져 감방생활을 해야만 했던 남자. 어머니, 그 세 글자를 부르며 엉엉 울었던 남자. 이 남자는 바로 실제 존재했던 한 시대의 인물, '정찬우'다.

그의 이야기는 어떻게 책으로 풀려나오게 되었을까? 역사책 한 귀퉁이를 맡고 있는 인물도 아니거니와, 어떠한 큰 공훈을 세운 바도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그건 바로 근현대사의 가려진 진실을 복원하는 소설을 써온 작가 안재성이 발견한 한 인물의 실명 수기 속 인물인 '정찬우'를 발견하게 된 데서 시작된다. 작가는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장롱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던 한 낡은 원고지 뭉치 속에서 이 인물을 발견했는데, 한국전쟁이라는 뼈아픈 역사와 함께 이 인물을 버무려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의 한반도를 우리네 기억 속에 끄집어낸다.

작가는 어떠한 첨언(添言)도 하지 않는다. 남과 북의 밤낮없는 전쟁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할뿐이나 책을 읽으며 그 호흡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소설이기에 그렇다. 왜 정찬우라는 인물은, 아니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그토록 어린 나이에 꿈을 좇지 못하고 전쟁터로 나아가야만 했을까. 왜 전시 중 이리저리 튀어 몸을 찢고 할퀴는 포탄 파편에 휩싸여야만 했을까. 묻어주는 이 없이 왜 한 곳에 쌓여 어두컴컴한 땅 속에 묻히지도 못한 채 썩어가야 했을까.

이 와중 책을 읽을 수록 정찬우라는 이 스물 두 살의 젊은이는 자애로우며 인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전시 상황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군의관과 그를 보필하는 간호사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을 군령에 어긋나지 않도록 담당 군관을 설득해 살려내기도 하고, 만주에서 같은 동네에 살았던 사람을 구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삶의 문턱을 넘을뻔한 상황에서도 생명의 은인이라며 평생 보은하겠다는 그들에 의해 다시 목숨을 빚지기도 한다. 서로 죽고죽이는 전시 상황에서 이러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모습은 크게 빛을 발한다. 인간의 정,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고 통하는 끈끈한 무언가가 흐를 때 총과 검은 날카롭게 벼려진 기운을 잃어버린다.

 

 

 

 

 

           인민군이나 현지의 공산주의자들이 써붙인 것이 틀림없었다. 아치를 지나자 피난민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평양 거리에서 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아래위 흰옷을 입은 이들이 솥단지며 이불 보따리를 나눠 이거나

           지게에 진 채 힘없는 걸음으로 남쪽으로 혹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치마폭으로 눈물을 닦느라고

           자꾸만 뒤처지는 여인도 보이고 부모를 잃었는지 혼자 울며 걷는 아이도 보였다.


          '앞에도 전선, 뒤에도 전선이니 갈 곳도 없는데 어디로들 가는 걸까? 이것이 해방이란 말인가?'

           25p.

 

 

법무관은 정찬우가 피고석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방금 이 법정에 들어서면서 느낀 감상을 말해보우."
예상 밖의 질문에 정찬우는 잠깐 생각했다가 공손히 말했다.
"약소민족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다른 법무관이 뜨악한 표정으로 캐물었다.
"약소민족의 비애라면?"
"우리 민족이 강대하였더라면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으로 양단되는 서러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국토가 두 동강이로 나누어진 이 약소민족의 처지가 저로 하여금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214-215p.

 

 

감방에 갇혀 있으며 온갖 심한 매질로 살점이 으깨어지고 실신하다 다시 억지로 깨어나 비명을 지르며 매를 맞는 옆방, 옆의 옆방, 그 옆의 옆방...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손이 벌벌 떨리던 사람들. 온갖 고문을 겪고 몸은 피와 멍과 주룩주룩 흐르는 진땀으로 가득한데도, "지나칩니다!" 라고 그들에게 항거하던 정찬우. 결국 폭력으로 얼룩진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진술서와 엉터리 고백서를 쓰면서도 모두가 본인이 담보한 '독단적 조치'였으니 모두 용서하고 본인을 추궁하라고 말했던 468번 정찬우.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모르는 상황에서조차 '약소민족의 비애'를 운운하는 사람. 독방에 갇히면서까지도 동생이 땡볕 아래에서 흘리는 땀 한 방울을 더 안타까이 여겼던 사람.

 

 

햇볕에 따가우면 바람이나 시원하면 좋을 것을 태양은 태양대로 땅김은 땅김대로 숨 막히는 더위만 자아내고 있구나. 귀여운 아우 훈성아, 몸 성히 잘 있느냐? 힘에 겨운 농사일에 지쳐 아래 위로 마구 쏟아지는 땀방울을 씻을 기운마저 없을 너의 처지를 이슬 머금은 눈망울로 분명히 본다. 그러나 훈성아, 폭양, 지열, 피로, 권태, 질식할 이 괴로움을 과감히 박차고 나아가거라. 옛날에는 피서라는 말을 즐겨 썼지만 지금은 단련이란 새로운 용어를 추앙하는 모양이더라...... 세상이 바뀌어 나도 곧 은사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은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313p.

 

 

책을 덮으며, 나는 이 사람이 어떤 전쟁 영웅도, 역사적 공훈을 세운 인물이 아니라도 그의 이야기가 책으로 쓰여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젊고 유망한 북한의 엘리트에서 감옥에 갇혀 괴롭고 괴롭게 벌을 받다 26년 만에 고향 땅을 밟으며 오열했던 중년의 사내가 되기까지, 그의 일대기가 적힌 이 책이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안재성 작가에게 읽혔던 그 과정이 너무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전쟁과 온갖 사람의 죽음과 배신과 밀고와 다툼과 폭력과 생살을 파고드는 그 아픔 속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용서하며 나라를 안타까워 할 줄 알았던 '정찬우'라는 인물의 인간다움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가의 필력에도 감사했다. 잔인하고 참담한 그 장면들을 덤덤하게 그려냈으나 실은 써내려가며 몇 번이고 그 생생한 느낌에 괴로워했을 작가의 고생이 눈에 선하다. 더불어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국가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며 또 한 번 몸서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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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 쌍쌍바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5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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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 예테보리 쌍쌍바, 작가정신 출판사, 초판1쇄 발행: 2014년 6월 10일, 235페이지

 

 

 

주인공의 이름은 신광택. 이름부터 반짝반짝한 그가 첫 직업으로 삼은 것은 바로 '세차장 선수'. 이렇게 설명하면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어색할 수 있으므로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보도록 한다. 그는 남들과 똑같은 건 싫다는 이유로 수능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린다. 차 한 대를 5분 안에 닦아내는 세차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 스스로 '선수'라고 생각하며 좀 더 빠르고 깨끗하게 차를 닦아내는 자신의 모습이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팔을 다친 후 더 이상 세차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세차장에서 나와 두 번째 직업을 찾았으니, 바로 중화요리집.

그는 중화요리집 배달부 일을 하면서 곧 '말죽거리 날벼락'이라 불리며 배달계의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2인자로 떨어지며 중화요리집에서도 잘리게 된다. 세 번째 직장인 주류도매상과 네 번째 직장인 도서총판에서도 '선수'의 길을 찾으며 열심히 일하지만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나오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정착한 예테보리 상상 식당에서 결국 설거지 '선수'로 거듭난다는 스토리를 담은 책이 바로 박상 작가의 <예테보리 쌍쌍바>이다.

 

 

 

141p
인생이 재미가 없으면 아저씨가 되고 마는 거구나. 멋진 걸 귀찮아하게 되는 거구나. 아름다움을 멸시하게 되는 거구나. 재미를 찾지 못해 힘 빠지고 귀찮아지면 한 방에 훅 가서 추한 곳에 갇히는 거구나.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강한 경계심을 곧추세웠다.

 

 

 

 

광택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며, 그리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즐겁게 미친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직업의 귀천이 그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행적을 살펴 보자. 광택은 수능 시험장으로 가는 발길을 돌려 세차장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를 관람하기 위해 와글와글 모여들었던 군중 사이를 파고들지 못했던 어린 날의 기억과, 수능 시험 당일 똑같은 시험을 보기 위해 와글와글 모여들었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남들 하는대로 움직이는 인생에 신물이 난 것 같기도 하다. 작가 박상은 이런 모습을 '진입장벽'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는데, 이 단어 하나로 그 면면이 잘 표현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며 평이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는 어쩌면 정말 '진입장벽'이지 않을까. 나 자신을 어느 한계에 가둬버린 채 무심하게 새는 시간, 시간.

 

 

 

173p
한마디로 즐겁게 미치는 거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과정에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역동성, 사랑에 빠진 자의 심장처럼 쿵쿵 뛰는.

 

 

 

그렇다. 바로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즐겁게 미치는 거'다. 광택이 말하는 '스뽀오츠 정신'이라는 것도 이와 연결되는 지점인데, 그러한 정신에 대해 주인공이 지각하면 그의 머리와 가슴속에서는 '쁭쁭쁭쁭' 하는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주인공이 그 일에 미칠 때 나는 소리이기도 하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누군가의 열정을 접했을 때 자극을 받은 소리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현희)을 생각할 때 나는 소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주인공의 마음에 긍정적 동요가 있을 때 나는 소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인데, (개인적 소견으로는) 이 책 전체가 주인공이 '선수'가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에 빠질 수 없는 효과음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방향을 포기하지 말라'는 작가의 고민과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싶어 눈에 띄는 이 효과음(쁭쁭쁭쁭)을 반복해 드러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140페이지에서는 반복이 주는 능숙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관록이고, 바꿔 말하면 인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142페이지에서는 월급과 맞바꾼 모멸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된 화자는 광택의 아버지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참아내는데 왜 너는 참지 못하냐?"

그런데 그 누구든 어딘가에 정착해 일할 때 이 문제에 맞닥뜨리지 않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적응해야 하고, 적응하면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고, 부당한 상황에 맞닥뜨려 내적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할 때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그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던 나. 요즘의 고민과 어우러져 답은 한 방향으로 간추려졌다. 바로 '내가 진정으로 바라왔던,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

 

 

 

204p
한계를 극복하고 조금이라도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태엽을 감고 있는 게 느껴졌다. 절망과 부조리와 천박함과 추접함에 반대하는 행위였다. 또한 그 모습은 인간만이 지속할 수 있는, 인간에게만 부여된 의미였고, 인생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태엽을 감으며 앞으로 나가기 위해,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자문해 봤다. 나는 아름답게 살고 싶다. 겉으로 치장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움.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을 찾고, 한계를 극복하고,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즐겁게 노력하고 싶다. 그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어 나가는 요즘, 나의 마음을 두드려준 그 톡톡 튀는 필력에 즐거웠다고, 이렇게 소극적으로나마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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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지음 / 예경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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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지음, 도서출판 예경, 초판 2쇄 발행: 2016년 5월 20일, 246p

 

 

 

 

<거기, 우리가 있었다>와 <그래도, 사랑> <다시, 사랑> 등 감성적인 에세이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 방송작가 정현주의 또 다른 저서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는 '한국의 피카소'라는 애정어린 별명으로 불리우는 화가 김환기와 그의 아내인 김향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다. 김향안의 본명은 본디 변동림으로, 그녀는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로 유명한 이상의 전처이기도 하다.

 

 

 

1937년 4월 17일,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상의 말에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수필 <월하의 마음>, 변동림 회상

 

 

이상과 사별한 후 변동림은 7년 후 자녀가 셋 있는 화가 김환기와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된다. 변동림의 이름이 김향안으로 이 책에 실린 이유는, 당시 부인이 있던 김환기와 사는 것은 본부인을 내쫓는 것이며 아이가 셋 있는 집에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던 가족들과 계속해서 부딪히자 가문과 인연을 끊겠다며 성과 이름을 버리고 남편인 김환기의 성 '김'과 호 '향안'으로 바꿔 지냈기 때문이다.

이렇듯 쉽지 않았던 그들의 시작. 우여곡절은 많았으나 그들은 행복했다. 특히 이 책에서 집중해 다루고 있었던 부분은 그들의 삶의 방식, 사랑의 방식이다. 책에 첫 장에도 강조해 한 페이지를 할애할 만큼 사랑에 대한 정의는 인상적이다.

 

 

사랑이란 지성이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말을 듣게 되면 '안다'라는 뜻의 지성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 = 지성' 이라는 정의는, 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폭넓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 이야기이다.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서로와 공감하고 통하며 상대를 확대시켜줄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매력적이지 않을까.

나는 이 정의(사랑이란 지성이다)를 가지고 책 한 권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이 지성이라는 것이 남편과 아내가 이야기할 때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지성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똑똑하다, 다시 말해 소위 '섹시하다'라고 느껴지는 정보들이 나에게 들어올 때도 감화가 되지만 이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줬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나 싶었다.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되었을 때 느껴지는 상대의 소중함. 이 공간은 그(혹은 그녀)만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더 특별해지는 느낌. 애틋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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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작가의 특유 문체와 롱디(아주 먼 거리에서 떨어져 사는) 부부의 스토리가 어우러지며 어찌 보면 사랑이라는 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질 수 있다. 남편의 꿈을 지지하기 위해, 동시에 자신을 위한 커리어를 동시에 쌓아나가는 아내의 모습. 얼마나 이상적이고 멋지며 아름다운가. 그러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내내 한편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현실'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 아이의 아빠인 김환기는 과연 어떠한 아버지였고, 그 아이들과 새어머니인 향안의 관계는 또 어떠했을까. 외국으로 나간 남편의 공백과 표현하진 않았겠으나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렸을 그녀의 삶. 쓸쓸하게 혼자 마주해야 했던 밥상과 침상을 보며 향안은 어떠한 기분이 들었을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기에 혈연도 끊고 살아갔던 향안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책에서는 서로 대화하고 존중하며 꿈을 이루어 나가는 데 지지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내와 그를 고마워하며 모든 것을 아내와 나누려 했던 남편의 모습이 나오지만, 한 편으로 이런 모습들을 곱씹지 않을 수 없어 책을 읽는 내내 아름다움만 가득한 채 정작 중요한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자가 집중했던 테마는 너무도 아름답다. 그건 읽을 수록 인정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당대와 어우러지며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생계 유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조금 떨어져 생각해보면 아내 김향안과 남편 김환기 화백의 사랑의 모습이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은 사실이다. 고차원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까, 어떤 엄마가 또 어떤 아내가 되면 좋을까... 라는 질문을 책을 읽으며 계속 하기도 했다. 잔잔한 문체와 따뜻한 그림으로 이러한 질문을 조심스레 던져 주었던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그들의 사랑이야기만으로 그치지 않는, 질문을 던져 주는 에세이여서 책에 대한 인상이 더 깊고 진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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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바라보기
이철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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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바라보기, 이철환, 자음과 모음 출판사, 초판 1쇄 발행일: 2017년 12월 11일, 303페이지

 

어렸을 적 제일 좋아하던 TV 프로그램 중 하나로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름 그대로 독서를 장려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져서인지 MC들이 나와 책을 읽는 시민들의 인터뷰도 하고, 해당 도서가 없는 사람에게는 책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故노무현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청년 시절 즐겨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며 국민들의 독서 문화를 장려했던 기억도 난다. 당시에도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아무 책이나 집어들어 읽곤 했던 내게 깊고 넓은 독서의 폭을 알려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 덕분인지 친구든 부모님이든 친척들이든... 그 누구와 책 이야기를 해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던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학교에도 녹아들어서, 담임선생님 역시도 우리들에게 책 목록을 뽑아 주시며 읽으라고 장려하셨다. 교실 뒷편에는 우리가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책이 주루룩 꽂혀 있었는데, 선생님이 사다 넣어놓으시거나 친구들의 기부로 새로운 책이 들어올 때면 너도 나도 그 책들을 읽으려 순번을 정하고는 했다. 또 선생님은 아침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한 편씩 틀어주시곤 하셨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드러운 내레이션과 감동적인 일화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곤 했다. 이철환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 즈음 방문한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였다. 나는 이철환 작가를 <연탄길>이라는 책으로 먼저 알았다. 가난하게 살지언정 마음만은 부자인 사연들을 읽으며 눈물도 흘리고 깊게 감동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그러나 그 이후 입시 공부에 치여 이철환 작가는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는 듯 했다. 간혹 <연탄길>이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설핏 웃음짓기도 했지만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옛 책을 꺼내 보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게 10년 정도 지났을까... 당시 한참 마음앓이를 하며 힘들었던 내게 대학 친구가 책 한 권을 선물로 준 적이 있다. 이철환 작가의 <위로>였다. 그 때 친구의 마음씀에 무척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읽는 동안 책 속 이야기가 어지러웠던 마음을 토닥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스물 두 살의 나.

그렇게 나는 이철환 작가를 다시 만났다. 그 안에 쓰여진 편지와 따뜻한 이야기에 위로받았던 나는 아직도 그 책을 내 서재에서 가장 잘 보이는 데 꽂아둔다.

 

 

<마음으로 바라보기>는 <연탄길>, <위로>와 마찬가지로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어주는 느낌이 강한데, 우화 한 편을 먼저 이야기한 후 작가가 자신의 삶에 비추었을 때 느껴왔던 (세상, 사람, 나 자신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 여덟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처음 나오는 우화는 판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기 판다를 둘 키우는 어미 판다가 있다. 이렇게 셋으로 구성된 단란한 판다 가족.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깔깔 웃기도 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장난도 치고 나무의 모양을 따라 춤도 추는 일상의 모습이 다채로운 색감으로 페이지마다 퍼져 나온다. 한 장, 한 장씩 이어질 때 그 주인공은 비록 판다이지만 마치 우리네 삶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건 아마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느껴온 부모님의 사랑이 떠올라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깊은 감상을 적어보고도 싶지만 개인적으로 이 판다 가족의 일화는 읽는 이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스토리를 먼저 이야기해 추후 읽는 독자에게 내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이 판다 가족에게는 어떠한 일이 생길까? 어미 판다를 바라보는 다른 동물들의 모습이 과연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읽힐까?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내 감상을 적어보자면... 나는 사람이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외향적이에요. 저는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그런 건 잘 못해요. 이렇게 우리는 쉽게 자신을 하나의 모습으로 묶어 표현하곤 하지만 가족과 있을 때의 내 모습,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내 모습, 연인과 있을 때의 내 모습, 학교에서의 내 모습, 직장에서의 내 모습 .... 그 때 그 때마다 변하는 모습들이 있다. 아기 판다들을 바라 보며 행복해하는 어미 판다의 모습, 상처받아 우는 모습, 외로워하는 모습, 먼 곳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모습. 이 모든 감정들은 겪어보았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위로하지만 그 슬픔에 잠식당하기 두려워하는 모습도, 제3자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슬픔을 보고도 함께 슬퍼하거나 위로를 건네지 않았던 모습도, 나의 자존심을 내세워 그 당시 다른 이를 돌아보지 못했던 모습도 모두 나의 발자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일면 따뜻하고 일면 차가운 존재이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상처받고 싶지 않기에, 과거의 힘든 상황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에 가면을 쓰지만 그런 차가운 모습 뒤에 감춰진, 누군가를 대신해 아파주고 싶고 그를 위로하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있다.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싶다면, 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마음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기 전에, 내 자존심을 내세워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주기 전에,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하기 전에.

이 방법들을 내 삶에 적용한다고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나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일순간에 나 자신이 변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편견없이 진심으로 다가가고, 동시에 나를 사랑하고 정성껏 돌보는 하루하루가 쌓인다면 나는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후회 없이 사랑하고 나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를 존중하고 위로하고 감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철환의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통해 나는 또 한 번 위로받았다.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상처 위에도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하얀 눈처럼 덮여 포근하기를 바라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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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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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초판 발행일: 2018년 1월 12일(해당 도서는 정식 출간본이 아닌 티저북),
144p(이 역시 티저북이므로 전 페이지가 아님을 밝힙니다)

 

 

 

 

  우선 이 책을 덮으며 들었던 생각은 '더 읽고 싶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정말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이들 앞에 펼쳐질 것인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이제 잘 시간이야"라며 책을 덮어버리는 부모님을 대할 때 느끼는 마음처럼, 아쉽고 아쉬웠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문학동네에서 <그 겨울의 일주일>을 발행하기 전 열었던 티저북 이벤트 덕분이었다. 서평단을 모집하던 글을 보고 응모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고, 운 좋게 당첨되어 이렇게 메이브 빈치라는 작가를 만날 수 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메이브 빈치가 실제로 무척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이라 상상했다.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사람이 여는 티 파티가 있다면, 한 번 참석해보고 싶을만큼 궁금한 사람이라고.

  메이브 빈치를 소개하는 글의 머릿말부터 왜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명시되어 있는지는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낄 수 있다.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하지만, 머릿속에 바다가 확 펼쳐지고 그 앞을 걸으며 사색에 잠겨 있는 한 여자가 자꾸 떠오르는 책이다. 또 각 인물이 오밀조밀 살아가는 모습들이 생생하고, 그들의 얽히고설킨 상황 전개에 점점 눈을 뗄 수 없다. 이는 개개인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 보는 동시에 상상을 더 하게끔 만드는 작가의 필력 덕분일 것이다.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을 읽을 때 나는 마치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공녀', 그리고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을 처음 읽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각 캐릭터의 입체적인 성격과 삶을 대하는 용기 있는 태도는 당시 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저마다에게 일어나는 각양각색의 스토리가 또 다른 캐릭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전개 방식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겨울의 일주일>이라는 책 역시 나에게 비슷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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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스토니브리지'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펼쳐 보이며 전개된다. 맨 첫번째 인물은 '치키'. 그녀는 스토니 브리지에서 '월터 스타'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부모님과 세 남매(캐슬린/메리/브라이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뉴욕으로 떠난다.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월터는 그녀를 떠나게 되고, 셀렉트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캐시디 여사'의 밑에서 일을 배우며 살아가게 된다.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던 중 캐시디 여사의 설득으로 가족이 있는 스토니브리지로 돌아가게 된 치키는 '미스 퀴니'라는 조력자의 도움을 얻게 되면서 스톤하우스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지을 계획을 짜 나가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게스트하우스의 장소를 제공한 미스 퀴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SNS와 컴퓨터를 이용한 체계적인 경영 방식에 도움을 주는 큰조카 '올라', 밭을 일구거나 담장을 쌓고 물건을 나르는 등 게스트하우스의 지배인 역할을 할 '리거'와 함께 고양이 글로리아를 키우며 살아가게 될 그녀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꾸며질 것인가?

 

 

  두 번째로 소개할 인물들은 눌라와 그의 아들 리거. 눌라는 치키와 마찬가지로 스토니브리지에서 '앤드루'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가 떠나버린 이후 본인이 임신했음을 알고 일해주던 곳의 주인인 '시디 자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녀들의 도움으로 더블린으로 거처를 옮긴 그녀는 아들인 '리거'를 낳는다.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블린에 살고 있는 오빠 '네이시'에게만은 털어놓으며 의지하게 되고 잘 살아가는듯 했으나, 점점 비뚤어지는 리거의 삶에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만 있는다. 결국 범죄를 저지르고 눌라와 네이시에 의해 스토니브리지로 거처를 옮기고 마는 리거. 눌라는 그때부터 삶에 대한 의지를 잃는다. '아들이 이렇게 잘못된 길로 간 것은 다 아이를 제대로 기르지 못한 나의 탓이야.' 그녀는 그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하루하루 시들어간다.
  그러나 리거는 열심히 스토니브리지에서 치키를 도와 일하며 점점 바뀌어 나간다. 열심히 일하며 치키와 스톤하우스 게스트하우스의 지배인이 될 앞날을 기대하며 성실한 모습으로 탈바꿈해가는 그. 아내인 카멀과 결혼하여 스톤카티지라는 보금자리를 꾸며 나가는 그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르고 스토니브리지로 오던 그 날 이후 자신을 만나러 단 한 번도 오지 않는 어머니 눌라를 걱정하며 마음은 점점 시들어만 간다. 그러나 열심히 살고 있는 리거와 카멀의 모습을 바라보는 눌라의 마음에도 점차 변화가 찾아오게 되는데...

 

   세 번째로 소개할 인물은 치키의 큰조카이자 치키의 언니 캐슬린의 딸 올라. 친구인 브리짓 오하라와 함께 스토니브리지에서 떠나 일하게 되지만,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은 가지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의 선생님 '데일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자유분방하고 솔직하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결단하는 것이 빠른 데일리와 계속 연락하면서 스토니브리지에서 치키를 도와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점차 마음에 들어하는 그녀지만, 1년이라는 시간 유예를 둔 채 짐짓 그 일에서 언제든 손 뗄 수 있다는 모습으로 자신의 본심을 감추는 올라. 과연 그녀가 앞으로 치키와 꾸려나갈 스톤하우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 것인가? 그녀는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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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겨울의 일주일>은 얼핏 보면 평범하고 흔해 보이는 인물들의 삶에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책이다. "누구의 삶도 평범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운명과 이겨내야 할 결점을 지닌 주인공들이에요." 메이브 빈치가 인터뷰에서 직접 한 말이다.
  그렇다. 누군가가 보기에 우리네의 삶은 일면 비슷하고 또 그런 비슷한 삶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고만고만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 누구의 고민 하나도, 인생의 하루 혹은 한 시간도 가볍지 않다. 저마다가 '나'라는 책의 매 페이지를 성실하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하루, 일주일, 한 달이 고만고만하게 느껴지는 누군가라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하겠다. 실은 모두가 제 삶의 주인공이며 그 삶을 책임감있게 꾸려나가는 저 인물들의 삶 속에서 또 한 번의 용기를 얻고 나아가라고 말이다.

 

 

 

 

 

 

 

* 작가인 메이브 빈치(Maeve Binchy)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이자 극작가. 칼넘니스트. 메이브 빈치의 작품은 위트 넘치는 이야기, 생생한 캐릭터,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 독자의 허를 찌르는 결말 등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은 40여 개국에서 번역 및 출간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1940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아이리시 타임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1982년 첫 소설 『페니 캔들을 밝혀라』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친구의 범위』『타라 로드』『프랭키 돌보기』등 발표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았다. '브리티시 북 어워드 평생 공로상' '아이리시 펜/A.T. 크로스 상' '밥 휴즈 평생 공로상' '아이리시 북 어워드 평생 공로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2년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아일랜드 총리였던 엔다 케니는 "아일랜드의 보물이 떠났다"며 국민을 대표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고, 아일랜드는 물론 영국,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아일랜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죽음"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 겨울의 일주일』은 메이브 빈치의 마지막 작품으로, 사후에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아이리시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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