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지음 / 예경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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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정현주 지음, 도서출판 예경, 초판 2쇄 발행: 2016년 5월 20일, 246p

 

 

 

 

<거기, 우리가 있었다>와 <그래도, 사랑> <다시, 사랑> 등 감성적인 에세이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 방송작가 정현주의 또 다른 저서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는 '한국의 피카소'라는 애정어린 별명으로 불리우는 화가 김환기와 그의 아내인 김향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다. 김향안의 본명은 본디 변동림으로, 그녀는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로 유명한 이상의 전처이기도 하다.

 

 

 

1937년 4월 17일, '멜론이 먹고 싶소'라는 상의 말에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수필 <월하의 마음>, 변동림 회상

 

 

이상과 사별한 후 변동림은 7년 후 자녀가 셋 있는 화가 김환기와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된다. 변동림의 이름이 김향안으로 이 책에 실린 이유는, 당시 부인이 있던 김환기와 사는 것은 본부인을 내쫓는 것이며 아이가 셋 있는 집에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던 가족들과 계속해서 부딪히자 가문과 인연을 끊겠다며 성과 이름을 버리고 남편인 김환기의 성 '김'과 호 '향안'으로 바꿔 지냈기 때문이다.

이렇듯 쉽지 않았던 그들의 시작. 우여곡절은 많았으나 그들은 행복했다. 특히 이 책에서 집중해 다루고 있었던 부분은 그들의 삶의 방식, 사랑의 방식이다. 책에 첫 장에도 강조해 한 페이지를 할애할 만큼 사랑에 대한 정의는 인상적이다.

 

 

사랑이란 지성이다.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말을 듣게 되면 '안다'라는 뜻의 지성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 = 지성' 이라는 정의는, 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폭넓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 이야기이다.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서로와 공감하고 통하며 상대를 확대시켜줄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매력적이지 않을까.

나는 이 정의(사랑이란 지성이다)를 가지고 책 한 권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이 지성이라는 것이 남편과 아내가 이야기할 때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지성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똑똑하다, 다시 말해 소위 '섹시하다'라고 느껴지는 정보들이 나에게 들어올 때도 감화가 되지만 이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줬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나 싶었다.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되었을 때 느껴지는 상대의 소중함. 이 공간은 그(혹은 그녀)만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더 특별해지는 느낌. 애틋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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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주 작가의 특유 문체와 롱디(아주 먼 거리에서 떨어져 사는) 부부의 스토리가 어우러지며 어찌 보면 사랑이라는 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질 수 있다. 남편의 꿈을 지지하기 위해, 동시에 자신을 위한 커리어를 동시에 쌓아나가는 아내의 모습. 얼마나 이상적이고 멋지며 아름다운가. 그러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내내 한편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현실'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세 아이의 아빠인 김환기는 과연 어떠한 아버지였고, 그 아이들과 새어머니인 향안의 관계는 또 어떠했을까. 외국으로 나간 남편의 공백과 표현하진 않았겠으나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렸을 그녀의 삶. 쓸쓸하게 혼자 마주해야 했던 밥상과 침상을 보며 향안은 어떠한 기분이 들었을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기에 혈연도 끊고 살아갔던 향안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책에서는 서로 대화하고 존중하며 꿈을 이루어 나가는 데 지지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내와 그를 고마워하며 모든 것을 아내와 나누려 했던 남편의 모습이 나오지만, 한 편으로 이런 모습들을 곱씹지 않을 수 없어 책을 읽는 내내 아름다움만 가득한 채 정작 중요한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자가 집중했던 테마는 너무도 아름답다. 그건 읽을 수록 인정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당대와 어우러지며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생계 유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조금 떨어져 생각해보면 아내 김향안과 남편 김환기 화백의 사랑의 모습이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은 사실이다. 고차원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까, 어떤 엄마가 또 어떤 아내가 되면 좋을까... 라는 질문을 책을 읽으며 계속 하기도 했다. 잔잔한 문체와 따뜻한 그림으로 이러한 질문을 조심스레 던져 주었던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그들의 사랑이야기만으로 그치지 않는, 질문을 던져 주는 에세이여서 책에 대한 인상이 더 깊고 진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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