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바라보기
이철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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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바라보기, 이철환, 자음과 모음 출판사, 초판 1쇄 발행일: 2017년 12월 11일, 303페이지

 

어렸을 적 제일 좋아하던 TV 프로그램 중 하나로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름 그대로 독서를 장려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져서인지 MC들이 나와 책을 읽는 시민들의 인터뷰도 하고, 해당 도서가 없는 사람에게는 책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故노무현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청년 시절 즐겨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며 국민들의 독서 문화를 장려했던 기억도 난다. 당시에도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아무 책이나 집어들어 읽곤 했던 내게 깊고 넓은 독서의 폭을 알려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 덕분인지 친구든 부모님이든 친척들이든... 그 누구와 책 이야기를 해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던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학교에도 녹아들어서, 담임선생님 역시도 우리들에게 책 목록을 뽑아 주시며 읽으라고 장려하셨다. 교실 뒷편에는 우리가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책이 주루룩 꽂혀 있었는데, 선생님이 사다 넣어놓으시거나 친구들의 기부로 새로운 책이 들어올 때면 너도 나도 그 책들을 읽으려 순번을 정하고는 했다. 또 선생님은 아침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한 편씩 틀어주시곤 하셨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드러운 내레이션과 감동적인 일화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따뜻해지곤 했다. 이철환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 즈음 방문한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였다. 나는 이철환 작가를 <연탄길>이라는 책으로 먼저 알았다. 가난하게 살지언정 마음만은 부자인 사연들을 읽으며 눈물도 흘리고 깊게 감동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그러나 그 이후 입시 공부에 치여 이철환 작가는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는 듯 했다. 간혹 <연탄길>이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설핏 웃음짓기도 했지만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옛 책을 꺼내 보는 일은 드물었다. 그렇게 10년 정도 지났을까... 당시 한참 마음앓이를 하며 힘들었던 내게 대학 친구가 책 한 권을 선물로 준 적이 있다. 이철환 작가의 <위로>였다. 그 때 친구의 마음씀에 무척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읽는 동안 책 속 이야기가 어지러웠던 마음을 토닥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스물 두 살의 나.

그렇게 나는 이철환 작가를 다시 만났다. 그 안에 쓰여진 편지와 따뜻한 이야기에 위로받았던 나는 아직도 그 책을 내 서재에서 가장 잘 보이는 데 꽂아둔다.

 

 

<마음으로 바라보기>는 <연탄길>, <위로>와 마찬가지로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어주는 느낌이 강한데, 우화 한 편을 먼저 이야기한 후 작가가 자신의 삶에 비추었을 때 느껴왔던 (세상, 사람, 나 자신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 여덟 가지'를 말하고 있다. 처음 나오는 우화는 판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기 판다를 둘 키우는 어미 판다가 있다. 이렇게 셋으로 구성된 단란한 판다 가족.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깔깔 웃기도 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장난도 치고 나무의 모양을 따라 춤도 추는 일상의 모습이 다채로운 색감으로 페이지마다 퍼져 나온다. 한 장, 한 장씩 이어질 때 그 주인공은 비록 판다이지만 마치 우리네 삶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건 아마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느껴온 부모님의 사랑이 떠올라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깊은 감상을 적어보고도 싶지만 개인적으로 이 판다 가족의 일화는 읽는 이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스토리를 먼저 이야기해 추후 읽는 독자에게 내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이 판다 가족에게는 어떠한 일이 생길까? 어미 판다를 바라보는 다른 동물들의 모습이 과연 다른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읽힐까?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내 감상을 적어보자면... 나는 사람이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외향적이에요. 저는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그런 건 잘 못해요. 이렇게 우리는 쉽게 자신을 하나의 모습으로 묶어 표현하곤 하지만 가족과 있을 때의 내 모습,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내 모습, 연인과 있을 때의 내 모습, 학교에서의 내 모습, 직장에서의 내 모습 .... 그 때 그 때마다 변하는 모습들이 있다. 아기 판다들을 바라 보며 행복해하는 어미 판다의 모습, 상처받아 우는 모습, 외로워하는 모습, 먼 곳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모습. 이 모든 감정들은 겪어보았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위로하지만 그 슬픔에 잠식당하기 두려워하는 모습도, 제3자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슬픔을 보고도 함께 슬퍼하거나 위로를 건네지 않았던 모습도, 나의 자존심을 내세워 그 당시 다른 이를 돌아보지 못했던 모습도 모두 나의 발자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일면 따뜻하고 일면 차가운 존재이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상처받고 싶지 않기에, 과거의 힘든 상황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에 가면을 쓰지만 그런 차가운 모습 뒤에 감춰진, 누군가를 대신해 아파주고 싶고 그를 위로하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있다.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싶다면, 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마음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기 전에, 내 자존심을 내세워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주기 전에,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하기 전에.

이 방법들을 내 삶에 적용한다고 하루 아침에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나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일순간에 나 자신이 변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편견없이 진심으로 다가가고, 동시에 나를 사랑하고 정성껏 돌보는 하루하루가 쌓인다면 나는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후회 없이 사랑하고 나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를 존중하고 위로하고 감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철환의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통해 나는 또 한 번 위로받았다.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상처 위에도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하얀 눈처럼 덮여 포근하기를 바라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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