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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ㅣ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육체의 안녕은 매일 돌보면서, 정작
영혼의 허기는 채우고 있는가?─라고 하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예상하며 책을 펼쳤지만
길어야 몇 장, 짤막짤막한 추억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글이라는 것에 초반부터 조금은 김이 빠졌음을 고백한다.
국내 작가 21인의 음식에 얽힌 추억담과 담백한 일러스트가 어우러진
책을 읽으면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과연 ‘소울푸드’가 무엇이냐는
것과 누구나 소울푸드를 가지고 있다면 내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는 이 시점에서도 나는 내가 소울푸드를 찾은 건지 모르겠다. 소울푸드가 그저 단순히 ‘좋아하는 음식’을 뜻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아직 ‘삶의 허기’를
진정으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22년
살아오면서 무언가 있었겠지, 하며 오기부리듯 생각하다 보니 하나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하다. 책의 구성이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담아놓은 만큼, 리뷰도
그에 맞게 내 이야기를 조금 넣어도 괜찮을 것 같다.
하나뿐인 딸이라고 부족한 것 없이 키우려는 부모님 덕분에 살면서 허기라곤 내 고집부리면서 한두 끼 굶어본 게
다인 22년 인생에 영혼이 허기질 만큼 뭐 그리 고단한 일이 있었을까.
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단할 때 ‘특히’ 생각나고 땡기는 음식이 하나 있긴 하다. 순두부가 갈색의 대양 위에
섬처럼 둥둥 떠있는 엄마의 된장찌개. 대부분 순두부는 순두부찌개에나 넣어먹는 줄 알고 된장찌개에 넣는다고
하면 눈썹을 불쑥 올리며 잉? 하지만 우리 집에선 두부가 들어가는 모든 국과 찌개에 순두부를 넣는다. 글로 설명하면 잘 이해 못할 이유이긴 하지만, 일반 찌개용 두부에
상처가(흠집? 아무튼 매끈하지 않은 모든 상태를 말한다.)나면 그 틈새로 국물이 스미는데 그 모습이 꼭 칼집 난 피부에 피가 나는 것 같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상처 난 찌개용 두부를 보면 숟가락으로 꾹꾹 짓눌러 으깨버리는데, 이미 입맛은 싹 달아나 버려서 두부만 열심히 으깨놓고 슬며시 숟가락을 내려놓는다.─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나를 외계인 보듯 쳐다보는데 이유야 어쨌든
순두부는 어떤 찌개, 국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그렇다고
내 소울푸드가 순두부라는 건 아니고, 꼭 ‘순두부가 들어간’ 엄마의 된장찌개라는 걸 강조하려다 보니 순두부 얘기가 길어졌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가 고프면 가릴 것 없이 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엄마의 된장찌개가 ‘특히’ 먹고 싶다. 초등학생 때는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꼭 하루
이틀씩 자고 오는 극기훈련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엄마에게 미리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뱃가죽이 등가죽이 됐어. 된장찌개 먹고 싶어!!!] 그러면
엄마는 꼭 몇 분이 걸리는 지를 묻고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손만 씻고 먹을 수 있게끔 준비하시곤 했다. 이유식을
할 때부터 엄마는 된장국을 짜지 않게 삼삼하게 끓여서 밥에 부드럽게 말아주셨다고 하니, 내가 허구한날
된장찌개만 찾는 된장녀가 된 것은 어쩌면 예상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 배가 고플 때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고된 하루를 보낸 날도 나는 꼭 된장찌개를 찾는다. 대학교를
서울로 다니면서 처음 2년간은 왕복 4시간 통학을 했는데
육체적인 피로도 피로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을 나서는 것도 그렇지만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저녁 9시나 되어서 집에 돌아와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펼치면 책상 앞에서 삼십 분은 울기만 했다. 공부해야 할 건 산더미인데 몸은 너무 힘들고, 미리 짜둔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독한년 소리 들어가며 공부하던 나에게 그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없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된장찌개 자체가 내게 스트레스 해소가
된 것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그 2년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된장찌개를 먹었다. 같이 먹는 가족들은 좀 괴로웠을지 모르겠지만, 된장찌개가 아니면 밥 먹을 기운도 내지 못했다. 이상할 정도로 된장찌개에
집착했던 것을 보면 내 소울푸드는 정말 된장찌개인 걸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에 중요한 시험이나 긴장된 자리를 앞에 두고는 꼭 장 트러블이
일어나는 데, 그럴 때 내 장을 평온한 바다처럼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된장뿐이었다. 장 트러블을 겁내는 마음에 더욱 된장을 찾게 되다 보니 혀의 미각세포가 된장화 된 것일까. 음.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나에게 소울푸드란 힘들고 지칠 때 나에게 평온을 되찾아주는 음식이 되겠다. 내가 나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불안한 때에도 “나는 된장찌개를 좋아한다.”로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지 않게 하는, 영혼에 안정을 주는 음식
말이다.
책의 특성상 내 이야기를 주로 적었지만 책에 대한 평을 조금 덧붙이자면, 같은
주제로(어쩌면 식상한 주제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한데
묶다 보니 비슷비슷한 내용의 나열이 될 수밖에 없어서 한 번에 쭉 읽기는 지치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혀가 부풀고 어금니가 마비되도록 맛깔난 음식 이야기. 침이
한 가득, 추억이 가슴 가득 고인다!>라는 야심찬 문구와는
달리 음식에 대한 에세이치고 ‘맛있다!’는 느낌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