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의 비밀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백설자 옮김 / 현암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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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소 딱딱할 것만 같은 철학이라는 학문이, 결코 철학스럽지 않은 부드러운 식빵의 안쪽을 떼어 먹는 둣한 질감을 주는 이 환상의 모험은 어린 주인공 한스가 난쟁이와 베이커리 주인의 각각의 확대경과 꼬마책을 통해 자신의 가문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는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존재하는 자신을 특별히 존재한다는 인식과 대면하게 되는, 망각하는 인간과 대조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요소가 다분히 녹아내리는 지루할 것만 같은 내용을 눈에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듯 작가의 노련함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결집하게 만든다. 

카드패에 따른 각기 다른 성격의 카들들, '조커'만이 자신이 누구이고, 이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며 특별한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생각해낸다. 물론 그를 만든 주인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들 자신은 누구나 '조커'가 되어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하지만 차츰 자신을 잃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 특별한 인식없이도 존재한다는 그 하나로도 충분하게 되버리는 것이다. 술로서 자신을 잃어간다든가, 편안함을 이어가기 위해 꿈보다는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누군가의 눈에서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해도... 

이 책을 통해, 조금씩 내 자신, 결코 진실일 수 밖에 없는 해와 달,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 귀찮을 정도로 붙어다니는 초파리, 모든 것들은 결국은 진실일 수밖에 없고 존재에 따라 특별하게 다가온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어디서 나왔으며, 어떻게 지구상에 살아 숨쉬는 생물체로, 앞으로 어떤식으로 인생의 원을 그리며 살아갈 것인가, 

신은 그런 나와, 주변의 관계를 맺는 다른 모든 생명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바라볼 것인가, 

조금은 무겁게, 차갑도록 시리게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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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메리지
앤 타일러 지음, 민승남 옮김 / 시공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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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앤 타일러의 뛰어난 관찰력과 예민한 감수성, 한 줄 읽어갈 적마다 레일 위로 천천히 올라가는 롤러코스터가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외치듯 극적으로 추락해가는 듯한 이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온몸으로 느껴져 작가의 뛰어난 감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매사가 조심스럽고 계산적인, 때로는 지나치게 상대방의 숨을 조일 듯 딱딱한 소심쟁이 마이클과 그와는 정 반대인,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이 독설을 던지면서도 뒤돌아 자신이 했던 말들을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수다쟁이 미녀 폴린은 서로의 열정적인 사랑을 느껴 결혼이라는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우려했던 대로 이들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다.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투고, 큰 딸 린디는 가출하여 행방이 묘연하고, 그로 인한 둘의 사이는 전학온 아이마냥 서먹함을 느낄지경에 이르렀으며, 갑작스런 선물같은 린디의 아들을 키우면서 다시금 활력을 이어가는 듯 했다. 

황혼을 같이 할 줄 알았지만 마이클의 갑작스런 이혼요구와 그들의 별거생활, 뜻하지 않은 사고와 이별, 그리고 극적인 만남 등 정말로 평범한 한 가정에 바람 잘 날없는 사건들로 얽히고 설키는 인연과 우연, 복잡한 감정들로 지루할 새 없이 페이지 넘기기 바쁠 지경이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마이클을 대하는 폴린에게 부아가 치밀어올랐고, 폴린을 놀리는 듯한 마이클의 태도에서 비난의 손가락을 뻗어보이고 싶을 정도로 약올랐지만 그 둘은 정말 극단적이고 서로가 맞지 않는 부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물론, 마이클은 상황이 극악으로 치닫으면 으르렁대기보다 먼저 피하기 일쑤였지만, 그건 폴린에게 자극을 요하는 행동이었고, 조그마한 일에도 커다란 걱정을 일삼는 폴린은 마이클에게 성가신 존재로 느껴질 법도 했다. 

마이클은 다른 부부들을 바라보면서, 키우는 자식을 보면서 우리 부부처럼 싸우지는 않을 것 같고, 린디처럼 가출하거나 나쁜 행동을 일삼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마침표를 찍는 성격을 표현하기에 부적합하지는 않은 것이다. 

뜨겁게 불태우던 연애의 종지부는 결혼이라는 새로운 인생으로 다시금 여정을 이어간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지만, 서로 다른 나뭇가지를 접합하여 사과가 열리기도, 오렌지가 열리기도 하는 결혼생활을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배려가 참으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가정안에서도 삐뚤빼뚤 아이가 부모를 속썩이기도 하고, 언제나 함께 일 것 같은 배우자는 언젠가 떠날 수도 있다. 갑작스럽게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말이다.  

마이클, 폴린의 성격과 행동은 나를 반반씩 섞어 놓은 듯 하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고집스러운, 소심하면서도 수다쟁이 내 자신이 그들에게 투영되어 버리기도 했다.   

 마지막 마이클의 뒷모습에 느껴지는 쓸쓸함에서 마음에서 울컥함을 느껴버렸다. 그리움, 추억, 따뜻한 감정이 어우러져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변해버린 심장이 언제부터라도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따뜻하게 마음을 녹여주기도 했다.

결혼에 대한 유감없는 적나라함이 그대로, 절실히 나타나고,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정확한 직구를 던져 상대편을 긴장하게 만들어버리는 공감 100% 앤타일러 소설에 빠져들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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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방 룸메로부터 받은 감격의 선물, 뜻하지 않게 얻어마신 시원한 캔맥주에 하루의 고단함이 저절로 씻겨 내려간 듯 하다.  

이 곳 회사생활을 한 지도 3년이 넘어버렸다. 선임이라는 타이틀이 저절로 달아질 줄은 생각치도 못했다. 아직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가고 있기는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길이기에 좀 더 신중하게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을 룸메 유진에게 털어놓으니 맘이 편하다. 가끔 서로 오해를 사서 빈축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부딪히는 일이 어디 한 둘이랴, 무심히 넘어가는 것이 이 곳의 철칙이라면 철칙일 터, 

마시면 분명 기분 좋은 술이지만 일단 술판을 접고 시간이 흐르면 난데없는 한랭전선이 온몸을 감싸 뒤흔든다. 누군가 딱히 정해놓은 사람없이 그리워지고, 따뜻한 품에 안기고 싶고, 손을 잡고 싶고, 나를 원하는 그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곁에 없을 때면 마냥 허탈하고 외로워진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본연적인 외로움이 어둠이 어슷하게 내리깔듯 집어 삼킬 듯 나를 뒤흔든다. 

어째서 이런 기분에 젖어들어야만 하는가, 통화버튼을 누르고 그 사람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한 편으로 내가 왜 이 사람과 쓸데없는 말장난에 장단을 맞추어야 하지, 쓸데없는 상처를 남겨야만 하는건지 의안해하면서 전화를 끊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외로워서다. 분명... 길게 통화할 상황이 아닌데도 전화기를 부여잡고 놓질 못한다. 

종료버튼 누르기가 두렵기도 하다, 

혼자라는 것이 마냥 두렵다. 외로운건 싫다. 따뜻한 품이 좋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이것이 술이 주는 기쁨이자 혼돈이자 외로움의 쌍끝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터벅터벅 조용히 동네 산책을 하고 어슬렁 기숙사로 걸어들어갔다. 

어스름이 엄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싸는 기운이 사실 좋지만은 않기에..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분명 한가지 사실이 있다. 

난 아직 철이 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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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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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작가는 이 시대에 많은 공감과 존경, 스포트라이트의 안광을 한껏 받아온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추천한 '칼의노래', 많은 사람들로부터 입으로 오르락내리락한 '남한산성', 글쓰기의 독특한 자신만의 고집이 있는 카리스마적인 이 분,  

사실 한 권의 책도 나는 읽어본 적이 없다. 단지 어려울 것 같다. 답답할 것 같다. 라는 주체적 관념으로 인한 허상과 게으름이 한 몫 뒤따랐을 터이다. 그치만 부끄럽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세상이 이 분의 작품을 안읽었다고 해서 오도하고 무지하다고 비판하지는 않으니까, 

 에세이는 월간지를 빼면 읽은 적이 없는 듯 싶다. 이게 에세인가 부류하면서 읽지는 않지만 적어도 에세이가 이런 거구나 싶어, 작가관에 대해 좀 더 편안하고 3인칭 시점에서 초월해진다는 느낌이 기분좋다. 내가 느끼는 조금의 감정과 이 분이 생각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일치할 때는 어쩐지 희열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나이는 허투루 먹는게 아닌 것 같다. 그 분의 경외심이 절로 느껴지고, 때론 그 분이 바라보는 시각, 삶의 고루함을 맛깔나게 쓰신게 읽기에 참 부담없다.  

 게다가 내가 지향하는 삶과 일맥상통한다. 자전거 고칠 능력은 안되지만 자전거타고 이 곳 저 곳을 바라보며, 자연의 우러름, 이름모를 들꽃들과 평화롭게 노니는 새들, 바람에 휘날리는지 제들이 휘날리는지 모를 가녀린 갈대들, 모든 것들이 허사가 아니고 지나친 법들이 없다. 

 자유로움, 중립, 자신의 생각, 무위도식, 따뜻한 시선, 정, 서민, 동질감,, 

 그 분의 생각을 존경하고 이 분의 글쓰기가 참으로 부럽고 많은 고생을 하셨겠지만 후광이 비취오는 그 분이 참으로 부럽고, 그런 삶 또한 살고 싶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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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김소향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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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다.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무언가 상실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해보질 않았다. 내가 살아있기에 당연히 남들도, 하다못해 나와 관련된 모든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웃고, 울고를 반복해가며 살아있겠구나-라는 생각 뿐이었는데, 너무나 단편적인 생각으로 인해 주변의 잃은것에 대한 슬픔에 간과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뉴스에서나 신문에서만 접할 것 같은 무수한 사고와 사건들, 그리고 조용히, 때론 엄숙하게 치뤄지는 장례식또한 어쩐지 남얘기 같아 그냥 흘러보내기에 급급했는데, '회자정리'처럼 애정과 인연으로 만났다해도 이별하는 것은 정말 당연하고 원인과 결과처럼 확실함에 틀림없다. 

언젠간 사랑하는 사람들, 아끼는 물건, 혹은 자신을 잃을 날이 오겠지만 그 잃음의 슬픔이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모든 것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자신또한 분열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분노, 두려움, 체념, 아쉬움 등이 단계별로 나타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마음속에 공허함과 애절함, 슬픔과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안타깝고, 쓸쓸하고, 두렵고, 슬프지만,  

인간이기에, 모든 영위물을 습득하고 다스리고 누리는 온전한 인간이기에 잃는다는 것에 대한 아픔과 아쉬움을 가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그저 허황된 욕심을 버리고 푸른 하늘과 맑은 구름, 따뜻한 햇살, 풍요로움을 누리는 새들 사이의 지저귐 사이에서 사랑하는 그 누군가와 함께 있는 그 시간동안이 정말 행복했음을,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많이 가지고, 사사로운 것들에 대한 감동을 많이 느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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