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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12월 내맘대로 좋은책!


 
"올해 가장 주목했던 두 사람, 래리 보시디와 램 차란"
 
현실을 직시하라
래리 보시디+램 차란 지음, 정성묵 옮김 / 21세기북스
 
편애하는 몇 안 되는 경영서 중 한 권인 <실행에 집중하라>, 그 저자들의 신간은 전작만큼이나 나의 편애를 받기에 충분하다. (사실 받았다.) 경영서는 이래야 함을 보여주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설명, GE 부회장을 지냈다는 경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통찰력은 이 책을 소장해 두고 몇 번씩 읽어보기에 충분한 이유를 준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역시 제목에 있다. '책제목을 음미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전작만큼이나 이번 책의 제목 또한 멋진 '현실을 직시하라'다. 시오노 나나미도 <로마인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몇 번을 곱씹어보며, 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생각이다.
 
아, 멋지다. 이로써 올해 총 3권의 책을 (한권은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다) 나의 경영서재에 추가로 꽂아두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총 8권. 경영서가가 수는 적지만 알찬 책으로 점점 채워지고 있다.
 
경제.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원래 다른 음반을 선정했었는데..."
 
Dream Theater - Live At Budokan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 연주 / 워너뮤직코리아
 
원래 꼽았던 음반은 이게 아니었다. 나름대로 되게 진지한 글을 하나 적어놓았었는데... (이 코너를 쓰는 다른 편집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좋은 음반이 나오면 여기 소개할 것을 미리 고민하고, 코멘트도 미리 써놓는다.) 그런데 11월의 마지막날 오전 도착한 한 장의 앨범이 한 달간의 고민과 생각을 한번에 날려버렸다. 바로 여러분이 보고 계신 드림 씨어터의 부도칸 라이브!!!
 
수입판과 동일하게 3단 디지팩으로 발매된 이번 앨범은 뭐... 할 말이 없다!!! 바로 그냥 확 뛰쳐나가서 미친듯이 흔들고 발악하고 싶다. 몸 구석구석을 강렬하게 두들겨대면서 나를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구만!!! 오오오!!! 어찌 이들은 가면 갈수록 더 좋아지는지... 내년에 신보를 낸다는 기쁜 소식 또한 곁다리로 들어 지금 기분이 만땅 좋다! (소문에는 워너가 그다지 홍보를 해주지 않아서 계약이 종료되는 마지막 한 장을 예정보다 빨리 낸다고도 하던데. 흠... 모르겠다, 일단 내기나 해라!!!) 어찌되었든, 여전히 내 몸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구나 하는 걸 화끈하게 실감하게 해 준 드림 씨어터에게 11월 내 맘대로 좋은 음반 자리를 건네준다. 이제는 국내에 발매되지 않은 부도칸 라이브 DVD를 구매하러 갈 차례... 기다려라~~~ 하하하!!!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파이의 반전, 파이의 선전, 파이 화이팅!"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몇번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정작 입밖으로 내어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도 그렇다. 그저 솔직하게, 짧게 말하자. 어린 소년(파이)이 사나운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 잃고, 언제 자기를 해칠지 모르는 호랑이와 공존 아닌 공존을 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라니.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3일에 끊어 읽었다. 사실 끊어 읽는 독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소설의 경우. 3부로 나뉘어진 이 책의 1부는 예상 외로 길다. 태평양에 홀로, 아니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난파한 이야기는 100여 페이지가 넘어가야 비로소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3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재미있네, 흠. 이러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머리를 감다가 깨달았다. 아, 바로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구나! 뒤통수를 퍽 얻어맞은 느낌(사실 아직도 얼얼하다). 이 소설의 구성이 의미하는 바,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라는 말의 의미. 살면 살수록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우리네 삶을 지탱하는 '무엇'의 의미. 그러니까 희망, 혹은 이야기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책을, 소설을 계속 읽는 이유.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선명한 깨달음이랄까. 아주 수월하게 빠르게 읽히면서도 그 안에 삶이 있다. 역시 정말 훌륭한 작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씌어지는 법이다. 새삼 생각한다. (알라딘 입사 후 내 마음을 뒤흔든 몇 권의 책 중에 차오원쉬엔의 소설과 <내 생애의 아이들>이 있었다. 결국 또다시 소년(들)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오랜만이다. SF를 읽으며 인식의 변화, 아,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란 것은. 이야기는 단단하고, 구성도 흠잡을 데 없다. 한눈 팔지 말고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지적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책. (공대생 개그 중에, '정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문과생은 'justice'라는 영어단어를 떠올리고 공대생은 'definition'을 떠올린다는 예가 있다. 정말 그렇다. 전형적인 문과생인 나로선 '네 인생의 이야기' 중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오, 이런 식의 인식이 가능하군, 하며 놀랐다. 과학과 종교가 잇닿을 수 잇는 지점이 무엇인지 얼핏 알 것도 같다.)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기차가 달리는 한, 그들은 살아남는다"
 
설국열차 1 자크 로브+장 마르크 로셰트 지음 / 현실문화연구
설국열차 2.3 뱅자맹 르그랑+장 마르크 로셰트 지음 / 현실문화연구
 
일본만화처럼 아기자기하고 단정한 선이 아닌, 다소 거칠고 예술적으로 난해한(?) 느낌을 주는 유럽만화는 국내에서 그다지 각광받는 편은 아니다. <설국열차> 또한 대표적인 유럽만화로 총 2권으로 되어 있다.
 
기후무기로 인해 파괴된 지구에 빙하기가 닥쳐와 생명체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살아남는 방법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판 노아의 방주, 설국열차가 만들어지고 만화는 이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 인간의 존엄성, 이기심을 중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권의 시나리오 작가는 SF 시나리오계의 대가 자크 로브. 장 마르크 로셰트는 애초 그와의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그려나갔다. 그러나 1권을 그린 직후 자크 로브가 타계, 별 수 없이 공백기를 두던 중 또다른 작가 뱅자맹 르그랑과 2권을 완성하게 된다.
 
시종일관 암울하고, 게다가 확실히 보기 편한 그림체는 아니다. 그러나 읽은 직후 사람으로 하여금 단 몇 분 동안이라도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이다. '열차'라면 그저 꿈과 환상의 만화 '은하철도 999'만 떠올리던 시절은 이제 서서히 지나가는 모양이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내 인생의 책, 한 권 추가요!"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 작가정신
 
표지만 봐도 흐뭇한 책 <파이 이야기>. 11월에 읽은 책 가운데 이에 대적할 경쟁작은 없다! 태평양 한가운데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남겨진 파이의 모험담 자체로도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 하지만, 이 책의 힘은 마지막의 기막힌 반전(?)에 있다. 책이 제시하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소통과 단절... 세상에 존재하는 이분법적 가치들을 정확하게 나눠세우는. 어느 이야기를 믿을지는 당신 마음. 그래서 이 책은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신의 존재와 경이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결국은 당신의, 나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문단 하나.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얼굴을 붉히고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며 말을 쏟아낸다. 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희망, 삶, 믿음, 신, 경이로움, 우주의 신비, 생명... 그것들은 마음 속으로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들은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에 심은 나무라는 것. 물을 주고 볕을 쪼여 키워내야 할 나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절실하게 생각한다.
 
사회.역사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 동화!"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
짐 크노프와 13인의 해적
미하엘 엔데 지음, 프란츠 요제프 트립 그림, 선우미정 옮김 / 길벗어린이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쁨, 감동, 설레임, 흥분이 아직 생생하다. 읽고 읽고 또 읽었던 이 동화, 그간 <기관차 대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반쪽의 이야기만 출간되고 있어 못내 아쉬웠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 만나게 되어 다시 한번 감격, 또 감격!
 
<모모>, <끝없는 이야기>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데뷔작품이다. 주제의식 면에서는 유명한 두 작품처럼 심오하지 않다. 하지만 훨씬 발랄하고 즐겁고 신나고 유쾌한, 상상력 가득한 동화. 상상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흔치 않은 책이라 읽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늙고 변했으나 책 속의 그들은 그 모습 그대로이니 그 또한 내게 기쁨이 아니겠는가.
 
인문.예술담당 이예린
(yerin@aladin.co.kr)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 - 아키라, 수우, 노조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1 
오자와 마리 지음 / 서울문화사
 
이번 달은 개인적인 일이나 업무적으로나 엄청 바빴다. 왜 '내 맘대로 좋은 책' 안식월이나 이번 달은 '내 맘대로 좋은 책' 안 써도 되는 조커가 없냐고 궁시렁거렸지만, 칼 같은 마감에 점점 "나는 냈어요~"... 나는 주변의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이번 달에는 무슨 책을 읽었고, 감동받았는지를 짜내기 시작한다.
 
바닥까지 기어가도 책이 없다. 이럴 수가. 명색이 인터넷 서점 편집자면서도, 한달 내내 그 책더미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가슴을 찌잉하게 울릴 그 한 권을 찾지 못했단 말인가..하고 좌절할 찰나 이 책이 짠 하고 나타났다. 사실, 약간은 반칙이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이미 몇 년전에 나온 만화로, 아쉽게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새롭게 애장본으로 나왔다. 종이질이 조금 좋아졌고, 번역도 약간 손을 본듯 하다. 이 작품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좋아하는 작품일수록 왜 좋은지를 이야기하기가 참 힘들다. 구구절절 사설 쓰지 않으련다.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우동국물이나 군고구마같은 만화다. 소박하면서도, 가끔씩 사정없이 찌잉하게 하는 미혼모 수우와 그녀의 씩씩한 딸 농농의 이야기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 아자!!
 
어린이담당 류화선
(yukineco@aladin.co.kr)
 
 
"벌써 겨울"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 행복한책읽기
 
만약 시간이 나서 <파이 이야기>를 읽었다면 바뀌었을 수도 있다. <파이 이야기>는 번역되기 전부터 기대기대하던 소설이다. (친구들과 도대체 그 파이는 사과파이의 파이냐 3.14...의 파이냐? 궁금해하곤 했다.) 그런데 사정이 있어 테드 창의 단편집부터 읽게 되었으니, 이 역시 수년 전부터 귀가 닳도록 명성을 들어온 터이고, 과연 수록 단편들의 명성은 하나도 헛되지 않도다! 누구나 쉽게 잡아들어지지 않는 분야의 책이 있거니와, SF도 장벽이 높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놓치기엔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또 바빴던 11월엔 유독 일본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하나같이 라이선스되기 전에 어찌어찌 구한 음반들이 저가에 발매되어 배가 아픈 경우였는데, 차라의 이 앨범도 마찬가지. 나카시마 미카의 곡을 번안한 박효신의 노래가 히트를 치는 현상도 내게는 신기할 따름인데, 좋은 것은 이렇게 섞이고 풀리고 하면서 더 좋아질 것이라는 점을 나는 믿는다.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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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2006년 11월 내맘대로 좋은 책!


 
"그들은 어떻게 서로를 얻었는가"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 소설. 이 짧은 설명구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다.(약간의 스포일러이기도 하고.;) 빅토리아 시대 하면 떠오르는 음울하면서도 폐쇄적인 분위기가 생생히 살아있으며, 스릴러 소설답게 각 부의 끝부분마다 터지는 반전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지만 충분히 충격적이다.(아니, 대단히 충격적일지도.) 그러나 역시 이 소설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은 등장인물들. 주인공이자 화자인 수와 모드는 물론, <올리버 트위스트>의 악당 페이긴의 여성판같은 석스비 부인, 음모의 실행자인 잘생기고 사악한 악당 젠틀먼, 음흉하고 말라 비틀어진 인품을 지닌 모드의 삼촌까지, 하나하나의 캐릭터 모두가 살아있으며, 그 덕분에 인물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이야기 또한 최고가 된다.
 
도둑의 딸 수는 석스비 부인 밑에서 핑거스미스(도둑의 속어)로 자란다. 미친 숙녀의 딸로 태어나 정신병원에서 자란 모드는 음란한 도서 수집에 미친 삼촌의 비서로 길러진다. 모드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한 음모가 꾸며지고, 매력적인 사기꾼 젠틀먼을 돕기 위해 수는 모드가 사는 저택 브라이어로 향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운명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작가 스스로 빚지고 있다고 밝혔지만, <올리버 트위스트>의 비열하면서도 매력적인 뒷골목 사람들의 캐릭터와 가파르고 굴곡진 주인공의 운명담, <제인 에어>의 고전적인 러브스토리와 강렬한 매력을 지닌 인물들, 또 복잡하고 노골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순진한 플롯을 좋아했다면, 이 책 역시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누군가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큰 오만인가. 슬쩍 바라본 눈빛과 한번의 다정한 손길, 결정적 순간의 침묵과 거짓말 하나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것이 인생이거늘. 이 책은 결국, 수와 모드-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얻었는가, 또 어떻게 서로를 잃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여자, 아니 세 여자의 치열한 욕망과 사랑, 배신과 증오, 연민과 이해... 갖가지 감정들이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이야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밀과 비열한 음모, 주인공들의 운명과 감정의 흐름을 한번에 뒤바꿔 버리는 강렬한 반전까지. 정말 오랜만에 고전적인 러브 스토리, 안타까운 사랑의 감정 속에 마음을 푹 담가보고 싶다면 추천해 드릴만한 멋진 작품.
 
플루토 Pluto 1
테츠카 오사무 지음, 우라사와 나오키 그림 / 서울문화사
 
우라사와 나오키의 또다른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애써 무시하려-시작하지 않으려 했다. 아니 도대체 <20세기 소년>은 어쩌고 새로운 작품이란 말인가! -_-; 그러나 언제나 좋아하는 쪽이 지기 마련. 몇 주를 망설이다 구매해 읽어보니, 이 책 너무 재밌잖아. ㅠ.ㅠ 간만에 멋진 새 만화를 읽었다. 속고 또 속아도, 도대체 언제 어떻게 끝이 날지 알 수 없어도, 계속 그려 주시기만 한다면 무조건 감사하겠음.;;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슬럼프"
음악도 책도 어느 하나 마음에 와닿지 않은, 몇 년만에 느껴보는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잠시 떨어져보기도 하고 미친듯이 챙겨보기도 했지만, 한 번 떠나간 마음은 좀처럼 다시 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내가 음악을 음악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이렇게 닫힌 내 마음을 그래도 조금 위로해 준 두 명의 가수가 있는데, 신승훈과 이승철이다.
 
신승훈 10집 - The Romanticist
신승훈 노래 / 서울음반
 
내 기준에서, 첫 곡을 듣고 '필'이 오는 경우 그 앨범은 정말 좋은 앨범이다. 신승훈의 이번 앨범의 첫 곡 'Dream Of My Life'는 개인적으로 2006년 최고의 가요며, 신승훈이 그간 발표한 곡 중 단연 Big 3에 들어가는 아주아주 괜찮은 곡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질리기는 하지만, 첫 곡의 감동이 너무 커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승철 8집 - Reflection Of Sound
이승철 노래 / 티 엔터테인먼트
 
이승철은 타이틀 곡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잘 나가다가 조금 빨리 기세가 꺾인 경우인데, 그 문제를 별개로 보면 앨범 자체는 무척 들을 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첫 곡에 꽂힌 경우인데 튀지 않는 이승철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경지에 올랐다는 느낌이다.
 
사실 이 외에도 여러 장의 앨범이 있긴 했는데 쓸 힘이 없다. 가을은 짧고, 내 슬럼프는 길기만 하다.
 
음반.DVD담당 서현
(mirinae@aladin.co.kr)
 
 
"월가의 인디애나 존스, 짐 로저스를 만나다"
이번 달 한 저자의 책을 두 권이나 읽었다. 우연히 지인의 블로그에 놀러갔다 <상품 시장에 투자하라>라는 책을 소개받았고, 그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 저자의 다른 책인 <어드벤처 캐피탈리스트>를 찾아 읽었다.
 
1. 짐 로저스의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
짐 로저스 지음, 박정태 옮김 / 굿모닝북스
 
<어드벤처 캐피탈리스트>는 경영서 에서는 보기 드문 흥미진진한 투자여행기다. (경영서가 이렇게 재미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성룡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책으로 옮겨놓은 듯 책에는 수많은 사건 사고와 험난한 위기가 가득하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눈에 갇혔고, 아프리카에서는 전쟁터를 지났으며, 사우디아리비아에서는 입국 전 보드카가 발각돼 곤장을 맞을 뻔 했다. 하지만 짐 로저스는 행운, 인맥,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며 당당히 세계 여행을 무사히 마친다. 그의 글은 현장감이 넘쳤고, 그의 모험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나는 그의 배짱에 놀랐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은 모험가 정신에 박수를 보냈다.
 
책을 통해 변화하는 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밤을 근면하게 일하는 중국인, 남의 돈으로 흥청망청 써대는 미국인, 부패와 잘못된 관행으로 혼란을 겪고 있지만 일부는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는 아프리카까지. 한 나라도 여행하기 힘든 나에게 116개국의 변화하는 모습은 투자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각 나라에 대한 배경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2. 상품시장에 투자하라
짐 로저스 지음, 박정태 옮김 / 굿모닝북스
 
많은 사람들이 상품 투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 (콩 선물에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날린 사람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를 풀고, 새로운 기회의 시장을 널리고 싶은 마음에 썼다는 <상품 시장에 투자하라>. 그의 말처럼 책은 입문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쓰여 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돈을 번다 정도의 기본 지식만 있다면 충분하다. 왜 상품이 비싸지는지 혹은 싸지는지를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단어만으로 풀어내는 그의 글은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중언부언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처음과 끝을 다 이해하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책을 읽고 난 후 그의 바람대로 상품 시장에 관한 오해를 풀었고, 새로운 기회의 시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투자에 나서기에는 아직 공부와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일단 새로운 시장에 대한 흥미로운 지식을 얻은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3. 두 권의 책을 읽으며 짐 로저스라는 인물을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인류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 어느 곳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시각 등 어느덧 나는 짐 로저스라는 인물이 좋아졌다. 재테크나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꼭 만나보기를 바란다. 아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눈을 얻게 될 것이다.
 
경영.컴퓨터담당 윤성화
(rain@aladin.co.kr)
 
 
"겨울은 다시 장편의 계절"
사조영웅전 - 전8권 세트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신조협려 - 전8권 세트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저녁 6시부터 밤이다. 이 긴 밤은 만화책 몇 권만으로 역부족이다. 연중행사로 치뤄오던 '영웅문 읽기'에 다시 들어갔다. 아직 곽정은 황용을 만나기 전이고, 훗날 2부 신조협려편의 주인공인 양과의 아버지 양강은 열심히 수작을 부리는 중이다.
 
우리들끼리 웹***님이라 칭하는 분 또한 술자리에서 이 작품을 필독서로 꼽은 바 있다. 당시 소주를 들이키던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반가웠다. 본인 스스로 품행과 성격이 곽정과 비슷하다고 주장하시는 것을 들으며, 언제 주위사람들을 떠올리며 다시 읽어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 근 일 년이 흘러, 어김없이 추운 겨울이 찾아오자 영웅문을 손에 잡았다.
 
드라마틱한 전개와 속도감, 캐릭터의 매력을 따지자면 2부 신조협려편을 꼽겠지만, 개개인의 성격과 심리, 사회상을 보여주는 데에는 1부만한 것이 없다. 사실 각 편에 대한 호불호는 팬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이는 부분이라, 무어라 명쾌하게 말하기 조심스럽다.
 
측천무후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동시에 읽은 것이 샨 사의 <측천무후>와 <바둑 두는 여자>. <측천무후>는 어쩌다 원서로 읽고 있는 중인데 역사용어가 너무 어려워 번역서를 참고하는 중이고, <바둑 두는 여자>는 역시 <영웅문>처럼 이 즈음에 읽게 되는 책이다. 용두사미와 같은 구성이 다소 없지 않지만, 그런 점에서 오히려 샨 사의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책이다.
 
이래저래, 다시 장편의 계절이 되었으니 방바닥은 따뜻하고 몸은 무거워지는구나.
외국어.만화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달팽이처럼 아주 천천히, 하지만 용감하게""
"나는 고독한 나날을 말없이 나의 주제에만 몰두하면서 보냈다. 매일 아침 어서 빨리 책상으로 달려가서 책을 펼치고 펜을 쥐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밤에는 침대에 누워서 그날 하루 배운 내용을 뿌듯하게 음미했다. 가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혹은 국립 도서관에서 먼지가 쌓인 두꺼운 책을 읽다가 내가 연구하던 신학자나 신비론자의 마음이 바로 이것이구나 싶은 초월과 외경, 경이의 순간을 잠깐씩 체험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음악회나 극장에 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나 자신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의 진보, 483쪽)
 
마음의 진보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카렌 암스트롱의 책을 읽는 시간이 내겐 그랬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으면 그때부터 두세 시간. 금세 밀려드는 졸음을 가까스로 참고 나면, 조용한 시간들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만난 책은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 '달팽이처럼 아주 천천히, 하지만 용감하게 나아가는 영혼의 여행'을 그린 책이라는 한 신문의 추천사 그대로다. 수녀원에 들어갔지만, 억압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환속해서 교사로 일하다가, 결국에는 다시 신을 받아들이고 종교학자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은 소감을 묻는 주위 사람들에게, "좀 쉽게 살면 좋잖아. 꼭 그렇게까지 죽어라 해야해?" 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뜨끔함의 다른 표현이다. 무엇이든 근성을 갖고 덤벼본 경험이 없는 나로써는 한 가지 질문에 자신을 충분하게 담그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넓히고 키워가는 삶 앞에서 움추려들 수밖에...
 
"외로운 길을 걷기는 정말 싫었지만 신에 관한 책을 쓰기로 마음을 굳혔을 때 나는 내가 다시 그 길로 나섰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싶었을 때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적도 몇 번 있었다.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그래서 즐겁다", 엘리엇은 '재의 수요일'에서 말했다. "즐거워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니까"(마음의 진보, 453쪽)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다음에 읽은 책은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구도라는 것은 '진리'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얼마나 충만하게 사는 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붓다는 충만한 인간성의 상징이고, 종교는 가장 세련된 의미의 인간학, 인문학이란점도 알게 됐다.
 
인문사회담당 김현주
(realsea@aladin.co.kr)
 
 
"11월, 문득 생각난 영화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음악"
 
브로큰 플라워
짐 자무쉬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스타맥스
 
항상 지기만 하는 '둥근 머리 소년' 찰리 브라운의 야구팀. 3루 베이스보다 밥그릇을 더 좋아하는 3루수 스누피부터 던지는 족족 장타를 맞는 투수 찰리 브라운까지, 어느 하나 구멍이 아닌 곳이 없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언제나 공을 놓치는 말많은 외야수 루시 반 펠트(Lucy Van Pelt)양이다.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땐 '내가 잡을게'라고 하지마!" 라는 찰리의 엄포 뒤에 날아온 플라이볼에 "내가 잡을게, 내가 잡을게!" 라고 자신있게 소리치다 공을 놓친 후 "세상엔 확신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아"라고 말하는 당돌한 꼬마 아가씨 루시. 또다시 평범한 외야 플라이를 놓친 어느날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가 눈이 부셔서"
 
언제나 공을 놓치기만 한 과거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렇게 빛나게 마련. 하물며 달콤한 연인과의 아름다운 과거는 어떨까? 그것은 분홍빛이고, 세상에 지친 무기력한 남자마저도 길을 나서게 한다. 마치 찰리 브라운이 그대로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것만 같은, 트레이닝복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남자 '돈'은 그렇게 길을 떠난다. 과거의 여인에게서 온 분홍빛 편지를 들고, 과거를 향해서.
 
황량한 현대 미국의 곳곳을 다니는 돈의 여정은 때론 놀라움으로, 때론 황당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은 쓸쓸할 것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빛은 이미 과거의 것이고 그 빛은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이 불확실성의 세계 속에서 확신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진리 중 하나임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뻔하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서, 짐 자무쉬와 빌 머레이는 우리를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이끈다. 높은 곳도 낮은 곳도, 밝은 곳도 어두운 곳도 아닌 어떤 곳으로. 전혀 다르지는 않지만, 낯이 익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의 그곳에서 무표정의 두 거장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유일하게 지닌 현재를, 그 모든 것이 모인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Pet Shop Boys - Concrete : In Concert At The Mermaid Theatre
팻 샵 보이즈 (Pet Shop Boys) 노래 / 이엠아이(EMI)
 
아침마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만원 버스에 오르는 당신. 새심하게 고른 '악세사리'인 아이팟에서는 오늘도 음악이 흐르고 있지만 그것은 더이상 당신의 심장을 뛰게하지 못한다. 물론 그 사실을 채 슬퍼할 겨를 조차 당신은 가지고 있지 못하고. 물론 어차피 뛰지 않는 심장, 음악 따위 3M 귀마개 대신 쓰면서 살아갈테야! 라고 속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일까? 이제 형님들이 돌아오셨는데.
 
그렇다. 형님들이 돌아오셨다. 최초의 라이브 앨범을 들고. 데뷔 싱글 'West End Girls' 부터, 가장 최근의 'Sodom and Gomorrah Show'까지. 제목만으로도 두근거리게 만드는, 당신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17 곡의 노래들. 일단 울고, 그리고 춤추자. 형들이잖아. (* CD를 듣고는 이런 글따위 쓸 수 없을 것 같아 CD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어린이담당 금정연
(stereo@aladin.co.kr)
 
 
"나의 10월 교향곡"
오! 행복한 카시페로
그라시엘라 몬테스 지음, 이종균 그림, 배상희 옮김 / 푸른숲
 
가끔 생각한다. 행복이 우리를 향해 찾아드는 것이냐, 우리가 행복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냐. 혹은 그런 생각들을 비웃기 위해 신(이나 등질의 무언가)가 행복을 아예 만들어두지 않은 것은 아니냐, 그렇다면 이건 사기가 아니냐 하는 생각들 말이다. 젖이 열개뿐인 엄마의 열한 번째 자식 카시페로. 그 출신성분만으로도 다분히 신파적인 카시페로도 필경 이런 생각을 했을 게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결단코 신파가 아니다.
 
"숙명적인 배고픔"을 타고난 강아지 카시페로는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들의 삶을 '행복'을 향해 부단히 달려간다. 그 여정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거나 비열하고, 때로는 악랄하지만 사실 카시페로는 그들을 풍자하는 일엔 관심이 없다. 그는 일단 배불리 먹는 것만이 국면과제인 것이다. '나는 강아지로소이다'하며 인간을 비웃기보다 그저 자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절박하게 걷는 이 강아지가 더욱 사랑스러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소설의 막바지, 배고픔도 모자라 추위라는 시련까지 마주한 카시페로 일당은 "가죽에 붙은 진흙처럼 달라붙은 냉혹하고, 공허하며, 기약 없는 고요함"과 마주한다. 희망이 소진된 뒤에 드러난 적막. 그것만큼 견디기 힘든 게 있을까. 그것이 너무나 두려운 강아지 일당은 목청껏 짖을 뿐이다. 이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심히 드러난 적막에 어찌 맞서야 하는지를. "슬픔이 차갑고, 어둡고, 흉측한 이불처럼 온몸을 덮을 때" 나는, 모처럼 사랑스럽게 떠올릴 만한 이야기들을 만남에 감사한다. 동화이자 우화이며 풍자인 이 작은 이야기는 그렇게 골목 뒷편에서 '멍멍'하고 짖고 있다. 2006년 10월, '나의 10월 교향곡'은 다름 아닌 강아지 갈비씨, 아니 '골격 음악가, 모자란 다리 예술가'의 갈빗대 연주곡이었다.
 
청소년.예술.종교담당 김재욱
(actually@aladin.co.kr)
 
 
"이중인격은 여자의 로망"
스르륵 스르륵. 10월. 가을이다. 하늘이 높고 바람이 솔솔 부는 날들. 스르륵 스르륵. 시도 때도 없이 혼이 빠져 나간다. 갈피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감상에 폭 빠져 있다 마주치는 상대방의 지루한 눈빛. 아,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던가요, 긁적긁적
 
변화 리더의 조건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청림출판
 
그 10월을 통째로 날리지 않고 그나마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변화 리더의 조건> 덕분이다. 11년만에 읽은 피터 드러커의 책.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책에 밑줄도 그어 보았다.
 
여전히 나는 드러커 선생의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미련하고 행동으로 옮기기에 너무 소심하다. 그러나 이 가을, 내 혼을 송두리째 뺏기지 않은 것은 순전히 선생 덕분 아니겠는가. 선생에게도, 이 책을 선물해주신 ㅂ 씨에게도 감사를.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늘 그렇듯, 혼이 빠져나갈 때면 중독된 사람마냥 연애소설을 찾게 된다. 이런저런 연애소설을 섭렵하며 10월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2년동안 보관함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아, 근데 정말 찐한 연애소설이로구나! 내가 책에 줄을 긋거나 책장 귀퉁이를 접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 책의 모든 문장에 줄을 긋고, 책장을 모두 접어 책의 두께가 두 배에 이르렀을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 기가 막힌 비유에 반한 것이 아니었다. 여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은이의 대답이 너무 멋져서였다. 특히 '사랑의 관'과 '눈이 내릴 때까지'가 좋았다.
 
20대 '소녀'들을 보며 한번쯤 고개를 끄덕거려본 적 있는, 30세 이상의, 낭만을 사랑하시는 여성들에게 권해드린다. 이중인격이야말로 여자의 로망!
편집팀장 이예린
(yerin@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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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얘기를 다듬어 쓴 이경혜입니다. 우연히 이 리뷰를 보게 되었어요. 잘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전집의 이야기들은 새롭게 쓴 것은 아닙니다. '선녀와 나무꾼'도 전해 내려오는 여러 버전의 이야기들 중에 이 줄거리(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줄거리였어요)를 택해 쓴 것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 근거가 없이 저희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거든요. 아예 패러디나 '새로 쓰는'이란 이름을 붙여 마음대로 바꾼 경우라면 또 다르지만요. 물론 세부적인 것들은 글쓴이가 새로 넣은 것들도 많지만 큰 줄거리에 있어서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거의 따른답니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줄 때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조금씩 표현도, 내용도 달라지듯이, 그 정도만 바꾸어 쓴 책이랍니다. 어쨌든 재미있게 읽어주신 게 반갑고 기뻐서 이런 댓글도 달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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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울한 일요일의 너무도 멋진 세 사람 (Gloomy Sunday)

영화를 읽어내는 법도 다양하겠지만, 이번에 나는 영화 속에서 내가 반했던 사람들에 대해 얘기를 풀어나갈까 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이 영화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 영화를 세 번째 다시 보면서 나는 더 깊이 그들에게 매혹되었다.

구도는 이를테면 삼각관계이다. 아름다운 여인 일로나가 있고, 그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 두 남자, 레스토랑의 주인 자보와 레스토랑의 연주자 안드라스가 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참 특별하다. 그들은 일로나를 독차지하려는 자신들의 갈등을 극복해내고, 삼각형의 세 꼭지점처럼 한 점도 뺄 수 없게 서로를 받쳐주는 기막힌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런 관계가 영화를 보는 동안 절로 이해가 되는 건 이 인물들의 특별한 매력 때문이다.

일로나는 그녀가 즐겨 드는 보랏빛 아이리스처럼, 빨려들 듯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숨이 멎을 것 같은 미인, 영혼을 그대로 훔쳐갈 것 같은 검고 커다란 눈, 뇌쇄적이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아름답고 풍만한 몸, 솔직한 사랑 표현, 자연스레 흘러나와 모든 행동에 배어있는 우아함..... 자보의 말대로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에, 순수한 마음, 분명히 당신을 빠져들게 하고 미치게 하는' 여자이다. 야비한 독일인 한스까지 일로나에게 매혹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스 따위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았을, 일로나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일까? 안드라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가가는 그녀의 모습은 관능적이면서도 청순하다. 그런가 하면 자보의 헌신적인 애무를 받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는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그 발 밑에 무릎 꿇고 싶게 만들 것만 같은 카리스마가 있다. 그뿐인가. 두 남자를 양팔에 안은 채 누워 있는 저 근사한 피크닉 장면에서는 두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마저 엿보인다. 죽음의 위협에 처한 애인을 구하기 위해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노래를 부르는 일로나와 마지막 복수를 끝내고,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약병을 씻고, 아들을 안는, 뒷모습만 보이는 노년의 일로나는 또한 그지없이 용기 있고, 당당하다. 이렇듯 관능과 모성과 청순함과 용기가 다 섞여 있는, 그러면서도 천진무구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여인이 일로나이다. 그런데도 천상이 아닌 이 지상에 꼭 존재할 것만 같은, 피와 살이 도는 매혹적인 일로나!

안드라스는 고독한 격정의 음악가이다. 그의 영혼은 천상의 음률처럼 격하고도, 순수하다. 그 쓸쓸하고도, 맑은 눈을 보는 순간, 일로나의 영혼이 흔들린 것은 당연했다. 죽어도 속물이 될 수 없는 남자,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결벽한 남자, 일로나를 보호하기보다는 일로나가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상처받기 쉬운 영혼의 남자. 이를테면 그는 심장을 떨리게 하는 남자이다.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어른스런 남자 자보가 있다. 안드라스가 일로나에 못지 않은 아름다운 남자인데 반해, 자보는 보잘것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 평범한 남자이다. 그러나 이 남자의 멋은 결코 안드라스에 뒤지지 않는다. 유대인 사업가인 자보는 레스토랑의 감자 값을 흥정하듯이, 안드라스의 음반 저작료도 대신 나서 멋지게 흥정해준다. 그는 모든 것을 격한 감정이 아닌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일로나가 안드라스에게 반한 것을 알자 그는, 나는 신경 쓸 거 없어, 중요한 건 당신 의지니까, 하고 말하며 일로나를 보내준다.

혼자 남아 강물을 내려다보는 자보, 눈이 푹 들어가고, 코가 우뚝한 남자의 고독보다 훨씬 더 마음을 울리는 온화하고 선량한 남자의 쓸쓸한 모습. 또한 삶을 바라보는 여유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의 위트는 따뜻하면서도 날카롭다. 자살을 시도한 한스에게는, 실연이 생의 전부는 아니야. 삶에는 우리 식당의 맛있는 비프롤도 있지, 라고 말해주지만, 재미난 이야기를 하라는 독일군 장교 앞에서는 '의안이 실제 눈보다 다정한 수용소 교관'의 이야기를 목숨을 걸고 해낸다. 자보에게는 세상의 아름답고 순수한 남자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자신의 자아까지 내던지며 상대를 사랑하는 헌신과 동시에 자신의 자아가 완전히 짓밟혀도 다시 툭툭 털며 일어나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멋'이라는 말이 정말 어울리는 멋진 남자. 주인공 세 사람 모두에게 흠뻑 도취됐지만 자보에게 나는 조금 더 이끌린다.

하지만 일로나가 아니라면, 자보나 안드라스도 세상에 흔히 널린 연적으로만 머물렀을 것이고, 안드라스가 아니라면, 아무리 자보라도 연적에게 형제애까지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벽한 안드라스야 말할 것도 없다.

이 멋진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두 사람끼리만 서로 순정을 바치라는 지상의 계율이 오히려 빈약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신은 이렇게 멋진 사람들끼리 만나는 경우를 자주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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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고를 치는 만큼 딸들은 자란다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혼자 사는 '늙은' 어머니가 '늙은' 아저씨와 재혼을 한다고 해도 놀라 나동그라질 우리 사회에서 스무 살이나 아래, 그것도 '여자'를 애인이랍시고 딸들에게 소개하는 이 영화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영화의 겉 줄거리는, 그런 충격적인 사건 앞에 당황한 세 딸들이 그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공작을 벌이다 결국은 '엄마'를 이해하고 그 사랑을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동성애를 옹호하기 위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이 영화에서 동성애란 이를테면,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세 딸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나온 시험 문제 같은 것이다. '오, 자유로운 딸들이여, 너희 엄마가 이래도 너희는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하고 묻는 질문.

실제로 이 영화를 공동으로 만든 이네스 파리스와 다니엘라 페허만이라는 두 여성 감독의 고민의 지점은 바로 '모던하고 지적인 부모 아래에서 자란 자녀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한다. 부모의 영향 아래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게 큰 자녀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오히려 혼란을 더 겪을 수 있다는 점에 두 감독은 주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규율과 전통의 준수 아래 억압적이고 순종적으로 자란' 대다수 사람들의 '높은 편견' 에 대해 단계를 밟아 설명해주는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산수 문제도 다 풀지 못한 상태에서 고등 수학 문제를 받은 듯한 혼돈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영화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유쾌하다. 이토록 심각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지극히 불쾌할 수 있는 소재가 톡톡 튀는 탁구공처럼 발랄할 수 있는 건 감독과 배우들의 역량일까, 정열적인 스페인 사회의 저력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의 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얘기라 그 자체가 환상적으로 보이는 까닭일까?

각설하고, 나는 어쨌든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유쾌하고 행복했으며, 가슴속이 탁 트이는 통쾌함까지 맛보았다. 거기다 이 영화에는 나를 사로잡은 인물들이 우글거렸다. 우선, 저런 여자라면 나도 반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하는, 엄마의 연인 앨리스카(영화를 본 많은 여성들이 입을 모아 그녀를 매력적이라고 칭송했다.)가 있다. 그녀는 진실하면서도, 감성이 넘치며, 신비로운데, 그러면서도 여자들이 의젓한 남성에게 품는 묘한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자기 선택에 당당하며, 딸들보다 더 자유롭고, 용감한 어머니 소피아가 있다. 소피아가 딸은 도와주지 않고, 애인에게만 돈을 쏟아 부을 때, '한국의 어머니이며 딸'인 나는 내심 그녀를 얄미워했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면서도 진실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되자 단호하게 애인을 뿌리치는 그 쓰라린 자존심 앞에는 다시금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자존심이란 때론 열등감의 외투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지극히 초라한 자존심!),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는 그녀의 그것에는 '노욕(老慾)'이 스며들 틈이 없어 아름답고, 싱싱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매력이 나와는 다른 이질감에 매혹 당하는 것이었다면, 어딘가 비슷한 동질감에서 내가 반한 인물로 아버지(소피아의 전 남편)와 둘째 딸인 엘비라가 있다. 책을 사람보다 더 좋아하고, 세상의 모든 현상을 책에서 얻은 잣대로 해석하는 그 아버지는 그 탓에 정열적인 아내와도 헤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아내의 그 놀라운 연애에 대해서도 지극히 쉽게 받아들인다. '아빠는 놀라지도 않냐?'는 딸의 반박에 그는 그리스의 레즈비언 시인이었던 사포의 시를 읽어준다. 사포를 통해 아내의 연애를 이해하는 그 천진무구한 모습, 시를 읽고 있는 아버지의 어깨에 딸이 얼굴을 묻는 그 장면이 나는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면서도 다 이해하는 그 순진하고도 복잡한 아버지에 대한, 딸의 연민과 찬탄을 동시에 나타내는 그 장면.

둘째 딸 엘비라는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섞어서 만들어 놓은 인물 같다. 아버지처럼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아버지처럼 사람보다 책을 더 사랑하지는 못하는, 어쩔 수 없이 뜨거운 어머니의 피를 함께 가진 딸. 피가 뜨거운 어머니는 그래서 행복하고, 피가 차분한 아버지는 책과 함께 있어 또한 평화롭지만 두 사람의 합작품인 엘비라는 온통 뒤죽박죽인 삶을 사는 것이다.

책을 통한 간접경험은 많아서 머릿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그 탓에 모든 것을 미리 재단해버리고, 실전에서는 늘 초를 치고 마는 엘비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마음과는 달리 일부러 더 삐딱하게 굴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해지고 싶으면서도 그 상처를 유아적으로 두려워하고.... 그래서 결국 인생이, 사랑이 늘 꼬이고 마는, 스스로 만든 '콤플렉스의 감옥' 안에 갇힌 채 불행을 자초하는 한심한 엘비라, 자연스럽게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혼자서 부풀려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다가온 사랑을 악착같이 물리치려고 하는 우스꽝스런 엘비라..... '내가 또 삐딱선을 타면 말해줘요.'라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부탁까지 해야 하는 엘비라..... 이런 엘비라를 보며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여자들이 나만은 아니리라.

그래서 엘비라가 행복해지는 마무리에 우리는 함께 쾌재를 부르게 된다. 엄마가 여자를 좋아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아니, 엄마가 여자를 좋아하는 정도의 사고를 쳐야 우리도 비로소 그만큼 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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