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94
박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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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스승님께서 박형준 새 시집을 읽어보시고 "1부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시 몇 편 빼고는 건질 것이 없더라"고, 그래도 서정적 표현을 배울 수 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는 박형준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그만하면 중견의 자리에 들어설 법하므로, 1부에 실린 시들을 읽고 마음에 들면 그 나머지도 마저 읽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집을 펴 들었다. 그러나 이건 왠 일인가! 박형준이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박형준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미당만이 남아있다. 

  가장 나를 실망시킨 것은 그가 미당의 한 마디를 자신의 시 속에서 표절해 놓고 있음이었다. 이번 시집에 실린 「가을 이불」이라는 시의 마지막 4연은 명백한 표절이다. "고향 집 / 늙은 어머니가 꾸미는 / 가을 이불 한 채 찬란하다" 이것을 두고 나는 무슨 근거로 표절이라 생각하는가? 내가 소장한 『서정주 시집』(범우사, 1997)의 앞머리에는 박재삼이 직접 쓴 서정주론인 "미당 선생의 시"라는 짤막한 발문이 들어있다. 그 중 한 대목. "약 30년 전, 내가 현대문학사(現代文學社)의 기자로 있을 때, 미당 선생은 시고료(詩稿料) 몇 푼을 탔다. 눈짓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선술집에 갔는데, 마침 그 집은 이불을 꾸미고 있었다. 늦가을이었다. 미당 선생은 대뜸 한다는 말씀이, "아주머니 가을 이불 꾸미는 걸 보니까 내 마음이 찬란해지는구먼" 했다. 그냥 하시는 말씀인데, 내가 듣기로는 '찬란하다'는 것이 정통으로 들어맞는 시인적 발성(發聲)이라는 것이었다." (14쪽) 

  남의 생각이나 표현은 그 발표의 형태를 떠나서 나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내 글 속에 빌려올 경우에는 반드시 빌려온 경위를 밝혀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빌리는 게 아니라 훔치는 것이 된다. 비록 가을 이불이 찬란하다는 표현 자체가 미당과 박재삼의 술자리에서 오고 간 사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미당의 것이다. 그런데 박형준은 자신의 시에서 그것의 저작권이 미당에게 있음을 숨기고 있다. 여기서 나는 내 마음 속에서 박형준이 진정으로 시인의 자질을 가진 것인지에 관하여 솟구쳐오르는 의구심마저 지우기 차마 어려웠음을 밝혀둔다. 이 시집의 또 다른 시 「아침 달 뜨면」에서는 미당의 시 한 구절을 차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워낙 유명한 구절이라 차용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명한 구절에는 차용 사실을 밝히면서도, 유명하지 않다고 숨기는 것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니, 그쯤은 눈 감아준다 치자.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해서라도 박형준은 자신의 시를 살려냈는가? 오히려 나는 내 스승님의 생각과 달리 1부에서조차도 단 한 편의 변변한 시를 도저히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세 번째 시집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사랑」이라든지, 「저곳」에서 보여주었던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어법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오히려 그 시편들이 미당에 가까운 박형준이었고, 박형준이 된 미당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박형준도 없으며 미당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해서, 박형준이 없어져서 미당이 없다. 그는 앞으로 벼랑 끝에 서서 시의 생사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심사로 시를 써야만 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시도 없고 그도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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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2011-08-26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당의 영향이 눈에 띄는 부분이 확실히 여기저기 많기는 합니다. 저는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겠으나, 박형준이 서정시의 명맥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박형준의 가치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절체절명'의 시는 말씀하신 시들보다, 첫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에 더 가깝겠습니다. 많은 시인들의 시가 뒤로 갈수록 더 느슨해지지만 그만큼 생이 스며드는 것을 보이지요. 시인들은 세월이 갈수록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로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때문에 직접 살아가는, 목숨이 붙어 있는 시를 쓰려는 것이겠고요. 감각에는 점점 생활이 붙어가고, 시인 특유의 회의는 변화를 맞습니다. 물론 그것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또 무작정 마음에 안들어 할 것도 아니지요. 아마도 독자들이 시인 기형도의 첫시집을 낸 후의 요절에 품는 묘한 감정이 그것 아니겠습니까.

담연 2011-08-27 14:13   좋아요 0 | URL
먼저 박형준의 최근 시가 서정시의 명맥에 다가간다는 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지요. 시라는 건 이것이다 하는 순간 이미 이것이 아닌 게 되어버리고, 저것이라 하면 벌써 저게 아닌 것이죠. 왜냐하면 시란 언제나 스스로를 새롭게 바꿔야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정시가 무엇이라 말할 수도 없는데, 어느 한 시인의 시가 서정시에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평을 들으면 그건 이미 존재해오던 관습에 물이 들고 말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의미에서 박형준의 최근 시는 삶이 스며든 시라기 보다는 '씌어진 시'에 더 가깝다고 해야만 정확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시인의 회의와 느슨함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회의를 통한 변화는 더 나은 방향을 가리킬 때에야 비로소 긍정될 수 있는 거지요. 마음에 들고 안 드는 가능성은 늘 열어 두어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곤란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가치판단을 해야 하고, 시인이 시를 살리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명과 용서가 불가합니다.

나목 2011-08-28 02:12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십니다. 시인은 시로 말하는 존재고, 그 시는 평가에 항상 열려있지요. 저는 박형준 시의 감각이 화려한 은유법에서 점점 벗어나서 새로운 방향으로 정제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호적이라 그렇게 말했지만, 그 반대의 의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앞부분 '아버지'에 관련한 시 몇편은 저또한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고요.사실은 이 호오에 대한 논쟁은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할게 아니라, 시 한편 한편을 살피면서 '평론'을 펼쳐야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능력이 안되기에 생략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조금 더 논쟁적일 수도 있는데, 저는 어떤 장르도 '명맥'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정전 등을 통한, 일종의 기대지평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시를 서정시로 볼 수 있는 데에는 평자들이 '서정시'로 보고 있는 일군의 작가와 시들이 있기 때문이지, 완전한 무에서 매번 서정시의 정신에 대한 논쟁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명맥에 다가갔다는 말 자체에 굳이 거부반응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답습'만이 시를 쓰는 대안이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시인이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는 아니고 보면, 생활이 스몄든 아니든 간에 시또한 단련 혹은 학습을 통해 "쓰여가는 것"일 테니, 한편의 시집에 시인의 서툰 행보들이 절창과 함께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박형준은 미당 등을 통해서 그 '서정시'라는 것을 터득해가면서도 동시에 자기 세계로 그것을 번역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저는 이 시집 몇 편의 시에서는 그러한 조짐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시가 그랬는지는 이야기가 너무 격렬해질까봐 생략합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거침없이 확대될 다음 시집이 기다려지는 감도 있습니다.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이 시집이 너무나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좋은 점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서, 님의 실망에 동감하는 바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담연 2011-08-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작품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님께서 재미있게 읽으셨던 시 몇 편만 제게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꼽아주신 작품들에 관한 제 자신의 세밀한 읽기를 본문에 추가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시면.. 2011-09-12 02:0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생갈날 때마다 울었다"라는 시에 대해서 세밀한 읽기를 해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그 시 좋게 읽었거든요.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평시에 시를 읽지도 않구요)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는 시를 읽고서도 사실 별 감흥이 없었는데, 그 시를 해설한 글을 읽고서야 그게 제 얘기구나 란 생각에 그만 반하고 말았는데요. 그래서 이 시를 님이 말쓰하시는 세밀하게 읽기를 하면 또 무엇이 나올까? 란 순수한 호기심에 부탁 드리는 겁니다.(당연히 비판적인 글을 기대하고 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담연 2011-09-1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절이라는 수치를 저지른 자의 시를 왜 굳이 자꾸 읽으려고들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 심각한 문제가 그 자체로 논란을 일으키지 못하는 암담한 문학계도 실망스럽니다. 게다가 어떤 시에 대해 쓴 해설을 읽고 나서야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 역시 그 시를 쓴 자에겐 그렇게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 좋은 시는 아무런 해설도 필요치 않기 때문이지요. 그 해설을 쓴 자의 이름도 무척이나 궁금하군요. 하지만 님께서 앞으로 자주 시를 읽으시겠다고 저와 약속을 해주신다면, 기꺼이 제 시간을 쪼개서라도 언급한 시를 놓고 뜯어 읽겠습니다.

음... 2011-09-12 12: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해설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은 아마도 맞는 말씀같습니다만, 저처럼 시를 해석(혹은 감상이든)할 능력이 전혀 안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해설이 무용하지 않다고 봅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께서도 님과 비슷한 말씀을 하셨으나, 저는 오히려 해설 덕분에 그정도라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즉, 님 말씀이 옳기는하나, 수준이 너무 낮은 사람입장에서는 예외가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말씀였습니다. 그렇지 않고, 저같은 사람이 혼자서 시를 이해하려하면 결국엔 만년 바둑 7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과 다를바가 없다고 봅니다.(물론 재미야 7급 때가 최고라 합니다만..)

이런 제 현실에서 시를 자주 읽는다고 약속드린다면 거짓에 불과 한거 같네요.ㅜㅜ

그렇다면 혹시 괜찮은 시집을 한 권 추천이라도 해주셨으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단, 1. 김경주 시인처럼 보통 사람에게 난해한 것은 삼가주셨으면... 2. 1980년도 이후의 출판 시집였으면 좋겠습니다. 3. 보통 사람도 한글맛을 느낄 수 있는 시집였으면 좋겠습니다.(특히 소리내어 읽는 맛!)



p.s. 로쟈의 저공비행인가요? 거기 들어갔다가 우연히 신형철씨의 해설을 보고 이 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담연 2011-09-14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심자를 위한 시집 : 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 김기택 <사무원>, 문태준 <가재미>. 중급자를 위한 시집 : 하종오 <무언가 찾아올 적엔>, 이윤학 <꽃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김선우 <도화 아래 잠들다>. 함민복 <말랑말랑한 힘>. 고수를 위한 시집 : 정진규 <사물들의 큰언니>, 이성복 <그 여름의 끝>,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황지우 <어느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참고로 시 자체가 좋은 건지 신형철 해설이 좋은 건지 구별이 필요하죠.

음.. 2011-09-13 12:0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럼 믿고 초중급자 시집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