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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애니메이션을 훌쩍 나이를 먹은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소원 하나는 이뤄졌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고 싶어요. 이게 저의 두번째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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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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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의 강의 영상을 빠짐없이 훑어보던 시절이 있었다. 이미 설민석을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 이 책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나는 그랬었다. 그래도 주변에 수험을 준비 중인 학생이 있다면 한 권 선물해도 좋을 책. 알기 좋고 이해가 쉽다. 설민석의 강의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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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발레리 시선 - 바람이 일어난다! 살아야겠다!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2
폴 발레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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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런 판본으로 소장할 가치가 있는 시집이었느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런 책에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폴 발레리의 개인적인 팬이 되지 못한 내가 잘못했다. 시를 읽기엔 정신이 없고 감성은 소위 '힙'한 무언가에 얹혀가는 느낌이다. 사실 돈이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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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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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오해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내가 득도를 논하기엔 식견이 매우 부족한, 속세의 보통 사람인 탓일 것이다. 흔히 보았기 때문에, 혹은 과거에 이러이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턴도 '반드시' 이럴 것이라는 오해를 했다가 '아! 내가 잘못 알았구나!'라는 자기반성과 오류수정의 과정을 나는 빈번하게 반복하고 있다. 9년을 연애하고 이제는 나와 같은 주민등록등본을 떼는 사이가 된 한 남자의 행동이나 발언에 이따금 흠칫 놀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익숙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이런 것을 인지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라고 부른단다.

편혜영이 나에게 그런 소설가다. 나는 이 책을 속아서 샀다. 다 읽고 난 후에야 나는 속았음을 깨달았다. 아.
나는 부족한 식견으로 이 소설가에 대해 그토록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구나.

*

<아오이 가든>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담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에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지만 유달리 슬래셔, 고어에 약하다. 전혀 그런 장르가 아닌 헐리웃 액션 영화에서 살갗이 베이는 장면이 가볍게만 다뤄져도 똑바로 보지를 못해 눈을 돌려버린다. 편혜영을 읽기 전까지 나는 나의 이 상처에 대한 이입과 두려움이 단지 눈에 보이는 영상에만 한정된다고 생각했었다.
<아오이 가든>을 읽고 며칠동안 잠을 못 잤었다. 내가 좀비들이 돌아다니는 거리에 내던져진 것 같았고, 더러운 토끼 우리 안에 갇혀버린 것 같아 수시로 살갗이 근질 거린 탓이다. 그때부터 편견이 강하게 생겼다. 아,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이만한 그로테스크를 구사하는 작가가 등장했구나. 이렇게 텍스트만으로도 살갗이 도려지는 느낌, 이렇게 숨이 막힐 것 같은 밀도감을 주도면밀하게 써나가는 작가가 나타났구나. 구구절절 잡담이 너무 길지만 간단히 정리하자면 <곡성>이 이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곡성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편혜영의 문장들을 떠올렸다.
이제 <홀>을 세 번쯤 읽고 난 후에야 나는 이런 나를 반성한다. 나는 이제까지 편혜영 소설의 날선 문장들에 갇혀 그 늪 같은 서사를 미처 보지 못 했다. <홀>을 읽고 난 후에야 나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아오이 가든이 얼마나 수많은 인간사의 고통과 모순을 은유하고 있는 절묘한 서사인지를, 외려 최근작인 <홀>을 읽고 돌아볼 수 있었다.

*

<홀>은 불편한 소설이다. 이제까지 읽은 편혜영의 소설들은 문장이 (너무나 그로테스크 해서) 불편하다는 느낌이었는데 <홀>은 서사가 불편했다. 기억에 아마 <몬순> 때부터 이 서사의 불편함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외려 <홀>은 읽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문장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혀 한 번씩 손에서 내려놓고 숨을 돌려야만 했던 전작들에 비해 <홀>은 술술 잘도 넘어간다.
게다가 절반을 지나 클라이막스 직전까지도 이 '불편함'은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주인공인 오기에게 이입해 장모와 아내를 가엾게 여기면서도 그 두 여성이 어째 퍽 불편하고 껄끄럽게 느껴진다. 특히나 장모의 행동은 기행의 영역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오기는 저렇게 사고로 다쳐서 자리보전하고 누워있는데 저래도 되는 것인지 불편함을 억누를 길이 없다. 독자마저도 주인공인 오기의 시점으로 주변 상황을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절정을 지나 책의 말미에 다다렀을 때 나는 오랜만에 뒷통수를 시큰하게 후려맞는 기분을 느꼈다. 속았구나. 그것도 아주 제대로 속았구나. 오기한테 속았고, 장모한테 속았고, 무엇보다 작가한테 속았다. 불편함이 오기의 주변이 아닌 오기 자신에게로 향하던 그 시점, 그 대목의 선득함을 무엇에 비견할 수 있을까.
인정한다. 나는 속았다. 속아서 이 책을 샀고, 마지막 직전까지 계속 속고 있었다. 된통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나는 알게 됐다. 와.
편혜영은 정말로 대단한 작가다.



*

얼마 전, 비밀독서단 작가특집편에 나온 윤태호 만화가가 이 책을 추천했다. 아마 얼핏 훑어본 <홀>의 리뷰가 이렇게나 많은 것도 그 덕이 아닐까 싶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묻어두겠지만, 나는 윤태호가 느낀 그 감정이 아마 <홀>의 주인공인 오기의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오기의 앞선 태도들이 전부 '변명'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이 깊은 구멍, 즉 홀 속에 던져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편혜영의 전작들이 버거웠던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다. 속아도 기분 좋은 그런 책이다. 잘 썼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재미있다. 소설은 재미있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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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벌써 세 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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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별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지음, 최상희 옮김 / 사계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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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예뻐야한다. 다른 책이라면 이런 말을 않겠지만 감화를 주는 서사,보다도 예쁜 게 좋다. 동화책을 달리 그림책이라 부르겠는가. 동화는 절반의 이야기, 그리고 절반의 그림이 함께 채워가는 것이라 예쁘면 예쁠수록 좋다. 그러므로 나는 이 <여우와 별>에 대해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이 동화책은 예쁘다. 고로 좋은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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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이 책을 표지 때문에 샀다. 역시 예뻐서 그랬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나처럼 기왕 책을 사는 김에 사은품을 받기 위해 5만원 하한선을 채우던 중에 딱 4천원이 모자라서 '적당한 책이 없을까'하던 차에 이 책이 단박에 눈에 띄었던 것이다. (사족이지만 예쁜 표지는 이래서 중요하다.) 책을 받은 후에야 이 책이 동화였음을 알았다. 표지는 내가 급히 스크롤을 내리다 충동적으로 질렀던 그 순간보다도 직접 보았을 때 훨씬 더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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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어느 숲에 여우가 살고 있고, 여우가 사라진 별을 그리워하며 밤숲을 헤매는 것이 전부다. 이것 또한 동화로서 얼마나 좋은 서사인가. 가뜩이나 복잡한 생각을 더욱 더 하기 싫은 (개인적으로 참 큰일이다, 생각을 좀 하고 살아야 하는데) 내 정돈되지 못한 인생에 쉼표 하나를 찍어주는 책이었다. "자, 이제는 이쯤에서 한 템포 쉬자" 라는 것처럼 쿡 찍어준 쉼표의 타이밍도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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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차 말하지만, 이 책은 예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고도 남는 책이다. 다시 말한다. 이 책은 예쁘다. 직접 보면 더 예쁘다. 판형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책장에 한 권쯤 덩그러니 꽂혀 있어도 전혀 무리를 주지 않는 두께다. 집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대화가 사라지고 어색해진 순간 "이 동화 참 예쁘지 않아?" 하면서 한 번쯤 은근슬쩍 펼쳐보이기에 그만인 책이란 소리다. 적어도 TV를 틀어놓고 이미 두세 번은 본 예능 재방을 한 마디 말도 없이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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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말하지만 역시 이 책은 예쁘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예쁜 책이 분명히 더 있을 테지만 (아마도 수없이 많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내게 준 그 예쁜 감동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 책이 덜 예뻐지는 것도 아니다. 표지에 속아서 한 번쯤은 사도 좋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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