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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 여기는 굿바이 동물원입니다.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들었던 이야기는 바로 그랬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쓰며 사는 삶을 꿈꿔왔고, 그 때문에 별 망설임도 없이 문예창작과에 지원해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설레고 들떠있었지만 그만큼 모르는 것도 참 많았다.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의 본질조차 잘 몰랐던 나는 그때는 너무 어렸고, 실제 누군가가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거나 답을 뭉뚱그리기 일쑤였을 것이다.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니?

처음, 제대로 된 소설작법 수업을 시작했을 때 교수님은 수업 전에 우리에게 그렇게 물었다. 여러 대답이 나왔다. 인물, 사건,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전형적인 고교 입시의 폐해다운) 답을 늘어놓는 학우가 있는가 하면 그저 단순히 이야기라고 답하는 학우도 있었다. 내가 어떤 답을 했었는지에 대해선 지금은 벌써 다 까먹었지만 교수님의 말만큼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모든 학우들의 답을 꼼꼼하게 경청한 교수님은 칠판에 이렇게 적었었다.

 

소설은 사람이다.

소설은 인생이다.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다
. 굿바이 동물원에 있는 것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듯.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동물원은 그 자리에 남아 있다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 p.129 


굿바이 동물원의 배경은 제목 그대로 동물원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동물이 없다. 동물원에 전시되어 밥을 먹고, 무심한 얼굴로 우리 안을 노닐며, 이따금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가슴을 치거나 사람들이 내민 음식들을 받아 먹기도 하지만 그 모두는 동물이 아니다. 동물원은 동물원이다. 하지만 동물이 없다. 동물이 있지만 동물이 없기도 하다.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간단한 얘기다. 굿바이 동물원의 동물들, 그 속에 있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동물이며, 동물이 곧 사람인 곳. 사람이 전시되어 동물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곳. 굿바이 동물원은 그런 곳이다.


굿바이 동물원동물들에겐 사연도 참 많다. 주된 배경이 되는 고릴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고릴라들에겐, 아니, 고릴라를 연기하는 사람들의 사연은 참으로 구구절절하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아 마늘까기와 인형눈알꿰기를 전전하던 주인공을 비롯하여,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젊은 여자 고릴라 앤, 살기 위해 동료들을 저격하다 본인 역시 저격을 당해 쫓겨난 조풍년, 그리고 이념이 아닌 삶에 패배한 늙은 간첩 만딩고.

고릴라들은 각각의 사연을 가면 속에 감추고, 추가 수당을 위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모형에 올라 가슴을 두드리고 버튼을 누르거나 바나나를 던지고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른다. 그것이 그들에겐 이다. 이것 또한 (고릴라지만) ‘이고, 이곳 또한 (동물원이지만) 직장이기에 그들은 팀을 꾸려 서로를 돕기도 하고 남의 팀 이야기로 입방아를 찧어대며, 퇴근 후엔 남들처럼 소주 한 잔 나누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참 우습고 재미있다. 서로를 과장이니 대리니 부르고 있는 고릴라들은 우스운데 슬프다. 소위 말해, 웃프다. 그건 그 동물원 창살 속에 감춰져 있는 삶 또한 그들이 살아온 삶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고릴라가 되었고, ‘고릴라의 인생을 연기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기다. ‘고릴라인데도 고릴라의 삶이 아니다. 우습게도, 마지막 돌파구며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굿바이 동물원역시도 그들이 살아온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에 있는 것 또한 삶이고 인생이다. 내가 어떤 얼굴을 쓰고, 어떤 것을 연기하고 있건 간에.

 

사람은 사람이다. 고릴라는 고릴라다.

사람은 고릴라가 아니다.

그런데, 동물원은 동물원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의 전시장이다. 우리가 살아왔던 삶이,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그 모든 삶이 굿바이 동물원에 존재한다. 그 점에 나는 때때로 마음이 무거웠다. 책을 읽는동안, 내도록.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 p.214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 <뉴욕 탄광>에는 비오는 날마다 동물원을 찾아가는 남자가 나온다. 남자가 비오는 날에 캔맥주를 들고 동물원에 가는 이유는 고릴라를 보기 위해서다. 폭우 때문에 짜증이 난 고릴라는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고 고함을 치고, ‘인간은 그것을 관람한다. 얼마 전 후속편이 나오며 큰 호평을 받았던 영화 <혹성탈출> 시리즈는 인간에게 반기를 들고, 역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된 침팬지들이 가득한 미래의 지구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당시에도, 또 팀 버튼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던 2000년대 초반에도, 또 후속편이 개봉한 최근에도 공통적인 평을 받아왔다. 두려움, 공포. 언젠가 인간이 침팬지에게, 고릴라에게, 혹은 다른 동물들에게 지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분명한 공포. 인간은 태초부터 약했으므로 언제나 다른 종을 경계해야했고, 절대적인 우위를 가르고 인간만을 특별하게 만들어야 하는 수단들을 언제나 강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동물원이 탄생했다. 초기의 동물원은 현대판 콜로세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수많은 노력들에 의해 동물원이 더 많은 종의 보존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 하고 있지만, 처음 동물원은 인간을 위한오락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창살 속의 동물들을 보며 사람들은 즐거워했고, 한편으로는 갇혀있는동물들에게 안도했다. 갇혀있는 맹수들은 인간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고, 이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서열을 나누는 절대적인 상징이 되었다. 동물원이 존재하는 한,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며, 인간에겐 인간의 법도가 있고 그리하여 인간은 특별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

고릴라는 고릴라고, 인간도 인간이며, 고릴라도 동물이고 인간도 동물이다.

우리의 인생이 동물원과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나라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아니?

/ p.183

 

때때로 우리는 동물의 삶을 부러워한다. 아무 걱정 없이 때가 되면 먹고, 때가 되면 자고, 필요할 때만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는 동물들이 우린 이제 때때로 부럽다. 우리는 삶을 즐기기엔 너무나 복잡하다. 떠난 만딩고의 아프리카가 대단한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는 단순한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먹고, 자고, 쉬다가, 일하고, 또 먹고, 잔다. 따지고 보면, 그건 인간이 인간 이전에 동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래야하는 삶이다. 당연히 그래야하는 삶을 우리는 복잡하고 어렵게 산다. 너무 많은 문제, 너무 많은 고민과 갈등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순한삶은 그야말로 가장 큰 소망이다. 이걸 두고 현실도피라고 하던가. 전기도 안 통하고 전화도 안 터지는 곳에서 한 며칠만 푹 잠만 자고 쉬었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늘어놓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그 단순한 삶이 우리에겐 너무 어렵다. 돈을 벌어 더 큰 집을 사면, 연봉이 오르면 삶의 질은 나아지겠지만 행복하진 않다. 우린 좀 더 넓은 우리로 옮기고, 좀 더 많은 양의 먹이를 먹게 되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조잡한 빌딩 세트에 올라 가슴을 두드리고, 사람들이 던진 바나나에도 화를 참고, 얄미워 죽겠는 상사에게도 굽신거려야 한다. 퇴근 후에 소주 한 잔 하면서 직장 동료 욕을 하고, 몇 번씩 이놈의 회사 때려치운다고 말을 해대도 집으로 돌아가면 거기에선 또 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처녀 때보다 피부가 많이 상한 아내의 얼굴이, 지쳐 잠든 아이의 얼굴이, 또 책장에 꽂혀있는 온갖 수험서가, 오랜만에 걸려온 부모님의 전화나 고향에서 보내온 김치 한 단지가 또 한 번 우리를 그 자리에 붙들어 앉힌다. 다음 날이면 또 일어나 출근을 하고, 또 빌딩에 올라 가슴을 치고, 일하고, 야근하며, 몇 푼 안 되는 수당 하나에 목숨을 걸고, 퇴근 후엔 술 한 잔 마시면서 또 몇 번이나 그만둔다고 하고, 또 돌아오면 그 마음을 참아낸다.

 

우리는 그렇게 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우리가, 이 삶이 우리에겐 커다란 동물원이다. 그래서 굿바이 동물원은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가 미처 헤어지지 못한, 우리의 인생이다.

 

사람이면 어떻고 고릴라면 어떤가. 사람이라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니다

고릴라가 불행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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