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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우리는 모두 악(惡)이다
- 돈 위슬로 《개의 힘》-
사람은 누구나 악(惡)을 꿈꾼다. 악은 누구에게나, 또 어디에서나 도사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있나 싶을 정도의 흉악한 범죄를 신문에서 보게 될 때,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명망 높고 존경 받는 사람들이 어느 날 임신한 아내를 죽음으로 내몰고, 자식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일삼거나 혹은 알고 보니 뒷세계와 손을 잡고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는 사실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한다. 사람의 마음이 본래 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그 ‘악’이라는 것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굳이 강력범죄까지 가지 않아도 가볍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 아닐까. 잔소리 많은 직장상사가 아끼는 차를 볼 때마다 못으로 긁어주고 싶고, 걸핏하면 애인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의 연애가 잘 안 풀렸으면 좋겠고, 시험 기간이 닥칠 때마다 교무실에서 시험지를 한 번 훔쳐볼까 하고 상상하는 그런 마음. 누구나 ‘악’은 있고, 더러는 그 ‘악’에 매력을 느끼며, ‘악’에 기어이 굴복하기도 한다. 악은 언제나 교묘하게 우리 마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뒤흔든다. 악, 우리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악(惡).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악’을 두고 성경에서는, 또 돈 위슬로는 이렇게 명명했다.
‘개의 힘’.
「악은 추진력이 있어서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었다. 물리학의 법칙이다. 잠들어 있는 동안은 계속 잠들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뭔가가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 2권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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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의 주된 주제는 ‘멕시코 마약 전쟁’이다. 이야기는 1975년부터 시작되어 2003년까지 28년간을 다루고 있다. 결코 짧다고만은 볼 수 없는 이 긴 시기는 멕시코와 미국, 또 주변 나라들간의 복잡한 정세가 가히 정점에 올랐던 때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크게 두 맥락으로 나뉜다. 베트남 전쟁을 겪고 멕시코에 파견된 마약단속원 아트 캘러, 한때는 그의 친구였던 아단 바레라와 삼촌인 ‘티오’ 미겔 앙헬 바레라 등으로 대표되는 바레라 가문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멕시코. 그리고 아일랜드 로드에서 자라나 이탈리아계 치미노 조직에 다리 한쪽을 담그게 되는 아일랜드 저격수 션 칼란, 그 주변에 있는 동료들과 그를 끊임없이 종용하는 살 스카키 등으로 소란스러운 뉴욕 등 미국 등지.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나, 같은 사건과 같은 인연들을 공유하며 28년간 벌어진 멕시코 마약 전쟁을 미국과 멕시코의 시점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트는 바레라와 대립하고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마약의 재료들이 어떻게 재배되고 또 어떤 루트로 국경을 넘는지에 대해서 보여주고, 칼란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임무들을 통해 그 마약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난 그 카드로 게임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 - 1권 p.58
사실 <개의 힘>은 그다지 새로운 스타일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이런 류의, 그러니까 말하자면 암흑가에 정치가 끼어들고 암투와 갖은 모략들이 판치며 글을 읽는 내내 뇌 한쪽에서는 동류의 영화를 통해 답습되어 있는 총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좀 더 눈치가 빠르면 엔딩까지도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범죄 소설을 너무나 많이 읽어왔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무엇이 있었고, 그 두 나라가 어떤 것을 교환했으며 그 결과로 어떤 것을 두 나라가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 사건을 전부 조사하지 않더라도 예측이 가능하다. 두 나라간의 거대한 마약 시장을 통해 오간 것은 돈과 무기 뿐만이 아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냉전의 시대였고, 미국은 자신들과 국경이 딱 맞붙은 멕시코에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이념이 끼어드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고 (쉽게 말해 소련의 ‘끄나풀’이 발밑에 놓이는 게 싫었던 거다.) 그를 막기 위해 미국은 멕시코를 상대로 무엇이건, 정말 어떤 일이건 했다. (이 정도는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어도,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우리도 비슷한 시대적 요구에 희생당한 과거가 있으니까.)
「“당신들 세금이 이런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 2권 p.474
미국의 입장에선 참 다행스럽게도 당시의 멕시코 정세는 불안했고 (그렇다. 불안했다.) 이 말은 즉 어떤 것이건 종용하고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패한 경찰은 돈만 찔러주면 상대가 미국이건 멕시코의 갱이건 가리지 않고 충성을 다했고, 일급살인자가 국경을 넘는 데에 수많은 도움을 보태주며 심심하면 형식적인 행사에 불과한 마약 단속을 잠깐 벌이기도 했다. 언론은 묻을 것은 묻어버리고 보일 것만 보이는 데에 능했으며, ‘진보’를 부르짖던 정치인들이 암살당하는 것이 대단치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뭔가’ 있었고, 그 흐름을 위해 어떤 거대한 ‘힘’이 투입되고,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어두운’ 세력들이 현장의 일선에서 이 일을 진행했을 것이라는 것. 따라서 이야기 자체는 신선한 것도, 새롭지도, 또 놀랍고 대단한 폭로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되는 걸까.
아니, 왜 한 순간도 지겹지가 않은 걸까. 어쩌면 이렇게 ‘더럽게’ 재미있는 걸까.
「‘이제 하느님과 나 사이에 단층선이 생겨버렸군.’」 - 1권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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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빤한 이야기, 아니, 정정하겠다. 다 알지만 여태껏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던’ 이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뭘까.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힘이다. 작가인 돈 위슬로는 이미 범죄 및 미스터리 장단편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 등으로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사람이다. (보면서 내내 영화로 보고 싶다, 자꾸만 영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더니 역시나 그랬다.) 그런데 이 작가, 알고 보면 상당히 심상찮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 로드 아일랜드에서 자랐고, 아프리카 역사를 전공한 후에는 영화관 관리자를 했으며, 결정적으로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활동하던 사설 탐정이었단다. 탐정이라니, 세상에. 역시 이런 ‘폭로’에 가까운 디테일한 이야기는 100퍼센트 상상으로만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경험은 돈 위슬로가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상당수의 영화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덕분에 그는 언제나 ‘리얼하며 디테일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아트 켈러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분명한 진리가 있다. 전쟁에서는 좋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 2권 p.545
<개의 힘>도 다르지 않다. 총 2권, 결코 얇다고 할 수 없을 두터운 두께의 긴 이야기 속에서도 독자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야기의 ‘리얼함’에 있다. 읽고 있노라면 대체 어디부터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부터 어디가 허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또 사족이지만, 나는 일부러 개의 힘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에 대해 리서치를 하지 않았다. 칼란이 진짜 인물이라면, 그래서 사진 한 조각이라도 존재한다면 나는 좌절할지도 모른다. 칼란에 대한 나의 환상을 부수지 말아 달라.)
「“젠장, 여러분은 공식적으로는 회사의 방침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우리와 공놀이를 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트럼펫이 울리면, 우리는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1권 p.237
<개의 힘>에는 우리마저도 알고 있는 유명한 일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우루과이 라운드, 또 멕시코시티의 대지진 등이 그것이다. 정치가들이 암살당하고, 수사관이 실종되며 언론에 ‘보도’되던 사건들 역시 모두 팩트다. 돈 위슬로는 그 모든 팩트에 절묘한 상상들을 끼워 넣었다. 언론에서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실제 그 정치가를 암살한 세력이라든가 혹은 멕시코와 미국간의 마약 커넥션을 종용했던 인물들의 이름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비어있는 괄호를 채워주듯 등장한다. 그것이 작가의 ‘상상’인지, 혹은 정말 ‘폭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팩트와 픽션이 얽히는데도 놀랍도록 ‘진짜’ 같다는 사실이다. 적절하게 허구가 추가된 팩트, 판타지가 철저하게 제거된 픽션은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서 기능하게 만든다. 멕시코 마약 전쟁에 대해 굳이 알지 못해도, 또 두 나라간의 커넥션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라도 이야기를 읽는 데엔 전혀 무리가 없다. 아니, 이 글에는 읽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억지’ 판타지가 전혀 없다. 그것은 돈 위슬로가 각각의 인물에 대해 충분히 ‘심리’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은총이 있을 것이네.”
“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 상관없어. 신은 자네를 믿거든.”」
- 1권 p.106
바레라 가문에 대해 기이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는 아트의 행동도, 또 그토록 냉철하게 일처리를 하면서 한 신부의 죽음으로 고뇌하고 고민하는 칼란의 행동도 이해가지 않는 구석이 없다. 후안 신부와 완벽한 우정을 나누었던 노라, 아픈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좋은 아버지이며 그토록 냉정한 사업가인데도 노라의 문제로는 평정을 깔끔하게 잃어버리는 아단, 아트에게 선의로 다가가 그 입장을 이용하고 어이없는 사건들로 무너지는 티오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몰살당한 가족들의 모습에 실수를 인정하고 괴로워하는 아트도, 또 후안 신부의 죽음 앞에서 소위 ‘멘탈이 붕괴’되어 폐인처럼 지내던 칼란의 태도도, 말씀 따위 개나 주고 저 사람들을 도울 돈과 수단을 강구하라며 욕을 아낌없이 퍼붓는 후안 신부의 태도도, 감금된 상황에서도 예전에 만났던 그 따뜻한 ‘갈색 눈’을 잊지 않고 마음을 주게 되는 노라의 태도도 너무도 인간적이다. 이런 시대에서, 누군가를 숱하게 배신하고 죽이며 사지에 내몰고도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아파한다는 것. 그토록 인정사정 없는 갱이었어도 죽어가는 순간에 제발 형이 나를 죽여달라고 간청하는 라울도, 세상을 호령하다 여자 하나로 어이없이 붙잡혀버린 티오도, 그럼에도 그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고 미련을 가질 수밖에 없는 티오의 마음도 나는 모두 이해한다.
그리고 끝끝내 그것에 대해서 인정하며 수용하게 된다.
우리 마음 속, 어디에나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악(惡), ‘개의 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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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선하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악하다.
그게 참 아이러니다. 사람 하나 쏴 죽이는 데엔 저렇게나 인정사정이 없으면서 딸을 아끼고 사랑하는 너무나 좋은 아빠이거나, 혹은 한 여자에 대한 순정으로 가슴 태우는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완벽하게 ‘감정’이 없는, 흔히 말해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인물은 여기에 없다. (심지어 살 스카키도 인간적이다. 베트콩을 죽이는 것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는 그의 광신적인 신앙도 오히려 너무나도 나약한 인물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하다. ‘신’을 믿는 것으로 자신을 지켜낸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토록 원하는 신의 품에 안긴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단과 티오가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꽃을 보내고 집을 마련해주는 태도는 이전까지의 사건들과 맞물려 아이러니하며, 그래서 웃기고, 또 그래서 서글프기까지 하다. 저런 사람들도 호감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아끼는 여자가 다칠까봐 마음을 태우며 조바심을 낸다. 그 점이 우리와 같다. 아니, 어쩌면 그냥 ‘우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삶이 고통을 뜻한다면, 삶은 나쁜 것이리라.
만약 죽음이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면, 죽음은 좋은 것이리라.」 - 1권 p.305
사람은 누구나 선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악을 꿈꾼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강해진다고 했던가. 또한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한편으로는 그토록 악해질 수도 있는 모양이다.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내 주변을 지킨다는 것. 악은 그 틈을 비집어 우리를 종용한다. <개의 힘>은 그런 것이다. 우리를 사지로 몰아넣고 흔드는 그 모든 힘. 그 모든 악.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번은 올 수 밖에 없는, 너무나도 평범히 만날 수밖에 없는 그 공정하고도 공평한 악, 개의 힘. 우리가 살고 있는 그 모든 '현재', 그 모든 순간 그 자체처럼.
「남자는 현재에 살아. 지금 먹고, 지금 마시고, 지금 눕지. 남자는 다음 끼니도, 다음 술도, 다음 잠자리도 생각하지 않아. 그냥 ‘지금’ 행복한 거지. 여자는 내일을 살아. 이 우둔한 아일랜드 놈아, 좀 알아둬.」
- 1권 p.407
+ 몇주간 업무 때문에 책 읽을 시간도 없다보니 이제야 겨우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파트장님께 감사 감사 또 감사 T_T 다음 신간리뷰 때엔 이보다는 좀 더 여유롭기를 바라면서,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