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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과 나는 수많은 '끌림'들의 연속이다
- 세라 워터스 <끌림>-




때때로, 사소한 것들이 삶에 생채기를 낸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인생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해는 뜨고, 뜨는 해의 궤적을 따라 당신은 그저 그런 일상 속을 걸어왔을 것이다. 무료한 삶이었다. 늘 가는 곳에 가고, 늘 만나던 사람을 만난다. 항상 새로운 화제를 나누는 것 같지만 그래봐야 전날 봤던 드라마나 야구 경기의 승패, 인터넷을 한바탕 휩쓸고 간 검색어에 대한 이야기, 혹은 최근 이슈가 되는 게임이라든가 일상적인 안부나 인사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누구는 오늘 이혼을 했다더라, 그 드라마는 갈수록 스토리가 이상해진다, 어제도 내 팀은 연패를 끊는 데에 실패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어제 먹은 파스타는 별로였지, 누구 컴백한다더라, 그래서 너 레벨은 몇이나 찍었냐? 같은 식의. 

어제 만난 사람들과 토시만 조금 달라진 이야기를 또 나누고, 끼니가 되면 밥을 먹고 일을 하며, 때가 되면 잠이 든다. 아마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중 대부분의 날들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그렇게 1주일이 가고 한달이 가며, 1년이 흐르고, 인생이 간다. 

그러다가 문득, 전혀 새로운 것이 가슴을 찔러오는 때가 있다.

어제와 같은 햇살이 오늘은 어딘지 달라진 듯한 그런 기분. 괜한 데서 콧노래가 나고, 연신 터지는 웃음이 주체가 되지 않는 그런 날. 늘 만나는 직장 동료의 물빠진 염색 머리가 오늘은 굉장히 예뻐 보이고, 식사 후에 사무실에서 코를 골아가며 주무시는 부장님도 너그럽게 이해가 가는 그런 순간. 늘어졌던 일상은 어느 순간 변주가 되고, 하루종일 괜히 마음을 설레고 들뜨게 한다. 살다 보면 한 번은 만나는 그런 때, 그런 순간.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당신은 당신 삶을 마구 대해왔어요. 
하지만 이제 제가 그것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그래도 그것과 싸울 건가요?
/ p.392



누구나 사랑을 한다. 사랑이란 화두는 언제나 평범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사랑은 평범하지 않다.

세라 워터스의 <끌림>은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
빅토리아 시대, 영국 런던의 밀뱅크.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ㄴ런던 밀뱅크, 테이트 브린튼. 옛날 이 자리에 밀뱅크 교도소가 있었다. (사진 출처 : geograph)


2년 전 아버지를 잃은 마거릿은 평범한, 그러나 평범치 못한 여성이다. 남자를 위해 불편한 드레스 속에 제 몸을 구겨넣는 것보다 오래 된 도서관과 박물관을 떠돌며 책을 읽고 연구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혼기를 이미 넘겼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도 없다. 남동생 스티븐은 마거릿의 오랜 친구인 헬런과 결혼했고, 곧 시집을 가는 여동생 프리실라는 집안 곳곳을 헤집으며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온 집안이 프리실라의 결혼으로 들썩거리는 때에 마거릿은 집이 아닌 다른 곳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근교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밀뱅크 교도소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셜록 홈즈와 왓슨의 이야기로 낯이 익을 밀뱅크 교도소는 런던에서도 가장 험악한 교도소로 이름이 높았다. 보통 성인 남자들도 방문을 꺼릴 그곳에 마거릿은 학문적 호기심을 느끼고 방문한다. 교도소에서는 런던의 '숙녀'인 마거릿이 찾아와 여죄수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거릿은 자신의 학문적 호기심, 또 교도소에서 거는 기대감으로 밀뱅크 교도소의 어두운 복도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홀로 어두운 감옥에 웅크리고 앉아 제비꽃을 움켜쥐고 있던, 너무나도 가련한 여인, 셀리나 도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꽃을 한 송이 쥐고 있었다. 줄기가 시들어 가는 제비꽃이었다. 
내가 지켜보는동안, 그녀는 꽃을 입에 대고 숨을 불었으며, 그러자 보라색 꽃잎들이 파르르 떨더니 빛을 발하는 것만 같았다.」
(p.45)


셀리나는 독특한 여자다. 그녀는 마거릿이 보아왔던, 그러나 그녀 스스로 별로 호감을 가지지 못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들과는 완전히 극적으로 달랐다. 우선 (아마도 귀족일) 마거릿 자신의 신분과도 상당히 거리가 있으며, 가난하고, 가냘프며, 영혼과 대화하는 '영매'였다. 

그녀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계기도 독특하다. 본인의 주장을 빌리자면 영혼을 부르던 강신회 중에 영혼으로 인해 '사고'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불확실한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그녀에게 사기와 폭력죄를 적용시켜 차가운 밀뱅크의 감옥 속에 집어 넣었다. 셀리나는 밀뱅크 내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부류의 수감수였다. 외부와 편지를 주고 받는 대신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영혼 친구들이 준 제비꽃 같은 선물들을 보듬으며 가장 모범적으로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마거릿과 만났다. 마거릿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혼돈, 그리고 강렬한 <끌림>을 함께 만나게 된다. 셀리나는 그때 제비꽃을 쥐고 있었다. 이런 감옥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제 막 방금 꽃밭에서 따낸 듯한 생기 넘치는 제비꽃.

마거릿 프라이어의 인생은 그때부터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몸을 틀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던 삶이, 그저 건조하게 흘러가던 하루가 일순 생기를 띠며 변화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밀뱅크에 가고, 그녀에게 위로를 받고, 설렘을 느끼며, 기어이 잡을 수도 없이 셀리나 도스를 향해서 끌려가기 시작한다. 매일 약을 먹지 않고는 잠들 수 없던 2년의 악몽은 용해 되고, 셀리나에 대한 호기심이 그 빈자리를 가득 채워나간다. 

강렬하게 흔들리고 끌려가며, 기어이 사랑이 된다.
시작은 그저 제비꽃이었을 뿐이었는데도.





+
<끌림>의 내용과 설정에 대해서 이런저런 곳에서 말이 많다.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에 빠지고,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사건과 간계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두 주인공들이 '여자'라는 데서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는 모양이다. 여자와 여자, 또 남자와 남자. 즉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느 시대이건 간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불편하게 한다. (예전보다 상당히 융통성있고 탄력적인 시대가 된 지금에도 그렇다. '다수'의 감상은.) 이런 류의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따지자면 백합이라고 일컫던가. 

<끌림>은 분명 연애 소설이다. 그러나 또한, 단순히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세라 워터스는 <끌림> 속에 수많은 '관계'들을 풀어놓았다. 사람과 사람, 주인공과 주인공의 연애 이상의 관계들이 글 속에서 촘촘하게 드러난다. 


마거릿과 셀리나의 관계는 일차적으로는 '사랑'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말미로 흐를수록 마거릿 혼자만의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간다. 마거릿은 셀리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인지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적극성을 가지게 된다. 셀리나에 대한 생각으로 일기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그녀에 대해 알기 위해 예전 같으면 관심을 줄 생각도 못했을 영매협회 같은 곳에 찾아가는가 하면 나아가 그녀를 위해 '스스로' 수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착실하게 준비해나간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셀리나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영혼을 통해 꽃 등의 선물을 보내지만 그런 행동은 적극적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셀리나가 보내는 선물, 또 마거릿에게 들려주는 위안의 말들을 모두 '마거릿이 원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과 상대와 기분을 주고 받는 것은 다르다. 따져보면 셀리나는 어떤 것도 마거릿과 적극적으로 주고 받지 않는다. 때문에 뒤로 갈수록 마거릿의 사랑은 점점 더 일방통행이 되어가고, 결국 마거릿은 자신의 그 '일방적인 사랑'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착각'이라고 한다. 
내가 주는 이 마음을 그 사람도 주고 있을 거라는 착각. 내가 이만큼 사랑하면 당연히 저쪽도 나를 사랑해줄 거라는 착각. 나 혼자만의 마음이 아닐 거라는, 그래서 다소 서글픈 그런 착각.

마거릿이 셀리나에게 끌려가는 이유 또한 흥미롭다. 앞서도 말했듯, 마거릿이 셀리나에 주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제비꽃ㅡ그것도 몹시 생기가 도는ㅡ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셀리나와 제비꽃을 만나기 전까지도 마거릿은 수많은 죄수들을 만났고, 밀뱅크와 그녀들에게 공통적으로 '죽어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마거릿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감상이기도 하다. 스스로 삶을 한 번 끊으려고 했었고, 자살시도 이후 극적으로 살아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거릿은 살아있지만 죽어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 죽은 아버지를 계속 그리워하고 그 로켓을 목에 걸고 다닌다는 것, 불편한 드레스로 자신을 꾸미지도 않고 좋아하는 장소는 공기가 멈춰 있는 오래된 도서관과 박물관들이다. 이런 것들로 작가는 마거릿의 마음이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는 것을 다양한 상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마 마거릿이 밀뱅크를 방문하게 되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리적인 이유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어있는 자신의 삶의 연장이라 보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랬는데, 그 죽어있던 밀뱅크에서 '살아있는' 셀리나 도스를 만났다. 생기 넘치는 제비꽃, 그 풍경에서도 청초하고 아름다운 셀리나 도스. 감옥에 들어오며 잘라냈던 셀리나 도스의 머리칼은 여전히 탐스럽고 아름답다. 게다가 셀리나는 영매, 즉 '죽어있는' 혼을 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세상' 속으로 옮겨주는 존재다. 마거릿은 실제로 그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부러워했다. 즉, 그녀의 '생기', '살아있음' 자체에 끌려간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에 미련을 가지듯, 죽음이 삶을 그리워하듯.

이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도 닮아있다. 자아, 그리고 자존감을 찾는다는 것. 
여기에는 작가가 왜 하필 빅토리아 시대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할듯 싶다.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했던 1837년부터 1901년까지의 시기가 빅토리아 시대다. 이 시기에 영국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전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의 절정기였고, 덕분에 대영제국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때이기도 했다. 이때의 런던은 하루하루가 달랐다. 자본이 발달했고, 계급이 아닌 '돈'에 의해서 사람들의 서열이 구분되던 시기였다. 돈을 버는 것은 주로 남자들의 몫이었고, 그 때문에 이 시대는 또한 영국 역사상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인' 시대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열심히 일하는 남성들을 위해 '불편한 드레스에 몸을 구겨넣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역할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많은 여성작가들이 활동하기도 했으나 사회의 주류층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여왕이 집권하던 시대였음에도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는 이전보다도 훨씬 보수적이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마거릿과 셀리나는 상당히 흥미로운 존재들이다. 런던의 '숙녀'이면서도 마거릿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 동생인 프리실라, 또 친구인 헬런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숙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여자는 예쁘게 자신을 가꾸고 있다가 때가 되면 시집을 가는 것이 이 시대의 풍토였고, 혼기를 훌쩍 넘긴 마거릿은 집안의 골치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마거릿이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사회상을 배반한다면, 셀리나는 그 시대의 종교적 가치관과 과학적인 태도를 전면 부정하는 존재다. 카톨릭을 바탕으로 한 영국국교회를 국교로 삼고 있는 영국에서 '영혼'이란 것은 존재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서구적 가치관에서는 윤회도, 영혼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삶에 따라 천국과 지옥에 가게 되고 그 이후는 없다. 그런 가치관 속에서 '영혼'을 불러오는 영매라는 존재는 절대로 사회에서 인정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셀리나를 찾는다. 이는 마거릿의 마음에도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2년 전에 떠난 아버지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그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는 마거릿에게 '죽은 영혼'을 다시 불러주는 셀리나는 자신이 갈 수 없는 세계와 연결해주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셀리나는 마거릿을 위해 아버지의 영혼을 불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거릿의 입장에서는 셀리나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려주는 존재였다. 셀리나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마거릿에게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을 되돌려준다. 로켓,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자신의 머리카락, 마거릿이 잃어버린 젊음과 과거의 시간들, 그리하여 결국 잃어버린 '자존감'까지도. 마거릿에게 셀리나는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한 자신의 조각, 그 자체는 아니었을런지.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수많은 '나'를 발견한다.
하긴, 따지고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당신의 안에 있는 '나'에게 매료된다.

그토록 숱한 끌림들이 사랑이 된다.
당신이 사랑이 된다.






+
세상 모든 인연은 필연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누군가가 첫눈에 이 마음에 다가와 꽂혔다면, 거기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사소한 습관과 흔적들이 내 안의 무엇인가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의 작은 흉터를 보고 어릴 때 아끼던 강아지가 내 손에 입힌 상처를 떠올릴 수도 있고, 곁을 스쳐가는 여자의 가방 색깔에서 그 사람이 좋아하던 것들을 떠올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낯선 여자에게서 떠나버린 그의 향기를 느낀다면, 우린 그 여자가 밉기보다 그 남자가 생각나서 가슴이 괴로울 것이다. 당신의 사소한 습관에서 나, 또는 나의 과거를 발견하는 것. 그리하여 끌려간다는 것. 그때부터 우연은 우연이 아니게 된다.
 
나와 당신의 끌림 또한 필연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어떤 호기심에 이끌려 이 글을 열었는가. 여러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저 지나가다가, 혹은 관심을 가지고 열었을 수도 있다. 무엇이건 언제나 계기는 사소하다. 어쩌면 내가 당신의 안에 있는 과거의 어떤 것을 건드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당신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고, 나는 내 글을 읽어줄 당신을 상상하며 일요일 오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다. 이 모든 증거들이 <끌림>이다. 마거릿이 셀리나에게 느낀 끌림. 마거릿이 헬런에게 가졌던 끌림,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끌림, 어머니를 차마 떠나지도 못하는 그 끌림도 모두 필연이다. 수많은 곳에서 우리는 <끌림>을 느낀다. 밀뱅크 교도소 내에서 교도관들이 죄수에게, 죄수가 교도관에게, 교도관이 죄수에게, 죄수가 죄수에게, 혹은 영매가 영혼에게, 영혼이 영매에게, 영매를 보는 손님에게, 그녀를 돌보는 하녀에게도 <끌림>은 존재한다. 그것이 굳이 사랑이 아니어도 세상 모든 관계는 <끌림> 위에 세워진다.

당신과 나의 인연 또한 끌림이다.
우리는 수많은 끌림들의 연속이다.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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