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 - 못생긴 나에게 안녕을 어글리 시리즈 1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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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시리즈는 지금으로부터 몇 백 년 후의 이야기다. 녹슬이들의 문명(석유를 기반으로 한 지금의 문명)이 쇠퇴하고 새로운 방식의 사회가 만들어진다. 국가라는 큰 틀은 존재하지 않고, 도시 규모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16살이 되면 못난이들은 전신 성형을 통해 예쁜이로 거듭난다.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이상적인 사회다. 사회 구성원이 어떤 불만도 품을 필요가 없고, 욕구가 자연히 채워지는 그런 유토피아이다. 굳이 일을 할 필요도 없고, 남들만큼 예뻐질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적이고 평화롭다.

그런데 유토피아를 벗어나 스모크로 탈출하는 못난이들이 있고 스모크의 주민들은 지상 낙원을 거부한다.  스모크로 잠입한 16살의 소녀 탤리 또한 스모크에 머물고 싶어한다. 어째서일까?

예쁜이들의
도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적이지만 내적으로 ’인간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 인간성이라는 것은 폭력, 파괴, 질투 등의 부정적인 것들을 내포한다. 예쁜이들은 그것을 인위적으로 제거당한다. 그들은 쾌락에 빠져 즐겁게 지내고 계속 행복한 삶을 산다.  말 잘 듣는 인형이 되는 것이다. 예쁜이가 된다는 것은 외형만 인형처럼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체제에 대한 반항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결여당한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개조’당하는 것이다. 아니, 사람이기는 한가? 예쁜이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육 당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옛 사랑과 질투, 감정조차 그들의 것이 아니기에. 행복을 핑계로, 사람들의 자기 결정권을 뺏어가고 선택을 앗아간다. 삶이 제한당한다.

또한 예쁜이들은 획일화 된다. 차이를 인정 받지 못한다. 못난이로 살아가는 동안, 차이보다는 획일화를 원하도록 세뇌받는다. 이름보다 실눈, 말라깽이 등으로 불리면서 서로의 인격을 모독하고 외모를 치욕스러워 하게 한다. 예쁘지 않으면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인 것이다. 개성도 인정받지 못한다.

분명 이상적이다.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렇지만 상처받지 않는 인간들이 인간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탤리는 상처 받고 행복하지 않더라도 그녀 자신으로 남기를 선택한다. 외모에 의한 것이 아닌 마음으로 사람을 보고 사랑을 하게 되었다. 친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인간적인 길을 택한다. 체제에 반항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길을 택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탤리가 하는 선택은 아마도 그녀의 생에서 최고의 속임수가 될 것이다. 그녀 자신까지 버리는 속임수. 그녀가 어떻게 세상을 부수고, 진실을 알릴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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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 기사 돈 두리토
마르코스 지음, 조수정 옮김 / 현실문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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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반군의 실질적 지도자인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글을 모은 것이다. 그가 반군으로서 성명서를 내면서 같이 발표했던 글들이다. 마르코스는 짧은 글들에서 딱정벌레 돈 두리토를 통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이야기한다. 일종의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사파티스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읽었던 책이라서 읽기 시작했을 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뒤쪽의 역자의 말부터 보기를 추천한다. 나는 그걸 보고서야 돈두리토와 마르코스의 대화가 약간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후에 마르코스에 대한 전기문을 읽고서는 좀 더 알 수도 있을 거 같고 말이다. 멕시코의 상황이나 사파티스타, 마르코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채로 읽는다면 상당히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마르코스가 지휘하는 사파티스타 반군은 멕시코 원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봉기했다. 이후 멕시코 정부와 계속 대립하고 합의하며 그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글은 성명서들과 함께 발표되었기 때문인지 마르코스가 글을 썼을 때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글에 나오는 돈두리토는 딱정벌레로 위대한 돈키호테를 흉내낸다. 때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마르코스를 다그치기도 하며, 풍류를 안다는 듯이 여자의 마음을 논하기도 한다. 멕시코 정부와 사파티스타군에 비평을 하는 돈두리토는 멕시코 민중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 자체는 별로 재미가 없다. 짤막한 우화 형식으로 쓰인 글들이라, 전후 상황을 모르면 잘 이해도 안 간다. 흥미로운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마르코스와 돈두리토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유려한 글솜씨로 유명한 게릴라인 마르코스의 글답게 멋스러움이 담겨있다. 문체나 문장이 잘 꾸며져 있다. 마르코스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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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티 - 예쁜이들의 반란 어글리 시리즈 2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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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시리즈의 2부 프리티이다.
 
탤리는 자신이 옛날에 원하던 예쁜이 생활을 하게 된다. 자신이 도시로 돌아와 예쁜이가 된 이유도 잊어버린다. 스모크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지만, 조작당한 기억은 불완전하다. 게다가, 데이비드까지 잊어버렸다. 그러면서도 탤리는 예쁜이 생활에 적응해간다. 좋은 친구들, 훌륭한 그룹, 멋진 남자친구. 

새내기 예쁜이들이 하는 생활은 입시 지옥에 시달리는 중고생이라면 동경할 법하다. . 그들은 공부를 할 필요가 없고, 놀기만 하면 되니까. 원하는 것은 모두 얻을 수 있고, 쉽게 예뻐질 수 있다. 얼마나 부러운가. 나라면 아마 저 세상에 안주하고 살아갈 것이다. 페리스처럼. 그리고 평소의 내 상태는 아마 끝내주는 상태보다는 예쁜이 정산상태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아서의 의견에 어느정도 동의 한다.

그렇지만 그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탤리, 죄자, 제인, 스모크 사람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끝내주고 싶은 상태인 그들을 가로막고, 그들의 선택을 거부하는 세상은 비인간적이다. 선택지를 없애버리는 도시의 방식은 폭력적이다. 도시는 폭력을 없애기 위해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 어떤 동의도 받지 않은 채로. 폭력을 막기 위한 폭력이라는 아이러니는 예쁜이들의 사회에서도 계속되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다를 뿐이다. 

비록 내가 페리스같이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탤리가 부럽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적으로도 싸우고, 외적으로도 싸우는 탤리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녀가 예쁜이든 못난이든 상관없이 그 아름다움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 3권에서 또 다른 고난을 맞이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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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인 러브 판타 빌리지
로라 위트콤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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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의 이벤트로 받았던 책이었는데, 받고 나서도 펼치지 않은 채로 한참을 방치해뒀었다. 호러 느낌 나는 표지에 이 책을 미뤄버리고 다른 책들을 먼저 본다고 그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정작 읽어보니 호러보다는 판타지, 로맨스의 느낌이 강했다.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다 공포소설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나 할까.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사랑에 빠진 유령의 이야기이다. 사실 원제는 고스트 인 러브가 아니라 'A Certain Slant of Light'라고 한다. '한 줄기 빛이 있어'라는 의미라고 한다. 원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 제목이고, 시 원문과 번역은 그 책의 마감 속지에 적혀있다. 읽기 전에 그냥 보면 이 시의 내용과 소설의 내용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시를 다시 읽어본다면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령들이 지닌 내적 상처와,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상처. 그 고통들에 대한 이야기며, 그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 것이다.

호스트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라이트인 헬렌은 제임스를 만난 후로 130년 간 했던 생활을 넘어서는 모험을 감행한다. 육체를 얻는 것이다. 육체를 얻는다는 것은 단순히 감각을 얻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 있다는 것 이상이다. 그들은 육신의 원 주인들이 도망쳐야했던 삶을 살아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냥 평범한 생활이라도 다른 사람의 생이라면 적응하기 힘들텐데 원주인들조차 도망쳤던 생활이니까. 각종 고난 속에서도 둘은 사랑을 나누고, 과거를 기억해낸다. 그들이 이승에 붙잡혀있던 원인을 서서히 떠올리는 것이다.

결국 용서는 신이 아닌 자신이 해야한다. 주위에는 언제나 사랑할 사람들이 있고, 문학이 있고, 내밀어주는 손길과 부르는 목소리들이 있다. 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이런 소중한 것들을 놓쳐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타인의 사랑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상처를 마주볼 수 있고 결국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헬렌과 제임스는 결국 행복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제니와 캐시가 자유를 되찾고, 빌리가 현실을 극복하기를 바란다. 서로를 지탱해가며 그들을 도망치게 했던 삶에 당당히 맞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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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밀리언셀러 클럽 1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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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사계 중 봄, 여름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사계는 스티븐킹의 중편 소설 네 편을 모아서 이르는 말이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는 희망의 봄에 해당하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타락의 여름에 해당하는 '우등생'이 실려있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쇼생크 탈출'이라는 유명한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나도 영화로 먼저 접했다. 소설은 영화만큼이나 재미있고 색다르다. 물론 여느 소설 원작과 각색한 영화와 같이 내용이 똑같지는 않다. 영화에만 추가된 부분도 있고, 소설에서만 설명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떤 매체로 표현되었든 이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감동은 변하지 않는다. 

감옥이라는 페쇄적 사회 속에서 앤디 듀프레인이라는 독특한 인물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는 것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누명을 썼더라도 자신의 죄가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그렇게 고고할 수 있었을까. 수많은 폭력속에서도 자긍심과 평정심을 잃지 않는 앤디의 모습은 진흙탕에 빠진 진주를 보는 것 같다. '뭐 저런 사람이 있어' 싶을 정도로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인간미를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담담한 모습 내면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싸움에서 져서 평정을 잃는 모습을 보일 때, 앤디의 모습은 무척이나 처절했다. 그만큼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일 테다. 자유를 찾아나서, 결국 자유를 얻은 앤디. 그리고 자신만이 아닌 타인의 자유 또한 찾아준 앤디는 이상적인 인간이 아닐까.

'우등생'또한 영화로 만들어졌던 작품이다. 영화의 한국 제목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이라고 한다. 소설에서는 13살 쯤 되는 토드라는 어린 소년이 주인공이다. 나치 독일 하에 벌어졌던 수많은 학살과 실험들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인생 최고의 관심사’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년이 숨어서 살던 나치 전범을 협박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는 데 있다. 과거의 기억으로 지우고 살아가던 듀샌더는 토드의 협박에 못 이겨 과거를 떠올린다. 이 때부터 악몽이 시작된다. 서로를 구속하며 언제 먹힐지, 배반한 수 있을지 모르는 심리 게임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를 의심해야 하지만 또한 도와야한다. 이 과정에서 듀샌더는 기억 너머로 보내버린 자신의 잔학성을 일깨워버리고, 토드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악몽을 현실로 만들고 자신이 강자가 되어 그 입장을 확인 하는 것이다. 토드와 듀샌더는 서로를 옭아매는 과정에서 서로의 폭력성을 더 키웠으며 결국 피할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나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그들은 정치적으로 행동해 우위를 점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것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서로를 타락시켜가는 과정이 안타까웠고,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 끔찍했다. 

스티븐 킹은 매혹적인 이야기꾼이다. 장르에 관계없이 그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봄과 여름을 지나 이제 가을의 이야기를 읽어볼 차례다.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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