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브
알렉스 모렐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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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 말을 입에 살고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실천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밭 위의 투쟁


『서바이브』의 주인공 제인 솔리스는 진심으로 그 '죽음'을 바라는 드문 사람 중에 하나이다. 


전부터 우리 집안에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시작해서, 할머니, 그 다음엔 아버지까지. 내 첫 사건 땐, 그들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면 내 인생도 특별해질 거라는 욕심이 있었다. 모든 이들이 그들의 힘들었던 삶과 극적인 최후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다. 하지만 그들의 길을 따를 용기가 과연 내게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두 번의 예행연습을 통해 나는 내게 그런 용기가 있다는 걸, 그리고 확실히 죽을 수 있는 계획을 잘 세우기만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바로 그 계획을 찾았음을 알았다. 라이프 하우스에서, 또 고통으로 가득 찬 가련한 내 삶에서 달아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15쪽


제인은 자살 시도 이후에 치료를 위해 라이프 하우스에서 수용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의도적인 모범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크리스마스 휴가에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제인의 계획은, 집에 가는 비행기 화장실에서 약을 먹고 죽는 것. 그런데 비행기 사고가 나버리고 제인은 홀로 살아남게 된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말이 이 경우에 쓰라고 있는 건 아닐 텐데 너무 잘 들어맞는다고 해야할까. 아, 제인 혼자는 아니다. 폴이라는 남자도 있다. 폴과 제인은 눈밭, 너무 추워서 마실 물조차 없는 고원지대의 눈밭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된다. 






제발 살아남기를


이후의 이야기 전개는 조금 뻔하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생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되고, 속풀이도 하고, 사랑도 하고. 어찌 보면 통속적이랄 수도 있을 전개. 그러나 통속성이 계속해서 재현되는 것은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와닿기 때문이다. 알렉스 모렐은 이야기를 넘어 두 사람의 관계와 제인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를 설득해낸다. 어느샌가 나도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뭐야, 설정 작위적이잖아. 당연히 살려고 들겠지'라는 삐딱한 시선 또한 바뀌어서 두 사람의 생존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무서워요."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 

"난 아까 오줌 쌀 뻔했어. 무서운 게 당연하지."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다들이라니, 누구?" 폴이 묻는다.

"사람들이요."

"의사들?"

"네, 의사들, 부모님, 친구들, 이젠 산꼭대기에서 만난 낯선 남자까지. 다들 나한테 두려울 게 없는 것처럼 살라고 말해요. 그래놓고는 갑자기 죽어버리기나 하고." -172쪽 



의사도 사람들도 바꾸지 못했던 제인을, 오히려 죽음의 상황이 바꾸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인생이 그런 것이겠지만. 

나 또한 새하얀 눈밭에서 다시 태어난 제인을 통해 치유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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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워 시공그래픽노블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지음, 최원서 옮김, 가브리엘 델 오토 그림 / 시공사(만화)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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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게, 마블 세계관에 참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반복학습의 위력은 대단해서 처음에는 재미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읽었던 것들의 지식은 갈 수록 쌓여가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다는 거. 미국 코믹스에 나를 끌어들인 모님은 정말 못됐다. 근데 요새 DC가 더 좋아서. 





『시크릿 워』는 꽤 인상적으로 시작한다. 워싱턴 DC의 익명의 누군가가 브라이언 밴디스가 자신의 경험담을 이용해서 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적어둔 것이다. 실화에 영웅의 껍질을 덧입힌 것이 바로 시크릿 워라고. 이렇게 시크릿워는 초반부터 현실성. 리얼리티를 은연 중에 깔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에 무거운 분위기이다. 이야기 자체가 비밀스런 전쟁에 대한 것이다보니 어두울 수 밖에 없겠다. 그림이 이야기와 꽤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다. 





라트베리아에 잠입하기


하이테크 장비를 이용하는 빌런(악당)들이 라트베리아의 원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닉 퓨리는 정부에 이야기를 하지만, 정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관여하지 말라고 하고, 퓨리는 자체적으로 일을 해결하기로 한 후 영웅들을 불러모은다. 영웅들은 꽤 까다롭게 선정된다. 캡틴 아메리카, 데어데블, 울버린, 스파이더맨, 블랙위도우, 루크 케이지. 이런 소수 정예. 라트베리아에 잠입해 비밀 작전을 진행한다. 그리고 1년 후 빌런들이 일전의 멤버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지나친 디테일. 내용의 뻥튀기


이야기는 상당히 정교하게 짜여있다. 시크릿 워는 재미있게도 컷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만화형식이만이 아니라, 쉴드의 문서 자체를 우리 앞에 들이민다. 심문 기록, 빌런 프로필, 영웅들을 심사한 과정, 계획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준비한 지령까지도. 그런데 그 많은 디테일이 아쉽다. 많아서. 부록같은 이것들을 빼고 본편을 더 그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주지 않고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독자 스스로가 이야기를 짜맞추기를 바란 모양인데... 제일 중요한 사건의 전개 과정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런 형식을 제시한 건 '비밀스러움'을 위한 장치였겠지만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 읽고 나니 만화 본 기억은 없고 문서 본 기억만 있어. 왜 하필 저 멤버들이 닉퓨리의 팀에 선정되었나하는 의문은 풀어주지만 정작 라트베리아가 왜 그런 짓을 했는가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로 남겨둔다. 인물들은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같다. 결국 이야기를 저런 부가 설명으로 뻥튀기 해놓았다는 느낌도 있다. 정작 비밀은 풀리지 않고, 그냥 끝이 나버렀다는 그런 느낌. 



마들 코믹스 중에서도 난해하다고 하던데, 난해하다기보다는 불친절했다. 

'시크릿 워'답게 많은 것을 독자에게조차 비밀로 묻어두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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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 1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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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무언가를 정의내린다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특히나 각자의 주관에 따라 기준과 형태가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 개념에 대해 생각하면 더 그렇다. 모두가 미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그 기준으로 여러가지 사물 중에 가장 예쁜 것-혹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보면 줄리애나 배곳의 『퓨어』는 내가 이제까지 본 디스토피아 소설 중에서 가장 예뻤다.






디스토피아 속의 아름다움.


퓨어가 예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소설 안에서 직접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은 자주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제약하는 것이 미와 직결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에 대한 추구는 개개인 별로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체주의 사회에서 억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스콧 웨스터펠드의 『어글리』시리즈는 전신 성형을 통한 아름다움의 평준화, 외모지상주의를 다루었다. 여기에서 사회는 미의 기준 자체를 통합하고 그것만을 추구하고 수용하게 했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좀 더 극대화 시킨 것에 불과하다. 물론 어글리에서는 인간 내적인 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고 시도하나, 성공적으로 풀어내지는 못했다. 앨리 콘디의 『매치드』 시리즈는 디스토피아답지 않은 밝고 선명한 색채를 소설 안에서 그려내는데 초록색 드레스, 예쁜 남녀주인공, 은색 박스 등의 이미지를 통해 예쁘게 치장하는 데 성공한다. 디스토피아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감추어버린다.

 

그런데 이 소설들에 비해 『퓨어』는 인간에게 국한되지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세계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퓨어는 결코 위의 두 소설에 비해 예쁘지 않다. 알록달록하게 더 예쁜 건 매치드 시리즈고, 반짝반짝 빛나는 미남미녀가 떼거지로 나오는 건 어글리이다. 거기에 비해 퓨어는 각종 기괴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여러사람의 몸이 붙어있고, 손 대신에 인형이 달려 있고, 땅에서는 위험한 괴물틀이 튀어나오고, 등짝에는 새가 심어져 있다. 주변을 떠도는 검은 먼지, 대폭발로 인한 황폐한 사회. 어딜 보더라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광경들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프레시아가 찾던 아름다움. 고장난 나비 장난감. 기괴하지만 아름답고. 어둡지만 아름답다. 모든 것이 파괴된 곳에 남아있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일까. 보석처럼 희귀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일까. 값싸게 널려있는 예쁜 것들과는 다른, 정말 귀중하다는 느낌. 그런 느낌. 


그녀는 나비 하나를 집어 태엽을 감았다. 나비가 날개를 바르르 떨며 쌓인 먼지를 털어 내며 빙글빙글 돌았다. 춤추는 듯한 재 먼지 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사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예쁜 것도 같았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이 보였다. 아름다움은 사방에서, 심지어 추한 것들 속에서도 문득문득 발견된다. 하늘에 구름이 무겁게 걸려 있었다. 가끔씩 구름은 검푸른 기미마저 띠었다. 땅속에서 솟아오른 이슬방울이 검은 유리 조각 위에 아직 알알이 맺혀 있었다.      [1권 18-19쪽]






패트리지와 프레시아의 길


인형 머리 손을 가진 프레시아, 반동분자 브레드웰, 어머니를 찾아나선 패트리지 이 세 소년 소녀의 모험은 생각보다 그리 긴박하지 않았다. 짜릿한 모험보다는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가 있었다. 패트리지는 진실을 좇고, 프레시아는 아름다움을 원했고. 아름다움은 진실 속에 있었을까? 둘이 하나의 방향을 봤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닐까. 어쨌든 진실을 탐구해가는 그 과정이 꽤나 흥미진진하고, 패트리지가 찾는 것이든 프레시가가 좇는 것이든 양쪽 다에 수긍을 할 수 있었다. 로맨스도 내가 처음에 뻔하다고 생각한대로 흐르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는 건 안 비밀.


"내겐 이런 게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건 날아가지도 못하잖아. 태엽을 감으면 날개를 팔락대기는 하지만, 그것뿐이야."

"꼭 가야할 데가 없어서 안 간 건지도 몰라."

[2권 171쪽]



패트리지와 프레시아가 걸어갈 길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지. 그들은 원하는 걸 정말 얻어낼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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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A : 자유와 정의 시공그래픽노블
폴 디니 지음, 알렉스 로스 그림,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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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믹스 회사인 마블에는 어벤저스가 있다. 많은 영웅들이 함께 모여 적들을 물리치고 지구를 위험에서 구해낸다. 


그리고 마블의인 DC코믹스에는 저스티스 리그가 있다.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





처음으로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 그러니까 JLA를 봤다. 『JLA : 자유와 정의』

책 판형이 커서 꽂을 곳 찾는 게 힘들었다. 



아직 DC 영웅들에는 익숙하지 않아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미드 <빅뱅이론>을 통해 습득한 이미지는 JLA를 읽는 데 꽤 도움을 주었다. 플래시맨, 그린랜턴, 아쿠아맨, 원더우먼.... 슈퍼맨이나 배트맨은 원래 유명해서 그런 거 없어도 아는 거고. 






빌런은 없지만 영웅은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저스티스 리그가 소집되어 해결을 위해 나섰다. 사람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없었던 것 뿐. 죽은 듯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도우며 사태 해결에 힘쓴다. 뭐 이런 내용.



눈에 직접 보이는 빌런도 없고 히어로들이 워낙 막강해서 해결이 무척 쉬워보이기도 했다. 사실 DC 영웅들은 마블 영웅들보다 막강하고 만능인 듯 보인다. 얘네가 협력해서 힘들 때가 있기나 할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이야기는 적을 물리치는 외적 갈등보다는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의 정체성과 존재 의의를 각인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그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주요 영웅들의 비중도 골고루 분배되어 있어 한 사람 한 사람 등장하며 소개 비슷한 게 되는 것도 잘 모르는 사람도 읽기 수월하게 했다. 입문으로는 꽤 좋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스토리를 담당한 폴 디니는 에미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그림이 예뻐요! 알렉스 로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그림! 아, 너무 예뻐다. 진짜. 정말로. 이건 아트. 알렉스 로스의 그림이 이제까지 본 코믹스 중에서 최고다. 감탄감탄. 무지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다이애나. 그러니까 원더우먼 너무 예쁘다. 진짜 예쁘다. 진심. 알렉스 로스 씨가 예쁘게 그려주는 건가. 이제부터 언니 팬할지도 모르겠다. 



이거 그림이 너무 예뻐서, 다른 책도 살까 생각 중이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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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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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와서 오랫동안 남아있는 기억은 '음식'과 관련된 것일 때가 많다. 맛있는 음식 하나로 기억되는 여행지도 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찾아낸 라 뒤레 마카롱, 미각의 도시 리옹의 어느 부숑에서의 양파 수프, 이스탄불의 친구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밥, 리스본 벨렘 지구의 세상 최고라는 에그타르트, 친구와 함께 간위트레흐트 숲 속의 운치 있는 팬케이크 가게, 바르셀로나에서 매일같이 사먹은 보케리아 시장의 생과일주스. 그러니까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하지 않나. 남는 건, 음식에 관한 기억 뿐. 음식은 때로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행복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는 한다.






주인공은 요리


오가와 이토의 『따뜻함을 주세요』는 음식에 관련된 따뜻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단편집이다. 의식주에서 식. 먹는 거. 이게 추억과 결합되어 온기로 바뀐다. 

이 책의 주인공은 요리이다. 사람이 차지해야할 자리에 음식이 들어서고 음식이 들어서야할 자리에 사람이 들어선 듯도 보인다. 그러나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인 법인지라, 요리와 사람들은 하나로 엮여있다. 그러니 어떻게 추억이 담긴 음식이 주인공 자리를 꿰어찼다고 해서 화낼 수 있겠는가. 정성스런 요리 안에는 가족, 사랑, 이별의 인간의 삶이 들어있는 법이다. 생의 마지막에서 원하는 가장 값진 것일 수도 있고, 죽은 이와 산 자를 이어주는 끈도 되어준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잊게 해 삶에 대한 갈망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이어줄 수도, 이별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을 냠냠

소설에는 수많은 낯선 음식들이 등장한다. 슈마이, 상어 지느러미 수프, 퓌레... 뭘 알아야 음식 이름이라도 적지. 이런 낯선 음식들을 하나씩 소개해주는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맛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눈으로 꼭꼭 씹어서 상상 속에서 꿀꺽 삼킨다. 생김새도 짐작 안 가는 요리일지라도 맛있으면 된 것 아닌가요?


나는 확신한다. 할머니는 지금 몇 년 전 여름, 가족끼리 갔던 빙수 가게의 그 정원으로 돌아가있다. 꿀꺽, 하고 목이 울리며 후지 산 일부가 할머니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나는 창가로 가서 커튼을 걷고 바깥을 보았다. 후지 산이 오렌지색으로 빛났다. 
-23쪽

"아버지의 유언이야. 아내를 선택할 때는 이 가게의 맛을 아는 사람을 선택하라고 했거든"
-43~44쪽






요리에 대한 오가와 이토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이 작가가 맛있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취미는 요리에, 다른 작품도 요리와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음식은 '내가 만드는 뭔가'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신기할 뿐이다. 이렇듯 정성을 담아 요리해서 내놓은 소설들을 읽고 있자니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것같다. 낯선 여행지를 헤메다가 발견한 낯선 카페에서 따뜻한 홍차 한 잔 마시는 그런 기분. 강렬하지는 않지만 달콤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오후 두 시의 티타임. 



어쩐지 여행을 가고 싶어졌다. 샹젤리제를 걷다가 라 뒤레 마카롱을 먹을 수 있는 파리. 아니,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는 집이라도 좋겠다.



"한 끼만 더 먹게 해줘. 마카롱을 꼭 먹고 싶어졌아. 아직 라듀레의 마카롱을 먹지 않았잖아. 파리에서 라듀레 마카롱을 먹지 않고 죽는다는 건 자손 대대로 수치야. 거기 마카롱을 종류마다 다 사 와서 아침부터 샴페인을 마실래. 기왕이면 잭 세로스의 로제 와인으로 하자고. 그거 최고로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걸로 정말 마지막이야. 약속할게. 마지막 한 잔에 독을 넣어 화려하게 죽자, 우리."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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