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여행을 다녀와서 오랫동안 남아있는 기억은 '음식'과 관련된 것일 때가 많다. 맛있는 음식 하나로 기억되는 여행지도 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찾아낸 라 뒤레 마카롱, 미각의 도시 리옹의 어느 부숑에서의 양파 수프, 이스탄불의 친구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밥, 리스본 벨렘 지구의 세상 최고라는 에그타르트, 친구와 함께 간위트레흐트 숲 속의 운치 있는 팬케이크 가게, 바르셀로나에서 매일같이 사먹은 보케리아 시장의 생과일주스. 그러니까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하지 않나. 남는 건, 음식에 관한 기억 뿐. 음식은 때로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 이상으로 행복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는 한다.






주인공은 요리


오가와 이토의 『따뜻함을 주세요』는 음식에 관련된 따뜻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단편집이다. 의식주에서 식. 먹는 거. 이게 추억과 결합되어 온기로 바뀐다. 

이 책의 주인공은 요리이다. 사람이 차지해야할 자리에 음식이 들어서고 음식이 들어서야할 자리에 사람이 들어선 듯도 보인다. 그러나 먹는 것이 곧 그 사람인 법인지라, 요리와 사람들은 하나로 엮여있다. 그러니 어떻게 추억이 담긴 음식이 주인공 자리를 꿰어찼다고 해서 화낼 수 있겠는가. 정성스런 요리 안에는 가족, 사랑, 이별의 인간의 삶이 들어있는 법이다. 생의 마지막에서 원하는 가장 값진 것일 수도 있고, 죽은 이와 산 자를 이어주는 끈도 되어준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잊게 해 삶에 대한 갈망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이어줄 수도, 이별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을 냠냠

소설에는 수많은 낯선 음식들이 등장한다. 슈마이, 상어 지느러미 수프, 퓌레... 뭘 알아야 음식 이름이라도 적지. 이런 낯선 음식들을 하나씩 소개해주는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맛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눈으로 꼭꼭 씹어서 상상 속에서 꿀꺽 삼킨다. 생김새도 짐작 안 가는 요리일지라도 맛있으면 된 것 아닌가요?


나는 확신한다. 할머니는 지금 몇 년 전 여름, 가족끼리 갔던 빙수 가게의 그 정원으로 돌아가있다. 꿀꺽, 하고 목이 울리며 후지 산 일부가 할머니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나는 창가로 가서 커튼을 걷고 바깥을 보았다. 후지 산이 오렌지색으로 빛났다. 
-23쪽

"아버지의 유언이야. 아내를 선택할 때는 이 가게의 맛을 아는 사람을 선택하라고 했거든"
-43~44쪽






요리에 대한 오가와 이토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이 작가가 맛있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취미는 요리에, 다른 작품도 요리와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나는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음식은 '내가 만드는 뭔가'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신기할 뿐이다. 이렇듯 정성을 담아 요리해서 내놓은 소설들을 읽고 있자니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것같다. 낯선 여행지를 헤메다가 발견한 낯선 카페에서 따뜻한 홍차 한 잔 마시는 그런 기분. 강렬하지는 않지만 달콤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오후 두 시의 티타임. 



어쩐지 여행을 가고 싶어졌다. 샹젤리제를 걷다가 라 뒤레 마카롱을 먹을 수 있는 파리. 아니,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는 집이라도 좋겠다.



"한 끼만 더 먹게 해줘. 마카롱을 꼭 먹고 싶어졌아. 아직 라듀레의 마카롱을 먹지 않았잖아. 파리에서 라듀레 마카롱을 먹지 않고 죽는다는 건 자손 대대로 수치야. 거기 마카롱을 종류마다 다 사 와서 아침부터 샴페인을 마실래. 기왕이면 잭 세로스의 로제 와인으로 하자고. 그거 최고로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걸로 정말 마지막이야. 약속할게. 마지막 한 잔에 독을 넣어 화려하게 죽자, 우리."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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