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에 들어온 게 참 오랜만이다. 글을 올렸다고 마지막으로 체크된 것이 2일이니 자그마치 10일간을 들리지 못한 셈이다. 사람이 바빠지면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지 모르겠다. 그래도 대놓고 3월 2일 개학하자마자 발길을 뚝 끊은 건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쪼끔.
그렇지만 나는 고등어다. 싱싱하게 펄떡거리는 한 마리 고등어이고 싶은 고등어다. 실제로는 전혀 싱싱하지도 않고 허구헌날 헥헥거리는 고등어이긴 하지만 좌우지간 무쟈게 바쁜. 널린 게 대한민국 고등학생이고 나 혼자 바쁜 것도 아니면서 청승 떠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정말이지 지난 일주일은 그야말로 완전Busy고등어였다.
개학을 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일단 내 생활리듬이 가장 크게 변했다. 방학 동안의 나는 철저하게 올빼미형 고등어였다. (조류형 물고기라니 어감이 쪼금 이상하다) 암튼 실상을 들여다 보자면 매일 날밤을 꼴딱 새고 새벽 5~6시에 잠들어서 오후 2시~4시에 기상하는 식이었다. 비정상적으로 수면시간이 길었는데 모 피부미인은 다 그런 거라 여기는 건 아니고 갑자기 잡아주는 틀 같은 게 없어지니까 무방비로 긴장이 풀린 나머지 지나치게 느슨해졌던 거 같다. 그치만 그렇다고 후회를 하진 않는다. 솔직히 이런 생활도 이번이 마지막이고 앞으로 2년간은 나 죽었소 하고 살아야 할 텐데 마지막으로 치열하게(?) 나태해지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다고 본다. 가당찮은 자기 합리화라고 해도 할말없음.
암튼 그렇게 열성적으로 흐물흐물한 방학을 보내고 돌아온 학교는 24시간 펄떡이는 고등어들의 집합소였고 나는 다시 아침 6시 기상 체제로 복귀해야 했다. 하지만 말이 아침 6시지 나는 실제로 그렇게 이른 시각에 일어나는 것은 느무느무 버거워서 실행은 잘 못했다. 맨날 밤 새다 지쳐서 잠들던 시간에 억지로 잠을 깨려고 하니 그게 쉬울까. 게다가 요즘 우리 집에선 내가 제일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깨워줄 사람도 없다. 알람을 핸드폰으로 해놓는데 이게 울려도 내가 잠결에 플립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나는 6시에 3분 간격으로 3회 6시 20분에 3분 간격 3회로 울리도록 지정해 놓는다. 내가 잠결에 꺼버려도 다시 울리라고. 얼마나 잠 깨기가 힘들었으면! 그런데 나는 그 알람을 들어도 못 깨는 경우가 있다. 가끔 그럴 때는 밥을 포기하든지 머리 감는 걸 포기하든지 둘 다 포기하든지 해서 어떻게든 제 시간에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정말 그럴 때는 학교 가기가 너무 싫고 오늘이 개교기념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흑~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학한지 2주일이 지나니 모든게 익숙해져간다. 사람은 적응의 대가인 거 같다. 나도 그렇게 적응이 빠샤샥 되는 타입은 아닌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달 보며 등교하고 하교하는 걸 당연스레 여긴다. 학교로 복귀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교복이 편하답시고 입은 채로 잠들기도 한는 걸 보면 완벽하게 물가에 적응한 고등어같다. 사실 처음 고등어가 되었을 때는 제발 해 좀 보면서 살고 싶어서 무단으로 야자도 자주 빠지고 그랬는데 지금은 되려 집에 가는 게 귀찮아졌다. 바야흐로 모든 고등어들의 '학교=집 집=잠자는 곳' 공식의 생생 체감자가 된 셈인데 왠지 내가 다 뿌듯하다. 나도 이제 진짜 고등어야. 학교 가는 게 힘들고 감옥같고 오매불망 주말만 기다리던 초신참이 아니라 어느정도 물이 익은 알 꺼 다아는 진짜배기 고등어. 괜히 내 자신이 막 대견하고 신통하고 모 그렇다.
학교가 집 같아지니 선생님과 친구들이 가족보다 더 편해진다. 담임선생님은 바뀌었지만 친구들은 작년과 그대로여서 학년이 바뀌었다고 새로와질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 6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부대끼며 붙어있는 애들이다보니 서로 모르는 게 없다. 진짜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라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거 같다. 다 늦은 밤 독서실도 끝난 시각에 집에 들어가면 그 때까지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엄마와도 실제 같이 있는 시간이 적으니 가끔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친구들과는 그런 것도 없다. 내가 잠들면 정신차리라며 깨워주고 깨면 왜 멍하니 공부 안하냐고 다그쳐 주고 공부하면 너 또 공부 안하고 딴 생각하는 거 아니지 하고 날카롭게 내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는 기집애들. 나에게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말을 듣기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 지레 짐작하는 그네들. 이 애들이야 말로 내 24시간 고등어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것들이오!
새 학년이 되니 고등어들의 마인드도 바뀌었다. 예전엔 야자시간이 이렇게까지 숙연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요즘은 계속 학구열이 후끈 달아오르는구먼~ 모드다. 너도나도 추가 자습을 신청하고 주말에도 학교에 남을 것을 원한다. 학교는 나와 맞지 않아를 외치며 학원, 과외, 독서실을 떠돌던 아이들도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원한다. 나도 그렇게 되었다. 덕분에 다니던 학원도 끊고 학교에만 충실하게 되었다. 절대로 적응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곳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아져서 정~말 뿌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의 일이겠지. 저 복잡복잡 틈바구니에서 내가 유유히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등어가 되어야겠지. 힘들더라도 힘내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