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년 중국사 속의 사랑과 욕망
김문학 지음 / 지식여행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오천년 중국사 속의 사랑과 욕망' 사실 제목이 책 내용에 비하면 많이 얌전한 거다.

한마디로 '중국의 성문화'를 다룬 책이다. 고대 중국사에서부터 현재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헌과 야사속에 등장하는 중국의 성문화를 얘기한다. 보통 우리가 일본의 성문화는

개방적이고 문란하다고 생각하고, 한국과 같은 유교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중국은 성에

다소 보수적이라고 알고있다. 하지만 저자 김문학은 이러한 선입견을 과감히 부정한다.



사실 유교문화에서 성을 금기시하고 금욕을 강조한다는 말도 틀리다고 한다. 초창기 유교의

거장인 공자나 맹자는 성을 금기시하지도, 퇴폐적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군자라면,

성에 대해서도 개방적이고 즐겨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훗날 후학들인 주자에 이르러서 주자학이

유학의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중국도 성을 금기시하고, 천하게 여기게 되었으며 우리나라도

이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상당히 재밌는 책이다. 왜냐.. 쉽사리 말하기 힘든 성을 다룬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문화가 그대로 고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줬다는걸 감안하면 책속의 중국의

성문화는 곧 우리의 성문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춘화, 일부다처제, 결혼과 재혼, 기생과 창녀,

동성애와 남창, 방중술등등...

다만 한가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고대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 시절의 왕과 처첩문화를 얘기하면서 황후, 4부인, 9빈, 27세부, 81어처

라는 대목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말 그대로 왕에게는 황후 한명과 4명의 부인, 9명의 첩, 27명의

여자와 81명의 공식적인 부인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즉 공식적인 처첩만 120명에 달했고, 그 외에도

자잘하게 황제의 시중을 들고, 눈이 맞아 잠자리까지 갖게되는 시녀, 궁녀가 3~4천명에 달한다는

설명 부분이다. 주나라 시절에는 후궁의 질서유지를 위해 황제와 동침하는 순서를 미리 정해두고

있었는데 천제와 비빈의 동침도 음력의 변화주기에 맞춰 이루어졌다. 즉 월초부터 15일까지는 지위가

낮은 비첩부터, 16일부터 말일까지는 역으로 지위가 높은 황후부터 비첩의 순으로 황제와 동침했다.

황후와 4부인에게 최우선권을 주었고, 9빈 이하는 황제가 하루에 아홉명씩 상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황제가 한달 30일 내내 비빈들과 동침을 하고 섹스를 했다고 설명하면서 그래서

젊은 왕들이 20, 30대에 요절한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궁녀와 비빈들이 3천명이 됐는지도 의문이다. 이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한반도의

작은 나라였던 백제도 멸망할 당시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거느리지 않았느냐고 예를 들지만

백제의 삼천궁녀설이 신라가 의도적으로 조작한 얘기라는 설이 근래들어 인정받고 있는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대국인 중국이라고 하더라도 삼, 사천, 내지는 일각에서는 후궁이 수만명이었다고

하는 점을 선뜻 수긍하기 힘들다.



이와같이 중국의 고대와 근대를 오가며 성문화를 탐험해보는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항상 이같은 글을 읽을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 당시와 비하면 요새 여성들의 인권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동양이 서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낮았다고 볼수도 없을 것이다. 같은 시대를 비교해보면 서양에서의 여성의 인권은 동양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 나아보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오천년 중국사 속의 사랑과 욕망' 중국의 역사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속 성문화를 보는듯 해

의미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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