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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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밀림무정은 오랜만에 박진감 넘치는 사나이들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책 표지에 주인공 산의 모습에서 강한 카리스마가 넘친다. 사나이 중에 사나이라고 할까? 사실 이 책을 읽느냐고 며칠 동안 블로그에 들리질 못했었다.

호랑이 중에서도 신령하다는 백호 ‘흰머리와 개마고원의 포수 중 포수인‘산’사이에 7년여에 걸친 쫓고 쫓기는 싸움이 소설 전반에 걸쳐 팽팽한 긴장감을 더해 독자로 하여금 한번 잡은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물론 소설이기는 하지만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산천의 모든 동물들을 떨게하는 밀림의 포식자 호랑이, 그 중에서도 민속신앙의 대상이었던 백호의 치밀한 사냥 모습은 과연 백수의 제왕이라 할 것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빌려온 사진이다. 흰 눈을 배경으로 위용을 자랑하는 백호)

하이란강(海蘭江)상류에서 백호와 대결을 벌이다 큰 부상을 입고 경성에서 세 차례나 큰 수술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 소설의 주인공 산이 아버지 웅을 죽게한 백두산의 왕대 백호 흰머리와 운명의 대결을 위해 함흥행 열차를 타고 가는데서 소설은 시작한다.
산은 그 열차에서 호랑이 연구에 미친 주홍이라는 여자를 만난다. 주홍은 호랑이 연구를 위하여 연해주의 시호테알린 산맥과 아무르강에서 반년간 조선 호랑이를 찾아다닌 적이 있을 정도이다. 일제는 이 땅의 호랑이, 늑대, 곰 등 맹수들을 害獸로 규정하고 이들을 멸종시키기 위해 해수격멸대(害獸擊滅隊)를 조직하여 개마고원일대의 호랑이를 멸종시키고 있었다. 때마침 주홍은 조선호랑이를 보존을 목적으로 해수격멸대의 히데오대장을 만나러 함흥으로 가는 중이었다. 주홍은 조선총독이 딸과 같이 여기며 뒤를 봐준다.

흔히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한다는 밀림은 맹수들이 없어야 평화가 유지된다 생각하나 작가는 반대이다. 밀림에는 맹수가 있어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맹수끼리는 세력권이 겹쳐도 맹수끼리 맞붙어 싸우는 경우는 드물다. 맹수들은 자연이 정한 서열에 따라 서로 조심하고 피한다. 따라서 호랑이가 건재하면 밀림은 고요하고 호랑이가 다치거나 죽으면 밀림은 불안에 떤다. 마치 인간사에도 강자가 세상을 평정하면 평화가 오고 강자가 사라지면 春秋戰國時代가 오는 것과 같다. 밀림에서는 호랑이가 이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듣기에 따라 맞는 말로 들린다.

주인공 산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웅에게서 사냥 기술을 익힌다. 타고난 체격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냥기술로 산은 당대 최고의 포수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런 산이 개마고원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해수격멸대 대장 히데오는 산이 해수격멸대 대원으로 들어와서 흰머리 사냥에 참여하기를 요구하지만 산은 거부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겠다고 한다.

산과 주홍, 그리고 히데오 사이는 흔히 소설에 등장하는 삼각관계로 주홍의 최종 선택이 누구일지 읽는 사람의 흥미를 돋군다. 여기에 산의 동생 ‘수’는 흰머리에게 오른팔을 잃으며 흰머리에 대한 복수심과 보상금 때문에 해수격멸대장 히데오에 협력하며 형인‘산’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한다. 또 웅이 친구인 쌍해가 후반에 등장하여 산과 행동을 같이 한다.

밀림무정 1,2권의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1권에서는 이들이 백호 흰머리를 쫓으며 목숨을 걸고 벌이는 여러 번의 대결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잠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어찌보면 흰머리가 이들과의 최후의 일전을 위하여 백두산으로 유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작가는 묘사한다. 드디어 백두산에서 이들은 숙명의 대결을 앞두고 1권은 마친다.

2권은 시작하자마자 흰머리가 산과 쌍해에 의해 생포되는 바람에 소설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그러나 생포과정이 산으로서는 당대 최고의 포수라는 명칭에 맞지 않는 정당한 승부의 결과가 아니라며 흰머리를 풀어주려고 하나 해수격멸대장 히데오는 생포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흰머리를 치료한 후 창경원에서 일반에게 관람하게 하겠다며 경성으로 이송한다. 이후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흰머리를 풀어주어 개마고원으로 돌려보내려는 산과 이를 막는 히데오 사이에 대결이 이야기의 줄거리로 바뀐다.

민속신앙의 대상이라 민간에서 영물 취급을 받던 호랑이의 생태에 대하여, 그리고 포수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 간의 대결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가 한결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책 표지에 있는 다음 두 문장이 책을 읽고 난 후 가슴에 깊이 남는다.

“남자의 일생을 걸고 무너뜨리고 싶은 적(敵)이 있는가?”
“남자의 일생을 걸고 사랑하고 싶은 적(敵)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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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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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굉장히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제목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았다는 제목은 소극적인 표현이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그들은 해야 할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 아니면 해야 할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감추었다 라는 의미가 아닐까? 아니 더 나아가서 속였다 라는 것이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솔직한 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을 한 이래 경제학에서 경제가 성장하려면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할 것이냐 아니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규제(계획)를 해야 하느냐의 해묵은 논쟁을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경제학 전문용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고 장하준 교수 특유의 대화체 형식으로 서술하여 경제학의 특별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서두에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그 유명한 장하준 교수도 역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상대방을 비판한 논리가 자기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같은 논리로 자기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기 때문이다.

흔히 좌파다 우파다의 구분 기준은 다양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성장과 배분 중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좌파다 우파다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어느 일면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무엇이든 양면이 있으므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성장정책을 쓴다고 하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분배만으로는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다. 분배없는 성장에 치윛다보면 결국엔 사회계층간 갈등을 일으켜 성장이 발목 잡힐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것이며, 반대로 성장없는 분배는 분배할 것이 없으므로 원천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 역시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좌파는 분배만을, 우파는 성장만을 주장하는 것이라 착각들을 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라는 이 책도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의 관점의 차이일 뿐 아닐까? 다시 말해서 어느 정책이든 어느 이론이든 부작용 내지 반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평생을 경제학을 전공하고 연구한 저명한 학자가 아닌 무명의 필부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하나하나 짚어보겠다.

먼저‘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주제이다. 시장이 원활히 돌아가려면 각자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야 시장은 원활히 그리고 합리적으로 돌아간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저자는 시장에는 여러 형태로든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또 그런 제한이 있어야 하므로 자유시장이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의 개입을 막아 시장을 보호하려는 자체가 자유시장이란 개념에 반하는 것인데도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깨어나라고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라 한다. 그러면서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근거를 노동시장을 제시한다. 노동시장을 완전 자유화하면 어린아이를 비롯한 약자를 보호할 수 없고 나아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어느 나라나 노동시장에서 어린이와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노동시장의 자유화를 규제하고 있는데 이런 규제에 대하여는 자유주의자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치 활극영화에서 날아다니는 장면은 실제로는 피아노 줄에 매달려 촬영한 것인데, 이와같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시장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건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힘의 균형이 깨져있는 국가간의 자유무역이 과연 공정한가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공정하지 않다. 여기서 반문하고 싶은 것은 자유국가라 할 때 그 나라의 국민들은 아무런 제약없는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는가 이다. 아니다. 자유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자유, 더 나아가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공권력으로 개입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런 나라를 자유국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시장에 자유를 주면 최적의 상태로 간다는 주장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헤겔의 변증법 正反合의 이론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그리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막대한 대가를 치르어야 한다. 설혹 막대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리 될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나 그건 현실적으로 요원한 것이다. 또 그리되가는 과정상 부작용으로 그런 최적의 상태는 아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자유시장이라 해도 부작용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시장체제하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폐해조차 시장에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하는 저자의 말에는 선뜩 동의하기 곤란하다. 저자는 여러 경제상황 수치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한쪽 면만 침소봉대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아마 다른 시각에서 찾아보면 거기에 맞는 경제상황 수치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하면 안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주주가 유한책임을 지게 되고부터는 또 주식시장에서 주식의 거래가 자유화 되고부터는 사실 주주들은 기업의 장기적인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단기적인 배당에만 관심이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면에서 기엄에 유익되더라도 당장 배당에 관련이 없다면 경영진을 불신임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경영진들은 회사가 어찌 되든 당기이익 창출에만 관심이 있다. 그런  기업은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

경영진의 진퇴는 최종적으로 주주들이 결정한다. 그런데 단기 배당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들 때문에 기업의 장기적 생존이 도외시 되지 않도록 배당에 각종 규제를 가하는 것은 자유시장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에는 특정산업이나 지역의 발전을 위한 각종 振興法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진흥법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그건 진흥보다는 규제내용이 더 많기 때문이다. 즉 특정산업이나 지역의 발전을 진흥시키려면, 먼저 진흥시키는데 있을 수 있는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하여 사전에 철저한 규제를 규정하고 있다.

이와같이 진흥법에 진흥규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을 억제할 규제조항이 있는 것처럼 기업의 배당에도 기업자유에 맡기자만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이 말은 같은 일이라면 생산성은 같은데 잘사는 나라는 못사는 나라에 비하여 받는 보수가 많다는 의미로서 못사는 나라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증거라고 한다. 즉, 노동시장의 자유가 보장되었다면 못사는 나라 노동자가 대거 잘사는 나라로 이동하면 임금의 격차가 해소될 수 있는데 잘사는 나라에서 이민을 규제정책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잘사는 나라들은 자기들을 위해서는 지유시장주의에 반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못사는 나라에게는 자유시장 정책을 쓰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사는 나라 안에서도 같은 질의 노동이라도 임금격차가 있다. 심지어 같은 직장에서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운전기사는 일정한 숙련도에 이르면 아무리 오래 근무하여도 일의 質은 같다. 그러나 현실은 오래된 운전기사는 같은 숙련도에 있는 근속연수가 짧은 운전기사보다 임금을 더 받는다. 이는 일종의 근속년수에 따른 임금의 격차 때문이다.

같은 질의 노동이면서도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의 격차를 두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나이든 노동자일수록 부양가족이 많다, 기업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 등등의 이유이다. 그것이 합리적인지 여부의 판단은 여기서 유보하고 이것이 현실이다. 같은 나라, 같은 직장에서도 이러할 진대 나라가 다른데 임금이 같은 수 있을까? 임금은 생산성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그들이 말하지 않았다라고 할 수 있는가?

네 번째‘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라고 하는데, 가전제품이 여성들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촉진시킨 것은 틀림없다. 가전제품이 보급됨으로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노동력을 가정에 사장시키지 않고 사회로 끌어낸 공로를 어찌 과소평가할 수 있을까?

1970년대 스페인 교과서에‘라틴 아메리카에는 가정부가 없는 사람이 없다.’라는 예문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 문장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문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리틴 아메리카에는 가정부가 없는 사람이 없다면 가정부도 가정부를 데리고 산다는 말인가? 가정부도 가정부를 데리고 살 수 있도록 가정부들이 순번을 정해 서로 상대의 가정부가 되어주는 제도가 있다면 몰라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비판을 한다.

내가 어렸을 때 1950년대에 우리나라에는 소위‘식모’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의 파출부에 해당하지만, 그러나 지금 같은 시간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온갖 가사를 도맡아 하였다. 월급 같은 보수의 개념은 전혀 없었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식모가 시집을 갈 때 약간의 혼수를 해주면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 하던 시대가 있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먹는 입을 하나라도 덜자며 여유가 있는 도시에 사는 집에 딸을 식모로 보냈다.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래서 도시의 웬만한 집에는 식모가 있었다. 당시 TV드라마에도 식모가 자주 등장했는데, 특정지역 사람을 식모로 등장시킨다고 문제시하던 것을 나이든 사람이라면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우리 집 역시 그리 잘사는 편이 아닌데도 외가에서 그런 분이 와서 식모살이를 했다.

195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에는 썩 잘살지는 못해도 웬만한 집이면 가정부가 있었다는 의미이지 가정부도 가정부를 데리고 산다는 의미인가? 참으로 말의 의미를 곡해해도 이리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저자의 견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전제품이 여성을 가사에서 해방하여 사회로 끌어낸 공로를 어찌 과소평가할 수 있을까마는 그렇다고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변화시켰다고 함은 무리이다. 가전제품이 여성을 가사에서 해방시켰다면 인터넷은 우리를 단순업무에서 해방시켰다. 이런 인터넷의 놀라운 공로를 어찌 과소평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인터넷은 단순업무에서 해방시킨 정도라 아니라 국가의 기간 인프라산업이 아닌가?

다섯 째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다시 말해서 시장은 사람들의 이기적인 본성이 어우러져서 사회적 조화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따라서 지속될 수 있는 경제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존재라는 사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항상 최악의 행동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한다고 자유주의자들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에는 이기심 외에 도덕성, 희생정신 등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유감스럽게도 항상 최악의 행동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항상 최악의 행동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매슬로우(Maslow)가 주장한 인간의 욕망 5단계에서 보듯이 도덕성이나 희생정신은 이기심으로 필요한 것이 충족된 후에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처음부터 도덕성과 희생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극히 예외적이다. 따라서 시장을 움직이는 기본은 이기적인 본성이고 필요가 충족이 되면 도덕성과 희생정신에 의하여 이기적 본성에 의하여 흐려진 시장의 역기능이 순기능으로 바뀌어 진다고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일곱 번 째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라고 주장한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개발도상국가들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경제개발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경제침체 내지 경제적 재앙이었다. 성장률은 극히 미미했고 마이너스 성장을 하거나 국가의 보호를 받은 산업은 성장을 멈추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자유시장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극히 일부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선진국은 자유시장 정책을 시행하여 부자나라가 됐었기 때문이며 최근 들어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개발도상국일수록 좋은 성적을 올렸다.』 라고 자유주의자들은 주장하나 실제로는 지금의 선전 부자나라들은 과거 국가가 개입하여 보호무역과 정부보조를 한 결과 지금의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라고 한다. 즉 개발도상국가가 자유시장 정책을 써서는 부자나라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저자는 세계는 극심한 경제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홀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과 과거 1880년대 미국을 예로 들고 있다. 이 나라들은 자유시장정책이 아닌 철저한 국가가 개입하여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따라서 자유시장정책으로 개발도상국들이 부자나라가 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임에도 부자나라 선진국들과 세계은행이나 IMF 같은 국제경제기구들은 개발도상국가들에게 자유시장정책을 채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자유시장정책이 이미 경쟁력을 갖춘 자기들의 입장에서 유리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말은 원론적으로 맞다. 아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가 자유시장정책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것으로 화약을 들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려면 자유시장정책으로 가는 것은 맞다. 언제까지나 국가가 보호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부실화된 것은 관치금융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논리가 아닌 정치의 논리로 은행을 운영하였기 때문인 점은 누구나 아는 것이다.

다만 독자적으로 자유시장에서 경쟁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정부의 보호와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보호와 규제도 제대로 된 정부가 하여야지 아무 정부나 보호와 규제를 한다고 기업의 성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개발도상국가가 경제성장에 실패한 것은 자유시장정책때문이라기 보다 제대로 된 정부가 아닌 무능 부패한 정부가 보호한답시고 간섭한 것이 더 큰 원인이라 해야할 것이다.

여덟 번째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아무리 다국적기업이라해도 경영진이 누구냐에 따라 최종적인 결정이 국적의 영향을 받는 것은 구태여 논할 필요가 없다. 

아홉 번째, ‘탈산업화’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 허울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기초소재산업의 뒷받침이 없다면 그 나라의 경제는 사상누각이라 할 것이다. 센카쿠열도 분쟁에서 보여준 일본과 중국간의 태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기초종목이라할 육상이 전무한 나라는 결코 올림픽에서 우승을 할 수 없듯이 말이다. 미국 등 선진국을 보라. 그들은 공해산업을 개발도상국에 넘긴 것이지 알맹이 산업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탈산업화 하지 않았다. 다만 서비스업에 비하여 비중이 약간 감소했을 뿐이다.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제조업을 무시하고 서비스업으로 가는 것이 선진화라고 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다만 임금상승 등 악조건 하에서 알맹이 제조업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키느냐가 핵심이라 할 것이다.

열 번째,‘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한다. 맞다. 각종 통계수치로 잘살고 못사는 나라를  말하면 오히려 유럽의 작은 나라가 잘사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나는 가끔 미국보다는 뉴질랜드나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국제경찰이니 뭐니 하면서 국제분쟁 여기저기에 쓸데없이 끼어들 필요가 없이 자기나라만 잘 추스르면 되니까.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란 점을 알고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표현을 달리 하여야 한다. ‘마국은 세계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이다.’라고… 요즘 여기에 중국이 끼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누구도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 하지 않듯이 말이다.

열한 번째.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저자의 의도는 현재 아프리카가 가난한 것은 아프리카의 잘못보다는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했던 선진국의 탓이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결론적으로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라고 생각한다. 과거는 제쳐두고 지금 아프리카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종족간의 갈등, 즉 내란과 민주화되지 않은 독재정권이 가장 큰 원인이다. 물론 아프리카 원주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배했던 나라들이 임의로 국경을 정한 것이 근본 遠因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극복할 의무와 책임은 지금의 아프리카에 있다.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하는 것이다.

열두 번째,‘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정부도’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물론 정부라 하여 유망주를 고를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주제는 더 이상 논할 의미가 없다. 다만 저자도 지적하였듯이 개발도상국가에서 추진한 경제정책 중 상당수가 ‘흰 코끼리 프로젝트’였던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세계은행 등에서 개발도상국가를 지원할 때 능력이 없다 판단되는 개발도상국가에 제한을 가한 것이지 모든 개발도상국가에 대하여 일괄적으로 그리 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저자의 글을 뒤집어 읽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열세 번째,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소위 부자감세정책이라 부르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당연한 말을 새삼스레 한 의도를 모르겠다. 투자는 돈벌이가 된다고 확신할 때 하는 것이지 단순히 돈이 있다고 투자를 할 사람이 있는가? 그건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투자는 누가 하는가 이다. 없는 자가 투자할 수 있는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평소 부자가 돈을 벌게 해주어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주장한다. 단, 부자가 그렇게 번 돈을 선순환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하고 해야지 단순히 부자가 돈만 벌게 해서는 오히려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감세로 인하여 늘어난 소득을 투자하게끔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부자감세’는 분명히 잘못 된 것이다. 따라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은 맞으나 이를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결로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

열네 번째,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보수는 참으로 다루기 힘든 부분이다. 받는 자 치고 많이 받는다 하는 자 없고 주는 자 치고 적게 준다고 하는 자 없다는 말이다. 보수가 꼭 생산성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생각이 너무 단순하다고 본다.

축구, 야구 등 인기종목의 프로선수들의 연봉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본다면 이해가 것이다. 특히 본국 선수와 소위 용병이라는 외국선수의 연봉 수준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보수의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성이지만 그 외 고려사항은 너무나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열다섯 번째,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우선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부터 정의를 하여야겠다. 기업가 정신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도전정신, 창의성, 혁신(Innovation)이라 생각한다.

이런 정신으로 기업이라는 적지않은 조직을 이끌어가는 건 아무나 하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선진국일수록 기업을 경영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국민의 대다수가 보수를 받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가난한 나라 사람일수록 먹고 살기 위해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다고 한다. 단순히 먹기 살기 위해서 이것저것 닥치는데 일을 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인가? 물론 후진국은 아무리 기업가 정신이 투철해도 모든 제도가 선진국보다 못하여 기업을 경영하기가 더 어려운 점이란 것은 인정하지만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열여섯 번째,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에 관여하는 것을 일체 삼가야한다라 주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급적이라고 하면 모를까 일체란 말이 있을 수 있는가? 저자의 독선 내지 왜곡된 생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명제는 맞으나 저자의 설명을 읽어보면 저자의 편견이 곳곳에서 들어난다.

열일곱 번째,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역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우리나라 교육과목에는 사회에 나가 생업에 종사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것이 많이 있다. 은행원에게 생물이나 물리 화학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반대로 엔지니어들에게 문학이나 역사 등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얼른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종사한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과목을 학교에서 배웠지만, 이것이 업무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떤 일을 한다고 그 일에 대한 지식만 알아야 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교육은 기본이다. 국민들이 할 수만 있다면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 그건 좁은 시각에 빠지지 않고 안목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 교육의 병폐는 대학에서 학생선발시 변별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과목별로 깊숙이 들어가는 전문지식을 요구하는데 있다. 그리고 교육을 꼭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저자의 생각에 깊은 우려를 보낸다.

열여덟 번째,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 명제는 쓴 이유를 모르겠다. 루이 12세가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했는데. GM이 곧 미국이라면 모를까 GM에 좋다고 미국에 좋은 것이라 할 사람이 있는가? 그것도 항상이란 말을 써가면서 말이다.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열아홉 번째,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 살고 있다.’
무정부주의자라면 모를까 정부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는 한 정부가 국정 전반에 대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분야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국민들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징수하면서 말이다. 다만 각자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이어야 하는가의 논쟁만 있을 뿐이다.

스무 번째,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동의한다. 물리적 평등이 평등이 아닌 것처럼 단순한 기회의 균등은 기회의 균등이 다.  기회의 균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력의 균등이라 생각한다. 누구는 자동차를 타고 누구는 손발을 묶어놓고 뛰라고 한다고 기회의 균등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의문은 자유주의자들이 과연 이런 것까지 공평하다고 주장하는지 나는 들어보질 못했다.

스물한 번째,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불필요한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지당한 말씀이다. 이론이 없다. 단, 저자는 큰 정부라 하여 불필요한 조직을 가지는 것까지 말하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그건 낭비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역할만 한다면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가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스물두 번째, ‘금융시장은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금융이란 이름이 붙는 업종에는 정부의 철저한 감시 감독 그리고 규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일반 업종과 달리 금융이란 자기자본금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남의 돈을 받아서 운영 관리하는 특수한 업종이다. 은행, 보험, 증권, 공제, 상조 등등.

금융업종은 적자를 내거나 파산이라도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 예탁자에게 나아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가히 핵폭탄급이다. 따라서 상품 하나하나도 정부의 감독이 있어야 한다. 다만 그러다 관치금융이 될까 우려가 되지만 그래도 감독 감시 규제는 철저하여야 한다. 그리하여도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이 부분은 자율에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스물세 번째.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좋은 경제 정책이란 말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유능한, 훌륭한 이라면 모를까 좋은 경제학자라는 표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법을 전공한 사람은 유능한 참모는 될지언정 최고지도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건 무슨 일을 하려면 법 규정을 따지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이 말을 경제학자 역시 이것저것 아는 것은 많은데 정작 필요한 결단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역시 결단을 하는 최고 지도자는 specialist보다는 generalist이어야 한다는 말과 의미가 상통하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장황하게 늘어놨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책의 내용은 저자의 name value에 걸맞지 않는다 할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제대로 인용한 것인지 자신의 주장에 필요한 부분만 선별한 것은 아닌지 나로서는 심히 의문시 된다. 또한 모든 경제현상에는 양면이 있는데 어느 일면만 부각시킨 점이 적지않아 적이 실망스럽다.

이 책은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좋은 책이란 점에는 동의하는 부분이 많으나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자유주의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으로는 선뜻 좋은 책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그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주의자들에게 편견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책 표지에 누구의 초상인지 모르나 입에 검은 테이프를 붙인 모습은 그들이 알고도 고의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여 책을 발간하면서 이토록 상업주의에 물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책을 덮으면서 해보았다.

다행스런 점은 저자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기 위하여 쓴 책이라는 한 것은 그나마 이 책을 가치있게 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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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빈 강빈
김혜경 지음 / 문학스케치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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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 간 여인, 그래서 불행한 삶을 산 여인, 조선이 아닌 시대에 태어났었다면 한 시대를 주름 잡았을 여인,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 멍에가 된 여인, 그는 강빈이다.

이 땅의 여인들은 엄격한 가부장제를 토대로 한 女必從夫 三父從事의 속박에 갇혀 순종을 미덕으로 알고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원래 이 땅의 여인들은 그러하지 않았었다.

신라에서는 여왕이 셋이나 나왔고, 백제의 시조는 온조라 하지만 사실 백제를 세운 건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이다. 또 고려시대에는 성종이 거란의 협박에 나라의 일부를 떼어주자고 나약한 소리를 할 때 분연히 일어나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걸출한 여인 천추태후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여인들은 바깥출입조차 할 수 없었고 단지 여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뜻을 펴볼 생각도 못하고 스러져갔다. 그건 전적으로 유학을 숭상한 영향 때문이었다.

조선의 역대 왕 중에서 가장 못난 왕을 들라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인조라고 한다. 하기야 신하들의 등에 업혀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으려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조는 원래 아들조차 믿지 못하는 천성이 옹졸한 자이었다. 결국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자가 서인과 북인이 세력을 다투는 가운데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는바, 이것이 인조 자신은 물론 조선의 큰 불행을 불러왔다.

인조는 국제정세에 어두워 당시 대륙을 호령하는 신흥 청나라를 배척하고 망해가는 명나라를 받들다가 丙子胡亂을 자초하였다. 그리하여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三拜九叩頭를 올리는 우리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고, 자신의 후계자인 소현세자를 청나라의 인질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못난 군주였다.

강빈은 그런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의 빈이다. 강빈은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에 잡혀가 8년간 볼모생활을 했다.

강빈은 소현세자가 비록 볼모로 잡혀갔지만 조선의 대표자로 청나라와 외교를 하는 사이에 세자관의 살림을 직접 맡아 재정을 직접 조달하였다. 물론 병자호란으로 피폐해진 조정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이기도 하였지만 강빈의 진취적인 사고가 더 큰 계기가 되었다.

강빈은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서 교역을 하여 큰돈을 모아 재정적 독립을 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속환하였고, 다시 이들로 하여금 농장을 경작하게 하여 필요한 곡식을 조달하는 등 당시 조선왕가의 내명부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하였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소현세자는 청나라 대신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

또 청나라가 어떻게 부강한 나라가 되었으며 명나라는 왜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특히 소현세자와 함께 발전한 청나라와 서양 문물에 관심을 가져 그들과 접촉하면서 장차 귀국하여 강한 나라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드디어 볼모가 풀려 귀국한 소현세자와 강빈은 이런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고자 하였으나, 삼전도의 치욕만 생각하며 오로지 청나라를 배척하려는 옹졸한 인조에 의하여 좌절되고 말았다. 심지어 인조는 소현세자가 자기를 밀어내고 보위에 오르는 것으로 의심을 하기까지 하였으니 이 어찌 조선의 비극이 아니겠는가?

결국 귀국 두 달 만에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역사에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소현세자의 죽음 배후에는 인조가 있다고 한다. 그건 소현세자의 병명이 학질이라고는 하나 인조가 보낸 의원의 침을 맞고 돌연히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소현세자의 죽음은 최소한 인조의 방조내지 묵인이 있었을 것이라 한다.

더욱이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에 빠진 강빈마저 인조는 강빈이 소현세자를 독살하고 왕실을 저주한다는 죄목으로 세자빈 자리에서 쫓아내더니 다음 해에 사약을 내려 살해한다. 거기에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어 두 아들을 죽게 한다. 그리하여 소현세자와 강빈의 죽음의 배후에 인조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부자간에 아들마저 죽음으로 몰아내니 권력이 무엇인지 무서운 생각이 든다.

조선의 역대 왕들은 세자를 포함하여 외국에 나가 발달된 문물과 제도를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왕이 곧 나라인 당시의 특성상 왕이 외국에 나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현세자와 강빈은 비록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지만 그곳에서 8년 동안 있으면서 청나라와 서양 등 외국의 발달된 문물을 접한 조선조 최초로 세자요, 빈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소현세자가 보위에 올랐다면 조선은 후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보다 훨씬 앞섰을 것이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비운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안타깝다.

그랬더라면 정조에 앞서 조선의 개혁군주가 될 수 있었을 소현세자와 여걸 강빈이기에 그분들의 죽음이 더욱 슬프게 한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한 나라를 이끌어갈 최고 지도자의 자질은 어떠해야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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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天) 1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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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앞날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점성술이 성행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것은 앞날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앞날을 알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늘을 끌어안는다는 포천(抱天), 그건 하늘의 뜻을 품는다는 것이고, 하늘의 뜻을 실천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권력자들은 하늘의 뜻을 알고 싶어 한다. 그래야 그들이 앞길이 평탄하여 오래 집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이시경이 했다는 예언에 관한 것을 실제 인물과 연관시켜서 만화로 엮은 점이 이 책을 읽는 흥미를 더 하게 한다.

명나라의 퇴조와 청나라의 등장, 사도세자의 죽음, 대원군과 명성황후간의 집안싸움,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이 이시경이 한 예언에 있다는 앞부분은 책을 단순에 읽게 한다.

특히 임진왜란시 몽진하는 선조임금이 캄캄한 밤중에 비가 쏟아지는 임진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불을 밝히기 위하여 율곡선생의 정자에 기름칠을 하도록 한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쉬게 한다.



우리나라에도 정감록이란 대표적 예언서가 있다. 허나 위서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논란은 아마 모든 예언서가 다 같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도대체 앞날에 대하여 어떤 예언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었다. 그러나 지나간 일에 대한 것만 있어 적이 실망을 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내가 저자의 의도랄까, 책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읽다 흥미를 잃어 책을 덮지 않도록 시각효과를 살려 만화로 재치 있게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만화는 어린이들만 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씻게 한다.

다음으로 책의 내용인데, 예언이라 하여 높은 사대부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보다는 이 나라 밑바닥에서 아무 힘도 없는 민초들의 삶을 통해서 해학적으로 풀어간 점이 좋다.

마지막으로 “예언이란 무엇인가?” 결국 미래를 보는 통찰력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가지게 하는 점이 이 책을 보는 재미라 할 것이다. 그 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예언과 역사적 사실을 기존과 다른 각도에서 만화로 엮어낸 작가의 신선한 발상에 찬사를 보내며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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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박정호 지음 / 나무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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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가 나에게 취미를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여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여행을 다녀본 곳은 극히 적다. 특히 해외여행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여행이 취미라고 한다.

나는 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실제로 그리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말이다.

나는 TV에서 여행에 관한 프로는 거의 빼놓지 않고 본다. 또 여행에 관한 책도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는다.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것을 TV와 책을 통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현지를 여행한 사람보다 세계 곳곳을 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김찬삼의 세계무전 여행기’를 읽고 나서였다. 그때 크면 세계 여행을 하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지금도 마음만은 매일매일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읽지 않을 수 있으랴. 이 책은 제목부터 도전적이다.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현재 지구상의 유일한 超强大國 미국일까? 세계문화재의 寶庫 유럽인가? 아니면 혹시 경치가 아름다운 幻想的인 남태평양을 말하는 것인가?  궁금증에 책을 받아보자마자 단순에 읽었다. 그러나 책을 펴는 순간 나의 이런 상상은 산산이 깨졌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곳은 다섯 곳이다. 첫 번째가 터키와 시리아 그리고 요르단, 두 번째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 세 번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 번째는 아프리카의 세네갈, 마지막으로 중국 신장자치구의 타클라마칸 사막.

모두 내 예상을 캔 곳이다. 그리고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여행하기엔 너무나도 불편한 곳이라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책을 받기 전의 예상과는 다르지만 나에게 여행을 갈 기회가 온다면 꼭 가보고 싶던 곳이라 반가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여행기와 다른 점은 단순히 여행지의 겉모습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저자 특유의 생각을 가미하여 잘 정제된 문체로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할 것이다. 또 다섯 곳의 여행지마다 특유의 주제를 부여한 것도 신선함을 준다.

 

❶ 고대의 시간과 마주 하는 곳 - 터키, 시리아 그리고 요르단.

우리나라와 터키 사람들은 흔히 서로를 ‘형제의 나라’이라 하며 상대국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아마 6.25 때 참전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주어서 그런 모양이다.

동서양을 잇는 이스탄불에 첫발을 디디며 저자가 느끼는 마음, “어느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홀로 선 막막함, 현실적인 목적과 욕망을 벗어버린 자유가 주는 충일감, 반면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바로 이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터키라 하면 누구나 현대 속에서 고대를 그대로 간직한 곳, 카파도키아를 떠올릴 것이다. 그곳을 저자는 지구의 한 공간이라고 믿기엔 너무나 고요하며 현란한 곳, 현실이라고 하기엔 기괴하고 환상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이상한 나라 앨리스같다고 표현한다.



터키와 달리 시리아와 요르단은 생소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소원한 느낌이 드는 나라이다. 한때 앗시리아 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시리아의 옛 城에서 저자는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 했던 비정한 인간의 시간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아랍국가에 비하여 낙후된 나라가 되었지만, 그래서 이웃 국가인 요르단처럼 미국에 붙어서 형제를 배신하고 구걸하지 않는다는 자부심만은 아주 강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시리아인들에 대하여 예전에 막연히 가졌던 이질감이 호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 그래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 요르단에도 이런 역사가 있었나 새삼 놀라울 뿐이다. 사방이 험준한 벼랑과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새조차 힘겹게 날아갈 수밖에 없는 도시 페트라는 아랍계 고대유목민이 세운 도시이다. 페트라로 들어가는 길은 외줄기 협곡이라 한명이 백 명도 막아낼 수 있는 지형이라 한다. 막아내기에 좋다는 것은 갇히기도 쉽다는 역설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생물이 살 수 없는 사막에서의 체험은 요르단 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이라 한다.  

 

❷ 길, 그 선택의 순간 -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룬 여행기는 이번으로 네 번째 읽는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읽을 때마다 별로 특별한 길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그리로 몰리는지 신기하다.

한 달여 넘게 걷는 산티아고 가는 길…
홀로 또는 여럿이서 자유롭게 걷는 산티아고 가는 길…



그렇게 걷다보면 결국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과 대화를 하게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산티아고 가는 길, 순례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남부 작은 마을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대서양 연안의 산티아고까지의 먼 길을 떠나며 갖는 두려움도 걷다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긴 여정에서 지친 몸과 마음의 고단함으로 중도에 포기하고픈 유혹을 이겨내어 삶에서 자신감을 갖게 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여럿이 걸으면서 나눔과 도움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게 하고, 오로지 걷는 것에만 몰입하므로  때론 명상을 통해 지나온 세월에서 자신을 옥죄이던 모든 것을 떨어 버릴 계기를 만드는 등, 걷는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하여 얻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이리라.

 

❸ 여행중독자의 로망 -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 책은 유럽의 중세 문화유산하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에만 있는 줄 알았던 무지를 일깨워주었다. 이베리아반도가 결코 유럽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이라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마주쳤던 곳, 그리하여 두 이질적인 문화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알람브라 궁전은 꿈의 궁전이라 한다.



안달루시아에 껍데기만 남은 마지막 이슬람왕국의 무하마드 12세는 이슬람 왕국의 멸망보다는 알람브라 궁전을 잃는 것을 더 슬퍼했다고 할 정도이니 이 궁전의 아름다움은 이루 표현할 수 가 없다.

많은 문학인, 예술인들이 스페인을 사랑했지만, 그 중에서 헤밍웨이를 첫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스페인과 그가 스페인에 남긴 흔적도 여행객들이 스페인을 찾게 하는 요인이라 할 것이다. 

 

❹ 노예무역의 슬픈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의 관문, 세네갈,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사람을 사고파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있을까? 노예무역의 아픔이 있는 곳, 세네갈.

아프리카인들은 잡아 가두고 노예무역을 하였던 고레섬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배로 과 20분 거리에 있다. 고레섬으로 가는 사람들의 반은 백인 관광객이라 한다. 자기들의 조상이 저지른 죄악을 이젠 관광객이란 이름으로 찾아와서 돈 몇 푼 떨어트리고 가는 현실이 기가 막히다.

고레섬에는 흑인 남녀 둘이 사슬을 끊고 서로 부등켜안은 조각상이 있는데, 이 앞 비석에는 “사람들은 이곳을 단지 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섬이 아니라 영원한 자유의 정신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고 한다.



얼마나 피맺힌 절규인가? 빛조차 들지 않는 방에 수백 명씩 가두어 두었던 곳, 너무니 비좁아 그 자리에 선 채로 똥과 오줌을 누고 잠들어야 했다는 곳, 악취가 진동하고, 노예로 팔려가기를 기다리다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간 아프리카인들의 원한이 그대로 배어 있는 곳.

납치되어 가족과 생이별한 이들이 고레섬을 빠져나가는 길은 죽거나 노예로 팔려가는 것뿐이라 했다.

비록 지금은 노예무역의 잘못을 반성하고 폐지하였지만, 이들을 못살게 굴었던 나라들은 지금도 세계를 호령하고 있으며, 고통의 받은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또 다른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몇 년 전 월드컵에서 세네갈이 과거 자신들의 종주국 프랑스를 이긴 적이 있는데, 그때 환호하는 세네갈 국민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였었다. 이방인이 그러할진대 세네갈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동물들에게 가장 위협적이고 치명적으로 위험한 동물은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을 훑으며 마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❺ 비움 혹은 채움 - 타클라마칸사막.

사막이라 하면 흔히 모래를 생각하지만 사막이라 불리는 곳이 꼭 모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타클라마칸 사막을 제외하고는 세계의 사막이 불리는 곳 대부분이 돌산과 바위, 황무지로 되어있다고 한다. 더구나 사막은 으레 뜨거운 곳이려니 했는데 전체 사막의 40%만이 그렇고 겨울이나 추운 사막이 60%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막은 생명이 살기에는 지극히 부적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타클라마칸이란 이름은 위그르語로‘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당나라의 현장법사, 신라의 혜초, 그리고 수많은 무역상들이 지나간 곳이다. 현장법사는 ‘대당서역기’에 “행인들이 지나간 뒤에는 어떠한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으니, 사람들은 왕왕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내왕하는 사람들은 죽은 자가 남긴 해골을 주워 모아 길 표지로 삼는다.”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지금은 타클라마칸 사막에 고속도로가 뚫리어 트럭으로 횡단을 하고 곳곳에 물을 끌어들여 개간을 한다하니 인간의 능력이 무섭게 느껴진다.

 나는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온다면 중앙아시아를 가고 싶다. 이 책에서 소개한 다섯 곳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고 싶다. 화려한 관광지보다는 인간에게 극한상황을 강요하는 곳이기에 그렇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저자는 참 행복한 삶을 살고 있고나 무척이나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을 동경해 출장을 업으로 삼는 일을 직장선택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아예 그런 직장마저 그만두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자로 살고 있으니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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