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4월 11일, KBS스페셜시간에 『수단의 슈바이처, 쫄리 신부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 프로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앞날이 보장된 의사이면서 의사로서 그 삶을 버리고 사제가 되었고, 사제가 되어서는 역시 안일한 사제의 길보다는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땅, 아프리카의 오지 중에 오지 불모의 땅, 수단의 남부지방 톤즈에서 聖者의 삶을 살다가 47살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에 대한 프로였다.

그 프로를 보고 그 분이 유일하게 지었다는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구입하여 읽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에 도움은커녕 해만 끼치다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凡人들이 감히 쳐다보기에 너무나 눈부신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기고 가는 사람이 있다.  

분명 수단의 땅이면서 그곳에 가려면 자기나라의 首都가 아닌 옆 나라 케냐를 통해야 갈 수 있는 곳, 그래서 모든 생필품 역시 케냐에서 조달하여야 하는 곳, 南수단의 오지 톤즈. 그곳에 2001년 한국인 신부가 나타났다.

가톨릭 대학 시절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곳, 어려운 곳에 가서 봉사하겠다던 결심을 실천하고자 케냐를 찾았으나 그곳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낫다고 하여 오랜 내전으로 얼룩진 수단의 남부지방 톤즈를 그의 사역지로 정하고 찾은 것이다.

그 지방의 열악한 사정은 말로,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섭씨 45도에서 5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기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병원은 물론 교육 등 사회기본시설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 무엇보다 종족간 불신과 증오로 가득 찬 곳, 아무리 봉사도 좋지만 어찌 그런 곳을 택하셨을까 읽을수록 나로서는 존경스럽다기보다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석 신부가 그곳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의료혜택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는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짓는 일이었다. 1년여 만에 병원을 짓는 일을 마무리할 때쯤에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노는 젊은이들을 위해서였다. 성당은 맨 나중에 지었다.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그곳에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손만 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이라며 눈물과 감동 없이는 읽을 수 없는 8년 동안의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그런 그가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린 줄도 모르고 봉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의 사정을 알리고 필요한 후원을 얻으려 2008년 잠시 귀국하였다가 주변의 권유로 건강진단을 받았더니 대장암 말기란 진단을 받은 것이다.

결국 그는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올 1월에 선종하였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곳 사람들의 염원을 뒤로 하고 하늘로 떠난 후 그가 운영하던 톤즈의 모든 시설은 버려지다시피 되었다. 뒤늦게 가톨릭과 후원단체에서 나섰지만, 이태석 신부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였다.

마침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어 개봉되었다기에 보러 나섰다. 관객은 십여 명 안팎, 영화관은 텅 비었다. 하기야 요즘 이런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쓸쓸했다.

스크린에는 “울지마 톤즈” 라는 영화 명이 뜬다. ‘수단의 슈바이쳐 이태석 신부’ 라는 글자도 보인다. KBS가 제작한 다큐영화이다.

영화는 책 내용과 달리 이태석신부가 암투병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에서 신부가 되기까지 과정이 나오고, 이어서 수단에서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오랜 내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저주의 나라 수단,  희망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수 없는 절망의 땅 톤즈, 이태석신부는 다른 곳도 많은데 굳이 그곳에 간 이유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했다. 

이태석 신부가 떠난 후 목자를 잃은 톤즈의 양들...
생전에 그가 만든 어린 학생들의 브라스 밴드가 톤즈거리를 추모행진하는 모습...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이테석신부의 사진 앞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는 광경....
모두가 가슴을 울리는 진한 감동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선 명동거리는 영화의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광경이었다.
얼마 만에 찾은 명동거리인가? 20년도 넘었을 것 같다. 
휘황찬란한 명동거리, 더구나 요즘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득한 명동에서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도쿄의 어느 거리를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흔히 사람들은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람도 많은데, 왜 이런 훌륭한 일을 하는 분을 데려가시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도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말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나 역시 돌아오면서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하나님은 그리도  매정하고 무정하신가?
그런 분을 벌써 데려가시다니....
소외된 사람, 돌보아 줘야할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데...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과 불평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하실 몫을 다 이루었기에 떠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떠남을 아쉬워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 그 뒷일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 땅에 아름다움을 남기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이태석 신부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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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2010-11-1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살아있었던 성인 이 신부님의 명복을 가슴깊이 빌어봅니다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