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박정호 지음 / 나무수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누가 나에게 취미를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여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여행을 다녀본 곳은 극히 적다. 특히 해외여행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여행이 취미라고 한다.

나는 늘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실제로 그리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말이다.

나는 TV에서 여행에 관한 프로는 거의 빼놓지 않고 본다. 또 여행에 관한 책도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는다.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것을 TV와 책을 통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현지를 여행한 사람보다 세계 곳곳을 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김찬삼의 세계무전 여행기’를 읽고 나서였다. 그때 크면 세계 여행을 하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지금도 마음만은 매일매일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읽지 않을 수 있으랴. 이 책은 제목부터 도전적이다.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현재 지구상의 유일한 超强大國 미국일까? 세계문화재의 寶庫 유럽인가? 아니면 혹시 경치가 아름다운 幻想的인 남태평양을 말하는 것인가?  궁금증에 책을 받아보자마자 단순에 읽었다. 그러나 책을 펴는 순간 나의 이런 상상은 산산이 깨졌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곳은 다섯 곳이다. 첫 번째가 터키와 시리아 그리고 요르단, 두 번째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 세 번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 번째는 아프리카의 세네갈, 마지막으로 중국 신장자치구의 타클라마칸 사막.

모두 내 예상을 캔 곳이다. 그리고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여행하기엔 너무나도 불편한 곳이라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책을 받기 전의 예상과는 다르지만 나에게 여행을 갈 기회가 온다면 꼭 가보고 싶던 곳이라 반가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여행기와 다른 점은 단순히 여행지의 겉모습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저자 특유의 생각을 가미하여 잘 정제된 문체로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할 것이다. 또 다섯 곳의 여행지마다 특유의 주제를 부여한 것도 신선함을 준다.

 

❶ 고대의 시간과 마주 하는 곳 - 터키, 시리아 그리고 요르단.

우리나라와 터키 사람들은 흔히 서로를 ‘형제의 나라’이라 하며 상대국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아마 6.25 때 참전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주어서 그런 모양이다.

동서양을 잇는 이스탄불에 첫발을 디디며 저자가 느끼는 마음, “어느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홀로 선 막막함, 현실적인 목적과 욕망을 벗어버린 자유가 주는 충일감, 반면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바로 이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터키라 하면 누구나 현대 속에서 고대를 그대로 간직한 곳, 카파도키아를 떠올릴 것이다. 그곳을 저자는 지구의 한 공간이라고 믿기엔 너무나 고요하며 현란한 곳, 현실이라고 하기엔 기괴하고 환상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이상한 나라 앨리스같다고 표현한다.



터키와 달리 시리아와 요르단은 생소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소원한 느낌이 드는 나라이다. 한때 앗시리아 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시리아의 옛 城에서 저자는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 했던 비정한 인간의 시간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아랍국가에 비하여 낙후된 나라가 되었지만, 그래서 이웃 국가인 요르단처럼 미국에 붙어서 형제를 배신하고 구걸하지 않는다는 자부심만은 아주 강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시리아인들에 대하여 예전에 막연히 가졌던 이질감이 호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 그래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 요르단에도 이런 역사가 있었나 새삼 놀라울 뿐이다. 사방이 험준한 벼랑과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새조차 힘겹게 날아갈 수밖에 없는 도시 페트라는 아랍계 고대유목민이 세운 도시이다. 페트라로 들어가는 길은 외줄기 협곡이라 한명이 백 명도 막아낼 수 있는 지형이라 한다. 막아내기에 좋다는 것은 갇히기도 쉽다는 역설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생물이 살 수 없는 사막에서의 체험은 요르단 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이라 한다.  

 

❷ 길, 그 선택의 순간 -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룬 여행기는 이번으로 네 번째 읽는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읽을 때마다 별로 특별한 길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그리로 몰리는지 신기하다.

한 달여 넘게 걷는 산티아고 가는 길…
홀로 또는 여럿이서 자유롭게 걷는 산티아고 가는 길…



그렇게 걷다보면 결국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과 대화를 하게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산티아고 가는 길, 순례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남부 작은 마을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대서양 연안의 산티아고까지의 먼 길을 떠나며 갖는 두려움도 걷다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긴 여정에서 지친 몸과 마음의 고단함으로 중도에 포기하고픈 유혹을 이겨내어 삶에서 자신감을 갖게 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여럿이 걸으면서 나눔과 도움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게 하고, 오로지 걷는 것에만 몰입하므로  때론 명상을 통해 지나온 세월에서 자신을 옥죄이던 모든 것을 떨어 버릴 계기를 만드는 등, 걷는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하여 얻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이리라.

 

❸ 여행중독자의 로망 -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 책은 유럽의 중세 문화유산하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에만 있는 줄 알았던 무지를 일깨워주었다. 이베리아반도가 결코 유럽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이라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마주쳤던 곳, 그리하여 두 이질적인 문화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알람브라 궁전은 꿈의 궁전이라 한다.



안달루시아에 껍데기만 남은 마지막 이슬람왕국의 무하마드 12세는 이슬람 왕국의 멸망보다는 알람브라 궁전을 잃는 것을 더 슬퍼했다고 할 정도이니 이 궁전의 아름다움은 이루 표현할 수 가 없다.

많은 문학인, 예술인들이 스페인을 사랑했지만, 그 중에서 헤밍웨이를 첫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스페인과 그가 스페인에 남긴 흔적도 여행객들이 스페인을 찾게 하는 요인이라 할 것이다. 

 

❹ 노예무역의 슬픈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의 관문, 세네갈,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사람을 사고파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있을까? 노예무역의 아픔이 있는 곳, 세네갈.

아프리카인들은 잡아 가두고 노예무역을 하였던 고레섬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배로 과 20분 거리에 있다. 고레섬으로 가는 사람들의 반은 백인 관광객이라 한다. 자기들의 조상이 저지른 죄악을 이젠 관광객이란 이름으로 찾아와서 돈 몇 푼 떨어트리고 가는 현실이 기가 막히다.

고레섬에는 흑인 남녀 둘이 사슬을 끊고 서로 부등켜안은 조각상이 있는데, 이 앞 비석에는 “사람들은 이곳을 단지 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한 섬이 아니라 영원한 자유의 정신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고 한다.



얼마나 피맺힌 절규인가? 빛조차 들지 않는 방에 수백 명씩 가두어 두었던 곳, 너무니 비좁아 그 자리에 선 채로 똥과 오줌을 누고 잠들어야 했다는 곳, 악취가 진동하고, 노예로 팔려가기를 기다리다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간 아프리카인들의 원한이 그대로 배어 있는 곳.

납치되어 가족과 생이별한 이들이 고레섬을 빠져나가는 길은 죽거나 노예로 팔려가는 것뿐이라 했다.

비록 지금은 노예무역의 잘못을 반성하고 폐지하였지만, 이들을 못살게 굴었던 나라들은 지금도 세계를 호령하고 있으며, 고통의 받은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또 다른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몇 년 전 월드컵에서 세네갈이 과거 자신들의 종주국 프랑스를 이긴 적이 있는데, 그때 환호하는 세네갈 국민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였었다. 이방인이 그러할진대 세네갈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동물들에게 가장 위협적이고 치명적으로 위험한 동물은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을 훑으며 마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❺ 비움 혹은 채움 - 타클라마칸사막.

사막이라 하면 흔히 모래를 생각하지만 사막이라 불리는 곳이 꼭 모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타클라마칸 사막을 제외하고는 세계의 사막이 불리는 곳 대부분이 돌산과 바위, 황무지로 되어있다고 한다. 더구나 사막은 으레 뜨거운 곳이려니 했는데 전체 사막의 40%만이 그렇고 겨울이나 추운 사막이 60%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막은 생명이 살기에는 지극히 부적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타클라마칸이란 이름은 위그르語로‘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당나라의 현장법사, 신라의 혜초, 그리고 수많은 무역상들이 지나간 곳이다. 현장법사는 ‘대당서역기’에 “행인들이 지나간 뒤에는 어떠한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으니, 사람들은 왕왕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내왕하는 사람들은 죽은 자가 남긴 해골을 주워 모아 길 표지로 삼는다.”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지금은 타클라마칸 사막에 고속도로가 뚫리어 트럭으로 횡단을 하고 곳곳에 물을 끌어들여 개간을 한다하니 인간의 능력이 무섭게 느껴진다.

 나는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온다면 중앙아시아를 가고 싶다. 이 책에서 소개한 다섯 곳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고 싶다. 화려한 관광지보다는 인간에게 극한상황을 강요하는 곳이기에 그렇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저자는 참 행복한 삶을 살고 있고나 무척이나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을 동경해 출장을 업으로 삼는 일을 직장선택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아예 그런 직장마저 그만두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자로 살고 있으니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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