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
박준기 글.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솔직히 이 책은 ‘영혼이 아프거든..’이라는 제목에 이끌려서 읽었다. 허지만 알래스카는 영혼아 아파야만 가고픈 곳이 아니다. 삶에 지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그럴 때 누구든 가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눈 덮인 雪原일 것이다.

거기에다 알래스카라는 곳이 가고 싶다고 아무나 아무 때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알래스카에 가면 무언가 신비한 것이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했다.

원래 알래스카는 러시아 땅이었다. 그런데 1867년 당시 재정난에 빠진 帝政 러시아가 쓸모없는 凍土의 땅인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아 미국령이 된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잘 팔았다고 파티를 열었고, 미국의 국무장관 스워드는 아이스박스를 돈을 주고 사는 ‘바보짓거리’를 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그런 알래스카가 지금은 석유, 석탄 등 천연자원의 보고요, 군사적 요충지로 미국에 철저한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알래스카 남단의 항구도시는 ‘비보짓거리(?)’를 한 수워드 국무장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스워드라 이름을 지었다니 세상일은 정말 모를 일이라고 할까?

알래스카 원주민은 우리가 익히 아는 에스키모이다. 그러나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경멸의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원주민들은 자신을 이누이트(Innuit)라고 한다.

하지만 북극권 원주민은 유틱(Yupik)인과 이누이트(Innuit)인으로 나뉜다. 따라서 알래스카 원주민을 이누이트로 지칭하는 것은 일부만 가리키는 것이므로 저자는 에스키모로 표기하겠다고 한다.

알래스카에는 북미대륙의 최고봉인 높이 6,194m의 매킨리 산이 있다. 저자는 이 산을 오리기 위해 일래스카로 향한다. 그런데 저자는 작가라기보다는 영화감독이요, 사진작가요, 산악인이라는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아름답고 신비한 알래스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상당 분량 게재되어있어 눈길을 끈다.

아름다운 매킨리 산을 액자에 담아보았다. 매킨리 산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 산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고상돈 산악인이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매킨리 산은 히말라야의 8,000m급 高峯에 비하면 2,000여m나 낮지만 위험요소는 더 많아 희생되는 산악인 많다고 한다.

매킨리 산은 히말라야와 달리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날라주는 포터가 없고, 등반대의 길을 안내하는 셰르파도 없다고 한다. 모든 짐은 등반대가 직접 날라야 한다고 한다. 그건 ‘카힐트나’라는 빙하를 건너야하는데 경비행기를 이용하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경비행기는 기상여건이 악화되면 뜰 수 없기에 출발점에서 그저 경비행기가 뜨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단다.

산악인들은 원정을 떠나기 전 본능적으로 책상을 정리한다고 한다. 그건 어쩌면 이번 등정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원정에 나서는 건 그들은 죽고 싶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는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더 고독한 사람이라서 그렇단다.

그래서 최고의 리더는 정상 등정을 하고 오는 원정팀의 리더가 아니라, 동행한 대원의 머릿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돌아오는 리더라고 한다.

세속에서는 산과 바다, 그리고 대자연을 상대로 ‘정복’운운 하지만 대자연을 많이 접해본 사람은 산에 대하여는 ‘등정’을, 바다에 대하여는 ‘횡단’이라고 한단다. 그건 산과 바다라는 대자연이 허락할 때만 오르고 건널 수 있다는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정복’이란 단어를 한낱 나약한 인간이 감히 대자연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란다.

매킨리 산 등정 외에 알래스카를 찾게 하는 건 위대한 레이스 아이디타로드(Iditarod)이다. 1925년 1월, 알래스카에서도 북서쪽 끝에 있는 놈(Nome)이라는 인구 1,500명가량의 작은 마을에 디프테리아가 창궐하여 어린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구할 혈청이 알래스카의 중심 도시인 앵커리지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놈이 앵커리지에서 무려 1,800km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알래스카의 1월은 밤만 지속되는 기간으로 기온은 영하 47도, 체감온도 57도로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 한 운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여건 하에서 스무 명의 개썰매꾼이 영하 47도의 혹독한 날씨 속에서 눈보라를 뚫고 알래스카의 설원을 이어달기 식으로 달려 혈청을 무사히 전달하였다고 한다. 평상시에 25일을 걸릴 것을 불과 5일 8시간 만에 주파하는 놀라운 기록으로 주파하여 어린이들의 목숨을 구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스무 명 개썰매꾼들의 위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7년부터 매년 앵커리지에서 놈까지 개썰매대회가 열리는데 이를 아이디타로드(Iditarod)라고 한다.

영하 47도 혹한을 1,800km를 달리는 선수와 개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 구간 중 하루를 휴식해야 하며 특히 총 27개 체크포인트에서는 비치된 먹이를 개들이 먹어야 계속할 수 있으며, 수의사가 무작위로 개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여 상태가 나쁜 개들은 빼야한다고 한다. 거기에 출전한 개가 레이스 도중에 죽으면 책임을 선수에게 물어 탈락시킨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점은 알래스카의 원주민인 에스키모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주민보호정책에 의하여 우대한다고는 하나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시키는 대신 돈을 주므로 이들은 마약과 알코올로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북극대륙의 지배자였던 그들인데, 개썰매를 타고 알래스카 대륙을 휘젓던 그들인데, 이제는 백인들의 축제장이 된 아이디타로드(Iditarod)의 들러리 신세가 되어, 원래 이방인인 백인들로부터 거꾸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어두운 미래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 어두운 면이 있기는 하나, 저자는 알래스카하면 짙푸른 순백색의 눈 위에서 펼쳐지는 생동감 넘치는 개썰매대회, 그리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끝없는 설원은 영혼이 아프면, 영혼이 잠시 쉼을 하고 싶으면 찾고픈 곳이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조 - 내 안에 잠든 긍정의 추진력
마셜 골드스미스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내 안에 잠든 긍정의 추진력』

모조에 대하여 저자가 내린 정의이다. 풀어 말하면 모조란‘내면에서 우러나와 외부로 드러나는, 바로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라고 한다.

‘믿는 대로 된다’라든지,‘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든지, 또 불교에서 말하는 一切唯心造, 다 같은 말이라 생각한다. 그리 생각하면 그리 보이고, 저리 생각하면 저리 보인다고 할까? 어찌 보면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사실 이런 類의 책은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조엘 오스틴의‘긍정의 힘’도 같은 類의 책이라 할 것이다. 이런 책들은 표현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안 되는 것도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암시 내지 자기최면이 주된 내용이다.

즉 처음부터 否定을 전제로 하면 될 일도 되지 않고, 肯定을 전제로 하면 되지 않을 일도 된다는 식이다. 따라서 이런 類의 책은 읽을 때는 ‘그렇지’ 하다가도 읽고 나면 공허하다. 마음에 남는 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른 면이 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식이 아니다. 하면 된다, 된다고 믿으면 된다는 식의 자기최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은 내내 9년 전 받은 영성수련이 생각났다. 내용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우러나와 외부로 드러나는, 바로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인 모조를 창조하려면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 정체성(identity), 성취(achievement), 평판(reputation), 수용(acceptance)이다.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즉 나는 누구인가?’ 를 아는 것이 정체성이다. 자신에 대하여 왜곡된 기억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먼저 자신을 바로 알라는 것이다.

성취에는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성취와 자신이 스스로 평가하는 성취가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일치하여야 모조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내가 다르다고 한다. 잘난 사람과 잘나 보이는 사람 중 선택하라면 잘나 보이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만큼 모조를 높이는 데는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대해 내리는 평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즉 수용이다. 달리 말하면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가 수용이라는 것이다.

위의 4가지 요소를 바로 알고 모조를 높이는데 치명적인 방해물이 9가지를 나열하는데, 그중 치명적인 두 가지가 쓸데없는 논쟁과 과거에 대한 집착을 꼽는다.

또 모조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꾸거나 상황을 변화시키라고 한다. 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상황은 그대로이나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나의 방식에 변화를 준다는 의미로 상황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조직, 직장, 지역, 인간관계, 경험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에 상황을 바꾼다는 것은 직장을 바꾼다거나 조직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조를 높이기 위하여 자신과 상황을 성공적으로 바꾸는데 도움을 주는 실천도구 14가지를 제시한다.

저자는 모조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자신부터 행복하여야 한다며 다음 말로 마무리를 한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작은 실천을 통해 여러분이 직장과 가정에서 더 많은 기쁨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인생의 기쁨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도 깨닫게 될 것이다.

자, 여러분이 먼저 행복해지자.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말자. 여러분 스스로 행복전도사가 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근과 채찍 - 목표로 유인하는 강력한 행동전략
이언 에어즈 지음, 이종호.김인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당근과 채찍’이라하면 연상되는 것이 있다. 말이 좋아하는 당근을 매달아 유인하거나, 말 엉덩이에 채찍을 가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통 당근과 채찍으로 알고 있는데, 원래는 당근과 스틱(막대기)이라 한다. 즉 말을 달리게 하게 위하여 막대기 끝에 당근을 달아서 말 앞에 늘어뜨린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당근을 막대기 끝에 달아 말 앞에 늘어뜨리면 말은 당근을 먹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막대기 끝에 달린 당근은 먹기 위하여 말이 앞으로 나아가면 당근은 그만큼 더 앞으로 나아가기에 말은 당근을 영원히 먹을 수 없다. 당근은 일종의 사기(?)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막대기가 채찍으로 바뀌면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즉 당근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강력한 유인 내지 격려를, 채찍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을 때의 벌칙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면 당근과 채찍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까? 또 기준은 무엇인가? 즉 격려이냐 벌칙이냐로 끝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그런데 결론은 늘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당근을 사용할 대상과 상황은 어떤 것이며, 채찍을 사용할 대상과 상황은 어떤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같은 대상과 방법이란 있을 수 없기에 결국 당근과 채찍을 사용할 기준이 없다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명쾌하게 결론을 낸다. 지금까지는 효과적으로 목표에 도달하려면 지금까지는 당근이 더 효과적이냐 채찍이 더 효과적이냐 즉 격려냐 벌칙이냐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았지만 저자는 어느 경우에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여야할 기준으로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을 원용한다.

그가 고안해 낸 방법이 약속 실천 계약이다. 즉, 일단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달성여부에 돈을 거는 것이다. 목표를 다시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중간 중간 점검하여 단계별 목표를 달성을 하면 그만큼에 해당하는 돈을 받고 만일 단계별 목표를 달성하면 해당하는 돈을 기부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기부하는 곳이 평소 자기가 혐오하는 단체라는 것이 특이하다. 즉, 단계별로 목표를 달성하면 손해가 없으나 달성하지 못하면 혐오단체에 기부를 하여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라 할 것이다. 

또 목표를 달성하면 당근을 주겠다고 하는 것보다 목표에 미달하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빼앗겠다는 벌칙을 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과는 마찬가지라도 손실회피의 심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경제를 연구하여 얻은 결론을 사용하여 당근이내 채찍이냐를 사용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뿐 아니라 비둘기 등 동물의 실험결과를 원용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상이한 기준과 방법을 제시하여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끝까지 읽고 보면 나도 모르게 수긍이 간다.

저자가 제시하는 특이한 방법을 좀 더 소개하고 싶지만 그것보다는 직접 읽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이 되어 생략하며 많은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저자가 특별강연을 CD가 있는 것이다. 이 CD는 초기 구독자에 한해 선착순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는데, 책을 읽은 후에 보면 마치 복습하는 것 같아 내용을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마지막으로 책의 말미에도 적혀있지만 슬쩍 옆구리를 찌른다는 의미의 ‘넛지’라는 책은 이 책과 같이 읽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넛지’ 역시 인간의 심리를 활용하여 위로부터의 개입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인간의 심리를 활용하여 아래로부터의 제도 설계와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재미있어 이 책을 구입했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뜻이란다.

쉬운 예를 들면,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를 삭제하고자 하면 반드시 화면에 “휴지통에 버리시겠습니까?” 라는 문구가 뜬다. 바로 이것이 ‘넛지’라는 것이다. 실수로 삭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슬쩍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넛지란다.

책을 펴자마자 ‘넛지가 당신의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넛지가 무엇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사례를 소개한다.

학교구내식당에 대한 관리감독책임을 맡고 있는 영양사가 급식 메뉴에 변화를 주지 않고 단지 음식의 진열이나 배열만 바꾸는 것만으로 학생들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여부를 실험하는 내용이다.

학교마다 음식의 진열 및 배열 방식이 제각각이었는데, 음식진열대의 배열 방식에 지침을 내려 보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단지 음식의 배열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특정 음식의 소비량이 무려 25%나 올라가거나 내려갔다는 것이다. 그건 슈퍼마켓 진열대에 진열방식에 따라 상품별 매출액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상대방에게 드러내놓고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의도하는 대로 상대방이 행동하게 하는 것이 넛지라는 것이다.

흔히 소비자가 왕이라 하지만 사실은 소비자는 생산자나 판매자의 의도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고 소비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를 비교해보고 자기가 필요해서 구입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상대방이 만들어놓은 덧(?)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충동구매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 식의 부드러운 방법으로 상대방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으로 그런 사례를 무수히 나열하고 있으며, 각각의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한 가지 예를 더 든다면 의사가 수술을 권유할 때 “이 수술을 받은 사람 100명 중 90명이 5년 후에도 살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과 “이 수술을 받은 사람 100명 중 10명이 5년 내에 죽었습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서 중요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여론을 유리하게 유도하기 위해서 이용하기도 한단다. 또 요즘은 각종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선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이용하는데 이때에 질문방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보들의 지지도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하니 여론조사의 정확도가 새삼 이슈로 떠오를 만하다.

그렇다고 이런 원리가 상대방을 나의 의도대로 행동하게끔 하는 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 한다.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에도 이러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서 문서를 작성하다가 수정이나 삭제를 할 경우 곧바로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수정하겠느냐 또는 삭제하겠느냐고 묻는 것도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혹시나 있을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누군가의 강압이나 지시를 받아 행동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서 투쟁하는 과정’이라고 하는 가보다. 예전엔 신체의 자유,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였다면 현대는 경제적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고 할까?

무심코 지나쳤을 나의 생각과 행동이 사실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앞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구나 하게 한다.

또 이 책은 지칫하면 유혹에 빠져들 수 있는 잘못된 넛지가 무엇인지 그런 넛지에서 빠져들지 않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어 한번쯤은 읽어볼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지음, 고상숙 옮김 / 김영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름 :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지은이 : 스티브 도나휴

우리는 흔히 삶을 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 정상을 향하여 가는 과정에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길이 있고, 숨 가쁘게 올라야할 고개가 있는가 하면 쉬엄쉬엄 가야할 길이 있고, 쉽게 건널 수 없는 깊은 계곡이 있는가 하면 발을 담구고 싶은 얕은 개울이 있는 것이 마치 삶과 같다는 의미에서 그리 비유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저자는 삶을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사막을 건너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한다. 그건 산은 정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가 있지만, 사막은 산과 같은 정상이 없고 반대로 어디가 끝인지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삶이란 목표가 뚜렷이 보이는 경우보다 가야할 방향조차 어디인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제대로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말은 일면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사람들은 평소에 등산은 자주 하지만 사막을 건너는 경험은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건 사막이 산보다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사실은 사막을 건너는 것이 산을 오르는 것보다 몇 배 더 위험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는 실제로 사하라사막을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면서 얻은 경험과 새삼 깨달은 점을 삶의 과정과 비유하여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가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고 한다.

지도는 이미 타인이 만든 것이다. 그런 지도를 따라간다는 것은 나의 의지 생각보다는 남이 이미 간 길을 답습한다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막은 지도가 그리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사막은 바람이 불면 모래언덕이 움직인다, 따라서 실제 모습은 이미 제작한 지도와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지도만 믿고 따라가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나침반에 의하여 방향만 정확히 유지하면 사막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고 한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들의 삶을 참고사항은 될지언정 마치 지도를 보고 가듯 그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으로는 결코 성공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즉, 나의 확실한 나침반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는 것이다.

낮에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고 밤에는 영하가 되는 사막을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요, 하루 이틀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간 중간에 어쩌다 만나는 오아시스는 거친 사막을 건너느라 지친 심신을 쉬어 다시 사막에 도전할 수 있는 활력을 얻게 하는 곳이다. 그런데 갈 길이 바쁘다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모처럼 만난 오아시스를 그냥 지나친다면 그는 틀림없이 다음 오아시스를 만나기 전에 쓰러질 것이라는 것이다.

삶도 그렇다. 바쁘다고, 빨리 성공하겠다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한다고 쉼 없이 달려가다보면 그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쓰러진다. 행여 조금이라도 운이 좋다면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 쓰러질 것이다. 가는 도중에 쉬어야할 때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이다.

세 번째는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고 한다.

나는 해변 모래사장에서 운전하다 자동차 바퀴가 빠진 적이 있었다. 모래사장에 있는 짐을 들고 나오기 귀찮아서 괜찮으려니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차를 몰고 가다 그만 모래에 빠지고 말았다. 모래에서 빠져나오려고 가속페달을 밟을수록 바퀴가 점점 더 모래 속으로 빠져들어가 완전히 꼼짝을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꼼짝 못하고 있는데 마침 건장한 청년들 10여명이 지나다가 차를 들어서 옮겨주어 모래사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중에 정비업체의 분께서 그럴 때는 타이어의 바람을 빼면 모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지는 시도를 해보지 않아 모른다. 사실여부인지를 알려고 시험하다 만일 빠져나오지 못하면 낭패라 일부러 화를 자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자동차를 모래사장 수준으로 낮추면 모래사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듯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나를 낮추라는 의미에서 이 말을 인용한다. 사실 나를 낮춘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여러 차례 어려운 일을 만난다. 그럴 때 어려움에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나를 낮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를 낮추기만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진리를 저자는 사하라 사막을 종단하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네 번째는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혼자 여행을 해야 한다. 그건 아무도 나의 삶을 대산 여행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방향을 찾아야하고 전진하고 스스로를 돌보고 자아와 싸워야 한다. 그렇다고 항상 혼자일 수는 없는 것이 삶이다. 우리는 친구, 길잡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도중 어느 순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혼자 헤쳐 나가야 할 순간이 있다. 아 두 가지는 각각 또는 동시에 필요할 수도 있다. 이 둘은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식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혼자 여행을 해야 할 시간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간의 비율 문제가 아니라 어느 때 어느 것이 필요하냐는 문제라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이다.

사하라 사막 같은 어마어마한 사막을 여행하다보면 중간에 야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낮에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나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기후부터 야생동물의 습격 등으로 사막에서 야영을 할 때는 생각지도 못한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불을 피워서 추위와 야생동물의 습격을 예방한다. 따듯하고 안전한 캠프파이어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러나 캠프파이어가 비추는 세상은 진짜 세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때로는 정말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캠프파이어를 떠나 깜깜하고 어두운 사막 속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서도 때로는 나를 보호해주는 보금자리를 과감히 떨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가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이다.

사하라 사막은 북쪽 알제리에서 남쪽 니제르의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다. 따라서 중간에 두 나라의 국경초소가 있다. 저자가 국경초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경초소의 병사가 저자를 트럭에서 내리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가라고 하는 것이다. 저자가 트럭에서 내리는 순간 운전사가 다시 타라고 소리를 지르며 트럭을 몰기 시작한다. 저자는 아무 생각없이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은 질주하여 국경을 넘었다. 알제리와 니제르의 국경초소에서는 병사들이 국경을 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갈취하려고 그런 짓을 한단다.

저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가정과 믿음에 도전하는 것은 바로 이런 국경수비대의 허세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 삶에서 강력해 보이는 믿음이 잘못된 믿음일 수 있다.

이승과 저승을 구분 짓는 육체적인 죽음은 진짜 존재하는 경계선이지만, 죽음에 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에는 허상의 경계선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허상의 믿음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분명하게 정상이 보이는 산과 달리 사막은 경계선이 보이지 않아 놓치기 쉽다. 그건 삶과 같다고 한다. 저자는 사하라사막을 종단하면서 겪은 경험을 삶에 비유하여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아니 삶을 살아가는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돈을 들여서 흔들림 하나 없이 길을 가는 여행이 멋진 여행이 아니라, 여행하는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멋진 여행이라며 끝을 맺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