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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스티브 도나휴 지음, 고상숙 옮김 / 김영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름 :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지은이 : 스티브 도나휴
우리는 흔히 삶을 산을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 정상을 향하여 가는 과정에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길이 있고, 숨 가쁘게 올라야할 고개가 있는가 하면 쉬엄쉬엄 가야할 길이 있고, 쉽게 건널 수 없는 깊은 계곡이 있는가 하면 발을 담구고 싶은 얕은 개울이 있는 것이 마치 삶과 같다는 의미에서 그리 비유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저자는 삶을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사막을 건너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한다. 그건 산은 정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가 있지만, 사막은 산과 같은 정상이 없고 반대로 어디가 끝인지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삶이란 목표가 뚜렷이 보이는 경우보다 가야할 방향조차 어디인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제대로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말은 일면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사람들은 평소에 등산은 자주 하지만 사막을 건너는 경험은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건 사막이 산보다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사실은 사막을 건너는 것이 산을 오르는 것보다 몇 배 더 위험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는 실제로 사하라사막을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면서 얻은 경험과 새삼 깨달은 점을 삶의 과정과 비유하여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가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고 한다.
지도는 이미 타인이 만든 것이다. 그런 지도를 따라간다는 것은 나의 의지 생각보다는 남이 이미 간 길을 답습한다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막은 지도가 그리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사막은 바람이 불면 모래언덕이 움직인다, 따라서 실제 모습은 이미 제작한 지도와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지도만 믿고 따라가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나침반에 의하여 방향만 정확히 유지하면 사막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고 한다.
삶도 마찬가지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들의 삶을 참고사항은 될지언정 마치 지도를 보고 가듯 그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으로는 결코 성공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즉, 나의 확실한 나침반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는 것이다.
낮에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고 밤에는 영하가 되는 사막을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요, 하루 이틀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간 중간에 어쩌다 만나는 오아시스는 거친 사막을 건너느라 지친 심신을 쉬어 다시 사막에 도전할 수 있는 활력을 얻게 하는 곳이다. 그런데 갈 길이 바쁘다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모처럼 만난 오아시스를 그냥 지나친다면 그는 틀림없이 다음 오아시스를 만나기 전에 쓰러질 것이라는 것이다.
삶도 그렇다. 바쁘다고, 빨리 성공하겠다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한다고 쉼 없이 달려가다보면 그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쓰러진다. 행여 조금이라도 운이 좋다면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 쓰러질 것이다. 가는 도중에 쉬어야할 때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이다.
세 번째는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고 한다.
나는 해변 모래사장에서 운전하다 자동차 바퀴가 빠진 적이 있었다. 모래사장에 있는 짐을 들고 나오기 귀찮아서 괜찮으려니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차를 몰고 가다 그만 모래에 빠지고 말았다. 모래에서 빠져나오려고 가속페달을 밟을수록 바퀴가 점점 더 모래 속으로 빠져들어가 완전히 꼼짝을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꼼짝 못하고 있는데 마침 건장한 청년들 10여명이 지나다가 차를 들어서 옮겨주어 모래사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중에 정비업체의 분께서 그럴 때는 타이어의 바람을 빼면 모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지는 시도를 해보지 않아 모른다. 사실여부인지를 알려고 시험하다 만일 빠져나오지 못하면 낭패라 일부러 화를 자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자동차를 모래사장 수준으로 낮추면 모래사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듯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나를 낮추라는 의미에서 이 말을 인용한다. 사실 나를 낮춘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여러 차례 어려운 일을 만난다. 그럴 때 어려움에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나를 낮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를 낮추기만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진리를 저자는 사하라 사막을 종단하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네 번째는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혼자 여행을 해야 한다. 그건 아무도 나의 삶을 대산 여행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방향을 찾아야하고 전진하고 스스로를 돌보고 자아와 싸워야 한다. 그렇다고 항상 혼자일 수는 없는 것이 삶이다. 우리는 친구, 길잡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도중 어느 순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혼자 헤쳐 나가야 할 순간이 있다. 아 두 가지는 각각 또는 동시에 필요할 수도 있다. 이 둘은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식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혼자 여행을 해야 할 시간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간의 비율 문제가 아니라 어느 때 어느 것이 필요하냐는 문제라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이다.
사하라 사막 같은 어마어마한 사막을 여행하다보면 중간에 야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낮에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나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기후부터 야생동물의 습격 등으로 사막에서 야영을 할 때는 생각지도 못한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불을 피워서 추위와 야생동물의 습격을 예방한다. 따듯하고 안전한 캠프파이어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러나 캠프파이어가 비추는 세상은 진짜 세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때로는 정말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캠프파이어를 떠나 깜깜하고 어두운 사막 속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서도 때로는 나를 보호해주는 보금자리를 과감히 떨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가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이다.
사하라 사막은 북쪽 알제리에서 남쪽 니제르의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다. 따라서 중간에 두 나라의 국경초소가 있다. 저자가 국경초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경초소의 병사가 저자를 트럭에서 내리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가라고 하는 것이다. 저자가 트럭에서 내리는 순간 운전사가 다시 타라고 소리를 지르며 트럭을 몰기 시작한다. 저자는 아무 생각없이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은 질주하여 국경을 넘었다. 알제리와 니제르의 국경초소에서는 병사들이 국경을 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갈취하려고 그런 짓을 한단다.
저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가정과 믿음에 도전하는 것은 바로 이런 국경수비대의 허세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 삶에서 강력해 보이는 믿음이 잘못된 믿음일 수 있다.
이승과 저승을 구분 짓는 육체적인 죽음은 진짜 존재하는 경계선이지만, 죽음에 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에는 허상의 경계선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허상의 믿음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분명하게 정상이 보이는 산과 달리 사막은 경계선이 보이지 않아 놓치기 쉽다. 그건 삶과 같다고 한다. 저자는 사하라사막을 종단하면서 겪은 경험을 삶에 비유하여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아니 삶을 살아가는 여섯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돈을 들여서 흔들림 하나 없이 길을 가는 여행이 멋진 여행이 아니라, 여행하는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멋진 여행이라며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