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소설들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던 건 어릴 적뿐이었다. 이제 나는 중요한 것이 책에 서술된 허구의 사건들보다는 독서 중의 체험, 책 속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정 상태,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들이라는 진실을 안다. 

(중략)

나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후 기억에 남는 건 꿀병이 든 소풍 바구니에 대한 묘사뿐이었다고 고백한 소설가를 좋아한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 / 시그리드 누네즈>


이미 본 영화들 & OTT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재개봉한다. 그러면 나는 그걸 보러 극장엘 간다. 재개봉 영화 중 최근에 본 것들을 적어 보겠다. <아마데우스> <시네마 천국> <바닷마을 다이어리>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칠드런 오브 맨>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20여 년 전 드라마 두 편 <내 마음을 뺐어봐>(1998년작) <순수의 시대>(2002년작)


이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서 드라마 내용 보다 더 먼저 1990년대의 나 자신, 2000년대의 나 자신을 소환하고 추억한다. 특히 한국 드라마 속의 옛날 거리 풍경, 옷차림, 휴대폰 심지어는 체벌을 보면서까지도 어쩐지 아련한 느낌이 든다. 엘리베이터 걸을 연기하는 배우를 보면서 롯데백화점의 엘리베이터 걸을 떠올렸다. 유니폼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김남주는 첫 화에서 그 당시 유행하는 힙합(?) 브랜드 스포츠 리플레이 스타일을 입고 등장했고, 나는 처음 본 배우 전지현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의 멜로 서사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김민희를 정말 좋아해서(지금도 좋아한다. 그래서 홍상수가 너무 싫다!) 진짜 열심히 봤는데도 불구하고 멜로 서사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김민희의 스타일만 생각이 남 ㅎ 김민희는 정말 이상한 배우인 것이 혼자 촌스럽지가 않다. 2002년 드라마인데 2025년이라고 해도 믿어질 듯한 비주얼. 이건 영화 <모비딕>에서도 증명되었는데, 영화 배경은 1994년이고 영화는 2011년에 개봉했는데, 그 당시에도 김민희 혼자 실시간 패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비딕>은 2025년에 봐도 김민희는  실시간(2025년)을 살고 있음. 아마 2035년에 봐도 김민희 혼자 예스럽지 않을 거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마지막 장면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학생 때 봤을 때는 그냥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방임과 폭력이 난무하는 어마어마한 아동학대 르포였다! <칠드런 오브 맨>도 분명히 봤는데, 내 기억 속 소녀는 백인이었고, 기억나는 건 전투 씬과 숲 속 오두막의 대마초 씬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도 혹시 내가 어디서 예고편만 본 걸 가지고 착각을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영화를 보면서 전혀 생각나지 않는 장면이 많아서 내가 이걸 안 봤나 하다가 영화 후반부에 세 자매의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이 정확하게 생각나서 '아 봤구나' 했다. <칠드런 오브 맨>의 전투 씬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총소리 때문에 아기 딜런은 청력을 다 잃었겠구나 하는 것과 태어남 자체가 저 아기 딜런에게는 저주나 다름없겠구나 하는 것. '<칠드런 오브 맨> ㅈ같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알폰소 쿠아론의 휴머니즘도 CJ갬성이었나 싶기도 하고.


다 까먹을 거면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해 봄의 불확실성>의 첫 페이지부터 위에 인용한 문장들이 나오길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면서 안도했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절대적으로 콘텐츠가 귀하기도 했고, 용돈도 충분하지 않아서 비디오를 빌리면 최소 두 번을 봤고, 책을 사도 최소 두 번을 읽었고, 영화 잡지의 광고 글자까지 전부 다 읽었다. 극장에서 본 영화가 비디오로 나오면 또 빌려봤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기억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요즘은 영화를 보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실시간으로 까먹는 것 같다. 구매한 책들 중에서 아예 시작도 안 했거나 읽다가 중단한 책도 많고. 심각하다 진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열풍이라서 며칠 전에 영화를 봤다. 모든 것을 3배속 한 듯했다. 영화가 진공 압축팩에 들어가 있는 겨울 패딩 점퍼 같이 느껴졌다. 잘 만들었다 아니다 그런 걸 떠나서 99분이라는 시간 속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있어서 다 소화하기 힘들었달까. 30분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는 20코스짜리 미슐랭 요리를 먹어야 하는 듯한. 이렇게 만들어야 세계 1등을 하는 거구나 깨달음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케데헌>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작곡자 이재의 서사였다. '와, 사람이 저렇게도 성공을 할 수 있구나.' 이재에게 작곡을 처음 권한 사람이 신사동 호랭이라고 했다. 신사동 호랭이가 만든 노래를 들으면 이제는 슬프고, 나는 아직도 이선균이 나오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어제도 <끝까지 간다>가 다시 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서 재생했다가 첫 장면부터 이선균 등장, 30초를 못 버티고 껐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김건희처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수치심도 없는 인간들만 생존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윤 씨 그 자는 자신의 온몸에 자기 똥 처바르는 퍼포먼스로 정신병동에서 여생을 보낼 거라고 나는 200% 확신한다. 똥을 몸에 바르는 건 약한가? 그렇다면 교도관이 보는 앞에서 자기 똥을 먹을지도.)


20년 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들이 말을 하는 속도가 느리다' '말투가 부드럽다'라고 생각했다. 말의 속도가 느리고 말투가 부드러워서 귀가 편했달까. 맵고 짠 음식이 혀에 거슬리는 것처럼 음향+대사+등장인물의 움직임+배경 등등이 너무 압축적으로 한 장면(몇 초 사이)에 너무 많이 들어있는 걸 보면 숨이 찬다, 갑갑하다 그런 느낌을 받는다. 영화 <F1 더 무비>를 보면 너무 갑갑한 것이다. 처음에는 브래드 피트가 헬맷을 쓰고 있어서 볼살이 짓눌린 장면 때문에 내 마음이 갑갑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영상을 155분 동안 보는 게 갑갑했던 것이다. 


영화 <봄밤>에서 주인공 한예리는 김수영의 봄밤을 읊는다. 그 장면이 진짜 좋았다. 나중에 팟캐스트 필름클럽에서 임수정이 같은 시를 낭송하는데 진짜 좋았다. 와 이게 배우의 힘이구나 싶었다. 아무튼 겸사겸사 요즘 내 최애 시인의 최애 시를 외우고 있다.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이제 겨우 한 바닥 외웠지만, 반복해서 외울 때와 그냥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갈 때의 감상(느낌)은 정말 다르다. 또한 아직은 암기할 수 있는 나의 두뇌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소설 10편 읽는 거보다 시 한 편 외우는 게 감상의 깊이가 넓고 깊지 않나 싶기도 하고. 


콘텐츠 과잉의 시대에 여백이 많은 시집 속의 시를 암기하는 것으로 뇌의 간헐적 단식을 하는 중. 유튜브와 인스타그랩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현대인의 몸과 정신 건강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거라고 200% 확신한다. 유튜브도 거의 안 보고, 인스타도 안 하는 내가 그것들의 해악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겠지만, 영화 <시네마 천국> 속 1950년대 전후의 초딩이들은 담배의 해악을 알지 못했기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처럼, 요즘 사람들도 그것의 해악을 알지 못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마트 폰 속의 영상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ps. 시를 외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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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정작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죽음이란 결코 찾아오지 않는 미래입니다. 아니 그보다, 죽음이라는 미래는 닥쳐오지만 결코 현재가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바로 이 순간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는 말입니다. 자신의 죽음이라는 미래는 현재화 될 수 없기 때문에 쉽게 추상적인 성격을 띱니다. 그 날짜가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죽음이 꼭 이 순간이거나 저 순간이어야만 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무기 연기하기 십상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그리고 고뇌 속에서 실감하는 것은, 최후의 미래도 중간의 작은 미래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자신에게 닥쳐오기 만들어졌음을 이해할 때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종말이, 생의 사이사이의 작은 종말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자신의 현재가 되리라는 것을 발견할 때입니다.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1. 홈트

어린이집 원아의 포도송이 100개 채우기 미션처럼 홈트를 수행했을 때마다 달력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걸 꼬박 24개월 넘게 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여전히 하기 싫다. 처음 홈트를 했을 때는 어떤 영상이 나에게 제일 잘 맞는지, 같은 시간에 가장 많은 운동량을 주는지 몰라서 계속 다른 영상들을 골라가면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에게 제일 효과적인 영상을 찾게 되었고, 이제는 매일 그것만 보면서 하고 있다. 같은 영상 속의 같은 동작만 하니까 더 지겹긴 하다. 그래서 두어 달 전부터는 mbc 라디오의 정치뉴스를 들으면서(보면서) 홈트를 하고 있다. 그랬더니 좀 할만했다. 덜 지겹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폰으로는 정치 뉴스 유튜브를, 10년 전에 사용했던(무려 아이폰6) 폰으로는 홈트영상을 메트로놈처럼 켜두고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랬는데, 어제는 운동이 너무 하기 싫어서 나에게는 시청금지영상인 건강 관련 유튜브를 보면서(들으면서) 운동을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소리다. 왜 운동은 매일 꾸준히 하는데도 주기적으로 권태기가 오는 걸까.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절박하게 운동을 하는 걸까. 딱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이유는 하나다. 운동을 안 하면 찝찝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찝찝함 같은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 기분이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편안함보다 더 싫기 때문에 운동을 하긴 한다. 



2. 죽음에 관한 창작물 3편

홈트를 시작했을 즈음, 나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홈트를 시작했고, 마침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이라는 책이 출판되었고 코 앞에 다가온 죽음을 맞이하고자 바로 구입했다. 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닐 포장이 되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포장을 뜯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비닐 포장 그대로 2년 넘게 책장에 꽂아두었다. 책을 구입한 지 24개월이 더 지난 얼마 전에야 비닐 포장을 뜯고 책을 첫 페이지를 읽었다. bgm은 주제 맞춤으로 모차르트의 레퀴엠. 책을 펼친 지 열흘도 더 지난 거 같은데 아직도 프롤로그에서 헤매고 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같은 말을 끝없이 변주하고만 있다. '죽음이라는 당연한 순리를 왜 인간들은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어떤 불길한 사건으로 여길까요?'라는 말을 오만가지 다른 표현으로 쓰고 있는데, 너무 지나친 TMI 아닌가 싶기도. 


죽음에 관한 영화 두 편을 봤다. 

소마이 신지 <여름정원>(1994년작, 2024 4K 리마스터링으로 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년작, 필름 상영으로 봄)

두 영화 모두 같은 주제다. '죽음'을 관음 하고 싶은 욕망.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이 조만간 죽을 노인을 몰래 훔쳐본다.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어서. 


세 개의 죽음에 관한 창작물 중에서 우승작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이다. 이 영화는 죽음을 관음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천천히 집요하게 보여준다. 장켈레비치가 프롤로그에서 끝없이 변주하고 있는 '인간은 결코 죽음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음은 타인의 불상사로만 받아들인다'를 118분짜리 영화로 보여준다. 


3. 방탕, 유흥 그리고 부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면 

나에게도 방탕(?)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어차피 죽어야 하는데 굳이 왜 태어났을까'하는 생각을 하염없이 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배달 음식, 탄산음료, 액상과당 같은 거 아예 먹지 않는다. 유튜브 등도 잘 안 본다(영화 볼 시간도 없는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불면증 없다. 두통 없다(머리가 아픈 게 어떤 건지 잘 모름). 매일 아침에 모닝홈트 한다(이 점이 가장 미친 거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꾸준히 영화를 본다. 꾸준히 책을 읽는다. 꾸준히 일기를 쓴다. 꾸준히 출퇴근을 하고 있다(이것이 두 번째로 미친 거 같다). 해야 할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것을 조금 하고, 잘 시간이 되면 잔다. 


스마트폰 중독과 관련된 건강 영상을 보면 생기는 의문: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밤에 잠이 저절로 오지. 숏폼 영상과 불면이 무슨 상관이지? 잠이 오는데 숏폼 영상을 어떻게 봐? 

시사 프로에서 위고비(이게 뭔지 이제야 알았다) 방송을 보고 든 의문: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살아오는 동안 음식 자체가 맛있어서, 계속 먹고 싶어서 먹은 적이 없다.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많이 먹어본 적 자체가 없어서 내가 어떤 체질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먹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크게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인간 위고비인가ㅋㅋㅋ

흥청망청 충동적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의류비에 돈을 얼마나 쓰지는, 식비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알고 있다. 의류비의 경우 내가 정한 금액 안에서 명품 한 개를 사는 것일 뿐. 세일하는 것, 싼 것 여러 개를 충동적으로 구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아 내가 저렇게 살지 않아서 괜히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저런 생활을 하면서 그걸 즐길 수 있는 기질이어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고지 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학생 때 친구들이 나의 시험공부계획표를 보여달라고 한 적이 많다. 보여주면 다들 "이걸 어떻게 지켜?"라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그냥 내가 짠 계획대로 공부를 하면 되지. 이대로 해야 시험범위를 다 공부할 수 있어. 벼락치기하면 힘들잖아(공부할 체력 없음 ㅠ). 나는 자야 돼." 계획대로 공부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덕질(유흥)'을 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마음이 힘들 땐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를 패러디해서(늙은 교수 대신 선생님 별명을 넣는다던지) 말하곤 했다.  HOT의 we are the future를 불렀어야 했는데,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가 훨씬 더 내 마음에 와닿았었다. 문학을, 특히 시를 오지선다형 문제로 풀어야 한다는 것에 어떤 모멸감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멸감과 달리 나는 국어 성적이 너무 좋았다. 문제를 너무 잘 풀었다. 


가끔 김건희를 보면 부럽기도 하다. 뭐가 부러우냐 하면 돈에 대한 맹목, 집착.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것에 인생을 올인하는 거 보면 적어도 저 자는 태어난 게 허무하진 않겠네 싶어서. 김건희 같은 기질의 사람에게 최적화된 세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건희 같은 사람은 절대 자살 안 할걸. 자기 돈 아까워서 못 죽을 걸. 어차피 50년도 더 못 살고 죽을 건데 이 돈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 자체가 없을 걸. '정작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죽음이란 결코 찾아오지 않는 미래입니다.' 이 문장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 김건희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내 인생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 한정치산자로 의심되는 사람(자기 객관화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이 김건희지만, 이기적 유전자적 관점에서 보자면 생을 철저히 긍정하고 죽음을 완벽하게 부정하는 김건희 부류의 인간이야 말로 적자생존 아닌지. 자본주의 환경에 최적화된 인간 군상으로서 적자생존. 환경에 적합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에서. 



ps. 시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내가 제일 아끼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는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이다. 너무 좋아서 암기하려고 했는데, 20페이지 정도 분량이라서 포기하고 한 권을 더 구매했다. 한 권은 집, 한 권은 회사에 두고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가 필요할 때마다 읽으려고. 물론 타이핑해서 출력한 A4용지를 회사에 둘 수도 있고, 한글 파일로 꺼내 읽을 수도 있고, 시집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시가 필요할 때마다 폰을 열어볼 수도 있겠지만, 시는 종이로 된 시집으로 읽어야 제 맛. 이 시집도 출판되자마자 샀다. 나라도 사야지 하는 그런 오만한(?) 마음. 아무튼 그래도 존버하면서 살다 보니 이 영화를 극장에서 필름 상영으로 보게 될 날도 오는구나 싶어서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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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오타쿠의 피가 없다에 이어서 쓴다)


땀이 뻘뻘 날 때까지 버티다가 잠시만 에어컨을 켜고 끄고를 반복하면서 푹 쉬었더니 감기의 80%는 해결된 것 같다. 


유튜브에서 미피를 덕질하는 사람의 영상을 봤다. 본 이유는 학생 때 나도 미피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각인된 미피의 퍼스널컬러는 쨍한 오렌지색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오랫동안 오렌지색 바탕에 미피가 그려진 보조가방을 들고 다녔던 탓일 것이다. 또 미피가 그려진 동아 형광펜 오렌지색만 몇 다스 사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고급스럽게 스테들러 형광펜을 쓸 때도 나는 미피가 그려진 향기 나는 동아 형광펜 색상도 경박한, 쨍한 오렌지색을 사용했다(미피 형광펜 12색 세트도 사서 써봤는데 역시 미피는 오렌지색이 짱이다는 결론만 얻음). 그런데 미피 덕질러는 무채색 미피만 수집하고 있었다!! 무채색 미피가 있나? 그게 말이 돼? 하면서 호기심을 폭발해서 영상을 봤는데, 무채색 미피가 엄청 많은 것이다. (미피의 퍼스널 컬러는 오렌지라고 오렌지!! 누군가에게 오렌지는 에르메스겠지만, 나에게 오렌지는 미피!!) 또한 미피 덕질러는 검정과 흰색을 중심으로 무채색만 좋아하는 다꾸 마니아였다. 무채색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 미피 덕질러는 무채색으로 된 귀여운 것들을 좋아했다. 반면 나는 귀여운 디자인 보다는 화사한 색상으로 된 물건을 더 선호한다. 볼펜도 자바 0.38 베이비를 다스로 사서 쓴다. 이 볼펜 이름에 괜히 베이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볼펜 케이스 색상이 베이비톤(?)인데, 네 가지 색상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연보라. 유니 제트스트림도 있지만 굵기별(1.0이 제일 좋다)로 있긴 한데 케이스 모양이 너무 흉물스럽. 현재 나에게 남은 미피는 형광펜과 입체 스티커(휴대폰 케이스 바꿀 때마다 폰에 붙이는 용도).


미피 덕질 영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내가 미피를 사려고 돈을 벌고 있구나."였다. 왜냐하면 요즘 나는 돈으로 사고(하고) 싶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버는 것에 시간과 체력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의 내 책상이 내 영역이기 때문이다(바틀비에게 신내림 받았나?). 어리석게도 매일 가서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고양이과 영역 동물이라도 되는 듯이 출퇴근하고 있을 따름이다. 


왜 사람들은 늘 돈이 부족하다고 하지? 반대로 나는 왜 늘 돈이 남지? 그 이유를 어제 일기를 쓰다가 알게 되었다(이래서 일기를 써야 한다!). 나에게는 오타쿠의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오지은의 신간이 나에게 하등 필요 없는 주제의 책이기에 읽을 이유도 구매할 이유도 못 느끼는 것이다. 권여선의 술안주 에세이도 마찬가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대해서도 쓸모의 유무를 따져 가면서 구매여부와 독서여부를 결정하는데 고만고만한 것들(물건, 인간관계 등등)에 대해서는 어떠하겠는가. 사람에 대해서도, 물건에 대해서도, 서비스에 대해서도 오타쿠적 소비를 하지 않으니 돈이 남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돈을 쓰는 데 사용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에 돈을 써야 할지 정보를 검색할 시간이 없어서였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과 체력을 쓰는 게 너무 아깝다. 통장 잔고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돈을 쓰고 싶지도 않은데, 딱히 돈을 계속 모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 귀한 시관과 체력을 돈벌이에 거의 다 쓰고 있는 게 굉장히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샤넬에 간 것이다. 샤넬에서 사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 돈벌이(영역 표시)를 그만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샤넬에 갔다. 코로나가 끝나고 샤테크의 시대도 저물어서 샤넬은 한가했다. 대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든 매장에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엔 구하기 힘들던 백들도 웬만한 건 다 있다. 다만 지금 구하기 힘든 건 25백 블랙 등 인기 색상. 제니가 나오는 샤넬 광고를 보면서 '저 삼각김밥 같이 생긴 건 뭐래?' 하고 생각했던 25백을 직원이 보여주었을 때도 뭐 이래 생겼어했는데, 어깨에 걸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나 버렸다. 샤넬 매장 속 거대한 거울에 비친 나를 제니로 착각할 정도로 가방이 예뻤다. 하지만 나는 트위드 플랩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산다면 이번 fw 시즌 트위드 플랩백을 사고 싶었다. 샤넬 트위드 재킷은 못 사더라도 트위트 플랩백 하나 정도는 살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번 시즌 신상 중 입고된 건은 세 개뿐이었고 셋 다 별로였다. 홈페이지에서 본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건 매장에 없었다. 영화 시간도 다 되었고 해서 다른 백이 입고되면 연락해 달라고 하고 귀걸이 하나 사고 쇼핑을 끝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어도 계속 어제 본 25백 생각이 나는 거다. 그래서 다시 샤넬에 갔다. 어제 본 건 다 팔렸고, 대신 오늘은 이번 fw에 새로 출시된 다른 가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것보다 더더 맘에 들었다. 내가 두 번째로 예쁘다고 생각한 신상 트위드 백도 이날 입고 되어서 있었는데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25백에 반해버린 것! 그냥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생긴 가방인데, 어깨에 메는 순간 진짜 예뻐진다! 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예뻐짐. 집에서 잠옷을 입고 메어 봤는데 잠옷에도 어울렸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가방이 있을 수 있지!!!! 25백은 음식으로 치면 최고급 향신료 같은 것!


하지만 역시 25백을 구매할 때 소비한 시간이 아깝다. 나는 시간의 가치를 2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버릇이 있다. 2시간이면 영화 1편인데 영화를 포기하고 쇼핑을 해야 할 가치가 있나? 영화 한 편 vs 뷰가 좋은 해운대 호텔 뷔페에서 나는 영화 한 편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특히 그 영화가 다시는 볼 수 없는 영화라면 더더욱.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도 영화 1편 보는 것보다 재미없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처음에야 호기심에서 만나겠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을 다 알고 다면, 더 이상 우려내도 우릴 것이 없는 이미 사용한 티백 같은 사이라는 결론이 나면, 나는 그런 사람(또는 무리)을 만나는 것에 시간과 체력을 쓰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대체로 혼자 있는데, 나를 스쳐간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혼자 쓰는 지금이 제일 만족스럽고 스트레스도 덜 하고, 무엇보다 대학병원 정기 건강 검사 결과가 제일 좋은 나나들이다. 사람, 즉 인간관계가 나에겐 1급 발암물질이었던 것이다. 


요즘 내가 농담처럼 말: 퇴직 전에 주 4.5일제(더 존버하면 주 4일제)는 체험해 보고 그만 두자인데, 존버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샤넬 28백 메고 출근해 보자. 샤넬이 19백, 22백, 25백을 출시한 규칙대로라면 다음 신상백은 28백인데 그때까지는 돈 벌어보자는 거. 근데 번 돈을 어디다 쓰냐, 돈을 쓰고 싶은 데가 없는데. 더욱이 돈을 쓸 시간도 체력도 없는데. 구입한 책도 다 못 읽은 게 더 많고, 개봉한 영화도 제대로 못 챙겨보고 있는데, 쇼핑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여행 갈 시간이 어디 있냐고(사람들이 자꾸 여행 가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일단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거 싫고, 관광지에서 관광객들이랑 만나는 것도 싫고(추석에 파리 갔더니 한국인뿐이었다. 한국인 줄 ㅋㅋ) 이미 가고 싶은 곳은 다 가봤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종이지도와 가이드북 들고 여행 다니던 때가 좀 그립).


물욕이 0에 수렴해서 무기력증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25백 보자마자 반한 걸 보면 무기력증은 아닌 거 같다. 다만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소비위주의 유희거리들이 내 취향과 맞지 않을 뿐. 어렸을 때는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 많아서 일단은 찍먹 해본 것들: 여행(+먹부림), 쇼핑, 우정, 연애, 자동차, 집, 인테리어, 운동(방송댄스도 꽤 오래 배워봄 ㅋㅋ), 악기, (목표가 명확한) 공부 등등. 그 모든 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건 내가 미취학 아동~초등 저학년 때부터 좋아하던 것 말고는 없다. 책 읽기, 영화 보기, 일기 쓰기 그리고 약간의 패션(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좋아했었다). 유튜브에 자주 나오는 여행 광고 중에서 에어비앤비던가를 보면 체험하는 여행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가서 복원팀과 복원 체험, 로마에 가서 피자 만들기 체험, 일본에 가서 일본 라면 만들기 체험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볼 때마다  '저런 체험 위주의 여행이라면 난 돈을 줘도 안 간다 안 가.' 하고 광고를 볼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가 '호갱님, 돈을 쓰세요 돈을!' 하고 외치는 것에 내가 딱히 흥미가 없다는 것. 또한 덕질에도 흥미가 없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도 내 관심사가 아닌 주제라면 구입하지 않을 정도니. 옷과 액세서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1년은 365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입을 수 있는 개수 최대치를 넘지 않게만 소유하고 있다.


다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살이 쪄서 문제라는데 

반대로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살이 안 쪄서 문제고

다든 돈이 없다 돈이 없다 난린데, 

나는 돈을 쓰고 싶은 데가 딱히 없어서 설마 내가 무기력일까 봐 걱정했다.

(이러다 정말 해탈하여 윤회의 사슬을 끊고 업의 강둑을 넘어 무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이 세상은 정말 나랑 맞지가 않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정된 시간은 최대한 낭비 없이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긴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챙기면서 하루씩 살아내고 싶다. 


ps. 이번에 샤넬을 사면서 체감한 것은 경제상황이 진짜 안 좋구나 하는 것. 백화점에서 명품 살 때 항상 상품권 구매해서 사는데 상품권 할인율은 늘 은행 이자보다 낮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은행 이자보다 무려 0.3%나 할인율이 높은 거다. 그동안 내가 돈을 안 써서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던 건가. ㅋㅋㅋ 경제야, 쏘리. 돈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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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염이다. 온열 질환자가 사상 최대라는 뉴스 타이틀을 얼핏 본 것 같다. 감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목이 칼칼하니 목소리가 탁한 것 외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그래서 목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병들을 떠올렸다. 그래봤자 갑상선암이었지만. 검색해 보니 갑상선암은 증상이 없다고 한다. 


다음날, 일어나니 목에 가래가 낀 것처럼 목구멍이 턱 막힌 느낌이었다. 억지로 억지로 에헴 에헴 목구멍에 붙어 있는 무언가를 떠어내어 보니 꾸덕한 버터 같은 가래가 조금 나왔다. 그 외에는 딱히 증상이 없었다.


또 다음날, 샤넬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이런저런 주얼리와 가방들을 착용해 봤다. 더 보고 싶었는데 영화 시간이 되어서 매장을 나왔다. 극장에서는 아랍영화제를 하고 있었는데 <폐허에서 파쿠르>라는 가자 지구 청년의 목숨을 건 파쿠르와 가자 지구 탈출에 대한 다큐를 봤다. 집으로 돌아올 때 자동차의 에어컨 바람이 매우 차갑게 여겨져서 에어컨을 끄고 운전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별로 덥지 않아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샤워하고 바로 잤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새벽 2시쯤 오한이 느껴져서 잠에서 깼다. 그때서야 알았다. 이것은 감기, 여름 감기!! 주방으로 가서 상비약이 있는 싱크대를 열어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다시 잤다.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내 몸이 김밥 속 재료라도 된다는 듯이 여름 냉감 이불을  김처럼 둘둘 말고 잤다. 


또또 다음날, 콧물이 좀 나왔고, 콧물 때문에 코가 좀 막힌 것 같았다. 봄에 입던 긴 팔 셔츠와 베스트를 입었다. 마스크도 꼈다.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했다. 어제 쇼핑을 도와준 직원에게 연락하고 샤넬에 갔다. 샤넬에서 최신상  25-26-fw 25백을 샀다. 거대한 쇼핑백을 들고 주차장으로 가서 트렁크에 쇼핑백을 넣어두고, 쇼핑백 대신 황정은의 신간 <작은 일기>를 꺼내 들었다. 백화점 3층에 있는 메종 키츠네 카페에서 플랫 화이트를 마시면서 내란 수괴 윤 씨가 탄핵되는 날까지의 일기를 읽고 책을 덮었다. 


또또또 다음날, 마스크와 긴 옷 그리고 샤넬 25백으로 중무장을 하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았다. 몸을 최대한 온수 속에 담그고 반신욕 덮개를 목까지 올리고 욕조에 기대어 앉아 뉴스를 들었다. 내란 수괴 윤 씨가 소송을 한 104명에게 위자료 10만 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위자료 총액이 어제, 그제 내가 샤넬에서 쓴 돈보다 적었다.


몸이 좀 데워졌는지 거실이 덥게 느껴져서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이 거실을 차갑게 만드는 동안 마스크를 쓰고 긴 팔 옷을 입었다. 이름이 참 맘에 드는 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에 눕다시피 앉아서 찜 해둔 영화 중에서 뭘 볼지 리모컨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시민 덕희>나 <크로스> 같은 가볍고 통쾌한 범죄 영화가 보고 싶은데 웬만한 건 다 봐서 볼 게 없었다. 거실이 춥게 느껴져서 에어컨을 껐다. <시민 덕희>의 장윤주와 <크로스>의 황정민, 둘 다 나오는 <베테랑 2>를 골랐다. 재미없다는 소문이 있어서 기대 없이 봤는데도 불구하고 재미가 없었다. 졸렸다. 그래서 30분 정도 남겨두고 그냥 잤다. 모델 장윤주 배우(??)의 연기와 배역은 <시민 덕희>가 10배는 더 나았다. 정해인이 악역하기엔 얼굴에 악의가 좀 부족한 듯도 하고. <비상선언>에서 임시완 악역 같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정해인의 얼굴에는 온기가 많은 듯. 임시완은 서늘한 연기엔 참 서늘해 보임. 


여름 감기는 처음이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여름 감기에 걸린 기억은 없다. 이 폭염에 긴 옷에 마스크라니. 지금도 에어컨 켜지 않고 있다. 뉴스에서는 전국 대부분이 폭염 경보라고 한다. 내가 사는 동네도 현재 폭염 경보다. 웃기게도 난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처서 즈음의 여름 같다고 생각했다. 요 몇 년 동안에는 처서에도 굉장히 더웠지만 2000년대나 2010년대에도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처서즈음부터는 시원했다. 처서 즈음에 나오는 아오리 사과가 나의 가장 중요한 절기 음식인 시절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아오리 사과는 저렴했다. 특히 파장 무렵 시장에 가면 8개에 2000원에 팔기도 했다. 언제던가 마트 과일 코너에서 아오리 사과가 1개에 2000원 하는 걸 보고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 물론 좀 더 크고 좀 더 품질이 좋아 보였지만. 


소울 푸드가 죄다 싸구려 음식(아오리 사과 포함)이다. 어렸을 때 먹던 음식들이 그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뜨거운 오뚜기(일본산 고급 고체 커리 말고) 카레가 먹고 싶었다. 아플 때마다 먹고 싶은 건 죄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사소하고 저렴한 음식들이다. 갓 만든 뜨거운 오뚜기 카레(감자, 양파, 당근, 돼지고기, 파프리카)를 에어컨도 없이 긴 팔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면서 퍼 먹었다. 나답지 않게 두 그릇을 먹었다. 최근 몇 년을 통틀어서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얼마 전에도 뷰가 좋은 해운대 고오급 호텔 뷔페에 가서 시식 코너에서 조각 음식 먹듯 먹은 나인데 말이다. 사람들이 스테이크, 대게 등등 비싼 음식을 여러 접시 먹을 때 나는 수삼냉채, 생선구이, 샐러드 한 접시 먹고 끝. 디저트로는 파인애플 2조각, 수박 2조각 먹고 끝. 내가 만든 오뚜기 카레가 호텔 뷔페보다 10배는 넘게 맛있었다.


내가 만약 소설가인데, 권여선처럼 음식 에세이를 쓰게 된다면 아마도 여름 감기엔 오뚜기 카레를 처방한다 어쩌고 하는 글을 쓸지도. 권여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존한 한국 소설가임에도 불구하고(원래 제일 좋아하던 작가는 죽었음. 박완서 소설가이다) 최근작(맞나?) <술꾼들의 모국어>는 사지도 읽지도 않았다. 기존의 음식 에세이 <오늘 뭐 먹지?>와 비슷할 거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술과 안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창작자는 가수 오지은 작가(?)인데 오지은의 최신작 <우울증 가이드북>을 사지 않았다. <술꾼들이 모국어>, <우울증 가이드북은> 나에게 있어서 <삐뽀삐뽀 119 소아과>와 다를 바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밝혀진 사실 하나: 나에겐 오타쿠의 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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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4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감독: 모함마드 라술라프 (이란)


자파르 파나히(이란) 감독처럼 이란 정부로부터 탄압(출국금지, 징역 8년, 재산 몰수, 태형 ㄷ ㄷ )받으며 영화를 계속해서 찍는 감독의 최신작. 계엄이 성공했다면 수용번호 3617의 부부도 이런 식의 탄압을 했겠지. 신체 훼손 장면(수술 장면도 못봐서 의학드라마도 좋아하지 않고, 웬만해선 보지 않는다)을 못 보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 항의(히잡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을 죽인)하는 시위대에게 산탄총(쇠구슬 총)을 무분별하게 발사하는 장소에 우연히 있었기에 얼굴에 십 여발의 쇠구슬이 박힌 대학생(여)의 얼굴에서 족집게로 쇠구슬을 꺼내는 장면을 구토감을 느끼면서도 두 눈 부릅뜨면서 끝까지 봤다. 


가부장제의 발명 자체가 인류가 쓸모없이 이기적이라는 결정적인 증거!


영화의 엔딩에 매우 흡족해 하며 극장을 나왔다. 


<페니키안 스킴> 2025. 5. 28. 개봉

감독: 웨스 앤더슨


미국(유럽)의 가부장과 한국(이란) 가부장을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다. 

2000년 이후 서구 가부장은 딸에게도 가부장을 상속하려 한다. 

하지만 한국(이란)은 아직도 가부장을 아들에게 상속하려고 한다.

어제 영화<특별시민>을 봤는데 2017년 작품인데 호주제가 살아있었던 1997년인 줄(호주제는 2008년 폐지됨).

3선을 노리는 가부장 변종구(2선의 서울시장 역)는 상습 가정폭력범(배우자인 아내를 때림)이며 자신의 뺑소니 사망사건을 딸에게 덮어 씌움. 이 장면에서 아들이었다면 저랬을까 하는 의심이 100% 들었다. 경쟁자인 양진주(라미란 배우)의 하버드 출신의 미국 변호사 아들이 등장한다. 이 구조가 웃겼다. 감독은 풍자적으로 이런 딸, 아들 구조를 썼을까, 아니면 별 생각없는 신념(아들은 하버드고, 딸은 희생양)으로 썼을까 궁금했다. 


다시 영화 <페니키안 스킴>으로 돌아와서 타락한 가부장은 수녀 지망생 딸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점에서 대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서는 갱생 가능성이 1도 없는 가부장이라서 장렬하게 처벌받는다.




<퀴어> 2025. 6. 20. 개봉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하!!!!! 

간지!!!!!!

간지!!!!!!!


경치가 끝내주게 아름다운 적도 근처 섬으로 휴가 갔다 온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 


엔딩에 대한 호불호가 있던데, 난 절대적인 호!!!

이 감독의 필모에 <서스페리아>가 있는 이유지!!!!


개인적으론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을 멍 때리고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는데, 이 영화가 그랬다.

걍 힐링됨.


퀴어는 거들뿐.

분위기와 취향이 다 하는 영화.


이런 게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s. 커리어의 후반부에 이런 아름다운 영화의 주연을 맡게 된 다니엘 크레이그는 어떤 기분일까? 최고의 필모 아닌지. 이런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음, 역시 뱃살 관리 하길 잘 했어.' 하는 ㅋㅋㅋ. 




<노이즈> 2025. 6. 25. 개봉

감독: 김수진(입봉작이라고 한다)


이선빈, 류경수가 출연한다고 해서 기본은 할 거라고 생각하고 예매했다.


퇴근하고 나서, 왠지 의욕이 없었던 날 극장이나 가자하고 가서 본 영화.

집 근처 극장에서 큰 기대없이 한국 공포 장르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는 처방.


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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