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요아킴 트리에. 2026.2.18.개봉
수상이력: 2025년 78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심사위원 대상), 2026년 98회 아카데미 영화제 국제장편영화상(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남주연상 등 9개 부문 후보였으나 수상은 국제장편영화상 1개)
주연: 레나테 레인스베(2021년 74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텔란 스카스가드(영화 듄의 하코넨 남작ㅋㅋ)
이 영화를 통해서 요아킴 트리에는 나와는 결이 맞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별 기대 없이 보았던 <the worst person in the would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도 그저 그랬는데(영화 시작 부분 오슬로 시내를 전망하는 장면에서는 호감이었지. 오래전 나의 오슬로 여행을 추억하게 해 주었으니까) 호평이 자자한 이번 영화는 기대가 있어서였을까, 칸에서 2등 상, 아카데미 9개 부분 후보라는 후광 때문이었을까 실망이 컸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남)의 < 그 여름의 시간들>(코로나로 인해 프랑스의 많은 도시가 봉쇄되었을 때 넓디넓은 가족 별장에서 휴가 같은 격리 생활을 하는 문화 금수저 두 형제의 미숙함을 다룬 소소한 영화로 감독의 자전적 코로나 격리 경험담을 토대로 만든 영화), 마렌 아데(여) <토니 에드만>(68혁명 세대의 아버지와 2008 금융위기 이후 세대인 딸 사이의 세대 간 불화를 다룬 영화. 아버지는 68세대 답게 여전히 이상을 꿈꾸는 철없는 기성세대이고 딸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정리해고와 기업이윤에 따라 냉정하게 움직이는 일 중독자다) 두 영화가 얼핏 얼핏 연상되었지만 어딘가 불협화음이었다. 뭔가 억지스러웠다. 그 억지스러움은 문화 금수저 남자 감독이 성공한 아버지와 불화를 겪는 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든 탓인 거 같다. 딸의 마음을 아들, 그것도 문화 금수저인 니가 어찌 알아? 하는 마음이었달까.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가중되었다.
노라의 아빠인 영화감독 구스타프는 영화 <그 여름의 시간들>에 맏형으로 투입하여 이들을 천방지축 금수저 삼 형제로 하면 마침맞을 정도로 미성숙하다. 라면조차도 끓이지 못할 것 같은 류의 미숙함이다. 영화 속에서는 키친타월사용법을 모르는 것으로 연출된다. 노라는 두 자매 중 맏이이며 무대 공포증을 심각하게 앓는 중인 연극배우이다. 같은 극단의 유부남(조만간 이혼 소송 예정인)과 내연 관계로 관계가 진지해지는 것이 싫어서 유부남을 사귀는 중이다. 둘째이자 막내인 여동생 아그네스는 노라와는 달리 남편과 함께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역사학자 워킹맘이다. 이런 대조적인 설정부터 진부했고 나를 빡치게 했다! 자매가 있으면 누구든 한 명은 배려심 있고 사려 깊게 가정을 꾸리고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남자들의) 생각이 구렸다. 이건 전인류적으로 딸들에게 씌우는 멍에인가? 노르웨이 딸들도 쉽지 않네, 돌봄 노동!!
영화는 두 자매의 엄마 장례식 뒤풀이(?)에서 시작한다. 뒤풀이 장소는 자매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자매의 엄마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이다. 장례식 뒤풀이는 당연히 아그네스가 준비했다. 음식도 홈메이드인 듯하다. 이런 아그네스를 노라는 출장 뷔페를 부르지 그랬냐라고 타박한다. 이때 느닷없이 전 부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구스타프가 뒤풀이에 나타나서 노라는 놀람과 동시에 불쾌해하며 아그네스에게 "니가 연락했어?!!"라고 물으며 또 타박하고, 아그네스는 그래도 아빤데 연락해야지라고 대답한다. 두 자매의 대조적 성향을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역시 너무 뻔하다. 이 무슨 KBS 저녁 일일연속극 같은 설정이란 말인가! 두 딸과 아내를 버리고 바람나서 가출한 저명한 영화감독 아빠의 등장이라뉘!!! 딸들아 (너네 엄마가 죽었으니 이제 너희에겐 나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니?) 이제 우리 잘 지내보자꾸나 하고 등장하는 철부지 아빠라니!!!!!!!! 빡치네!!!!!!!!!! 심지어는 자매가 어린 시절에 살았고 엄마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그 집은 100% 전남편의 소유였던 것으로 밝혀져!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집은 구스타프가 그의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집니까. ㅋㅋㅋㅋ 두 자매는 그 집을 상속조차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집은 매우 심각하고 우울한 사연이 있던 집이었다는 것이 구스타프의 새 시나리오로 밝혀진다. 철들 수 없는 예술하는 부모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딸아 내 상처를 니가 보듬어다오라니 ㄷ ㄷ
한 때 잘 나가던 예술영화감독이었던 구스타프는 십 수년 째 장편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가 전 부인의 장례식 뒤풀이에 낄낄빠빠하지 못하고 나타나서는 연극배우인 딸에게 "나는 연극이 싫다, 하지만 너의 연기는 다 보고 있단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아직 보지 못했구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연극이 싫다. 그러나 너는 훌륭한 배우지, 재능이 있어. 그래서 너를 위해 준비했다. 이번 내 영화의 주인공이 너란다. 너를 염두해 주고 시나리오를 썼단다. 어때? 아빠 짱짱맨이지? 비록 바람나서 너희 자매를 버리고 떠났긴 했지만, 이런 멋진 아빠 본 적 있니?"라고 주접을 떨어댄다. 노라는 이런 직진에 분노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구스타프 식으로 화해를 요청하는 사람 극혐이다. 이기적이다 정말 이기적이야!!!!!
장소는 어느 극장. 엘 패닝(헐리웃 스타)이 관객석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극장 밖으로 뒤쳐 나간다. 엘 패닝이 감동한 영화는 해안가 도시의 어느 영화제의 구스타프 감독 기획전에서 상영한 구스타프의 대표작이자 둘째 딸 아그네스가 아역으로 출연하여 천재적 연기를 펼친 영화다. 엘 패닝은 비공개 저녁 식사 자리에 구스타프 감독을 초대하고 장녀 노라에게 거절당한 구스타프는 엘 페닝에게 구애(?)하여 새 시나리오의 주인공 캐스팅에 성공하게 된다.
장면은 구스타프의 낡고 늙은 사연 많은 하우스! 눈치 빠른 아그네스는 구스타프 소유의 집에 있는 엄마의 물건들을 치운다. 엄마의 유산을 혼자 맘대로 처분하는 게 맘에 걸려서 언니 노라도 오라고 해서 상속권(?)을 행사하게 해 준다. 난 이 장면이 참 싫었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딜 가나 아그네스 같은 딸들이 있다. 파투 위기의 집안을 홀로 온몸과 온마음으로 지키는 딸들. 마치 백범 김구가 홀로 남아 상해임시정부를 지키듯이. 뒤늦게 나타난 노라는 아그네스가 맘에 들어하는 꽃병을 자기도 맘에 든다면서 가져가 버린다. 물론 고의는 아니다. "아빠도 오기로 했어."라는 아그네스 말을 듣고 뒷문으로 도망가는데 하필 손에 꽃병이 들려 있는 우연!
둘째 딸 아그네스를 자신의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시켰던 구스타프는 둘째 딸의 아들(구스타프에겐 하나뿐인 손자)을 또 영화에 출연시키려 한다. 아그네스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손자에게 접근하여 출연 허락을 받아낸달까?? 천사 같던 아그네스도 이점에 대해서는 구스타브에게 화를 내면서 아들을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주장한다.
구스타프 신작의 주인공이 원래는 노라였다는 것을 알게 된 레이첼(엘 패닝)은 더더욱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이 배역은 내 것이 아닌 노라의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영화에서 하차한다. 엘 패닝이 주연이라서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댄 것 같던데 이는 어찌 되는 건지 궁금했지만 영화에서 따로 언급은 없다. 한편 구스타프의 시나리오를 읽은 아그네스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언니뿐이다는 확신으로 시나리오를 들고 노라를 찾아가서 '읽어보기라도 해'라고 하면서 미끼를 던진다.
영화의 엔딩은 이렇다.
노라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엄마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구스타브가 그의 모친에게 상속받은 낡고 늙은 사연 많은 그 집은 현대적으로(곡선보다는 직선이 많은 현대 북유럽스타일?) 인테리어를 다시 한다. 화이트와 그레이 컬러에 직선이 강조되는 모던 키친에서 노라가 아들(아그네스의 아들이자 하나뿐인 노라의 조카)을 등교시키고 안방으로 가서 천장에 줄을 매단다. 이때 아들이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고 노라는 거실로 나가서 "왜 왔니?" 물으니 아들은 "휴대폰을 두고 갔어." 하면서 휴대폰을 들고 다시 나간다. 노라는 다시 안 방으로 들어가서 하던 일을 마저 하려고 하고 카메라는 이 모든 것이 영화 세트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세트장에서의 삼대 즉 구스타프, 노라와 아그네스, 그리고 아그네스의 아들은 화기애애해 보인다.
이 영화에서 쫌 웃겼던 장면은 구스타프가 손자에게 준 생일 선물이다. 그것은 dvd 두 장인데 한 장은 미카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이고 또 한 장은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돌이킬 수 없는>이다. 하... 나는 대학생 때 <돌이킬 수 없는>을 보고 난 후 한 동안 무서워서 지하터널 통행로를 이용하지 못했다. 그런 영화를 초딩 손자에게 생일 선물로 주는 구스타프는 어떤 사람일까? 개그캐?? 착한 아그네스는 "dvd플레이어가 없어서 이건 볼 수 없어."라고 말하며 웃고 만다(역시나 배려심 깊은 아그네스). 이 장면이 구스타프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세상만사 자기 위주, 주변사람 특히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 물론 구스타프 식 개그를 표현한 선물일지도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필요한 선물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시간조차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ps. 2026년 여성의 날 기념 알라딘 굿즈 1) 페미니스트 찻잔 세트 2) 여성 참정권 우드트레이를 소장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영화가 곱게 감상될 리가 없었다는 것을 밝힌다. 솔직히 구스타프는 너무 자녀를 우려먹는 거 아닌지? 노라를 위해 쓴 시나리오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사연 많은 하우스)를 치유하기 위해서 쓴 것이고, 모친에게 받은 상처를 딸로부터 보상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 꼽사리로 손자까지 출연시키고. 좋게 보려고 해도 그렇게 안 봐진다.
(아래는 마지막에 남겨둔 결정적 스포일러??)
ps2. 그 낡고 늙은 집의 사연은 이렇다. 젊은 시절 노라의 할머니 즉 구스타프의 엄마는 나치반대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나치에게 끌려가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혹한 고문을 당한다. 고문의 구체적인 형태는 역사학자인 아그네스가 도서관을 뒤져가면서 찾아낸다. 이 가족에게 아그네스는 절대적 구원자인 듯. 고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구스타프의 모친은 침실의 천장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그 집을 구스타프가 상속받는다. 결혼 후에 그 집에서 가족들과 살다가 바람나서 가출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구스타프의 모친이 자살한 그 방은 구스타프 부부의 방이었다가 이혼 후에는 노라 엄마의 방이 된다. 노라 엄마는 그런 사연을 모른 채로 평생 그 방에서 살았던 것. 이것도 참 별로다. 이 이야기가 이번 구스타프의 신작이고 노라가 자살한 할머니 역할, 아그네스의 아들이 구스타프 역할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