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남자가 없는 또 한 여자는 책을 읽으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그녀는 붙임성 있는 것도 아니고 새침하지도 않게 책과 워크맨으로 고집스럽게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자궁 병동 / 도리스 레싱>


며칠 전에 갑자기 생각나서 민음사 문학전집 칸에 가서 <런던 스케치>를 꺼내어 이 부분을 읽었다. 막 취업을 했던 20대 중반 시절 내 것이라고는 내 몸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책과 워크맨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많이 얻었다. 어서 빨리 10년 차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왜냐하면 10년 정도 돈을 벌었다면 '책과 워크맨'이 아닌 인감도장과 집문서, 땅문서, 차량등록증 같은 실제적인 것들이 나의 영역 속에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이가 어리다고, 경력이 없다고 해서 일일이 간섭당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틴 결과는 무엇인가!

주 5일의 출퇴근이 완벽히 몸에 배어버린 연휴가 오히려 더 불편한 출퇴근중독자(?)가 되어버린 것. 더 정확히는 집을 제외한 또 다른 곳에 내 영역을 두고 싶어서 인 것 같다. 회사에 돈을 벌러 간다기보다 '내 영역'을 지키러 가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 자신이 어리석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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