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능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24살때 시신인상과 소설문학상을 동시에 받은 이가 할 소리인가.
김태희가 전 제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나
강동원이 제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거랑
이게 뭐가 다른 뉘앙스일까. -_-
그렇게 그의 한시간에 걸친 짧고도 긴 '재능없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김연수 작가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그의 모든 소설을 사 모을만큼 김연수 작가의 글을 좋아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작가와 실제의 작가가 다를까봐 조금 두려웠다. 상상하는 작가라는 게 따로 있는 건 아니었는데, 그저 이런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기준 정도는 있었다. 다행히도, 그리고 당연히도 실제의 김연수 작가는 꽤 매력적이었다.
글을 말보다 훨씬 잘 써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말에 묻어있는 진솔함은 글 못지 않아서 함께 한 시간들이 의미있고 좋았다.
그 강연의 주제는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재능없는 어떤 사람이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매일매일 열심히 글을 썼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사랑하고, 스스로에 대한 부정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독려하며,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끊임없이 하다보니, 매일 조금씩 나아졌고, 결국 지금의 소설가가 되었더라는 요지.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러다 보면 소설만 잘 쓰는 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너무 흐뭇한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낸 순간>을 읽다보니 책의 마지막에도 써 놓으셨더라.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827/93/cover150/8960900915_2.jpg)
옳거니. 매일 스스로를 성찰하는 인간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데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글로 매일 하면서, 그것을 통해 편견을 제거하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긍정하고, 그걸 매일 하다보니 글도 잘(자주) 쓰게 되고, 인격까지 훌륭해진단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거의 요즘 유행하는 뉴에이지책의 한 구절 같다는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오! <시크릿>~! 열심히 소망하고 생각한 대로 나는 변하게 되리라.^^
그래서 처음 본 김작가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었다.
나는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지도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엉덩이로 하는 거다." 환갑이 훌쩍 넘으셨던 내가 존경하던 선생님은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
똑똑함이 성실함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그렇게 하신 거였다.
그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고. 끊임없이 매일매일 부지런히 쓰다보니 어느새 재능이 생기고 소설가가 돼 있더라고.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재능없는 범인인지, 아니면 너무 겸손한 천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성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라는 것만큼 분명해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꽤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그 재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게 되리라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네이뇬의 지식인처럼, 그것은 시간의 나이테가 많아질수록 더욱 쌓이고 좋아지는 것일 테니까.
그의 성실함이 쌓일수록 나는 그의 좋은 소설들을 더 많이 읽게 될 테고,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함께 사는 세상에 매일 성찰하며 사는 좀 더 나은 인간을 한 명 얻게 되는 셈이니까. 어느 쪽이든 나쁠 것은 없다. 그래도 독자로서 '계간 김연수'를 계속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계간 김연수'를 열심히 사 읽는 충실한 독자가 이미 되어 있다.
+
1.
3-4명의 지인만 들락거리는 폐쇄적인 작은 홈피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같이 간 지인이 찍은 김연수 작가의 사진을 올렸더니 이런 덧글이 달렸다. "뉴*** 신발까지 사진이 꽤 간지있게 잘 나왔는데~(이하 생략)"
나는 덧글에 대한 덧글을 달았다. "머리까지 미장원에서 하고 왔다는데 그렇게 간지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귀여운 스타일이라면 모를까. 김천 촌놈이잖어.^^;"(참고로 난 점촌 촌년이다.)
2.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꽤 불만이 많았다. 나도 정말 질문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Q&A시간도 짧았던 데다가 첫 질문자의 길고 긴, 그리고 다소 이해력이 부족한 질문 덕에 다른 사람들이 질문 할 시간을 빼앗은 것이다.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면 작가가 불행한 삶을 그리기 위해 불행에 많이 노출되어(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작가님도 그러신가요, 류따위의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고 말했는데도 마치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자기 생각을 또 말하지도 않았을 거고. 이 자리는 관객의 생각이 아니라 작가의 말을 듣는 자리였다는 걸 살짝 잊어버리고 말이다.
강연시간에 그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을 매일, 아주 잘 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보통 사람들은 일상에서 큰 계기가 있을 때가 아니면 대체로 그런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연인과의 이별, 절친과의 다툼, 부모님과의 불화, 회사에서의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등등과 같은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그 감정들을 글 속에 토로하고 난 뒤, 부정적 감정들을 하나씩 지우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도 따위는 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는 그런 비슷한 일들을 거의 매일 글쓰기를 하며 한다고 하니(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렇다.- 그러나 김연수 작가는 눌변도 아니었지만, 달변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내가 이해를 제대로 했나 싶다. 뭐 내 이해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 ^^;) 대단할 수밖에.
그러니 불행한 삶과의 근접성과는 관계없이 작가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구성하고, 주인공이 했을 법한 행동과 말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객관적 자기 들여다보기가 가능하기에 소설 속 주인공 들여다보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불행하니까 이런 불행도 더 잘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 생각엔 너무 1차원적이다. 물론 그렇게 소설을 쓰는 훌륭한 소설가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경험, 혹은 경험의 근접성만으로 소설을 쓴다면 이 세상 모든 소설들의 양은 지금보다 상당히 적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좋아하는 작가가 이야기할 때는 좀 집중하자. 내가 나중에 할 질문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수정하느라 딴 생각하지 말고!
아니 이를테면 주인공인 '나'가 죽는 이야기를 그리려면 죽어봐야 그걸 쓸 수 있느냐고~!(나, 뒤끝있는 관객이다 ^^:)
3.
고르고 골라 신간 포함 5권을 가져갔다. 사인 받으려고. 특히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꼭 받고 싶었어.
그런데 나보다 더 가지고 온 사람도 있더라. (오우, 당신이 진정한 위너!)
진행이 늦어졌다고 말하는 출판사에서 책 많이 가지고 나온 나를 좋아라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부러 거의 마지막에 받았는데... 책이 많아 죄송하다는 말까지 했는데, 작가는 괜찮다는데 편집부 직원은 난감해한다.
뭐 둘의 입장을 모두 이해한다.
그러므로 굴하지 않고 다음번에 또 기회가 있다면 사인받지 못한 나머지를 모두 가지고 가겠다~!!!
김연수 작가의 오종종하고 귀여운 글씨가 쓰여진 책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_^
p.s.
강연, 감사했다. 데불고 간 지인은 그 자리에서 팬이 되어, 지금 작가님 책 주문한다고 아조 난리다. ^-^;
자리를 마련해준 마음산책에게도 독자로서 감사한다. 다음번엔 좀 더 매끄러운 진행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