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진 > 김연수 vs 김중혁 대담 혹은 만담 후기

 

 

대책없이 해피엔딩이란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김연수와 김중혁이 친구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김연수는 94년에 등단하여 윤대녕과 동년을 이루며 작가로 활동해 온 기성작가지만, 김중혁은 2000년에 펭귄뉴스로 등단하여 두개의 단편집을 8년에 걸쳐 천천히 출간하고, 이제 막 손에 물이 올라 미스터 모노레일을 본격적으로 연재하고, 장편 <좀비들> 소설 출간을 일주일 앞둔, 이제부터 제대로,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시작하는 느낌을 주는 신인같은 작가다. 김연수가 70년생인 것도 알고 있었고, 김중혁이 71년생인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 70년생 김연수가  71년생 김중혁과 1살 차이라는 걸 실감해 본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이 두명의 작가가 친구일 수 있다는 가능성, 친구로 엮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나에겐 이세상에 없는 종류였다. 김연수와 김중혁은 결론적으로 고작 1살 차이이지만 세대가 다른 작가이기 때문이다. 김중혁의 나이가 39살이건, 마흔이건, 김중혁은 김애란과 비슷한 시기에 등단하여 활동하는 얼마 안된 그 또래의 작가인 것이다. 그래서 대책없이 해피엔딩이란 책이 출간되고, 뜬금없이 두 작가가 친구라고 소개되어지고, 그것도 등단하고 나서 친해진 것도 아니고, 김천에서 자라나 지금까지 친구였고, 그게 횟수로 28년이다. 이 사실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김연수는 25세에 등단을 했다. 25세 등단을 하고, 그렇게 26살, 27살, 28살, 한살, 한살 나이를 먹고, 나이를 먹어가는 그 일년을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살았다고 했다. 30살이 되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20대 때 의미있는 일을 이뤄내고 싶었다고, 20대 때에는 그런게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했다. 20대에 작가가 된 자기자신이 20대에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사람보다는 격차가 있다는 생각을 20대에는 했었다고, 하지만 30대가 되어 하나, 둘 다시 나이를 먹어가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바뀌고, 변했다고 했다. 이런줄 알았다면 20대를 다시 살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대담 혹은 만담의 마지막 시간, 마지막 질문입니다가 몇차례 반복되고, 이제 정말 끝을 내기 직전에 뒤쪽의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만요. 30대가 끝이라고 하셨는데(이건 김연수의 말과 조금 차이가 있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스무살이 듣기엔 30대가 끝처럼 느껴졌는데 아니었다는 문장이. 30대가 끝이라는 부분에 멈춰진채 스무살에게 심각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 위기감은 30대가 끝처럼 느껴졌는데, 아니었다는 말로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고, 스무살은 질문에, 질문이 끝나는 동안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정말 마지막이다 싶은 순간이 오자, 다급하게 소리쳤던 것이다.)30대를 10년 남긴 스무살은 어떻게해야해요? 스무살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스무살이에요? 김연수가 물었다. 네... 스무살이 죄지은 것처럼 대답했다. 김연수는 뭐라고, 뭐라고 길게 말했다. 김연수가 길게 말할 때마다, 김중혁은 졸린 두눈을 부릅뜨고, 졸음을 억지로 쫓아내는 표정을 했다. 하품을 하고, 아 너무 지루하지 않아요? 장난을 쳤다. 김연수가 뭐라고 말했는지는 애석하게도 정확하게 기억이 안난다. 아마도 청춘의 문장들에 나온 말과 같은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연수는 이것, 저것 대답해주다가 갑자기 스무살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스무살이세요? 네- 다시 죄지은 듯한 목소리로 스무살이 대답했다. 좋겠다. 김연수는 그렇게 말했다. 방학기간 동안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자를 보며 여자가 말하듯, 좋겠다. 좋겠다. 했다.


  김연수가 말한다. 김중혁에 대해 저렇게 책도 안읽고, 게을러서 서른에 등단을 하고, 내 책을 안읽어봐서 나한테 갭이 없는 애라고, 김중혁이 말한다. 김연수에 대해 한번에 읽히기 힘든 글을 써서, 두번, 세번 읽어봐야 알것처럼 쓰고, 그래서 꼭 그 글이 뭐가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고, 어렵고, 잘 안읽히니까 뭔가 있어보이는 것처럼 쓰는거, 그것도 전략 아니냐고. 자 여러분 일주일 후에 제 책이 나옵니다. <좀비들>. 제가 여기 온 두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기에 대다수 모인 김연수의 팬을 제쪽으로 돌려놓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일주일 후에 나올 제 첫 장편  <좀비들> 홍보를 위해서지요. 김연수가 듣다가 말한다. 책 제목이 <좀비들>이라니 그게 뭐냐고 했다. 김중혁이, 제목을 좀 봐달라고 자기한테 툭 하면 물어보는데, 다 별로였다고, 말하는 김에 <펭귄뉴스>도 좀 그렇지 않냐고 말했다. 김중혁이 반박한다. 김연수 제목중에도 <심야 기린 통신> 이었던거 있었다고, 지금이 어느시대인데 90년대에 나올법할 제목을, 시대에 한참 뒤져쳐있다며 비난한다. 김연수가 인정했다. <심야 기린 통신> 꼭 <은어 낚시 통신>같죠. 김중혁도 인정한다. 제목보다 책 내용이 더 중요한거 아니겠냐고, 듣다가 다시 김연수가 말한다. 너무 쉽게 읽혀서 한번 읽고 나면 다시 들춰보지 않게되는 그 책말이죠? 제 책은 두번, 세번 읽어봐야하니까 소장가치라도 있지. 김중혁이 말한다. 우리가 친한건 서로 책을 안읽어봐서 그래요. 서로 자기책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하지 않으니까 28년동안 친구로 지낼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거요? 한 세줄 읽었나? 
  
 김연수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김중혁이 부럽다는 거다. 책도 안읽고, 글도 잘 안쓰고, 서른에 등단하더니, 결국 자기보다 한살 어리면서 젊은 작가상을 받지 않았냐고 한다. 자기는 윤대녕씨랑 동기인데, 김중혁은 김애란과 동기라고, 김애란 이런 작가들과 동년으로 묶여 어울리는 거 보면 부럽다고 했다. 매 순간 의미있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20대를 보낸 작가가 자기와 속도도, 스타일도 다른. 한마디로 "자기와 자체동력이 다른" 친구를 지켜보면서 시선도 바뀌고, 생각도 바뀌었다. 그래서 김연수는 오래살고 볼일이란 말을 책에서도, 대담에서도, 여기, 저기에서도 했다. 우린 정말 별 관계가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28년 세월동안 친구로 지내다보니, 그게 대단한 관계가 됐어요.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에요. 

 

  김중혁과 김연수를 봤다. 호칭은 생략. 김중혁은 세계작가축제에서 봤었지만 단짝 김연수와 함께 있을 땐 또 다른 느낌이다. 김중혁은 김연수가 표현한대로 희끄무레하고 어벙벙한 인상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촛점이 잘 안잡히고 흔들렸다. 하도 하애서. 김연수는 김중혁씨가 표현한대로 까맣다. 까매서 그런지 촛점이 아주 잘 잡히는 김연수님(호칭이 저절로 붙여진다. "임"이라서)은 처음, 봤다. 나는 너무 좋으면 피하는 성향이 있다. 기를 쓰고 피한 다음에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 나는 왜 바보처럼 피하기만 했나 철지난 노래를 옛 가수첨러 읊곤 한다. 2004년, 홍대에서 에고래핑 단독공연이 있었다. 공연을 기다리는 그 몇시간전에  거리에서 요시에가 슬로우 필름처럼 천천히 내 앞을 스쳐지나갔다.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얼마든지 멈춰줄 것처럼 느리게 지나가는 요시에를 그냥 쳐다만 봤다. 2008년 베를린, 100번 버스 2층 맨 앞자리에서 손에 카메라를 쥔 채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가 불타 연기가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걸 하염없이 쳐다본 적도 있다. 팔을 올리고 한장만 담아내면 될 것을. 1996년 2월 14일 생전처음 좋아한 남학생에게 줄 사탕바구니를 끝내 못 건넸다. 김연수를 보는데, 그런 과거가 겹쳐서 떠올랐다. 오늘이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죽고 나서 살아 생전에 바로 앞에서 만나봤을 것을 하고, 후회할 뻔 했을 지도 몰랐겠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성큼 걸어와서 자리에 앉은 김중혁과는 달리 김연수는 빈의자가 하나뿐인 의자를 놓고도 잠시 여기 앉아도 주춤, 되나, 하고 앉았다. 올 것이 왔군. 김중혁은 그런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마자 정면을 봤고, 김연수는 까만건지 빨개진건지 모를 얼굴색을 하고 고개를 설핏 숙였다. 그 모습이 꼭 소개팅 처음 나온 남자 같았다. 김연수를 보는데, 깜짝 놀랬다. 아직도, 소년이어서. 머리숱도 빠졌고, 주름살도 선명한데, 눈빛도, 말하는 것도, 표정도 어느 것 하나 어른 같지 않아서. 조금도 마흔만큼이거나, 나이를 먹었다거나 하는 느낌을 주지 않아서. 보여지는 모습보다 느껴지는 모습이 너무 젊었다. 내 나이보다도 더 어린 스무살 중반의 청년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나중엔 주름도, 머리숱도 아무것도 안보였다. 그런 젊은 두 남자를 바로 앞에서 지켜보다보니, 괜히 나까지 소개팅 자리에 나온 맞은편 여자 같았다. 김중혁은 걸죽한 입담으로 바람을 잡고, 김연수는 가만히 있다가 할말 다하면서 재미를 더하고, 나는 무슨 복인지 미팅 앞자리에 앉아서 두 남자가 번갈아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재밌어하며 웃고. 김중혁은 청중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연수 좋아하는 분들 중에선 여자가 많은 것 같다고, 대기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노라고. 어떻게 생겼는지. 예쁠까? 그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고. 역시 소년들이다.


  오면서 현수막을 봤는데, 너무 거창하더라구요. 폭풍 같은 입담. 거침 없는 재미를 기대하고 오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나가시면 됩니다. 김중혁이 말했다. 김연수 작가님도 말하시죠. 김중혁이 옆자리의 김연수에게 마이크를 권한다. 어쨋거나 저는 해피엔딩을 맡겠습니다. 저는 표지에 불만이 많아요. 일러스트를 이강훈씨가 그렸는데, 직접 만나본 적은 없어요. 책 표지 자체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참신한 표지이긴 한데, 저를 만나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비율이 너무 사실과 다르게 왜곡 되어 있어요. 김중혁이 말한다. 저는 제대로 잘 그려냈다고 봅니다. 김연수가 다시 말한다. 저를 저렇게 저렇게 작게, 짧게 그려놓고, 꼭 옆에다가 김연수라고 화살표를 써서 적어놔야 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를 만나기도 전에 선입견이 생길거 아니에요. 선입견이 얼마나 안좋은데, 그리고 김중혁씨 뒤에 앉은 제 자세가 너무 "일방적인 사랑" 같고, 그렇습니다. 폭풍 같은 입담도, 거침 없는 재미도 기대한 적이 없지만 그곳에 모인 우리는 어느새 책표지에 스쿠터를 탄 김중혁과 김연수를 덮쳐오는 해일처럼, 대책없이 행복했다.

  청춘의 문장들을 보면 호스를 갉아먹는 시골쥐가 사는 정릉 4동이 나온다. 제대한 친구 하나가 비빌 언덕을 찾아 김연수가 묶는 하꼬방을 찾아온다. 친구는 가사에 보탬이 되고자 술만 취하면 이것저것을 집어온다. 관 속에 넣어진 채 버스 정류장 옆에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드는 그 좁은 방에, 이발소 의자와, 천장까지 닫는 장롱, 스티로품 따위를 채워서 만든 둥근 천 소파 등등을. 그 친구가 바로 김중혁이었다. 김중혁은 빌붙은게 미안해서, 하루종일 밖에서 놀고 밤 늦게 귀가 했다고 한다.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물건도 갖다놓고 했었다고, 김연수가 청춘의 문장들에서 쓰레기라 명명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열거하며 김중혁은 나름대로 김연수의 등단을 돕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다. 듣다가, 김연수가 말한다. 글쎄요. 저는 어차피 글쓸 땐 누가 옆에 있어도 신경을 안쓰기 때문에 뒤에서 놀면 노는가보다 하고 신경도 안썼을텐데, 괜히 미안한지 나가더라구요. 노는걸 워낙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더 그랬을텐데. 

   김중혁이 말한다. 저는 기억력이 형편이 없어요. 그래서 김연수씨가 옛날에 이랬잖아 라고 이것, 저것 이야기하면 기억이 안나니까 반박할 수가 없어요. 저는 군대를 30개월동안 다녀왔는데, 거기에 대한 기억도 전혀 남아 있질 않아요. 아마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고, 생각하기 싫은건 잊어버리는 그런게 있나 봐요. 하지만 그 시절을 생각하면 항상 기억나는게 있는데, 김연수씨 뒷모습이에요. 집을 나갈 때나 들어올때나 언제나 등을 지고 앉아서 하루종일 286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뭘 쓰던 모습이 기억나요. 그런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열심히 글을 써보고 싶다 그런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저는 20대를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그냥 아, 내일은 뭐하고 놀까. 그런거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렇게 과거를 세세히 기억하는 김연수를 보면, 아 제가 저렇게 세세한 것도 돌아보기 때문에 기억하기 때문에 저런 글이 나오는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저도 요새는 책을 좀 읽어볼까 하고, 김연수에게 책 추천을 받는데, 김연수는 양철북, 뭐 이런걸 추천했어요. 저도 요새는 나름 책을 읽으려고 노력, 노력하고 있답니다. 독서일기도 쓰구요. 언젠가는 읽어두려고 달마다 책도 삽니다. 김연수가 20대에 벌써 등단하고, 작가가 됐지만 저는 그게 배아프다거나, 갭이 느껴진다거나 그런게 없었어요. 그냥 그런 아무 느낌 없이 잘됐다고 생각했고, 지내왔기에 지금까지 친구가 된 것 같아요. 무슨 소리 김연수가 반박한다.

  김연수, 문태준, 김중혁은 같은 고향 친구이자, 중학교 동창이다. 김천 중학교를 나와서 당연히 김천 고등학교를 갈 줄 알았던 김중혁의 인생은 여기서 꼬이기 시작한다. 단 1점차이로, 이게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1점차이로 저는 김천 고등학교에 떨어져서 실업고등학교에 간거죠. 김중혁이 말한다. 실업고등학교를 간다는건, 당시에 저한테는 엄청난 콤플렉스 였어요. 인생자체가 틀어져서 다시는 제대로 된 대열에 낄 수 없는 것 같았고, 낙오된 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고 했다. 김연수가 말했다. 당연히 고등학교도 같은 고등학교를 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학교 시절부터 김연수의 집에는 월간팝송과 김중혁이 사다놓은 조금 가벼운 음악잡지가 섞여 있었는데, 어느날 김중혁이 전화를 걸더니 자기 잡지를 다 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김연수는 너무 화가나서 그럼 자기 집으로 오지 말고, 자기 집 앞 전봇대에 잡지를 놓아둘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전봇대에 잡지를 가져가더라고, 안 가져갔으면 마음을 풀었을 텐데 자기도 그게 너무 화가나서 6개월동안 연락을 끊고 지낸적도 있다고. 당연히 김중혁은 기억을 못한다.  

  
  김중혁이 추구하는 글쓰기는 잘 읽히는 책, 재밌는 책이다. 제 1회 젊은 작가상 대상을 수상한수상집엔 1F/B1를 구상한 김중혁의 작업 노트가 나온다.  1F/B1이라 써놓은 메모엔 FB1이란 암호가 의미심장하게 숨겨져 있다. 각 아파트를 이어주는 비밀 기지가 그림으로 스케치 되고, 그 그림밑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써놓은 낙서가 있다. 김중혁으로 보이는 사람 그림도 있고, 그 사람 그림이 말풍선안에다가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그림도 있다.  김중혁은 두 사람이 있어요. 저의 문학은 수습하는 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하나의 김중혁은 사건을 벌이는 사람이고, 다른 김중혁은 벌려놓은걸 수습하는 사람이에요. 작가는 주인공에게 어떤 선택을 시켜야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아해요. 저는 퇴고를 안해요. 글을 쓸때 그냥 리듬을 타면서 쓰는 편이에요. 저도 김연수처럼 글을 두번 써본적도 있는데, 그렇게 쓴게, 써지기 시작 할 때, 리듬을 탈 때 쓴 글보다 더 낫진 않더라구요. 리듬을 타기 까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저는 이렇게 쓰는게 저한테 맞는것 같아요. 한번도 퇴고를 거치지 않은 <좀비들>은 3년의 세월을 거쳐서 비로소 출간을 앞두고 있다. 출간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저는 그 3년내내 좀비들과 같이 산 느낌이었어요. 그걸 또 쓰면 그걸 또 겪어야 하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김중혁은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더 잘 짤 수 있나.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들 수 있나를 고민하는 작가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지도 못하는 데서 오는 엉뚱한 재미를 주고 싶고, 재미있으면서도 잘 읽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한다. 

  김연수는 소설을 두번 쓴다고 했다. 아주 간단한 모티브가 떠오르면 계속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모티브는 그냥 '누가 빗소리를 듣고 있을 것 같아"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자기는 뭘 짜거나, 정해서 쓰라고 하면 못 쓴다고 한다. 뭔가를 구성하거나, 짜놓고, 상상하는 순간 그건 누구도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소설을 쓴다는 건, 여기 이렇게 각각 놓여 있는 물건들(이렇게 말하면서 김연수는 자기 앞에 놓인 빨간 지갑처럼 생긴 필통을 꺼내들었다.)에서 이야기를 찾는 일이라고 했다. 여기 이 지갑이 왜 있는거지? 선물을 받았나?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그런식으로 계속 생각을 하고 질문을 던져나가다 보면 언제인지는 몰라도, 어느 틈엔가 자기가 상상할 수 없었던,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나온다고 한다. 김연수는 처음에 아주 작은 모티브가 주어지면 그 모티브를 놓고 질문을 던져가며 글을 쓴다. 스스로가 뭘 쓸지는 자기자신도 모르고, 뭔가 끌어당기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은 그 뭔가를 붙잡고 가다가 보면 그제서야 자기가 뭘 말하고 싶었고, 뭘 쓰고 싶었는지가 나온다고 한다. 한번 그렇게 글을 다 써놓고 나면, 이제는 자기가 뭘 쓰고 싶은지 다 나왔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를 가지고 한번 더, 쓴다고 했다. 이 사람은 정말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구나. 그토록 집요하고 힘들게 나온 전체의 이야기를, 간신히 완성한 이야기를 가지고 또 다시 처음 부터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 집요한 작업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기에 가능하다. 퇴고가 아니다. 글에 들이는 그 노력도 대단하다 싶었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나온 이야기를 다시 한번 처음 부터 쓰는 작업이라는건, 그만큼 쓴다는 그 자체를 어지간히 즐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 천성적인 근성에 조금 기가 질린듯한 느낌이다. 라고 표현했지만 좋았다.  24년 동안 아침마다 빵가게를 청소하던 그 젊은 청년의 질릴만큼 끈질기고 집요한 그 근성이. 그렇게 써놓은 글이 책으로 나오는 것고 신기하단다. 그렇게 책으로 엮어지고, 그래서 그걸 읽다보면 어. 이걸 정말 내가 썻나? 싶단다.

  김중혁의 가벼운 글에 대한 김연수의 장난 어린 조롱에, 후에 독자는 질문을 한다. 그런데 김연수님은 김중혁님의 글이 가볍다고 말씀하셨는데, <사랑이라니, 선영아> 보면 그 글도 가볍지 않나요? 다시 그렇게 가벼운 글을 쓸 생각은 없으신가요? 김연수는 조금 당황한듯 웃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요. 제가 김훈 선생님이랑 창비에서 대담을 나눈 적이 있는데, 제가 나중엔 코믹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걸 기자분은 홍익소설로 들으시더라구요. 아 홍익소설. 그렇게 멋진 소설을, 저는 제가 20대에 쓴글, 과거에 쓴글을 보면 이걸 정말 내가 썼나? 싶어요. 

   김중혁은 책보다 영화를 많이 본다. 오후에 미드를 보는 매니아이고, 커피를 좋아한다. 2000년에 데뷔를 하고도, 차곡 차곡 글을 쓰기보다, 직장을 다니고, "흙속에 돈이 있다"는 조금 낯부끄러운 제목의 책을 낸적이 있다. 

 김연수는 책을 많이 읽고, 영화는 잘 안보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감독은 얼굴이 미남인 덕에 배우로 출연까지한 영화<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감독 홍상수고,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당연히 <하하하>다. 표값을 내고 본 게 아니라 촬영스텝들과 다 함께 영화관에서 봤다. 하루키처럼 미식가는 아니지만, 떡볶이와, 치킨과 면에 환장한다고 김중혁이 알려줬다. 그러나 최근 채식주의자로 전환했고, 그래서 치킨은 둘둘치킨이었다가 파닭으로 옮겨지는 중이라고 한다.

 글쓰는 방식도, 성격도, 삶에 대한 태도나 생각도 판이하게 다른 두 작가의 이야기를 번갈아 듣는 다는 것은, 게다가 그 두명이 친구이고,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서슴없이 험담과 비화를 주고 받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멋진 경험이다. 여러 강연회를 갔었지만, 이처럼 다채롭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강연회는 처음이다. 김중혁 vs 김연수의 대담 혹은 만담이야말로 이제까지 다녀온 여러 강연회중에 단연 최고였다. 시선과 스타일이 다른 두 작가가 번갈아 말해주는 생각과 말을 듣는 동안 비로소 해답을 찾은 기분이다. 한 없이 긴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는데, 비로소 출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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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8-30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책 없이 해피해지는 후기인데요!

진진 2010-08-30 09:26   좋아요 0 | URL
와, 너무 멋진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