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안경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2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2
김성은 지음, 윤문영 그림 / 마루벌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여중생이었던 때, 하루는 하교길에 아!하고 속으로 작은 감탄사를 내도록 만든 여인?이 있었습니다. 봄날의 화려함으로도 누를수 없을것 같던 빛이 있는 분! 하얀백발에 잘어울리는 편하게 몸에 감긴 하얀 투피스, 그리고 하얀 진주목걸이. 무엇보다도 얼굴에 가득 피어오른 자신감있고 여유있던 노년의 미소가 절대로 '할머니'라고 부르고싶지 않을만큼 멋이 있었습니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빛나는 할머니가 되고싶다고 맘먹게 된것도 하교길에 스쳐지나간 이름모를 그분때문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 이름에는 두가지 이미지가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합니다. 늙고싶지않은데 하는^^ 투정과 왠지모를 정감에 부풀어오르는 마음. 정감이 커지는데는 할아버지 할머니앞에 '우리'라는 수식어가 붙을때 더 힘이 실리는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안경>속에도 정년퇴직으로는 막을수없는 '연륜'이 깊이 묻어납니다. 사회는 '늙음'의 이유로 내뱉았지만 내뱉은 이들이 한발짝도 따라갈수없는 깊은 연륜과 사랑은 사회로부터 한 가정속으로 스며듭니다.

한 분 살아계시는 외할머니에게 지독한 구박덩어리로 나던 내 어린시절. 엄마는 말버릇처럼 '어이구 너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만 계셨어도..'하곤 하셨습니다. 장수의 시대, 주위를 둘러봐도 조부모님 무릎에서 크는 친구들이 많기도 하건만, 사랑 많은 엄마 아빠도 다 채우지못할 마음공간 한구석은 늘 허전했었습니다.

6개월된 재롱둥이를 부모님들 품에서 떼어와 낯선 타국에서 기르는 요즘, 나 어릴적 생각에 갑자기 우리아들 건강이가 무척 가련해보입니다. 학교갈때 부모님은 '잘다녀와' 한마디지만 골목밖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주시고 하교때도 직접 문 여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는 할아버지. 엄마는 챙피해하는 어부바도 '우리 강아지!'하시며 거뜬히 등내미시고 피곤하다고 내 손을 물리치시는 아빠대신 손잡아주시는 책속 할아버지의 모습. 곁에만 있으면 책속의 할아버지보다 더 하셨으면 하셨지 덜하시지는 않으셨을 손주 사랑의 모습들을 상상해보면서 그만 뚝뚝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젊었을때에는 무어가 그리 바빴을까. 무어가 그리 할일이 많았을까.. 너네들 크는것도 제대로 눈에 못 담은것 같애. 그런데 하나있는 손주놈마저 비디오로 봐야하니 참..' 겨우 대꾸나 하는 손주목소리가 뭐 그리 신기한지 하루한번 그 비싼 국제통화를 해오시는 시댁부모님이나 저리 투정하시는 친정부모님.. 왠지 큰 불효를 하는것 같습니다. 언제나 기댈수있는 등, 언제나 피할수있는 품, 언제나 잠들수있는 무릎.. 아들에게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도록 되고만 지금의 처지에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시리게 다가옵니다. 그토록 사무쳤던 조부모님의 사랑, 결국 아들에게도 물려주지 못하다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보시던 것까지 다 보이는 안경이라.. 안경은 깨뜨릴수 있어도 할아버지 마음을 절대 깨뜨릴수 없다는걸 주인공소년은 알게됩니다. 선진전인 교육환경보다 수려한 자연환경보다 아이에게 더 필요한것. 그것은 아마... 깨어지지 않는 사랑을 보여줄 할아버지 할머니일것 입니다..

여중생일때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당당한 백발의 할머니... 나이든 내 얼굴에 책임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꾸도록 모티브를 주셨던 그분처럼 저도 빛나는 미소의 소유자가 될수있을까요? 낡은 내 소유물조차도 손주손녀가 가지고 싶어질정도로 사랑많은 할머니가 될수 있을까요? 늙어가는게 낙심이 되는게 아니라.. 저렇게 나이들고싶다고 소망이 생기게하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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