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헨리 나우웬 지음, 김명희 옮김 / IVP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할수만 있다면 다시 주일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착한일을 하는 어린이를 하나님이 사랑해주시겠죠?'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께 정면으로 반항하고싶다. '그렇게 안해도 하나님은 이미 나를 사랑하시는걸요!'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지칭이기도 한 제목인지라 그저 예수님의 모습을 헨리 나우웬만의 독특한 서필로 쓴 책이라 여겼었다. 전혀 아닌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예수님의 삶보단 헨리 나우웬의 삶이 훨씬 더 많이 연상되어졌다. 그가 왜 난민촌이나 장애인공동체로 갔는지에 대해선 나로선 알길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애타게 찾는 지혜의 선생이요 청강하고싶은 유명한 대학교수로 자리매김하는것보다 자기 지혜와 묵상이 <전혀> 필요치 않은 사람들에게로 내려?갈수 있었던 용기의 이유는 알수있을것 같았다.

흔히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만큼은, <능력>의 이름으로 편견되이 불러지기 쉽다. 그러나 책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 예수님의 사역의 근원이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항상 공허감을 간직할수밖에 없는 우리 내면을 꽉 채우시는 누군가의 <함께 하심>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또한 회당이든 교회이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속에서든 동질감보다 이질감을 훨씬 많이 느끼는 '때묻은' 주의 자녀들에게, 저자는 애써 공동체로 돌아올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하루하루를 연명하듯이 살아가는 우리 삶의 근간이 결국 온갖 더러움 다 보시고도 나와 함께 있기로 결정하신, 나를 오직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기로 결정하신 그분에게 있음을 확증해준다. 그러면서 나만이 아니라, 이미 그분이 그렇게 하시기로 결정하신 다른 사람들과 , 세상에서 형성된 <나의 신분>으로는 어울릴수 없는 그 사람들과 , 오직 하나 <내가 사랑하는 자다>라고 인치심받은 동질성 하나로 어울릴수 있음을 넌지시 제시해준다.

나는 이제껏 예수님만이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성경적으로는 그것이 사실이다. 그분만이 완벽했고 하나님앞에 완벽히 행하고 순종한 그분만이 그런 놀라운 칭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이 책을 접으며 그 고정관념도 함께 접을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