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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
헨리 나우웬 지음, 김명희 옮김 / IVP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참 조수미의 목소리에 빠져있을때, 아, 이제 지겨워, 다른 음반을 들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한달여간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와 목소리들속에 데이트?를 즐겼다. 그런데 우연히 길을 걷다가 스피커를 통해 듣게된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오우 매력적인 목소리. 누구지? 한장 사가야겠는걸 하고보니 결국 그게 또 조수미님의 새음반이었다.
<아담>을 쥐었을때 느낌이 그것과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헨리 헨리 할때 아 지겨워(?) 이제 나우웬 책은 그만 읽어야겠다 하고 한동안 애써(?) 피했었다. 그런데 또 헨리 나우웬이었다. 아직도 낯설고 외면당할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신체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더이상 소외지역에 머무는 시대는 아닌것 같다. 또한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도 그다지 눈에띄지 않는 정신적인 지체(?)를 가진 나같은 사람에게 서서히 치료 동기가 부여되는 때이기도 하다(^^;)
헨리나우웬의 <아담>은 이런 시대상을 충분히 반영한다. 흔히 신체정상인이 신체장애인을 돕는다는 선입견을 훌륭히 뒤집으면서 말이다. 오히려 <아담>과 그의 동료들을 통해 경험하는 치유와 회복에 기꺼이 모든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자아를 묵상하도록 도와주는 <아담>의 생을, 역시 하나님과 자아를 묵상하도록 도와주셨던 <예수님>의 삶에 접붙임해준다. 첨엔 이 이상한 접근방식에 무척 당황히 되었지만, 결국 자신의 길을 걷도록 그때 그 제자들과 지금 우리들을 부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본다면,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가교역할을 해준 <아담>에 대한 저자의 통찰에 동의하지 않을수가 없다.
또한가지, 아담과 더불어 아담의 부모에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나또한 임신과 출산, 육아의 경험을 가지면서 끊임없이 우리아이의 정상여부?에 신경이 곤두서곤했다. 임신기간중안의 수많은 검사가 오히려 촉각을 세우는 부작용을 나았고, 내가 자라면서 보아온 수많은 부정적인 가능성에 우리 아들을 맞추어보곤 했던 것이다. 하루중 아이에게 사용하는 가장 많은 단어가 <조심해>라는 것을 발견한것도 최근의 일이니까.
그런데 아담의 부모님은 나와 달랐다. 나라면 극악해할 아담의 일탈적인 행위-청소기를 계단 난간으로 던지는-까지도 그분들은 사랑했고 아담의 정서적인 만족을 위해 기꺼이 청소기를 다시사는 수고를 아끼지않으셨다. 새차에 흥건히 소변을 보는 아담을 보고서도 그분들을 '새차에 소변'보다 병원에서 받는 모진 재활훈련의 고통을 감수한 아담의 하루를 더 생각하셨다.
결국 나에게 다가온 아담은, 하나님을 묵상케해주는 그의 본분과 더불어, 부모로서 내 아이를 안아야 하는 수많은 순간에도 멋진 교훈을 남겨준 셈이다. 전자와 후자가 연결된 것이기는 해도.
수많은 낙태와 버려지고 입양되는 아이들을 본다. 무엇이 그들을 생명에서 떼어내고 품에서 떼어내는 기준이 되는 것일까? 입양아를 들이고난 후에야 친자를 얻게되는 가족 케이스들을 접하면서,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저 입양아에게 부모를 주시기위해서 우리들의 태를 잠시 닫으시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자신들이 누려야할 장미빛 인생(어쩌면 그것은 TV가 제시한 목록일뿐일지도 모른다)을 하나님을 묵상케하는 장애아들둘을 섬기는 것으로 대체해버린 아담의 부모님들과 그들에게서 동일한 의미를 발견해낸 라르쉬공동체의 도우미분들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또한 나를 다시 헨리 나우웬의 영성으로 젖게해준 <아담>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