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요 바빠 - 가을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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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님은 봄 여름 책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가을을 진한 색감으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색색깔의 단풍잎이 가을의 대변자임에도 이태수님은 과감하게 여러 가지 다른 주제들로 가을을 담아내십니다. 책 전반에 흐르는 가을색-갈색은 생각해보면 우리들 길고긴 역사에서 말없이 동반자가 되어준 흙-흙색인것입니다.

우리들 역사는 요즘 보는 단풍잎처럼 그리 화려하지도 즐길만하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잦은 외침(外侵)속에서 할아버지 할머님들은 묵묵히 논을 갈고 밭을 일구며 흙과 함께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흙색깔, 흙냄새는 할아버지 할머님들의 냄새였고 색깔이였고 화려한 색감속에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흘러오는 우리의 색입니다. 그런데 그 흙냄새 속에서 책장을 넘기면 마당에 좍 깔린 멍석위의 바알간 고추들이, 또한장 넘기면 누렇게 익어 바다물결같이 넘실거리는 벼들이, 주렁주렁 널린 곶감될 감들과 푸른 배추밭이, 시련속에서도 사라질수 없었던 넉넉함과 아름다운 정서들을 그렇게 잘 대변할 수가 없습니다.

가을은 또하나의 야외의 계절입니다. 그러면서 바깥 자연을 누비던 마음을 접을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시간입니다. 허리품 손품을 가을내내 팔고나면 이제 불피워진 화로곁으로 모여앉아 다리펴고 허리펴고 마음을 나눌 시간입니다. 젊은이들이 허리펴는 자리 건너에서 끝없이 손을 놀리시는 할머니와 새근새근 고추묶음사이에서 잠들어있는 마루의 얼굴이 가을닮아 진한 흙색이 되어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희고 갸름한 얼굴을 아름답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치장한 옷들을 부러워하지 않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닮은 아이들의 얼굴. 제 아이들은 그렇게 계절이 지날때마다 계절닮은 아이들로 자라게해주고 싶습니다.

청솔모 벼이삭 참깨 털기 비탈밭같이 아이들의 입속에 넣어주기 힘든 어휘들이 구석구석 잘 씌여져 있습니다. 한 장에 서너줄 되는 짧은 문장속에서도 가을분위기를 충분히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부럽습니다. 고추가루 참기름 곶감은 알아도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달 알 수 없는 도회지 아이들은 책속에서 묻어나는 수고로운 손길들을 알수있을 겁니다. 서양식 기승전결 스토리 전개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은 또 장면을 다 서술하지 않은 작가의 농축된 언어들과 그림속에서 부모님들에게 많은 궁금증을 발산해낼 것입니다. 아직 돌이 안된 건강이는 책을 흔들기만 하지만 우리아기 주변에 늘 펼쳐놓고 고운 가을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한가지 아쉬운점. 마지막그림 문 위쪽에 자그마한 부적이 보입니다. 그것 역시 우리 생활에 자주 접할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책인데... 벌써부터 미신이나 부적같은걸 보고 엄마이게뭐야?하면 어쩌지 염려가 됩니다. 아이들 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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