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순이 어디 가니 - 봄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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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님의 글은 어딘지 모르게 시적인 대가 있습니다. 짧은 문장속에 감성이 살아있고 어디서 찾아내시는지 잊어버리고살던 우리네 말글들을 구수하게 풀어내십니다. 자박자박 타박타박 순이를 따라 봄내음속으로 걸어가고 싶어질정도입니다.

밭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새참들고 가는 순이에게 늘 가까이에서 보아오던 친구들-다람쥐 들쥐 청개구리들이 다정하게 묻습니다.'우리순이 어디가니?'라고. 어릴적 동구밖까지 가는 멀지않은 길에도 언제나 동네어른들이 인사대신 물으셨습니다. '우리 소영이 어디가니?' '우리 누구'라는 말에는 한국사람들만 느낄수 있는 일체감이 있습니다. 동네할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 동네 아줌마들은 죄다 우리 이모고모 동네 아기들은 모두 우리조카손주였던 예전의 가족공동체적 마음들이 '우리누구'라는 호칭속에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독립인격체로 살아가야하는 이곳 미국에서는 느낄수 없는 우리만의 사랑담긴 애칭이겠지요.

새참을 지고가시는 엄마는 그저 가시는 데 우리 순이눈에는 가는 길 구석구석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아이들 눈에는 담을 것이 많아, 쉴새없이 살피고 느끼고 만지작거립니다. 그런 순이를 엄마는 한마디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작가는 은근히 <막걸리 쏟아질라 아버지 목마르시겠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라는 글속에 엄마의 마음을 담은 것도 같습니다. 엄마랑 벌써 여러차례 주전자들고 새참나르러 간 순이가 길 모퉁이마다 저절로 익힌 엄마의 마음말입니다. 아이를 강압하지 않고서도 가족구성원으로의 소속감을 느낄수 있었던 옛날 대가족제도가 어느면으로는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순이를 따라 밭에 자주 다녀오면 어느새 우리 건강이도 숲속을 산책할 때 자박자박 조심조심 웅얼거리며 다니겠지요? 동생이 생기면 저가 엄마대신 물병쏟을라 조심조심 한발한발 타박타박 동생을 가르칠지도 모릅니다.

표지에서 쑥을 캐시는 할머님 모습에서 벌써 봄향기가 물씬 풍겨납니다. 책장을 넘겨 속표지에는 함박같이 쏟아지는 벚꽃과 울타리따라 늘어선 개나리들이 봄바람에 할들거리며 어서와어서와~ 할것만 같습니다. 봄기운에 가슴이 부풀어올라책장을 또 넘기면 이야기하듯 읽어줄수 있는 짧막한 글들이 봄마당에 앉아있고 말걸어오는 조그만 동물친구들 숨바꼭질하듯 찾다보면 보리피리소리와 함께 엄마손 잡고 빈주전자 달랑거리며 돌아오는 순이가되어 책을 접게됩니다. 봄봄봄... 이국만리떨어진 고향의 봄이 봄바람타고 바다건너 우리집 거실까지 너울져오는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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