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딜레마 - 당신의 행복과 소비는 어떻게 은밀히 설계되는가?
윤재영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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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de-sign이란 특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기호를 재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는 메시지를 가다듬고, 더 중요한 메시지와 그렇지 않은 메시지를 분류한 후- 중요한 메시지가 사람들의 시선에 제일 먼저 닿도록 설계한다. 그러니 당연히 보기 좋은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제품이 하나 놓였을 때, 혹은 비슷한 제품들 사이에 놓였을 때 등등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정확하게, 또 빠르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때문에 디자이너는 끝없는 고민에 빠진다. 여기를 조금만 줄이면 심미적으로 더 아름답지만, 꼭 들어가야 하는 메시지의 글자 수를 줄일 수 없어 심미적으로 완성된 형태를 우회하기도 한다. 대중들의 시각에 낯섦이라는 감각을 심기 위해서 보다 낯선 조합을 고민하는가 하면, 익숙한 것에서 한 끗 정도의 차이로 다름을 표현해야 하는 미션을 받기도 한다. 그야말로 정답이 없는 세계다. 주문하는 사람도,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도 늘 똑같이 빈 캔버스를 앞에 두고 시작하기 때문에 매 작업이 새롭다.



이 책은 디자인de-sign의 사회적 딜레마를 담았다. 꼭 경험 ux 디자인에 한정되는 주제가 아니라, 철학과 윤리, AI, 게임, 가상현실이나 광고, 마케팅, 심리학, 종교 이야기가 두루 담겼다. 디자인은 결국 서비스를 설계하는 일이고, 이는 곧 철학과 윤리, 마케팅, 심리학 등 전방위적인 사회문화적 요소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것. 뷰티앱을 통해 '보정된' 셀피를 찍는 것은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남길까. 어젯밤 갑작스레 난 뾰루지를 지우는 것을 넘어 조금 더 코를 높이고, 눈을 키우고, 얼굴을 작게 보이게 하는 일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일은 아닐까. 거울이 아니라 뷰티앱을 통해 '나'를 보고- 그것이 진짜 나라고 믿게 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괜찮은 걸까?



혹은 AI 챗봇 서비스는? 그것이 AI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AI와의 대화에 쉽게 몰입하고 마는데- 기술이 보다 정교해지고 나면 우리 사회는 AI로 인해 뿌리째 흔들리지는 않으려나. 오늘도 수차례 빠져나오지 못했던 알고리즘과 상세 페이지의 메시지들은? 구독하기는 쉬워도 해지하기는 어려운 프로그램 디자인이나, 뭔가 계속 손해 보는 것 같은 팝업창의 메시지까지- 우리는 설계된 디자인 속에서 그것이 마치 우리의 결정이었던 양 살아간다.



책은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목표' 너머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디자인의 목표는 분명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이 직업인으로서의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너머의 '사람'을 보는 디자이너라면 적어도 어떤 디자인으로 인해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을 읽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묻는다. 그것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 이 질문은 디자이너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하려고 하는 그 일의 방향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인가? 그렇지 않다면 누가 소외되어 있는가.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질문만이 우리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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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들 - 돈과 기름의 땅, 오일샌드에서 보낸 2년
케이트 비턴 지음, 김희진 옮김 / 김영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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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미있는 그래픽노블 참 많다. 지난해, <모비 딕>을 그래픽노블로 읽었고, 올 초에는 카프카의 <실종자>도 그래픽노블로 만났다. 두 책 모두 고전소설을 기반으로 다시 쓴 그래픽노블이었다. 이번에 만난 <오리들>은 창작(?) 장편 그래픽노블이다. 저자는 캐나다 출신의 베스트셀러 만화가인데, 그가 만화가로 명성을 얻기 직전 캐나다 서부 석유 매장지 앨버타의 오일샌드 채굴 현장에서 보낸 2년간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이다.

캐나다 동부의 해변 마을에서 자란 케이트는 고향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돈이 흘러넘치는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서부의 오일샌드 광산으로 떠난다. 목표는 단 한 가지, 학자금 대출을 갚아버리고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 그렇게 그녀는 오일샌드 광산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녀는 무엇을 겪게 될까?

작가는 오일샌드에서의 시간이 십여 년쯤 지난 후에야 이 책 <오리들>을 쓸 수 있었다. 여기에는 앨버타의 장엄한 자연을 배경으로 석유 산업이 펼쳐놓은 거대한 기계 설비와 그 속에서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여성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리적으로 고립된 작은 사회 안에서 젊은 여성이었던 주인공 케이트는 너무 쉽게 희롱의 대상이 된다. 지루함과 고립감, 외로움, 우울감 속에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그저 버텨야 했던 이들은 자기들만의 작은 사회 안에서 세상의 단순한 규칙들을 으깨어버린다. (남성이 여성보다 수적으로 50 대 1까지 우세할 때, 젠더 폭력은 일어난다. 이는 멀쩡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냐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은 석유를 캐는 것. 당연하게도 오일샌드는 공해를 낳고, 점점 늘어나는 정착민 인구는 그 지역의 원주민 공동체에 심각한 사회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 또 건강상으로도 악영향을 끼친다. 단지 ‘돈’이 많이 ‘도는’ 곳이라고 해서, 학자금 대출을 빨리 갚아버리려고 오일샌드에 왔던 케이트가 당장에 오일샌드의 사회적 문제를 보기는 어려웠겠지만- 그것은 끝내 그들 앞에 오리들로, 검은 물로 모습을 내비친다.

오일샌드에서의 2년은 그녀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생각보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녀는 목표했던 학자금 대출 갚기에 성공했다. 끔찍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럭저럭 지낼만할 때도 있었다. 저자가 그런 날, 그러니까 ‘그럭저럭 지낼만할 때’도 이 이야기에 담아주어 좋았다. 끝내 이 이야기를 세상에 해 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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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 디지털 악당이 있다고? - 안전하고 즐거운 온라인 바른 생활 처음부터 제대로 19
김경희 지음, 김준영 그림 / 키위북스(어린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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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댓글부대>는 20대 청년들의 온라인 악행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장난 같은 아이디어는 익명의 수많은 네티즌들을 거쳐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어떤 사업을 망가트리기도 하죠. 영화는 세 명의 청년에 집중했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게시된 내용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을 진짜라고 믿었던 사람들이죠. 온라인 세계가 대중에게 열린지 벌써 30년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온라인의 익명성과 그로 인한 피해도 새로운 문제만은 아니에요. 하지만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듯, 온라인 안전교육도 늘 중요합니다.


<우리 반에 디지털 악당이 있다고?>는 저학년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구성된 온라인 생활예절에 관한 문고예요. 얇은 문고본이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호흡에 다 읽어나가겠지만, 사실 안에는 다섯 개의 큼직큼직한 이야깃거리가 들어있습니다.


사건1. 친구가 인터넷에 올린 숙제를 그대로 베껴서 발표한다.

사건2. 게임을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대에게 욕을 한다.

사건3. 친구가 도둑이라는 가짜 뉴스를 학교 익명 게시판에 올린다.

사건4. 친구가 혼자 춤추는 모습을 몰래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사건5. 친구가 상처받는 것은 아랑곳 않고 익명으로 악성 댓글을 단다.


하나하나의 사건을 두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눠본다면, 저작권은 무엇이고 사이버 폭력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예요. (결국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 훨씬 안전한 온라인 세계가 될 거라는 것도요!)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디지털 세계를 만납니다. 거울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만나죠. 그래서 오프라인 생활교육을 잘 하면, 온라인에서도 건강한 생활을 할 거라고 쉽게 생각해버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대개 친구들이나 가족에 한정된 경우가 아직은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오프라인으로는 하지 않을 말을 온라인에 기대 쉽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불필요한 메시지를 너무 많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온라인에서의 말투는 어떤지, 대화의 시작과 끝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말이죠. 이런 것들은 저학년 때 이야기 나누고, 다듬어나가지 않으면 점점 사생활의 영역이 되어 종잡을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라고 아이의 핸드폰을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이들 교실에서 일어나는 사이버 폭력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요.

여러분들은 어떤 미디어 고민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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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이야기 - 몸의 중심에서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존재에 관하여
리어 해저드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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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자궁이 생리나 임신 중일 때 말고 다른 때에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 여자아이들 몸속에 있는 자궁은 어떤지, 폐경 이후의 자궁은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렇다 하게 생리 증후군도 없는 나는 자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임신 기간에는 자궁의 존재감을 매일 느꼈지만.


이 책은 자궁에 대해 생각한다. 무려 500여 페이지를 할애해 자궁에 대해 쓴다. 자궁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취급되어 왔으며, 유아기에서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여성에게만 있는 장기이므로 더욱 복잡한 오해를 받아온 자궁이 하나의 장기를 넘어 어떤 과학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 위에 놓여있는지 살핀다. 당연히 수정과 임신, 수축, 진통, 상실, 제왕절개, 폐경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는 여성으로 살면서도 꽤나 낯선 텍스트였다. 그것은 생리는 숨겨야 하는 것이며 임신은 성스러워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동화된 결과일 테다. 주지하다시피 전 세계 문화권에서 생리하는 사람과 그들이 흘리는 피에는 수치심과 오명이 덧씌워졌다. 성서와 문학, 구전 역사에는 생리하는 소녀와 여성을 불결하고 부정하며 악마에 가까운 존재로 취급해온 수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여성의 피에는 더럽히고 훼손하는 힘, 사냥이나 추수, 축제와 같은 중요한 행사를 방해하고, 성욕이나 여성의 쾌락을 금지하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p.39) 반면 임신은 아름다워야 했다. 생명이 탄생되는 순간은 거룩해야 했고, 모든 순간은 축복으로 가득해야 했으므로 임신 기간에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축소되거나 삭제되어야 했다. (벌써 십 년 전 이야기인데도 잊을 수 없는, 입덧의 매운맛이더라도)


자궁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것이 내 몸속에 있으면서도 끝내 나의 것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우리의 자궁도 모두 다를 거라는 생각도 이전에는 하지 못했다. 내내 낯설었지만 새롭거나 놀랍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숨겨야 할 것이나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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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더, 많은 숫자의 지배 -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똑똑하게 사는 법
미카엘 달렌.헬게 토르비에른센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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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덮어둔 책 표지를 보고 남편이 “숫자만큼 정확한 게 없지!”라고 말했다. 맞다. 숫자는 정확하다. 구체적이고, 정밀하고, 명료하다. 하지만 숫자가 표현하고 있는 이 세계는 정직하지도, 통제 가능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회색으로 가득한 이 세계를 숫자는 어떻게 그토록 명료한 세계로 바꾸는 것일까.



이 책은 숫자가 우리 사회를 명료한 수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이, 삭제되거나 축소-과장된 무엇에 대해 말한다. 우리의 세계를 뒤덮은 숫자는 우리의 일상과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문화를 계산기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 세계가 너무 복잡해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우리 인간이지만, 그 사이 우리 삶까지도 요약되고 축소되어 버렸다. 다채롭던 우리 삶이 단순하고 정확한 것으로 바뀌었고, 수로 표기되지 않은 것들은 의미를 잃고 녹아내린다. 내가 느낀 음식의 맛보다 별점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몸무게가, 얼마나 편안한지 보다 매매가가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 



물론, ‘수’는 아무 잘못이 없다.


잘못은 수에 말보다 많은 정보가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있다. 그 어떤 수도 다른 정보를 모두 대체할 수는 없다. 다른 정보를 이용해 수를 해석하도록- 그리하야 수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건 오늘의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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