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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3월
평점 :
절실한 욕망은 그러므로 흐르는 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깊은 내부로부터 흘러나와 감동으로 휘몰아치는 욕망을 받아들임으로써 자랑스러운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시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회귀는 바로 일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모든 시간을 그것에 소모해야 한다. 인생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초판 서문'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학교를 다녔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말고- 그냥 '나'를 설명해 볼 수 있을까. 직업도, 관계도 아닌 '나'는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 안에는 어떤 것이 속할 수 있을까. 지금 읽는 책, 요즘 듣는 음악, 오늘 검색했던 키워드. 그런 것들은 '나'일 수 있을까. ...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 아주 돈이 많아진다면, 그래서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면- 나는 일을 하지 않을까? 그때의 삶은 어떤 모양새일까. 그게 과연, 지금과 얼마나 다를까.
(당연히) 쓸만한 돈이 있고, 가족들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면 좋겠다. 그런데 여기서 쓸만한 돈이란 얼마나 되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보다 분명히 많은 금액일 텐데 우리는 어떻게 그만큼을 벌 수 있을까? 가족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될까? 아이의 성적이 좋지 않아도, 건강하니 되었다며 하하 호호 웃을 수 있을까? 잘 되면 좋겠다는 내가 하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벌써 지나온 직업만 예닐곱 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큰 고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녹아내리기도 하고,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외의 취약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동시에, 우리가 숱한 타인의 말속에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거긴 좋은 직장이니 절대로 놓치지 말라거나 마흔 이후에는 직장 옮기는 거 아니라는 말,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겠냐는 말 같은 것들은 논리적인 근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이 들어 세뇌의 형태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욕망해 본다. 하루에 여섯 시간쯤 책을 읽고 싶다. 책상에 앉아 밑줄 치고 노트하며 공부하는 독서다. 그리고 나서는 한두 시간 오늘 알게 된 것에 대해 쓰고, 오락을 위한 읽기를 한두 시간 이어간다. (때로는 영화를 한 편 봐도 좋고!) 그 가운데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지 않았으면 좋겠고, 야채를 꼭꼭 씹어 먹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삶이면 좋겠다. 물론, 아이와 남편과도 좋은 관계 안에서 지내고 싶다. 어쨌거나- 배우고 익히는 것이 즐거움임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나누는 일을 사명처럼 여기며 살면 좋겠다. (나눌 사람이 있으면 더 좋고!)
이런 삶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할까? 되물어보면, 별것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지금 당장 실천 가능한 영역의 삶이다. 그런데 왜, 궁극의 삶을 눈앞에 두고도 실천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두려움의 문제다.
사람들은 익숙한 인생의 사이클에서 박차고 나와야 한다.
도약은 어려운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되살리고 자신의 사랑을 다시 살리고 싶은 그 순간에
그 신념, 그 사랑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나이스 닌 '일기'중에서
책을 읽는 내내 '변화'라는 키워드 안에 머무른다. 변화를 일상의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 그 유연한 삶의 태도는 우리를 명함의 주술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이다. 보다 자유롭게,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