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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이야기 - 몸의 중심에서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존재에 관하여
리어 해저드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2월
평점 :
자궁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자궁이 생리나 임신 중일 때 말고 다른 때에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 여자아이들 몸속에 있는 자궁은 어떤지, 폐경 이후의 자궁은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렇다 하게 생리 증후군도 없는 나는 자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임신 기간에는 자궁의 존재감을 매일 느꼈지만.
이 책은 자궁에 대해 생각한다. 무려 500여 페이지를 할애해 자궁에 대해 쓴다. 자궁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취급되어 왔으며, 유아기에서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여성에게만 있는 장기이므로 더욱 복잡한 오해를 받아온 자궁이 하나의 장기를 넘어 어떤 과학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 위에 놓여있는지 살핀다. 당연히 수정과 임신, 수축, 진통, 상실, 제왕절개, 폐경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는 여성으로 살면서도 꽤나 낯선 텍스트였다. 그것은 생리는 숨겨야 하는 것이며 임신은 성스러워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동화된 결과일 테다. 주지하다시피 전 세계 문화권에서 생리하는 사람과 그들이 흘리는 피에는 수치심과 오명이 덧씌워졌다. 성서와 문학, 구전 역사에는 생리하는 소녀와 여성을 불결하고 부정하며 악마에 가까운 존재로 취급해온 수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여성의 피에는 더럽히고 훼손하는 힘, 사냥이나 추수, 축제와 같은 중요한 행사를 방해하고, 성욕이나 여성의 쾌락을 금지하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p.39) 반면 임신은 아름다워야 했다. 생명이 탄생되는 순간은 거룩해야 했고, 모든 순간은 축복으로 가득해야 했으므로 임신 기간에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축소되거나 삭제되어야 했다. (벌써 십 년 전 이야기인데도 잊을 수 없는, 입덧의 매운맛이더라도)
자궁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것이 내 몸속에 있으면서도 끝내 나의 것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우리의 자궁도 모두 다를 거라는 생각도 이전에는 하지 못했다. 내내 낯설었지만 새롭거나 놀랍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숨겨야 할 것이나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