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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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은 고 변희수 하사의 1주기였다. 그는 군인으로서 삶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자긍심을 가진 이었다. 군대를 마음 깊이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으며 고환과 음경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실제 업무 수행 능력과는 무관하게 강제 전역을 통보받았다. 군대에서 규정한 성별 이분법에 뿌리박은 남성 중심적인 '능력 있는 몸'에서 일탈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의 성전환수술이 일탈이었을까. 성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그는 자신의 문제를 소속 부대의 상사인 군단장, 여단장과 상의했고, 치료 목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권유받았었더랬다. 하지만 2019년 12월 수술을 마친 변희수 하사는 부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소속 부대가 변희수 하사가 계속 부대에서 근무하면 좋겠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음에도 그랬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본래 목적을 잃은 규칙과 규율들은 텍스트로 남아 유령처럼 우리 곁을 떠돈다. 오래된 관행이나 관습은 단지 '늘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옭아맨다. 대체 왜? 말이 안 되잖아!라고 외치는 건 옭아매진 자의 목소리일 뿐, 우리 귀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무감각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부당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한국 사회의 비극에 대해 쓰고 있다. 굵직하게는 천안함 생존자와 세월호 생존자를 다루고 있지만, 고 변희수 하사의 사례나 소방공무원, 산업재해 현장 등 가까이에 있지만 몰랐던, 혹은 잊고 지냈던 트라우마들을 다룬다.


저는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외면하는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본문 중에서, 16쪽)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일이 아니라, 그 이후 우리 사회가 천안함을 어떻게 대했고 기억해 왔는가 까지를 포괄한다는 저자의 문장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2010년 3월 26일을 떠올렸다. 세월호 사건에 비해 천안함은 그들의 신분이 군인이었다는 점, 그러니까 그저 개인이었던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와 달리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또 세월호 사건에 비해 많은 부분 가리어졌다는 점에서 잊혔었더랬다. (우리가 천안함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던가, 곰곰 돌이켜보면- 그날 천안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돌이키는 일, 또 희생자는 어떤 사람들이었나를 기억하는 일로 압축된다. 하지만 천안함에 타고 있던 58명은 생존했다)


생존 장병의 목소리와 경험에 귀 기울이는 일은 한국 사회가 어떤 곳이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천안함 생존 장병의 눈을 빌려 바라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그들을 잊고 살았다. 그들은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모욕 받아야 했고, 그날 이후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림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패잔병'이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해서, 그들은 숨어지냈다. 찾아보니-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는 갈 곳을 잃은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이미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님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했던가) 오히려 살아남은 이들은 피해자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설자리가 없다. ...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과 별개로,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삶을 옥죄어서는 안 된다. 사망자와 생존자의 고통을 비교해서도 안 되고,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을 폄하해서도 안 된다. 그런 말들로는 생존자의 상처만 더 깊어질 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20100326 / 20140416

두 개의 숫자가 적힌 문진이 참으로 묵직하다. 문진을 책에 가져다 대니 글자가 확대되어 보인다. 어떤 이야기는, 이렇게 오목렌즈를 들어 확대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논리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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