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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집을 찾아서 ㅣ 한젬마의 한반도 미술 창고 뒤지기 2
한젬마 지음 / 샘터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미술, 그릴 재주는 없으나 보는 것은 좋아하는 나는 협소한 내 머리 속과 내 안목이 언제나 불평이다. 그리하여 어디 도움될만한 책이 없나 늘 두리번 거리게 되는 데 또 하나의 미술관련서적이 눈에 띄었다. '한젬마의 한반도 미술창고 뒤지기' <화가의 집을 찾아서>와 <그 산을 넘고 싶다>라는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된 이 서적은 '한젬마'라는 독특한 이름과 전면에 배치된 그녀의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상품적 가치를 배가시키고 있는 듯 하다.
편안하게 쓰여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무더운 날씨와 편치 않은 내 심기 탓인지 사놓고 며칠을 그냥 보내다 이번 가족휴가에 콘도를 따라가 파도소리, 사람소리, 음악소리에 살랑살랑 바람까지 불어주니 쑥쑥 잘도 읽힌다. 흡사 미술전시회를 구경온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할 정도로...
나를 에워싼 많은 것들을 털어 낸 그림, 내 안에 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성찰하게 하는 그림, 그게 바로 이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다.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술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장욱진은 어느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취한다는 것, 그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못난 것, 미운 것, 서글픈 것, 아픈 것 다 떨쳐 내고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선 눈에 보이는 군더더기를 넘어서는 초월적 지혜가 필요하다. 마음의 자유로움이 필요하다. 술이야말로 그런 역할을 해주는 촉매제이다. 그래서는 나는 술을 좋아한다. 누구 내게 술 한잔 권해 주실 분? (p.69)
비단 술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선 눈에 보이는 군더더기를 넘어서는 초월적 지혜가 필요한 건 사실인 듯 하다. 이번 휴가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을 보며 난 혼자 평가하고 맘 상해하고 불편해 했다. TV를 보면서 늘상 출연자를 평가해대는 동생도 그렇고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나에게는 걱정으로 포장된 입으로만 계속된 간섭을 해대는 삼촌도 그렇고 "너나 잘하세요"싶었다. 이 책에서도 작가 한명의 소개마다 연관된 한젬마 본인의 작품을 내어놓은 것도 혹 자기 작품을 홍보하는 건 아닌가 베베꼬인 내 심성이 고개를 들이밀기도 하고...
결국 이 모든 것이 투사(投射)였을 터... 시비쟁이 기질 다분한 나였으니 동생의 시비쟁이 짓이 불편했고 극비에게 늘 입으로만 걱정을 늘어놓는 나였으니 삼촌의 간섭이 불편했고 남 잘되는 꼴은 못 보는 심사가 내게도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쯤이면 눈에 보이는 군더더기를 넘어서는 초월적 지혜로 세상을 충분히 사랑할 수 있게 될까...
미술은 그림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학과 마찬가지로 삶을 성찰하게도 해준다. 결국 모든 문화 예술은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삶으로 이어지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각 도별로 화가나 미술관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기에 이 책을 지침삼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P.157에 있는 이쾌대의 <군상 4> 그림을 보던 7살짜리 조카애(男)가 말하길 "남자들이 여자 다 죽이는거야?" 당황한 나는 "아니야. 힘들어하는 걸 부축해주고 같이 싸우기 위해 힘내는 거야."라고 했다. 문득, 아이의 눈이 옳은 걸까? 내 눈이 옳은 걸까? 헷갈렸다. 내 대답이 제대로 된 건지도 자신이 없고... 그러나 뭐, 정답이란 없는 거니까. 다만 정말 남자들이 여자 다 죽이는 게 아니라 서로 위로해주고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한 희망이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아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 날이 왔으면 하고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