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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할아버지가 사시던 온양의 시골집은 항상 나무먼지 냄새가 났다. 그냥 먼지도 아니고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나무먼지. 여섯 살의 나는 할아버지 댁에 가자고 하면 항상 그 집의 풍경이나 집 앞 벌판의 소리 대신 냄새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대청마루의 반들반들한 바닥에 볼을 대고 있으면 '50년 전에도 이런 냄새가 났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50년 전에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시계 장인이었다고 했다. 만주로 도망치듯 가서 기술을 배웠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시계 만지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래서 시골집에는 녹슨 시계 부속들이 마구잡이로 굴러다니곤 했다. 엄마에게 젊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고 시골집 구석에서 시계판이나 굵은 바늘이라도 마주치면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들의 화석을 발굴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궁금함은 다 풀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자기를 뭐라고 소개했을까? 왜 만주에서 하던 시계 일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그만두셨을까? 할아버지는 아버지(증조 할아버지)를 싫어해서 고향을 떠났다는 사실과 고향 밖에서는 온양 출신이라고 밝히기를 꺼렸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할머니에게 들어서야 알았다.
이승우 소설가는 최근의 에세이집([소설가의 귓속말])에서 '고향이란 사람'이라고 썼다. 할아버지에게 고향은 엄격하고 뜻이 안 맞는 아버지, 답답한 어머니, 온갖 참견을 늘어놓는 동네사람들이었던 걸까. 고향 밖에서는 자기 출신을 일절 밝히지 않았던 건, 자기 입으로 출신을 뱉었을 때 의도치 않게 함께 소환되는 수많은 사람,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사샤 스타니시치는 독일에서 소설을 발표하고 독일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출신지는 독일이 아니다. 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나 14년을 살았다. 보스니아 전쟁이 일어나자 부모님을 따라 고향을 떠나 독일로 이주했다. 고향이 싫어서도 아니고 고향의 사람들이 갑갑해서도 아니었던 그는 그렇게 고향을 떠나 독일에 정착했고 아마 출신에 대한 그의 험난한 여정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터였다.
"당신은 어디 출신인가요?" 이 질문을 받는다는 건 내가 나의 태어난 곳, 자란 곳, 내가 속한 곳을 떠나 있다는 증명이다. 떠나지 않으면 이런 질문을 받을수도 없고 출신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지 않는다. "저는 서울 사람이에요." 이렇게 쉬운 답은 조금 미안하고 시시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세상에서 지워진 도시라면 얼마나 대답하기가 난감할까. 그 도시의 추억, 풍경, 도시에 도사리고 있던 모든 신화와 전설들, 역사들이 지워졌다면 도시의 이름을 말한들 그걸 출신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뿔뿔이 흩어진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친척들의 이야기를 자청해서 듣고 그걸 쓰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물이 높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그 물길이 정해져 있듯이 저자의 글의 길도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일생에 언제든 한번은 꼭 '나는 누구인가'를 뿌리 깊이 고민하게 마련이고, 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하여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고조 할아버지를 따라 좇아가기 마련이고,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면 반드시 찾아나서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진부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너무 당연해서? 그게 인간 아닌가. 그토록 당연한 존재.
하지만 이 작품 [출신]은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게 흘러가는 소설이 아니다. 사샤 스타니코비치의 '출신'에 대한 고찰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내가 겪은 경험치와는 사뭇 달랐다.

어디서 왔냐는 말이 암시하는 바가 뭔지부터 정확히 따져봐야 해요. 분만실이 위치한 언덕의 지리적인 위치를 암시하는지, 마지막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에 머물고 있는 나라의 국경을 암시하는지? 부모님 혈통인지? 유전자, 조상, 방언인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이 창조물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거죠. 그건 저주예요! 아니면 약간의 운이 들어 있는 능력이랄 수 있어요.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내는 능력말이죠.
책 44쪽
전쟁을 피해 살 곳을 찾아들어온 난민의 문제는 난민의 입장에서도, 난민을 수용하기로 한 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도 양측 모두에게 원만하게 풀기가 만만치 않은 어려운 일이다. [출신]에는 내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출신'의 문제들이 가득하다. 이력서를 쓰는 것처럼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 나의 정체성 전부를 고찰하게 만드는 어려운 일이 된다. 갈기갈기 찢겨진 가족들, 전설로 남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들. 출신은 사람인데,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의 세계를 하나하나 꿰어맞춘 퍼즐처럼 수많은 사람이라, 그 퍼즐 중에 하나만 없어도 나의 출신은 미완성의 볼품없는 것이 되고야 만다.

할아버지가 거실로 나왔다.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인 두 요원을 한동안 지켜보더니 질문이 있다면서 방해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방금 그게 뭐냐?" 나는 대답햇다. "외계인요."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나 같구나!" 그러고는 거친 손으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책 102쪽
외국인이 아닌, 외계인일 수 밖에 없는 출신의 난민들. [출신]은 난민의 현주소를 세밀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저자는 난민 출신으로서 발견한 사회적 부당함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대신에 훨씬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더듬어 찾으려는 정성을 들여서.
뉴욕에서 태어난 사람이 두바이에서 자라다가 상하이에서 일하게 되는 '집시'가 흔한 우리 시대에 출신을 정체성으로 전환해서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 오래되어 진부해보일 수 있다. 출신을 한 곳으로 집어 말할 수 없는 우리는 모두 '글로벌 시대'의 집시들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샤 스타니시치가 쓴대로 사람이, 나를 이끄는 우연이, 전쟁과 그 불똥이 모두다 나의 출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출신에 담긴 정체성의 깊이도 변하지 않는다. 사샤 스타니시치는 어쩌면 밀레니얼세대 모두가 하는 정체성의 고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주인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