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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 우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경제학에 관한 진실
조너선 앨드리드 지음, 강주헌 옮김, 우석훈 해제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사이다도 이런 사이다가 없다. 이렇게 속 시원한 경제학 서적을 읽게 될 줄이야! 경제 뉴스를 잘 이해하게 해준다거나 경제학 자체를 가르쳐주겠다는 서적은 많았지만 경제와 경제학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걸어온 길을 대놓고 까는 이런 책은 처음이다.
서점가에도 그렇고 내가 자주 가는 포털 게시판이나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글이나 인친들이 올리는 내용을 보면 ‘주식, 부동산, 투자’ 따위의 키워드가 들어가는 것들이 많아졌다. 정말 부쩍 많아졌다. 코로나19이후 불확실성에 대한 경계와 험난한 경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큰 폭으로 높아졌기 때문인지 다들 경제 사정을 제대로 알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주식 부스러기도 모르시고 관심도 없던 우리 아버지마저 주식 좀 한다는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시며 주식 시장을 기웃기웃 거리실 정도니.... (그러나 내가 철벽 방어 중. 주식 하시려거든 차라리 그 돈 나를 달라며...)
자본주의 자체가 왜곡되어 있다고 느껴온 지 수년인 나는 실은 돈 버는 데에는 큰 애착도 관심도 없다. 그냥 올해 적당히 끼니 챙겨먹고 입을 것, 바를 것, 신을 것 구색만 맞췄어도 잘했다고 살아오기를 수십 년째라. 돈 버는 데에 재능이 없어서 일찌감치 마음을 비웠다. 내가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이런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일테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는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경제 이론들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떤 영향을 받아 태어나고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쓴 책이다. 경제학사 정도로 여겨지기 쉬운 책이지만 저자가 시장경제 이론들(그리고 그 이론을 발표한 경제학자들)의 맹점과 허점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을 탈피한다.
경제학은 있으나 경제는 없다.
경제학자들은 현실이 이론과 다르면 이론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왜곡한다.
결국 사람들의 심리(인간은 효율울 추구한다든가 하는 뭐 경제학 이론들이 전제하는 그런 것들)가 경제학 내지는 경제를 만들어온 게 아니라 정치와 학자들의 콜라보 속에서 우리는 오늘의 시장경제 관념으로 세뇌되기에 이르렀다.
시장경제가 전적으로 틀렸다, 나쁘다, 뭐 이런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학 관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많은 것들이 나쁜 경제학 관념에 물들어버렸다. 예를 들면 법, 인권, 도덕, 기후변화 같은 것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는 이 점을 통렬히 꼬집는다. 우리의 보편적인 관념 속에 나쁜 경제학으로 인해 정도를 벗어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꼬집고, 효율이니 이득이니 경제니 하는 숫자 놀음으로 가치를 판단해선 안 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잊은 채로 멍청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꼬집는다.
인간은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가 맞지만 욕심에만 매몰된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존재가 맞지만 합리성만이 인간이 추구하는 전부는 아니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는 경제학자가 쓴 경제학 오류에 대한 책으로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합리적 인간‘과 ’부의 극대화‘가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말은 모두 사족이고, 그냥 이 책은 정말 읽어볼만한 책이다. 경제학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잘못 걸어온 것들이 어디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바로보고 더 이상 나쁜 경제학에 휘둘리지 않는 좋은 경제학의 세상으로 가기 위하여. 무엇보다 조안 로빈슨 여사의 아래의 말처럼 되기 위하여.
경제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경제에 대한 질문에 일련의 준비된 답변을 얻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책 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