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무기가 되는 수학 초능력 : 수학의 정리 편 일상의 무기가 되는 수학 초능력
고미야마 히로히토 지음, 김은혜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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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청년이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다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학문을 배워서 도대체 어디에 씁니까?” 유클리드는 곧바로 하인을 불러 “이 청년에게 돈을 내어주게. 이자는 공부를 하면 무언가 물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24쪽 재미있는 수학자 이야기 [유클리드]편 중에서

 

 비교적 쉽고 친근하게 떠올리는 수학의 정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아닐까 싶다. 근데 사실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표현만 익숙하지 이게 실제로 무엇인지, 일상적으로 어디에 사용되는지를 단번에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나와 수학의 거리’가 아닌가 한다. 페르마의 정리라는 것도 분명 들어봤는데 그게 무어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왜? 아마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수학의 공식만을 외웠기 때문이 아닐까.

 

 단편적인 수학 공부의 결과는 시야의 축소 혹은 편협함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나 사인, 코사인이 무언지만 제대로 알았더라도 토지를 측량할 때나 거리를 계산할 때 등 일상의 주요 순간마다 이 정리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알아서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휴대전화 주파수 기지국을 나누거나 지도를 그릴 때 수학의 정리를 유용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수학의 증명과 정리’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게 다가온다. 내가 해 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일상의 무기가 되는 수학 초능력]의 저자는 중학교 시절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정리’에 대한 개념 잡기부터 시작한다. 이 정리는 수학적 사고의 기본 틀이 되므로 사용하기 응용하기 쉬워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대표적인 수학의 정리들을 차례로 설명해준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수학의 정리들을 섭렵하고 나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수학의 정리, 알아두면 쓸모 있는 수학의 정리 등을 통하여 이미 내 생활 속에 자리하고 있던 수학의 정리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곤 마침내 저자가 내는 수학퍼즐을 가지고 노는 단계로 진입한다.

 

 수학이라면 지긋지긋하다든가,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든가 하시는 분?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거다. 수학이 그렇게 어렵고 이상하고 골치아픈 것만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개념을 이해하고 잡기도 전에 먼저 이해도 되지 않는 공식부터 외웠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뿐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달라질 것이다. 지하철 역에서 걸어 나와서 집까지 가는, 여러 경로의 거리를 어떻게 계산해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든가, 거기까지 가는 평균 시속은 얼마일까 고민해본다든지. 이런 것으로 숫자를 가지고 놀게 된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이 책의 띠지에 써 있는 이것을 기억하라 ‘숫자에 강한 사람이 인생에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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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무기가 되는 수학 초능력 : 확률편 일상의 무기가 되는 수학 초능력
노구치 데쓰노리 지음, 이선주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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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어느 영화에선가 봤던 것 같다. 주인공 남자가 뭐랄까, 좀 지질하고 소심한 그런 인물의 전형이었다. 일기 예보에서 맑을 확률이 94퍼센트라고 하는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불현 듯 집을 뒤지더니 우산을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회사에 도착한 그의 가방에서 우산을 본 직장 동료가 물었다. ‘오늘 날씨 맑다고 그랬는데 왜 우산을 챙겼어?’ 그러자 그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답했다. ‘맑은 날씨가 아니라, 맑을 확률이 94퍼센트라고 했지. 6퍼센트의 확률로 비가 올 수 있다는 거야. 나는 그 6퍼센트까지 대비하는 사람이거든.’ OMG....
 영화를 볼 때는 뭐 저런 바보가 있나,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를 돌이켜 보니 나 역시 ‘확률’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제멋대로 해석하고 생각해버린 적이 꽤 많더라. 대충 감만 알고 있었는데 그걸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퉁쳐 버린 것이다. 찬찬히 돌이켜보면 이런 상태만큼 위험한 상태가 또 없다.

 

 최근 수학이 뜨고 있다. 작년부터 불었던 ‘수학’의 바람은 올해에 더욱 강력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의 초능력’을 다시 보고 그것을 자기의 능력으로 삼아보려고 애 쓰고 있다. [일상의 무기가 되는 수학 초능력] 시리즈는 그런 기대와 수요에 부응하여 출간된 책이다. 확률, 수학의 정리, 미적분의 총 3권으로 각 권의 페이지가 130쪽을 넘지 않아 읽기 부담이 적은데다 일상의 여러 상황과 접목되는 수학의 영역을 포착, 설명하여 읽는 재미까지 잡으려 했다.

 

 시리즈의 첫 권으로 읽은 건 ‘확률’편이었다. 기상청의 기상 예보를 내가 어디까지 믿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혼자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발견해서 ‘무척 잘되었다’ 싶었다. 기상청의 예보에 매번 빠지지 않는 00퍼센트의 확률이 어떻게 산출되는지 아시는 분? 아마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모른다면 한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시라. 기상청 예보 수치 뿐만이 아니다. 우승 경주마를 맞히는 사람이 항상 맞힌다고? 잘 맞는 복권 번호가 따로 있다고? 운이 좋은 사람도 따로 있고? 미신처럼 우리의 일상에 녹아들어있는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수학이 답한다. 수학의 확률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가 미묘하게 오해하고 있었던 개념들이 바로 잡히고, 이 개념이 바로 잡히면서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본질’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확률의 기능과 힘이라고 이 책의 저자 노구치 데쓰노리 작가는 말한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하다가 과학 및 수학 전문 작가가 된 저자가 써서인지, 이 책은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특히 산수 교과서에 등장할 법한 캐릭터 일러스트와 그림을 삽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안 그래도 요즘 각종 히어로 무비들이 대세가 된 게, 엉망진창인 삶 속에서 초능력을 갈구하는 대중의 요구가 반영된 건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그런 시대 속에서 수학의 초능력 – 확률을 읽는 능력이라면 최첨단 수트도, 신의 기술도 없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는 무기가 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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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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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를 기억한다. 대학교를 다닐 때 [국제 경제]라는 과목으로 IMF 금융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배웠던 나는 그 영화를 본 이후 ‘대체 나는 학교에서 뭘 배운 거였지?’라고 탄식했다. 누군가는 음모론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영화적 과장이 섞여있다고 했지만 영화의 내용은 이미 나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가 고발하고 있는 내용 중 완전한 팩트는 절반이 안 된다고 해도 말이다. 내가 몸서리쳤던 것은 이것이다. 목적이 무엇이고 누가 주도하든,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금융을 완전히 무너지게 만들 수 있는 대규모 위기는 언제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가정이 공중분해되듯 흩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다. 그 시절이 지금이라도 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자체로 너무나 끔찍하지 않은가. 이 현실이 체감된다는 점에서,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지구 생명체 절반이 먼지가 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일이다.

 

 컬럼비아대학의 교수로 있는 애덤 투즈는 저명한 역사학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재현된 국제질서라는 거대한 흐름을 정교한 통찰력으로 설명한 [대재앙]이 출간된 이후 그는 위대한 역사가라는 호평을 들어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2008년에 불어 닥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경제 대서사시를 책으로 썼다. 미국 중심의 혹은 한 지역만의 경제사가 아닌 세계 경제사다. 특히 예측 불가능하고 까다로운 최근 10년의 역사. 한국어판의 책 페이지는 850쪽이 넘는다(본문만, 인용구 리스트 제외). 그야말로 역작이다.

 

 책 두께에 어마어마한 부담을 느끼며 첫 페이지를 열면 아주 인상적인 머리말이 나온다. 한국의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이다. 저자는 이 한국어판 서문에서 98년 IMF 사태를 겪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은 한국은 2000년대에 들어 큰 문제 없는 국가 재무 상태를 유지해왔다고 설명한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나라들은 엄청난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고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한국조차도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어쩔 수 없이 이 세계적인 충격파에 빨려들어 가야 했다고.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IMF사태는 언제라도 재현될수 있다’는 불안함이 단순한 내 뇌 망상이 아니라고 느꼈다.

 

 

 1990년대에 금융위기를 학습한 한국의 경우 2008년 국가 재무 상태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무역수지는 흑자 진행 중이었다. 또한 유럽과는 달리 한국의 은행들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와 크게 엮여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결정적으로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국제화되어 있었고 여기에 수출 주도형 국가로서의 재정적 필요와 특히 대금을 회수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자본재의 거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은행시스템은 달러화를 조달하기 위한 국제 화폐 시장과 원화와 달러화를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외환시장에 크게 의존했던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이런 시장들은 무너져 내렸고 덩달아 한국의 금융시스템 역시 엄청난 자금조달 압박에 시달렸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유럽의 주요 금융가와 다르게 한국은 자금조달 중단뿐 아니라 원화의 막대한 평가절하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한국처럼 막대한 외화를 보유한 국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건 경제가 튼튼한 국가라도 세계적인 충격파 앞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런 대규모의 위기가 어떻게 한 국가나 초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고 해결될 수 있었는지를 바로 이 책 [붕괴]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7-8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커다란 맥락에서 설명하는 ‘들어가며’, 미국의 2000년대 상황과 위기 그리고 세계 각국이 함께 연결된 소용돌이를 설명하는 1부, 금융위기의 충격에 빠진 세계를 설명한 2부, 2009년 여름부터 시작된 또 다른 위기(2008년의 충격이 낳은 결과들)를 설명하는 3부와 4부로 이어지는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읽다보면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특히 나같이 경제와 현대사에 식견이 짧은 독자는 더더욱. 하지만 이 책은 어떻게든 완독해야 할 동기가 충분한 책이다. 왜? 금융위기는 결국 정치적 위기로 이어지고 이런 위기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내가 알았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크게 바꿀 순 없겠지만 적어도 언젠가 내가 위기를 맞게 된다면 이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국가부도의 날]에서 허준호는 끝내 자기가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시절 우리 모두가 그랬다. 같은 사건이 반복될지언정 같은 아픔은 반복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마 이것이 저자가 이 책에 특별힌 한국어판 서문까지 달면서, 한국인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과 통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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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 경제 선언 - 돈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을 찾아서
쓰루미 와타루 지음, 유나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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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부동산이니, 경매니 하며 돈 버는 비법을 다른 책들이 얼마나 많든지. 물론 이런 책들에 대한 광고를 온라인 서점에서 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책들을 모니터가 아니라 실물로 보고, 심지어 종류와 양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맨 눈으로 접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돈 벌었다!’는 책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 서점의 한가운데에서 내 가방 속에 들어있던 책은 매우 기이하고 이상한 것이었다. 돈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무전 경제 선언]이다. 돈에 행복을 의존하는 아니, 돈에 행복을 저당 잡힌 우리의 현실을 고발하고 조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행동해보자는 조언을 하는 책이다.

 일본 프리랜서 작가인 쓰루미 와타루는 1993년에 [완전 자살 매뉴얼]이라는 책을 냈고 이 책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다. [무전 경제 선언]의 책 날개에는 저자를 열 사람 중에 아홉 사람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삶의 괴로움과 돈의 굴레로부터 편안하게 살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관련한 운동을 실천하는 작가라고 소개한다. 
 


  돈이 전부인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된 것은 겨우 수백 년 전이다. 그전까지 인류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서로 나누고 주고받으며 힘을 합쳐 살아왔다. 까마득한 옛날 일도 아니니 분명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책 11쪽

 

 이렇게 ‘줍는’ 것에 주목하는 이유는 ‘버리는’ 것이 너무 많은 탓이기도 하자. 줍는 것뿐만 아니라 버리는 문제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 버리는 쪽은 왜, 얼마나, 어느 단계에서 버리는가. 그것을 알면 줍기도 쉬워지고 줍는 것이 왜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럼 먼저 음식물이 버려지는 양상을 살펴보자.
 현재 세계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은 전체 식료품 생산량의 3분의 1에 달한다. 선진국에서는 그 비율이 더욱 높아서 식료품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책 133쪽

 

 

 (주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따로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날에 그곳을 가보면 별의별 물건을 다 보게 된다. 사용한 지 1년 도 안 된 것 같은 전기렌지, 아직 비닐도 채 다 안 뜯은 빨래 건조대, 상품 포장 째로 버린 서랍장. 대체 이런 걸 왜 버렸을까? 엄청 쓸만한데. 이건 내가 여기에다 처음 이야기하는 거지만, 나는 종종 집 근처 아파트단지에 가서 사피엔스(유발 하라리)니 역사의 역사(유시민) 같은 짭짤한 책들을 주워서 읽기도 한다. 재활용 쓰레기장에는 믿지 못할 정도로 좋은 것들이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돈이 들지 않는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면서 ‘줍는다’를 제안했을 때 아주 크게 공감했다. 일본인 저자가 일본의 현실을 바탕으로 쓴 책이지만 한국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으니까. 


 저자가 이 책에 설명한대로 음식점마다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혹은 자투리로 혹은 식재료를 시험하고 난 후에 혹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이유로 등등 버려지는 음식의 양은 한국도 상당할 것이다. 재활용 쓰레기라고 이름 붙여 버려지는 얼마 안 된 옷이나 액세서리, 서적, 가전 등등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들이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지는 것은 또 얼마나 낭비인지. 이것이 한 나라의 규모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로 보았을 때 그 양은 또 얼마나 엄청날 것인가.

 

 [무전 경제 선언]은 돈이 전부가 되어 돈으로 사고팔면 안 되는 것까지 거래하게 된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만 우리의 쓰임에 맞게 살 수 있을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 저자는 무전 경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취재하고 스스로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며 저자의 이론이 얼마나 통할 것인지를 체험했다.
 이 책의 서두에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돈이 없거나 부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돈에 별로 의존하지 않고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돈 없이 살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단순히 수입만으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될 만큼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고도 확실히 말한다. 그러면서 증여(무료로 주고 받는 순환 고리), 공유(남는 것을 나누거나 타인의 것을 이용하기), 줍기(쓰레기장에서 보물 건지기), 품앗이, 나라에서 받기, 자연에서 얻기, 소자본으로 돈벌이 해보기 등등 돈에 저당 잡히지 않는 인생을 꾸려갈 만한 다양한 활동을 제안한다.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말은 고리타분하고 뻔한 말처럼 읽히지만 책의 본문으로 들어가 저자와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마 누구도 쉽게 이 대화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돈에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하는 책은 많지만 이 책처럼 어떻게 해야 돈이라는 끈끈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조언하는 책은 많지 않다. 저자는 몸소 체험한 무전 경제 활동을 자세히 소개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세계관이 왜 이렇게 형성되었는지를 함께 설명하고 이를 근거로 우리가 돈에 의존하지 말 것을 강론한다.

 올해 상반기 동안 읽은 책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굉장한 책이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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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마음공부 - 세상에 끌려 다니지 않는
서광 지음 / 학지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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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세상에서 끌려 다니지 않는 단단한 마음공부는 불교의 유식 30송을 기반으로 합니다. 유식 30송은 4~5세기에 인도의 바수반두가 불교수행의 핵심을 체계화하고 완성한, 대승불교 심리학의 가장 권위 있고 대표적인 교재입니다. 그는 괴로워하는 인간과 깨달은 인간의 마음 구조와 기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고통에서 벗어나 해방으로 나아가는 5단계의 마음수행 과정을 30편의 짧은 시로 표현했습니다.
본문 6~7쪽

 

 단단한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부터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다. 단단한 마음이란 무딘 마음이나 닫힌 마음과는 아주 다른 개념이지 않을까. 흔들리지 않고, 어떤 말이나 환경에도 끌려 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인간 관계를 아예 정리해버리라는 조언이 많은 이 시대에 [단단한 마음공부]라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어느 책의 제목과 같이, 나를 힘들고 괴롭게 만드는 대상은 아예 인간관계에서 잘라내 버린다든가 주파수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의 접촉을 가능한 피하여 내 인생에서 그들을 지워버리는 일은 매우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그걸 그렇게 저질러 버리는 것을 단호하고 냉철하고 단단한 마음이라고 오해하는 일도 그래서 많은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을 곰곰이 읽어보면 단단한 마음은 그리 녹록하고 쉬운 게 아니다. 생의 모든 고통은 결국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기원하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 해방으로 나아가는 마음이야말로 단단한 마음이 아닌가. 부지런한 공부와 마음 수행 없이 이르기는 쉽지 않을 터다.

 

 그래서 요즘은 유독 철학과 역사의 인문학 서적을 통하여 이 마음 공부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 서점가만 해도 눈에 띄는 제목이 [이천 년의 공부], [천년의 질문] 등 어마어마하다. 철학과 역사서가 점령한 인문학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는 것은 이러한 책들이다. 서광스님이 불교 경전인 유식 30송을 풀어 쓴 [단단한 마음공부]와 같은 책 말이다. 종교의 경전으로 치부하기 쉬운 이 책에는 사람의 마음 생리에 대한 여러 분석과 관점들이 들어 있다.  


 그간 서구 가치관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이 우리들의 마음 공부에 주요 교재들이 되어 왔다. 프로이트니 칼 융, 아들러니 하는 학자들의 이론으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 영혼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런 모든 시도들은 만족할 만한 결과는 주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는 경전으로 눈을 돌려볼 만하다. 따지고 보면 종교도, 철학도, 심리학도 결국 다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는 책들이 아닌가.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내 마음 내가 모른다는 것은 자기 마음은 제쳐 놓고 유식을 붙잡고 공부하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주교재인 내 마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느낌인지, 내가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알아차리거나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인다면 모를 수가 없습니다. 유식은 이론이 먼저가 아니라 실제로 경험하고 깨달은 사실을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설명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9쪽

 


 법정스님이 선가구경이라는 불교 경전을 번역하여 출간한 [깨달음의 거울]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경전을 읽되 자기 마음속으로 돌이켜 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읽었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멋진 말이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고, 내 마음에 어떤 영향도 넣어주지 않으면서 의미 있는 변화 같은 것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 책을 한 권 다 읽는다고 해서 유식 30송이라는 어려운 교재가 단번에 이해가 되고 꿰뚫어지는 건 아니다. 읽는 일과 깨닫는 일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번 깨달아진 생각이라고 해서 거기가 깨달음의 끝이 아니라 계속 그 다음 단계로 깨달아나가는 것이 깨달음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용기를 내어 공부를 하다보면 결국 내가 바라던 그 ‘해방’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마음공부가 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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