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전 경제 선언 - 돈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을 찾아서
쓰루미 와타루 지음, 유나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부동산이니, 경매니 하며 돈 버는 비법을 다른 책들이 얼마나 많든지. 물론 이런 책들에 대한 광고를 온라인 서점에서 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책들을 모니터가 아니라 실물로 보고, 심지어 종류와 양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맨 눈으로 접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돈 벌었다!’는 책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 서점의 한가운데에서 내 가방 속에 들어있던 책은 매우 기이하고 이상한 것이었다. 돈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무전 경제 선언]이다. 돈에 행복을 의존하는 아니, 돈에 행복을 저당 잡힌 우리의 현실을 고발하고 조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행동해보자는 조언을 하는 책이다.
일본 프리랜서 작가인 쓰루미 와타루는 1993년에 [완전 자살 매뉴얼]이라는 책을 냈고 이 책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다. [무전 경제 선언]의 책 날개에는 저자를 열 사람 중에 아홉 사람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삶의 괴로움과 돈의 굴레로부터 편안하게 살 수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관련한 운동을 실천하는 작가라고 소개한다.
돈이 전부인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된 것은 겨우 수백 년 전이다. 그전까지 인류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서로 나누고 주고받으며 힘을 합쳐 살아왔다. 까마득한 옛날 일도 아니니 분명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책 11쪽
이렇게 ‘줍는’ 것에 주목하는 이유는 ‘버리는’ 것이 너무 많은 탓이기도 하자. 줍는 것뿐만 아니라 버리는 문제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 버리는 쪽은 왜, 얼마나, 어느 단계에서 버리는가. 그것을 알면 줍기도 쉬워지고 줍는 것이 왜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럼 먼저 음식물이 버려지는 양상을 살펴보자.
현재 세계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은 전체 식료품 생산량의 3분의 1에 달한다. 선진국에서는 그 비율이 더욱 높아서 식료품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책 133쪽
(주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따로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날에 그곳을 가보면 별의별 물건을 다 보게 된다. 사용한 지 1년 도 안 된 것 같은 전기렌지, 아직 비닐도 채 다 안 뜯은 빨래 건조대, 상품 포장 째로 버린 서랍장. 대체 이런 걸 왜 버렸을까? 엄청 쓸만한데. 이건 내가 여기에다 처음 이야기하는 거지만, 나는 종종 집 근처 아파트단지에 가서 사피엔스(유발 하라리)니 역사의 역사(유시민) 같은 짭짤한 책들을 주워서 읽기도 한다. 재활용 쓰레기장에는 믿지 못할 정도로 좋은 것들이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돈이 들지 않는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면서 ‘줍는다’를 제안했을 때 아주 크게 공감했다. 일본인 저자가 일본의 현실을 바탕으로 쓴 책이지만 한국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으니까.
저자가 이 책에 설명한대로 음식점마다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혹은 자투리로 혹은 식재료를 시험하고 난 후에 혹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이유로 등등 버려지는 음식의 양은 한국도 상당할 것이다. 재활용 쓰레기라고 이름 붙여 버려지는 얼마 안 된 옷이나 액세서리, 서적, 가전 등등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들이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지는 것은 또 얼마나 낭비인지. 이것이 한 나라의 규모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로 보았을 때 그 양은 또 얼마나 엄청날 것인가.
[무전 경제 선언]은 돈이 전부가 되어 돈으로 사고팔면 안 되는 것까지 거래하게 된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만 우리의 쓰임에 맞게 살 수 있을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 저자는 무전 경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취재하고 스스로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며 저자의 이론이 얼마나 통할 것인지를 체험했다.
이 책의 서두에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돈이 없거나 부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돈에 별로 의존하지 않고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돈 없이 살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단순히 수입만으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될 만큼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고도 확실히 말한다. 그러면서 증여(무료로 주고 받는 순환 고리), 공유(남는 것을 나누거나 타인의 것을 이용하기), 줍기(쓰레기장에서 보물 건지기), 품앗이, 나라에서 받기, 자연에서 얻기, 소자본으로 돈벌이 해보기 등등 돈에 저당 잡히지 않는 인생을 꾸려갈 만한 다양한 활동을 제안한다.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말은 고리타분하고 뻔한 말처럼 읽히지만 책의 본문으로 들어가 저자와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마 누구도 쉽게 이 대화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돈에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하는 책은 많지만 이 책처럼 어떻게 해야 돈이라는 끈끈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조언하는 책은 많지 않다. 저자는 몸소 체험한 무전 경제 활동을 자세히 소개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세계관이 왜 이렇게 형성되었는지를 함께 설명하고 이를 근거로 우리가 돈에 의존하지 말 것을 강론한다.
올해 상반기 동안 읽은 책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굉장한 책이다.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