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다 그림책이 참 좋아 56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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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백희나 작가는 올해 아스트리드 린드르겐상을 수상했다.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상을 수상한 것으로 백희나 작가는 증명한 셈이다. 그녀가 짓는 동화 세상은 지구촌이 공감하고 동감하는 아름다운 정서의 세계임을. 또한 동화란 어린애들이나 보는 수준 낮은 이야기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든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정서로 설득할 수 있는 강력한 장르라는 사실까지도.

 

수상 소식은 희소식이지만 답답한 소식도 있었다. 2004년 출간한 [구름빵] 저작권 소송이 대법원 심리도 없이 기각되어 백작가가 패소한 것이다. 문학계에서 작가의 권리란 참으로 연약한데 그 중에서도 동화 즉 어린이 문학계에서 작가의 권리는 더욱 약하다. 백희나 작가의 패소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구름빵을 그렸지만 구름빵에 대한 저작권은 백희나 작가에게 없다. 구름빵은 1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고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의 2차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져 막대한 수익을 냈지만 백 작가에게는 저작권도, 2차 콘텐츠 등에 따른 보상도 없다. 20039월에 체결한 계약 중에 포함된 양도 내용 때문이다.

 

계약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출판계의 관행이 이제는 좀 바뀌어야 되지 않나 싶다. 작가의 저작권 자체에 대한 새로운 기준과 고려가 필요하다.

 

백희나 작가의 동화세계는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다. 손으로 만지면 그림책 안의 세계가 만져지고 그 촉각에 사람의 체온과 같은 온기까지 느껴질 듯하다. 명랑하면서도 세밀한 백희나 작가의 동화 세계가 더 풍부하고 사랑스러운 색채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시간과 더불어 구조적인 변화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백희나 작가의 동화책 [나는 개다]는 개 구슬이의 이야기다. 똥개 구슬이와 함께 사는 가족의 이야기가 정감 있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감탄한 건 구도다. 구슬이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그림책의 구도가 다이나믹하게 변한다. 이렇게 역동적인 그림책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림책에 아무런 줄글이 없어도 이야기가 자연히 꿰어져 흘러나온다.

 

백희나 작가의 동화책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수없이 다른 복잡함과 새로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시선, 평범한 풍경을 따듯하고 정감 있게 빚어내는 솜씨. 독자는 그녀가 출간하는 그림책마다 경탄하고 기뻐하고 행복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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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의 물리학 - 사소한 일상이 물리가 되는 즐거움
이기진 글.그림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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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범위의 세계를 살게 된다. 생각이 내 선택과 행동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주변 자극이나 주위 사람으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빚어진다. 사람은 평생 주위로부터 흡수한 영향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흔히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 말은 지금 주변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다른 영향을 받고 싶다는 말과 상통한다.  그러니 사람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껏 나를 둘러싼 익숙한 자극, 내가 아는 영향이 아닌 전혀 새로운 자극과 영향을 찾아야 한다. 그런 자극과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접근이 쉬운 도구가 바로 '책'이다.

 

 

책은 본래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도구였다. 힐링이나 감성 충전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기 위해 읽는다고 하는 시조차 실은 고도로 정제된 언어의 과학이다. 시를 읽다 보면 치열한 생각의 훈련 끝에 시인이 빚어낸 한 올, 한 올의 비유와 표현, 사유의 깊이에 경탄하게 된다. 사물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질문하고 탐구하는 시인의 눈이 어느새 나에게로 전이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독자는 그동안에 살아왔던 익숙한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된다.

 

 언어의 과학인 '시'가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면 '자연 과학'은 어떨까?

 

 

물리학은 지극히 개인적인 학문이다. 물리학은 삶의 철학이 될 수도 있고, 삶을 기록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으며, 내가 가진 사상의 지평선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의 이치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우주를 내다보는 방식, 바로 그것이 ‘나의 물리학’인 것이다.
5쪽 서문 중에서

 

 

[하루하루의 물리학]을 쓴 이기진 교수는 물리학을 ‘시선’이라고 말한다. 사물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눈처럼 물리학자 역시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서의 특별한 눈이 있다. 일상 속에서의 물리학, 각자의 삶 안에 있는 물리학의 세계에 대해서 쓴 [하루하루의 물리학]은 그래서 별난 책이다. 힘의 원리나 작용으로서의 물리학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물리학을 만나게 해준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계, 나와 나를 둘러싼 사물을 다시 보게 만들어줄 놀라운 렌즈를 장착하게 될 것은 확실하다.

 

 압력은 뭔가를 누르거나 압박하는 힘이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압력이라는 물리적 틀 속에 살고 있다. 즉 형체가 있는 모든 물체는 압력을 받게 되어 있다. 우리의 몸도 대기압이라는 적정한 압력 속에 존재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압력인지도 모른다. 

 

 

 물리적 압력 말고 심리적 압력도 있다. 학생 때는 시험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잠도 못 이루고 불안에 떤다. 그래서 압박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자꾸만 딴짓을 하고, 공상을 하고, 일탈을 꿈꾸면서 현실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책 122쪽

 

그림책 작가이기도 한 이기진 교수의 독특하고 별난 센스는 이 책을 무척 돋보이게 한다. 책속에 삽입된 일러스트들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가끔 빵빵 터지게 웃도록 만든다) 본문 내용은 단순한 과학서적이 아닌, 과학책과 인문학 사이의 아주 가느다란 교집합 영역에 서 있다. 성인을 위한 쉽고 일상적인 물리학 교양서로 매우 적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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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역사 - 말과 글에 관한 궁금증을 풀다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서순승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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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우리는 모두 언어를 듣고 말하고 쓸 줄 안다. 문맹률이 높은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더라도 그 나라의 언어를 듣고 말하는 정도가 가능하다. 언젠가 다른 서평에서 ‘언어는 산소’라고 썼던 게 기억난다.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기가 어디에나, 어느 순간에나 있듯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언어 역시 그러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죽은 뒤에조차 사람은 누구나 언어라는 공기 안에서 호흡한다.

 

 언어는 인류 역사 속에서 사람이 배워온 (그리고 배우고 있는 것들을 포함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복잡하다. 영국의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은 그의 신간 [언어의 역사]에서 우리는 저마다 역사상 가장 복잡한 체계인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음을 짚어준다. 기술로서의 언어가 낯설고 어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언어 그 자체에 대해 제대로 배우거나 아는 사람은 적다. 마치 매 순간 공기로 호흡하고 있지만 공기의 분자와 구성, 부피, 무게 따위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은 것처럼. [언어의 역사]를 한국어로 옮긴 서순승 역자는 ‘옮긴이의 말’ 서두에 언어를 할 줄 아는 것과 언어 일반을 아는 것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아하, 그렇지.’라는 무릎 탁!과 함께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탁!하고 높아진다. (번역서의 경우 거의 대부분 역자의 말을 먼저 읽어보고 책 본문을 읽는 습관이 있다.)

 

 

 [언어의 역사]는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다. 언어의 역사와 생성, 사용, 현황 등 언어 일반에 대한 총 40개의 주제로 구성한 이 책의 모든 챕터가 재미있다. 마치 생물을 분석하듯 언어 이곳저곳에 현미경을 대고 그 모양과 변형 상태를 살펴보는 책이다.

 

 공기 없는 지구를 상상할 수 없듯 언어 없는 인류세계 역시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언어로 지은 세상이다. 의사를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탁월한 수단인 언어. 의사를 소통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나 수단은 다른 생물들에게도 있지만 감정과 창의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건 오직 사람의 언어뿐이다. 그래서 언어는 사람을 사람답게, 사람 되게 하는 유일한 도구다. [언어의 역사]는 언어가 지닌 독보적인 기능과 가치를 조망하고 이를 이해한 독자들을 통하여 더 나은 언어 세계를 짓기 위한 바람으로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책의 본문에 잘 나온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수많은 추천사를 대신한다)

 

 

 

 

 흔히들 지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렸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그리고 이 말은 식물, 동물,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략) 나는 여러분도 이들 문제에 관심을 가져, 언젠가는 여러분의 언어 세계를 보다 살기 좋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리라 기대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대상은 나의 세계이자 여러분의 세계이니까.
 422쪽 마지막 챕터 <여러분의 언어 세계> 중에서 

 

 기원전 8천년 경이 되어서야 인류가 언어능력을 갖추었다고 단언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10만 년 경 혹은 그보다 더 전에 원시적인 형태로서 말이 시작되었다고 추정하는데 가히 9만 년 정도의 세월이 흘러서야 말(리듬, 억양, 음파 등이 나타나는)이라고 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 여기에 문자의 탄생까지 계산해보면 인류가 말과 글이라는 고도의 언어 체계를 사용하게 된 건 6천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언어의 역사] 챕터 15,16 참조)

 우리나라 역사를 반 만년이라고 하는데 딱 우리나라 역사 정도가 말과 글의 실질적인 역사인 셈이다. 6천 년의 시간이 흘러 현재 6천 개의 언어가 지구상에 존재하고 (그러나 이 역시 추정) 앞으로 100년 내에 세계 언어의 절반이 사멸할 것이라고 언어학자들은 전망한다. 언어 역시 살아있는 것이고 생물다양성(다양한 생물이 공존할 때 더 오래, 건강하게 생존하는 성질)의 측면에서 보자면 언어다양성 역시 보존되어야 할 가치다.

 

 

 그렇다고 [언어의 역사]는 어디 먼 원시 부족의 언어를 배우자고 독려하거나 언어가 흘러온 역사와 정통성, 전통적 언어만을 설명하는 데에 주력하진 않는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언어의 속성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데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말과 글의 속성(소리, 발음, 억양, 예절, 전문어, 형태, 문법 등등)은 우리의 현재 생활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구당 독서량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일상 속에서 영상 미디어가 차지하는 지분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언어가 점차로 우리 생활과 멀어져 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절대적으로 언어에 기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공기로 숨쉬면서도 공기의 분자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과학도서처럼, 쉴새 없이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교양도서다. 

 
 첨단기술이 도입된다고 언어로 할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스타일의 수가 오히려 두 배로 늘어났다. 과거에는 반드시 우체국을 거쳐야 했던 업무 중 많은 부분이 지금은 온라인으로 처리된다. 지면 서식과 온라인 서식을 채우는 것은 비슷한 면도 많지만 다른 점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따라서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려면 누구나 지면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에다 컴퓨터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까지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39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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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생산성, 창의성, 혁신성을 높이는 6단계 생각법
팀 허슨 지음, 강유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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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생각 기술에 대한 책이다. 폭넓은 시각, 통찰,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 이런 탁월한 생각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의 결과일까? [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 팀 허슨은 ‘아닙니다’라고 단언한다. 물론 선천적으로 통찰력이나 집중력 등이 유난히 강하게 타고난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집중력도 훈련으로 강화될 수 있고 통찰력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깊어질 수 있다. 몸에 있는 근육을 단련시켜 건강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듯 생각의 근육들을 단련시켜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익숙한 대로, 그동안 해왔던 대로 생각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탁월한 생각’을 얻기 위한 단련법이다.

 

저자는 이 책의 1부에서 ‘원숭이 마음, 악어 뇌, 코끼리 사슬’이라는 세 가지 생각의 함정을 알려준다. 보통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뇌의 습성상 아주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는 덫들이다. 몇 달 전에 심리학 서적에서 공포를 관장하는 ‘파충류 뇌’를 도마뱀이라 부르며 “내 머릿속의 도마뱀”을 달래는 법을 읽은 적이 있다. 반자동 기계처럼, 사람의 의지가 아닌 본연의 작동 원리대로 움직이려는 뇌의 습성을 알고 다룰 줄 알아야 내가 나를 바꿀 수가 있다. [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역시 사고력을 발달시키기 위하여 나 자신도 모르게 내 뇌가 묶어놓은 생각의 악습들을 제대로 아는 데에서부터 첫걸음을 시작한다.

 

 목차에는 ‘생산적 사고’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책을 읽어보면 이 생산적 사고란 창의적이고 효과적이고 신선한 사고를 모두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회사원에게든 사업자에게든 이 창의적이고 효과적이고 신선한 사고를 할 줄 아는 힘 즉 탁월한 사고력은 무척 유용하다. 요즘 꽃꽂이를 배우는 중인데 손으로 하는 일을 하면서 이 사고력의 유용함을 더 크게 느낀다. 같은 구도를 잡더라도 꽃을 바라보는 시각, 구도에 대한 이해, 독자적인 응용에 대한 시도 등 사고력의 차이가 결과물의 차이와 직결된다. 

 

 


2장에서 말했듯, 생산적 사고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패턴을 만들고 기억하는 뇌의 경향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를 틀 속에 가두고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하지 못하도록 억누른다. 패턴화된 생각은 때로는 ‘지식’이라는 형태로, 때로는 개념적 모형이나 의식적인 신념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패턴은 우리가 그걸 패턴으로 인지하지 못할 때 가장 파괴적인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생각에 깊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124쪽

 


 [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제목을 누군가로부터 받는 질문이라고 한다면, ‘그 전의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더 수고스럽게 생각하면 만들어진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팀 허슨 저자는 이 책의 도입부에 우리 뇌가 곧잘 빠지는 생각의 덫 3가지를 설명하고 나서 그 덫을 빠져나와 드넓은 생각의 바다로 가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이 방법들의 핵심은 단순하다. 생각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 말 것! 현재의 내 생각은 그동안 내가 내 뇌를 사용한 습관의 결과물이다. 쉽게 흩어지는 집중력, 위험을 피하려는 과도한 공포, 스스로 쌓아올린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편견 등이 현재의 내 생각을 구성하고 있다. 내 뇌는 얼마든지 창의적이고 신선하고 파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내 뇌에 걸린 자물쇠만 풀어준다면 말이지. 그러나 이 자물쇠를 풀려면 그동안 쉽게, 큰 애를 쓰지 않고도 수월하게 했던 생각법과는 달라져야 한다. 이전보다 수고스럽고 이전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 번거롭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거나 도통 시간이 없다고 해서 지름길로 가보려는 시도는 하지 말자. 지름길은 없다. 생각의 기술 혹은 사고력과 관련한 여러 책을 읽어봤지만 사고력 강화에 다른 길은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점은 더 명확해졌다. 사고력 강화의 유일한 길은 번거롭고 수고스럽더라도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계속 실행해보는 것이다.

 



얄궂게도, 답을 알고 싶은 충동은 생산적 사고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소위 ‘안다’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왜 불가능한지 갖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들에게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배울 필요를 못 느낀다. ‘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다고 여기는 상태가 곧 지식은 아니다. 안다는 상태는 봉인되어 있고, 그 안으로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다. 이에 반해 지식은 열려 있다. 안다는 상태는 도전을 위협으로 여기지만, 지식은 도전을 기회로 여긴다. 안다는 상태가 우리를 안심하게 하는 쇠창살문이라면 지식은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생산적 사고는 답이 명백해 보여도 서둘러 답을 내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나 계속 의문을 품으라고 요구한다. - 97쪽


 


 [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사고력 강화의 방법들을 체계적이고 알기 쉽게 안내한다. ‘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 뿐 아니라 이런 방법을 읽기만 하지 말고 반드시 실행해야 체화할 것까지 제안한다. 사고력은 생각하는 힘일 뿐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결과로 나타나는 변화까지 포함한다.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방법을 제아무리 많이 알아도 실행해서 체화되지 않은 것은 쓸모가 없다.

 

 [탁월한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보통의 아이디어, 그저그런 아이디어, 대충 괜찮은 아이디어를 탁월한 아이디어로 향상시키는 생각법을 담았다. 이 생각법이 책 속에 활자로만 남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체화되어 생각의 기술이 남다른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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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위험한 과학책 - 지구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허를 찌르는 일상 속 과학 원리들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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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과학이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살면서 단 1초라도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 손 들어보세요?" 우리의 삶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등 과학이 명명한 온갖 법칙에 둘러싸여 흘러간다. 무엇을 '본다'는 행위, '먹고 삼켜 소화'하는 행위, 귀로 듣고 입으로 소리 내는 행위. 이 행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것 역시 과학이다. 그러나 평소에 '원래 내 걸음은 시속 2km야. 그런데 지금은 지각했으니 시속 5km로 이동 속도를 높여야 해. 아! 조금이라도 힘을 덜 들이려면 공기 저항을 줄여야겠네. 내 몸무게로 시속 5km로 움직일 때 받는 공기 저항은 얼마일까?'라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만약 어딘가 이런 사람이 생존하고 있다면 머리에 공상만 가득한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고 있을 확률이 97%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인식을 뒤집는 사건이나 사람이 없다면 사는 재미도 없을 거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프로가 장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여기 ‘그런 사람은 없어.’라는 말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이 구역의 반전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더 위험한 과학책]을 쓴 랜들 먼로는 위에 쓴 97%의 인물과 한 끗 차이로 3%에 속하는 인물이다.


 

나는 물리학에 ‘고속도로에서 우리 집의 연비는 얼마나 될까?’와 같은 어이없는 질문을 하고, 물리학은 여기에 답을 주는 것이 너무 좋아요.
책 119쪽

 


 랜들 먼로는 ‘망원경으로 셀카 찍는 법’ 같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소위 안물안궁한 질문들을 수시로 던지는 사람이다. 대체 어느 누가 강을 건너기 위해서 주전자로 강물을 몽땅 끓여 수증기로 만들어 보자든지 시끄러운 이웃들과 꼬마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집 둘레에 용암 해자를 설치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산단 말인가? 이 사람이 한다. 랜들 먼로가 한다. 그런데 그의 공상은 무쓸모 판정을 가볍게 벗어난다. 저런 현실 가능성 1도 없는 질문들이 어디에 쓸모가 있냐고 반문하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누군가에게 랜들 먼로는 반문한다. 주전자로 강물을 끓여 수증기로 날려버리는 게 왜 안 될 일인데?! [더 위험한 과학책]은 안 되는 거 빼고 다 되는 ‘과학’의 세계다. 스낵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앉아 읽다보면 내가 유투브를 건지 과학책을 읽는 건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큭큭거리며 발을 구르게 만드는 책이다. 3%의 소금이 바다를 짜게 하듯 랜들 먼로가 쓴 과학책은 무맛 무취 무색의 과학을 감자칩마냥 짭조롬하게 만들어준다.

 

 [더 위험한 과학책]의 가장 큰 미덕은 ‘유머’다. 아직 이 책을 안 읽은 수십억 독자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과학을 흥미롭게 풀어준다는 점도 아니요,  기상천외하지만 말이 되는 훌륭한 논리도 아니요, 양장 제본에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데다 만듦새까지 좋아 책값이 아깝지 않게 해주는 썩 괜찮은 가성비도 아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유머’다. (두 번 강조한다.) ‘유머는 자비 다음 가는 미덕’이라는 속담이 영국에서 왔는지, 프랑스에서 왔는지 의견은 분분하나 저 말대로 유머가 훌륭한 미덕이란 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다. 자비리스한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유머’가 절실하다. 

 

 코로나19로 인한 단절과 스트레스 그리고 코로나19로 파생된 혹은 작년부터 누적되어온 경제적, 사회적 위기 속에 우리는 지금 안팎으로 너무나 시끄럽고 혼란한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작년 여름은 평범했고 무료했고 지루했고 그냥 그저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 작년을 돌이켜보니 너무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꿈같다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꿈이라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고. 당장 다음 달을 살아갈 일조차 혼란스럽고, 막막해진 우리에게 ‘다 잘 될거야’라는 희망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부질없고 ‘힘내’라는 격려는 (지금도 힘내고 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힘을 내나 싶어서) 짜증난다. 이 혼란의 시대에 유머는 다른 응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웃음이 주는 편안함, 웃음이 주는 몰입. 웃음이 주는 상상력. 그런데 말입니다.... 개그콘서트가 이틀 전에 사실상 종영 방송을 한 마당에 무슨 유머를 찾고 있냐고? 그러니까! 이제 유머는 거기서 찾지 말고 여기서 찾으라고. [더 위험한 과학책]을 열 장만 읽어보셔도 이 책이 과학책이 아닌 ‘유머’과학책이라고 이렇게 마르고 닳도록 자랑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니까.

 


 이 책에서는 일상적인 일들을 흔하지 않은 방법으로 접근하여 시도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 시도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유를 알아보면 재미있고 얻는 것도 많으며 가끔은 놀라운 결과가 나오기도 할 겁니다. 나쁜 아이디어도 나오겠지만 왜 나쁜지 정확하게 알아낸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이후에는 더 나은 접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설사 당신이 이 모든 것에 대한 올바른 방법을 이미 안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도움이 될지 몰라요. 어른이면 ‘누구나 아는’ 무엇이 존재하더라도, 미국에서만 매일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것을 처음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9쪽 저자의 들어가며 중에서 

 

 랜들 먼로는 [더 위험한 과학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전작들을 통해서도) 보통의 사람이 평소에는 웬만하면 마주치지 않을 문제들에 접근한다. 코끼리가 들을 수 있는 음역대의 피아노를 만든다든지, 밖에서 휴대전화 배터리가 1%일 때 태양빛에서 에너지를 모으거나 땅속 지열을 이용해서 휴대전화를 충전한다든지 하는 문제들이다. 그가 이런 어이없는 문제들에 접근하는 이유는 하나다. ‘흔하지 않은 방법’으로 접근하면 ‘흔하지 않은 해결법’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는 어려운 게 아니다. 단순해질수록 더 큰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변화의 핵심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물과 현상을 아주 낯설고 생소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변화의 첫걸음이다. 랜들 먼로는 이 눈의 위력을 아는 작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황당한 질문인 줄 알면서도 온갖 질문을 만들어본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 물리와 화학과 지구과학 등등 온갖 분야를 동원해서 문제의 해결 과정을 그려본다. 그걸 통해서 저자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과학 하기’를 실현한다.

 

 

 [더 위험한 과학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해서 읽었던 부분은 <인공 용암을 만들어서 해자에 가두는 방법>이었다. 주말 농장에 심어놓은 완두콩이니 가지, 상추, 고추 따위 들을 자꾸 누가 들어와서 따가는 터라 복장이 터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텃밭 둘레에다 고랑을 넓고 깊게 파서 염산이라도 부어 놔야 도둑을 막을 수 있겠다 싶어서 ‘흙은 염산을 부으면 녹나? 녹으면 뭐 시멘트라도 포장을 치고 염산을 부어야 되나?’ 이런 고민을 하던 차였다. 그랬는데 세상마상 랜들 먼로 저자는 확실히 고수다. 염산 같은 걸로 되겠냐며? 해자를 파고 용암을 만들어두는 걸로! 진짜 해볼까 싶어서 무척 진지하게 정독했다. 폭 1미터 정도만 되어도 용암 해자 부근에 ‘빠른 고통을 주는 경계선’이 생긴다는 내용에 좋아서 헤죽거리며 말이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텃밭 둘레에 용암 해자는 포기하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한 용암 귀뚜라미가 출현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용암의 열이 텃밭으로 방출되어 그 안에 채소들이 타죽기 십상이고 그걸 식히려 통풍관을 설치하면 분명 그 끈질기고 독한 완두콩 도둑은 랜들 먼로의 말대로 영화처럼 통풍관을 타고 텃밭 안으로 침입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말 언젠가는 현실에서 벌어질 일이 분명해서 정독한 부분도 있다. 우주비행사인 크리스 헤드필드와의 Q&A를 엮은 <농장, 항동모항, 기차 등에 비상착륙 하는 방법>편이다. 이 부분은 진짜 웃기기도 너무너무 웃기고 대박적 아이디어도 한 두개가 아니라서 완전 각 잡고 정독. 특히 ‘배달용 드론을 착륙시키는 법(이라고 읽고 배달용 드론에서 탈출하는 법이라고 읽는다)’은 분명 가까운 미래에 뉴스에서 보게 될 일이다. (이 글은 이렇게 성지가 됩니다.) 코로나19로 강화된 배달문화로 배달 오토바이 사고가 무척이나 많아졌다. 드론이 보편화된 이 마당에 언제까지 오토바이만 떡볶이를 배달하진 않을 것이다. 이제 곧 드론이 오토바이를 대신할 텐데 그때 분명 ‘어쩌다보니 배달용 드론의 운반용 팔에 옷이 걸려’ 음식과 함께 사람이 배달되는 사고가 터질 것이다. 사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드론이 배송지에 나를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겠지. 하지만 중간에 드론이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할 수도 있고 어디 고층 아파트에 유리벽에 내가 크게 부딪힐 수도 있다. 그러니 배달용 드론에서 나는 가능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내려와야 한다. 어떻게? 방법이 궁금하면 [더 위험한 과학책]에서 확인하시길.

 

 

 이 책에는 ‘이 책의 내용대로 실행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이 들어있다. 마치 레고를 사면 딸려오는 사용설명서 주의사항에 ‘이 레고를 삼키면 위험하다’는 말이 있듯이. 정말 특별한 아이들은 그걸 삼키지만 대부분은 안다. 하지 말라는 걸 굳이 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랜들 먼로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쁜 아이디어와 좋은 아이디어를 구분하게 되고 나쁜 아이디어가 왜 나쁜지 알아서 더 나은 접근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책을 다 읽은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은 저자의 바람이 실현되는 놀라운 책이라고 응답하고 싶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생각을 바꿔야 삶이 바뀐다는 얘기다. 많은 이들이 삶을 바꾸기 위하여 철학책을 읽고 자기계발서를 읽고 위로와 동감의 에세이들을 읽는다. 물론 그런 책들은 저마다가 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독자에게 준다. 그러나 진짜로 삶을 바꾸는 ‘생각’을 하고 싶다면 과학책이야말로 그 목적에 적합한, 무척 혁신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과학보다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온 것이 또 있을까? 과학만큼 우리 삶을 치밀하게 채우고 있는 게 또 있을까? 사물과 현상을 과학적인 상상력과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바라보게 되면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의 많은 부분들이 저절로 바뀐다. 페니실린이 곰팡이에서 약이 된 것처럼. 이렇게 유익한 과학책이 심지어 막강한 ‘유머’까지 탑재하고 있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이야기해본다.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다. ‘유머’과학책이다. ‘과학책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코웃음치시는 분은 그 코웃음은 태양으로 쏘아 보내고 서둘러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재미가 없다며 저를 태양으로 쏘아 보내는 건 그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를 어떻게 태양으로 쏠지는 이 책에 계획이 다 있습니다.)

 

 

사족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최근 SF소설 붐인데 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취향에도 이 책은 정말 찰떡콩떡찹쌀떡이다. SF소설 작가를 꿈꾸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 영감 꺼리가 한 가득하다는 걸 귀뜸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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