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해변의 카프카가 연상되는 작품이면서도 분명 해변의 카프카와 매우 다르다.
샌더스 대령이 '나는 형체가 없어 이 형체를 빌려 나타난 것이다. 디즈니는 저작권료가 비싸거든'이라고 이야기했던 부분이 기사단장이 나타나서 자신에 형체에 대해 소개했던 부분은 분명 매우 닮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 세계에 대한 저자의 태도, 그 세계의 존재들을 향한 저자의 관점은 그때와는 대단히 다르다. 정말 묘한 것은, 무엇이 다르다!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거 참 묘하지....
십년 전에 나는 해변의 카프카라는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작품 바닥에 깔려 있는 혼돈과 불안정한 어떤 기류가 너무나 불편했다. 15살이 그런 나이기 때문에 그런거야,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아주 잔인하고 민감하게 느껴지는 그 작품을 그리고 그런 글을 쓰는 작가를 가까이 할 수는 없었다. 그 후로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어떤 선입견, 내가 세운 장벽 같은 것이 있었다.
아주 우스운 계기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십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친구는 뜬금없이, 오페라 상영을 함께 가자고 했다. 뉴욕 메트오페라의 돈 지오반니를 상영해준다는, 흔하지 않은 기회였다. 오페라를 보고 나와서 안 사실이지만, 이 상영은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을 기념으로 마련된 이벤트였다.
내가 이 작품을 읽게된 것은 순전히 이 오페라 때문, 어쩌면 친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십년 만에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말 많이 달랐다. 그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진 것인가.
현현하는 이데아와 전이하는 메타포.
나는 이성 따위 전부 내던지고,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몸보다 작은 공간으로 나아갔다. 온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령 온몸의 관절이 마디마디 분해되더라도. 아무리 큰 고통이 따른다 해도, 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연관성의 산물이지 않은가.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도 무언가의 메타포이다. 이 촉수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빛은 그림자고, 그림자는 빛이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
좁은 굴은 느닷없이 끝났다. 마치 배수관을 틀어막고 있던 풀무더기가 센 물살에 밀려나가듯 몸이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424-425쪽
둘 다일 것이다. 작가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작품의 색도 변했고 읽는 나의 마음도 변했지.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모든 것을 흘러가고 모든 것은 연관성의 산물이다. 절대의 어떤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때문에 존재는 항상 상대적이다. 같은 것 같아도 다르고, 다른 것 같아도 같은 것.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해변의 카프카가 지겨워서, 이거 언제 끝나려나,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간신히 읽었다. 그때는.
그런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정말 넘어가는 페이지가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나 인물들, 촘촘하게 꿰어지고 이어지는 사건들도 물론 흥미진진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주인공 혹은 기사단장을 통해 투영되는 저자의 세계관이었다.
지금 차원에서 그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게 되는 변이, 고통의 체험이 가져오는 인식의 변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퇴색하거나 희석되는 대신 그 물결 위를 타고 항해하기로 한 주인공의 모든 선택에 나는 완전히 동의했다.
이런 저런 점에서 대단히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라고 많은 독자들이 이야기할테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 뿐일 듯 하다.
그는 나의 메타포, 그의 선택은 나의 이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