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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 어머니가 늘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다. '한 쪽이 참고 넘어가면 원수는 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머릿속의 오만가지 생각 중에서 비교적 지분을 많이 차지하는 게 이것 아닐까. 본전 생각.
내가 이 정도는 뿌렸는데 이 정도는 거둬야지, 내가 이렇게 했는데 너는 나한테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관계 속에서의 본전 생각이 인생에서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본전 생각이 때로는 사람과 척을 지게 만들고, 원수가 되게 만들고, 다시 안 볼 사이가 되게 만든다.
특히 본전 따지기 좋아하는 나에게 우리 어머니는, 모든 관계에서 어떻게든 한 쪽이 그래도 참고 넘어가면 원수 맺는 법은 없으니 살면서 절대 원수 만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다.
하지만 그게 쉽나. 까짓거 내가 봐준다, 그래 내가 이번은 참고 넘어가지 뭐. 이런 아량과 배포는 소인배 마음 속에서는 못 산다. 좁아서. 아량이나 배포 같은 덕성은 덩치가 매우 커서 군자라고 부릴만한 인물의 마음에나 살 수 있다.
이것이, 그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솔직한 입장이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기 전까지.
사람은 언제나 미스테리한 존재라, 그 마음에는 양이 있고 그 양의 옆 혹은 반대 어쩌면 그림자 속에는 음이 있다. 사람은 자기 의지로 마음의 밝은 편이나 어두운 편을 택하곤 하지만 어쩔 때는 그 마음의 밝은 편 혹은 어두운 편이 그 사람의 앞날을 결정짓는 경우도 있다. 긍정적인 면을 보자거나 부정적인 면을 보자거나 이런 선택은 언제나 나의 자의로 내리는 것이지만 때때로 이미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던 마음이 내 갈 길의 방향키가 되어 스스로 진로 설정을 해버리는 마는 법이다.
이 선택과 설정에서 무엇보다 크게 작용하는 것이 본전 생각인 것 같다. 상대가 내 본전을 무시할 뿐 아니라 심지어 내 본전마저 제 것으로 만들려고 덤빌 때 우리는 얼마나 크게 분노하는가. 본전을 다 잃고 나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체념한 사람들의 마음, 본전이라도 찾겠다고 절망의 벼랑 앞에서 버티는 그런 마음들은 또 얼마나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는지.
히가시노 게이고는 양과 음 그 기로에서 혼자 가슴앓이하며 고민하는 군상들을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함께 고민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그런데 고민상담 의뢰자에게 고민거리를 듣는 이들은 의뢰자와 같은 시대 사람들이 아니다. 의뢰자에게서 아주 먼 과거이거나 얼토당토 않은 미래이거나. 시간이 기이하게 흐르는 나미야 잡화점을 둘러싸고, 그 안에서 고민 상담을 해주는 이들과 그들에게서 상담편지를 받는 이들이 함께 해답을 발견하고 행복을 향해 움직인다.
단순히 동화같은 이야기, 가슴을 따듯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라고 하면 이 작품에 대한 실례일 것 같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개연성 있게 다시 엮어 전혀 새로운 시간의 흐름으로 이야기를 진행해간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대단히 재미있으면서도 철학적인 의문과 성찰을 남긴다. '나는 나 자신을 대할 때 그리고 타인을 대할 때 정성과 존중으로 대하고 있는가?' 가장 마음이 아픈 에피소드는 고시케 편이었다. 아.... 고시케 시점에서 비틀즈 그리고 부모님과의 관계가 절묘하게 얽히는 그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라, 이 책 중에서 유일하게 두 번을 읽었다. 가족은 한 배를 타고 있으면 결국 다시 좋아지게 되는 법이라는 책 속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이 흐름의 시작은 나미야 잡화점과 유소년 보호시설인 화광원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역시 미스테리의 장인답게 그 어떤 의문도 의문인채로 두지 않는다. 모든 떡밥을 회수하고 나서야 마지막 책장이 끝난다. 시간이 출렁이는 기이한 공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 공간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야만 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기적을 만든다. 그냥 사람 말고. 배려와 정성을 다할 줄 아는 사람, 아량과 배포가 있는 사람이. 어쩌면 이것들의 덩치는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른다. 내 좁은 마음에 어울리는 소박한 아량과 배포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