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전쟁은 비극이고 슬픔이고 아픔이다.

전쟁은 나쁜 것이다.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자 얼마나 될까. 이 명제를 부정할 수 있는 자 얼마나 될까.

마치 낮은 밝고 밤은 어둡다는 말처럼, 전쟁은 나쁘다는 말은 그 자체로 진리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비극으로서의 전쟁을 묘사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흥미롭지 않다. 책을 읽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목숨을 잃는 일을 알고 싶다면 책이 아니라 국제뉴스 란을 살펴볼 일이다.

나는 전쟁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텍스트가 주지 못하는 또 다른 전쟁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제5도살장은 내 마음을 읽었고, 나는 서가에서 책장을 벼르고 있던 이 책을 꺼내어 읽었다.

예전에는 인간이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인간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아이러니는 인간이 만든 참담하고 억센 것들이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참담하고 억센 것 그러니까 가장 최고의 아이러니는 전쟁이다.

전쟁은 아이러니다.

제5도살장은 아이러니로서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전쟁에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는지를 알려주려 하거나 전쟁이 얼마나 처절한 상처를 남기는, 그 트라우마가 어떻게 대단한지를 이야기하려는 책이 아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전장戰場도 아니었던 비무장도시인 드레스덴에서 하룻밤의 폭격으로 135,000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몸서리쳤고 전쟁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금 울었다. 군사니 무기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포로들의 모습을 읽으면서. 이따금은 웃었다. 정말 우스꽝스러워서.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었다.

이제 중요한 일은 운전대를 찾는 것이었다. 처음에 빌리는 두 팔을 풍차처럼 돌렸다. 운좋으면 걸려들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자, 체계적으로 찾기 시작하여, 운전대가 그에게서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손을 움직였다. 왼쪽 문에 몸을 바짝 기대고, 앞쪽 공간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래도 운전대를 찾지 못하자 옆으로 15센티미터쯤 이동해서 다시 수색했다. 놀랍게도 그는 결국 운전대를 찾지 못한 채 오른쪽 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 운전대를 훔쳐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화가 치밀어오르면서 기절하고 말았다.

그는 차의 뒷좌석에 있었다. 그래서 운전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66쪽

이거 나만 웃기나? 내가 올해 읽은 모든 책을 통 털어 제일 웃기는 장면이다.

대표적인 반전反戰소설이라는,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은 포로로서 저자가 남긴 책을 읽으면서 이따금 척추가 아프도록 쿡쿡거리며 웃게 된다는 점은 전쟁의 아이러니를 고발하는 이 책의 최고 아이러니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이제 중요한 일은 운전대를 찾는 것이었다. 처음에 빌리는 두 팔을 풍차처럼 돌렸다. 운좋으면 걸려들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자, 체계적으로 찾기 시작하여, 운전대가 그에게서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손을 움직였다. 왼쪽 문에 몸을 바짝 기대고, 앞쪽 공간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래도 운전대를 찾지 못하자 옆으로 15센티미터쯤 이동해서 다시 수색했다. 놀랍게도 그는 결국 운전대를 찾지 못한 채 오른쪽 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 운전대를 훔쳐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화가 치밀어오르면서 기절하고 말았다.

그는 차의 뒷좌석에 있었다. 그래서 운전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