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아버지가 사시던 온양의 시골집은 항상 나무먼지 냄새가 났다. 그냥 먼지도 아니고 오래된 나무에서 나는 나무먼지. 여섯 살의 나는 할아버지 댁에 가자고 하면 항상 그 집의 풍경이나 집 앞 벌판의 소리 대신 냄새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대청마루의 반들반들한 바닥에 볼을 대고 있으면 '50년 전에도 이런 냄새가 났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50년 전에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시계 장인이었다고 했다. 만주로 도망치듯 가서 기술을 배웠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시계 만지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래서 시골집에는 녹슨 시계 부속들이 마구잡이로 굴러다니곤 했다. 엄마에게 젊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고 시골집 구석에서 시계판이나 굵은 바늘이라도 마주치면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들의 화석을 발굴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궁금함은 다 풀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자기를 뭐라고 소개했을까? 왜 만주에서 하던 시계 일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그만두셨을까? 할아버지는 아버지(증조 할아버지)를 싫어해서 고향을 떠났다는 사실과 고향 밖에서는 온양 출신이라고 밝히기를 꺼렸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할머니에게 들어서야 알았다.

 

 이승우 소설가는 최근의 에세이집([소설가의 귓속말])에서 '고향이란 사람'이라고 썼다. 할아버지에게 고향은 엄격하고 뜻이 안 맞는 아버지, 답답한 어머니, 온갖 참견을 늘어놓는 동네사람들이었던 걸까. 고향 밖에서는 자기 출신을 일절 밝히지 않았던 건, 자기 입으로 출신을 뱉었을 때 의도치 않게 함께 소환되는 수많은 사람,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사샤 스타니시치는 독일에서 소설을 발표하고 독일에서 주는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출신지는 독일이 아니다. 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나 14년을 살았다. 보스니아 전쟁이 일어나자 부모님을 따라 고향을 떠나 독일로 이주했다. 고향이 싫어서도 아니고 고향의 사람들이 갑갑해서도 아니었던 그는 그렇게 고향을 떠나 독일에 정착했고 아마 출신에 대한 그의 험난한 여정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터였다.

 

 "당신은 어디 출신인가요?" 이 질문을 받는다는 건 내가 나의 태어난 곳, 자란 곳, 내가 속한 곳을 떠나 있다는 증명이다. 떠나지 않으면 이런 질문을 받을수도 없고 출신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지 않는다. "저는 서울 사람이에요." 이렇게 쉬운 답은 조금 미안하고 시시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세상에서 지워진 도시라면 얼마나 대답하기가 난감할까. 그 도시의 추억, 풍경, 도시에 도사리고 있던 모든 신화와 전설들, 역사들이 지워졌다면 도시의 이름을 말한들 그걸 출신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뿔뿔이 흩어진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친척들의 이야기를 자청해서 듣고 그걸 쓰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물이 높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그 물길이 정해져 있듯이 저자의 글의 길도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일생에 언제든 한번은 꼭 '나는 누구인가'를 뿌리 깊이 고민하게 마련이고, 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하여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고조 할아버지를 따라 좇아가기 마련이고,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면 반드시 찾아나서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진부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너무 당연해서? 그게 인간 아닌가. 그토록 당연한 존재.

 

 하지만 이 작품 [출신]은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게 흘러가는 소설이 아니다.  사샤 스타니코비치의 '출신'에 대한 고찰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내가 겪은 경험치와는 사뭇 달랐다. 

 

 

 

 어디서 왔냐는 말이 암시하는 바가 뭔지부터 정확히 따져봐야 해요. 분만실이 위치한 언덕의 지리적인 위치를 암시하는지, 마지막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에 머물고 있는 나라의 국경을 암시하는지? 부모님 혈통인지? 유전자, 조상, 방언인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이 창조물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거죠. 그건 저주예요! 아니면 약간의 운이 들어 있는 능력이랄 수 있어요. 재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점과 특권을 만들어내는 능력말이죠.

 책 44쪽

 

 

 전쟁을 피해 살 곳을 찾아들어온 난민의 문제는 난민의 입장에서도, 난민을 수용하기로 한 국가와 국민의 입장에서도 양측 모두에게 원만하게 풀기가 만만치 않은 어려운 일이다. [출신]에는 내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출신'의 문제들이 가득하다. 이력서를 쓰는 것처럼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 나의 정체성 전부를 고찰하게 만드는 어려운 일이 된다. 갈기갈기 찢겨진 가족들, 전설로 남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들. 출신은 사람인데,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의 세계를 하나하나 꿰어맞춘 퍼즐처럼 수많은 사람이라, 그 퍼즐 중에 하나만 없어도 나의 출신은 미완성의 볼품없는 것이 되고야 만다.

 

 

 

 할아버지가 거실로 나왔다.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인 두 요원을 한동안 지켜보더니 질문이 있다면서 방해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방금 그게 뭐냐?" 나는 대답햇다. "외계인요."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나 같구나!" 그러고는 거친 손으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책  102쪽

 

 

 외국인이 아닌, 외계인일 수 밖에 없는 출신의 난민들. [출신]은 난민의 현주소를 세밀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저자는 난민 출신으로서 발견한 사회적 부당함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대신에  훨씬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더듬어 찾으려는 정성을 들여서.

 

 뉴욕에서 태어난 사람이 두바이에서 자라다가 상하이에서 일하게 되는 '집시'가 흔한 우리 시대에 출신을 정체성으로 전환해서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 오래되어 진부해보일 수 있다. 출신을 한 곳으로 집어 말할 수 없는 우리는 모두 '글로벌 시대'의 집시들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샤 스타니시치가 쓴대로 사람이, 나를 이끄는 우연이, 전쟁과 그 불똥이 모두다 나의 출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출신에 담긴 정체성의 깊이도 변하지 않는다. 사샤 스타니시치는 어쩌면 밀레니얼세대 모두가 하는 정체성의 고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주인공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
신소린 지음 / 해의시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그랬고 [디어 마이 프렌드]가 그랬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지금 우리는 저마다의 노년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그런 질문을 들게 하는 작품이 최근들어 부쩍 눈에 띈다. 노인인구 비중이 부쩍 증가하면서 노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역시 함께 시작되었다. 물론 그 전에 노년의 삶에 대하여 고찰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 같은 것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대중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 자명한 사실이 요즘처럼 커다란 소리로 울림을 주는 시대는 이전에 없던, 우리가 처음 만나는 시대이다.

 

 그 전에는 보통 ‘노화’를 방지하는 그러니까, 늙음을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형태로 우리는 늙음을 다루는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방향이 매우 달라졌다고 느낀다. 늙음을 거부하는 건 무의미하다. 보톡스나 영양제 따위로 늙음은 지연되지도, 숨겨지지도 않는다. 시간과 노화의 관계는 너무나 정직하다. 하루가 가면 하루만큼 늙는 법이다. 우리의 하루하루만큼 우리는 늙어간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나는 노인이 되어간다.

 

 아직 젊은 내가 ‘나는 노인이 되어간다’라고 해봤자 실은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무릎에 난 상처가 20대에는 이틀 만에 아물었다면 30대에는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정도. 사람이란 경험의 존재라 무엇이든 체감해보지 않으면 도무지 그것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느끼지를 못한다. 늙음이 얼마나 나의 세상을 바꾸는지를 체감하는 건 그것이 내 아버지나 어머니의 문제, 내 할머니의 문제 등으로 치환될 때다.

 

 신소린 저자는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옷을 입고 싶어?]를 쓴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좋은 마지막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책은 ‘엄마에게 선물한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쓸수록 뭔가 뒤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오히려 제가 선물을 받았거든요.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는 데는,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의 인생에 중심을 두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렇게 내가 선물하려 했던 죽음에서 ‘엄마가 원하는 죽음’으로 화두가 바뀌었어요.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라는 질문은 이 책의 화두를 꺼내는 동시에 더 많은 질문으로 이어지게 해주었어요.
- 프롤로그 <엄마의 행복한 장례식> 중에서

 

할머니의 치매를 간호하는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노인과 늙음과 노년의 삶을 구체적으로 대면하게 된 신소린 저자는 우리가 저마다 도착하게 될 그 끝점에 대해 쓰게 되었다. 그 끝점에는 할머니가 가장 먼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엄마와 이모들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당도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당도할 끝점이라면 저자는 생각했다. ‘엄마가 원하는 죽음’으로 끝점을 장식하게 하고 싶다고.

 

 엄마가 원하는 장례식, 엄마가 원하는 끝은 무엇인지를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어느새 그 속에서 오고가는 소망과 바람, 기대 등은 엄마만의 것이 아닌 할머니의 것, 엄마와 이모들의 것 그리고 저자의 것으로 확대된다. 저자는 죽음과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태도를 이 작은 에세이집에 뭉클하게 녹여냈다.

 

40대인 나는 작은 글씨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70대 엄마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다고 한다. 90대 할머니는 5센티미터 문턱에 걸려 넘어지셨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가 불편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생활 터전이 젊은 시절에 멈춰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젊음이 정상이고 늙음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공간이나 디자인은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널려 잇는 것 같다.
우리가 평생, 어쩌면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모두가 지나온 젊음이 아니라, 다가오는 늙음일 것이다.
100세가 되면 어떤 것들이 필요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34쪽. 1장> 황천길 될 뻔한 ‘5센치’ 효도

 

 늙음도 공부해야 한다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누리고 즐기고 가꾸어야 할 것은 젊음만이 아니다. 어쩌면 청춘보다 노년이 훨씬 길어진 지금에야말로 우리는 늙음을 누리고 즐기고 가꾸기 위하여 대비와 공부가 필요하다.

 할머니의 치매를 간병하는 엄마와 이모들의 에피소드, 엄마와의 대화, 할머니와의 에피소드 등으로 꾸며진 이 책은 늙음과 죽음을 무척 유쾌하고 명랑하게 바라본다. 죽음이란 입에 올리기도 무서운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결국 당도해야 할 끝점이기에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른 색깔로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야기한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가족 전체를 병들게 하는 병으로 악명 높은 ‘치매’가 가족 속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관리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 점도 인상 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나공 찰떡이해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심화(1.2.3급) 30일 개념 기본서 - 특별부록: 그림으로 읽는 한국사 연표, 전문가의 한 방 정리, 빈출 키워드&선택지
시나공 한국사 연구회 지음 / 길벗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토익이나 토플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는데 한국어능력시험이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는 그렇게 마음이 간다. 왜 그럴까? 언젠가는 꼭 한국어능력시험 그리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쳐봐야지, 그래야지, 그런 마음은 있는데 정확한 동기부여가 안 되니 만날 '봐야지'만 하고 안 보고 사는 듯...

 

이번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 교재를 처음 봤다. 신기한 건 시나공에서 만든 교재도 처음이라는 사실. 처음 교재를 보는데 '나에게는 아직 30일이 남아있소' 이 말이 얼마나 재밌던지. 이순신 장군 정도의 기개를 활활 불태우면서 공부해야 하는건가 싶었다. 겨우 한 달 가지고 이게 된다고? 반신반의하며 책을 열다가 책 내용을 보면서 어느 정도 수긍을 했다. 그래, 한국어능력시험도 2주면 준비할 수 있다는 후기가 줄을 잇는 판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한 달이면 준비할 수 있다는 건 왜 말이 안되겠는가. 결국 마음의 문제다.

 

 

- 시나공 찰떡이해 속 특이점 하나> 빈출 키워드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마음만 있으면 안된다는 걸 너무 잘 아는 거지. 시나공에서 만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찰떡이해] 앞부분에는 시나공이 이 교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대략 설명한다. 실제 수험생들인 독자 테스터가 있고 그룹 인터뷰도 하고 실제고 독자들이 시나공 교재로 공부해서 합격률이 얼마나 되는지 측정까지 하면서 교재를 만든다. 베이킹만 과학이 아니라 한능검 셤공부도 과학이다. 마음과 전략이 모두 있으면 목표달성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건 당연지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찰떡이해]에는 특이점이 두 개가 있다. 한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든 브로마이드나 내지 속 형광펜 처리, 도표 등등은 그동안 여타의 다른 교재에서도 많이 봤고 익숙하다. 그런데 30회 이후 최근 47회까지의 기출문제의 모든 키워드를 추출ㆍ 분석하여 빈출 키워드로 이론을 구성, 시작 전 핵심 키워드 제시, 본문과 정리표에 이어지는 핵심 키워드를 모은 <반출 키워드>와 핵심이론을 정리 요약한 <한방정리> 소책자는 진짜 굿굿!!! 책 속의 책 형태로 삽입되어 분리해서 사용할수 있는 작은 책자들인 이 두 권 덕분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찰떡이해]를 공부할만한 재미도 있고 효율도 돋는다.

 

 

시나공에서 교재를 수험생 입장에서 세심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던 게, 한능검이 어디에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를 정리해주거나 30일 계획표를 짜서 실어주고 올해 바뀐 한능검 내용과 시험일정까지 이 책 한권에 다 넣었다는 점이다. 한능검을 봐야지 마음만 있고 구체적인 계획이 아무것도 없었던 나조차 '어, 그래, 해볼만 하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이 정도면 뽐뿌질 제대로 오는 교재다.

당장 한능검셤을 급하게 준비해야 하거나 올해는 꼭 한능검 봐야하는 분들, 꼭 시나공 교재로 공부하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엄마가 결혼할 때 사셨던 세이코 시계는 아직도 건강하다. 디자인도 심플하고 너무 예뻐서 일하러 갈 때 종종 그 시계를 차곤 한다. 사실 시알못이라 뭐가 좋은 시계고 나쁜 건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동안 세이코 시계를 몇 번 수리하면서 아주 오래되었고 믿을만한 시계라는 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시계란 악세서리, 시간은 휴대폰으로 확인하는 시대다. 시계라는 기계와 시간이라는 개념이 귀하거나 값비싼, 구하기 힘든 어떤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시대를 열기까지의 역사를 흥미롭게 정리한 책이 있다. [완벽주의자들]. 이 책은 시계로 시작해서 시간으로 마친다.

 

 베이킹을 하다보면 0.05g까지 재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는 전자저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맛있는 먹거리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건 전적으로 정밀한 계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벽주의자들]이라는 책은 말한다. 정밀성이라는 개념은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발명된 것이라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편집증적인 외곬수들의 몰입과 기술이 ‘정밀성’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이 정밀성 탄생의 원류를 ‘시계’로 잡았다. 정밀한 시계가 많은 선원과 선박들을 구하고 정확한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기능을 발휘하면서 사람들은 보다 더 정밀한 세계로 나아간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보다 더 정밀함’을 위하여 허용오차 제로를 향해 나아갔던 지난 수백년의 역사를 소설처럼 써내려갔다.

 

 [완벽주의자들]이 제일 마지막 장인 <10장 균형의 필요성에 대하여>에는 ‘세이코’ 시계가 등장한다. 뱃사람들의 항해를 위하여 정밀함의 세계로의 진입을 알리는 마중물이 되었던 시계는 1900년대 일본에서 제국의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저자는 세이코 시계라는 인위적 정밀함과 대비되는 자연미가 동시에 숭상되는 일본을 예로 들며, 정밀함이라는 기술이 우리의 세계를 낫게 하지만 그 기술만이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인류는 흔히 매끈하게 마감된 경계선, 완벽한 베어링, 공학계만 아는 평평함의 수준에 감탄하고 집착하지만, 자연의 질서 역시 똑같이 중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연이 세상을 장악해서 정글의 새파란 풀이, 어린 푸른 대나무가 모든 발명품을 휘감아 덮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땐 허용 오차가 영국 실링의 두께이든, 양자의 직경보다 작든 아무것도 상관없어진다.
 정밀하지 않은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비틀대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정밀하다고 해도.
 407쪽

 

 

 이렇게 모든 꼭지를 마감한 후에 맺는 말에서 이 책은 시간과 현대의 정밀성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시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간의 계측 여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계측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세상, 심지어 중력까지도 달라진다. 시간은 자연이고 정밀하지 않다. 그것을 자신의 용도와 목적에 따라 계측하려는 사람들이 이 정밀하지 않는 시간 때문에 정밀한 기계를 만들어낼 뿐이다.
 단순한 교양서, 역사서인줄 알았는데 기술만 이야기한 책이 아니다. 우리가 정밀함을 구하는 이유는 정밀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것 아닌가.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 책의 머리말에 있는 이 말이 굉장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과학의 목적은 무한한 지혜의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무한한 실수에 한계를 긋는 것이다.
-베를로트 브레히트 - <갈릴레오의 삶>(1939)
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비상구 -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4
제정임 엮음 / 오월의봄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생존을 위한 앎을 호소하는 한 권의 책이 있다. [마지막 비상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학생과 교수진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 매체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연재한 탐사보도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을 묶은 책이다.

 

 “이런 상상도 못했던 사태는 우리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여러분에게도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책 182쪽 후쿠시마에 거주했던 현지인의 전언

 

 대형 산불이나 태풍과 같은 이상 기후, 후쿠시마 원전 같은 역대급 사고들의 뉴스를 읽으면서도 이게 내 현실의 문제라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다. 책의 중반을 읽다가 후쿠시마 이주민의 전언을 읽고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얼얼해서 반쯤 누운 자세에서 일어났다. 상상도 못했던 사태가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어서 현실감이 없었던 것일까? 


 기후 변화와 그로 말미암은 사건‧사고를 전하는 국제뉴스의 댓글란에는 ‘적어도 내가 살 동안에는 지구가 버텨주겠지’ 따위의 반응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이미 백세 시대에 접어들었다. 싫든 좋든, 칠십 세가 넘으면 죽음을 직면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3막을 준비하고 꾸역꾸역 백세를 생존하게 된 사람들이란 말이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후세를 위한 고결한 배려나 선택 같은 게 아니다. 이는 오늘 당장의 문제이며 내 생존이 걸린 이슈다. [마지막 비상구]에 실린 기사들이 궁극적으로 호소하는 건 ‘지금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당장 우리부터가 멸종’하게 된다는 명료한 현실이다.

 

 


 

 모든 일엔 대가가 있다. 에너지 사용이 공기로 호흡하는 일처럼 쉬워진 우리 시대에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시에는 꼭 마스크를 쓰게 되었고 전력을 공급하는 원자력 발전소의 부작용이 삶을 무너뜨리게 된 건 우연일까. 쉽고 편하게 에너지를 공급하고(받고) 그를 통하여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하여 지나온 시간들의 대가가 바로 이 현실이다. [마지막 비상구]는 이 현실을 아주 명명백백히 취재하여 독자 앞에 제시한다. 기후 위기에 무척이나 둔감한 한국, 한국 원전의 문제점, 핵마피아의 유착과 비리 사례 등 일반 독자나 보통의 시민으로서는 접하기 어렵거나 접할 수는 있더라도 무지 애를 써야만 하는 현실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보도 기사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며 독자가 자연스레 일깨우게 되는 건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의 문제는 어느 한 국가나 특정 도시인이 아닌 세계 공동이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점 그리고 특히 한국인이 더욱 민감하고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 한국인이 더욱 민감하게 이 문제에 주목해야 하느냐? 현재의 우리는 너무나 둔감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물자를 아끼고 환경 보호에 애를 쓰는 나조차 [마지막 비상구]를 읽기 전에는 몰랐다.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대지가 아니라는 사실, 경주와 포항의 원전은 너무나 오래되었고 위태롭다는 사실, 더구나 노후한 설비를 운전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안일하고 안전에 불감해 있는데다 사고시 주민들을 구할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매뉴얼조차 없다는 사실, 한국이 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 7위이며 플라스틱 사용량은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원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원전 기술의 탁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술이 탁월하다고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괜찮을 거라는 낙관으로는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던 ‘쓰나미(와 같은, 모든 종류의 자연 재해)’를 예측할 수도, 방어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원전을 가동하면서 생기는 핵폐기물 소위 원전쓰레기를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핵폐기물은 썩지도, 분해되지도 못한다. 콘크리트 창고 안에 최소 10만 년간 봉인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런 쓰레기를 만들어서 땅 속에 묻어두겠다는 생각자체가 이젠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 최소한의 10만 년의 관리가 필요한 맹독성위험물질을 우리가 만들고 묵인하는 건 무책임한 일(책 105쪽)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원전이 아무리 탁월한 기술로 값싼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이상 이제 원전은 다른 에너지 생산 기술로 대체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핵폐기물의 위험을 절감하는 시민은 왜 이다지도 적은가?  


 [마지막 비상구]의 2장 찬핵 세력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정말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부분은 한수원을 비롯한 원자력 관련 기관이 언론 집단에게 뿌린 보도 협찬비 내역이다. ‘안전한 원자력 발전’이라는 인식을 만들기 위해 언론사들은 수백억 원을 받고 방송과 인쇄물을 통해 그들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 그 돈이 과연 어디서부터 온 돈일지를 생각하면 부아가 난다.

 

 고영철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2018년 3월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언론의 본질적 역할이 무너졌다는 것”이라며 “원전 문제처럼 중요한 이슈에 대해 언론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고 대가성 기사를 써댄다면 시민들은 왜곡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책 239쪽

 

 그래서 시민들은 다양한 채널로부터 정보를 얻고 스스로 옳은 방향을 생각해 나가야 한다. 그런 다음 움직여야 한다. 온오프라인으로 온갖 채널이 범람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편향적인 시각을 갖기가 더욱 쉬워졌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비상구]와 같은 책은 말한다. “시장 지배력이 큰 언론사들이 자본의 입맛에 맞춰 에너지 전환의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언론이 이 문제에 바르고 강한 목소리를 내주고,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해주신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쁘겠습니다. (책 521쪽)”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을 무조건 믿고 지지하자는 건 아니다. 이 책에 실린 기사는 다만 하나의 가능성을 알릴 뿐이다. 기후 위기와 원전 위험에 대한 현실적 진단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청사진.

 


 

 [마지막 비상구] 3부는 국내외의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 사례를 취재했다. 스웨덴, 독일, 한국의 제주도와 서울 등지에서 태양열, 풍력 발전소(발전기)의 운영 사례를 꼼꼼하게 담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가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시끄럽게 한 태양열 발전에 대해서 정성을 들여 알아보고 공부해봐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생긴다. 더불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덮으며 이 책이 쏘아올린 ‘에너지 전환 문제에 대한 환기’라는 결실과 함께 이런 보도집을 완성하기 까지 쏟은 기자들의 노력에 감탄을 느낀다. 모든 일이 돈과 권력이라는 기준과 프레임으로 짜깁기되고 있는 지금, 이런 기사와 책들로 말미암아 보통 시민의 눈은 정말 주시해야 할 것을 주시하고, 주목해야 할 것을 주목하고 종국에 행동으로 움직여야 할 때 함께 움직이게 되기 마련이다. 


 지속가능하고 존속가능한 지구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 지금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다면 이 소박한 소원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